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2)
운빨로 탑스타-12화(12/200)
제12화
며칠 뒤.
약 4일간 이어졌던 다온 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 일정이 종료되었다.
다사다난하기 짝이 없었던 오디션.
이번 오디션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대표가 부재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참은 아니고.
“흐아암.”
명색이 대표이니만큼, 오디션의 최종 결정권만큼은 그의 손에 맡겨졌다.
“끄으응.”
대표라기에는 한없이 젊어 보이는 남자.
아니,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남자.
황인구 대표가 책상에 삐딱하게 엎어진 채로 두통에 한참이나 신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어우……대가리 땡겨. 김 이사님, 혹시 남는 헛개EX 없어?”
숙취 해소 드링크를 달라는 것이었다.
어젯밤 밤새도록 달렸다.
하루 사이 태운 술값만 천이 넘으니, 머리가 아프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표라니.’
멀리서도 술내가 풀풀 풍긴다.
일말의 존경심조차 들지 않는 모습에 김종혁 이사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사 오겠습니다.”
“이런 건 탕비실에 미리미리 쟁여 둬야지. 이런 걸 말해야 하나. 아, 김 이사한테 하는 말 아니야. 밑에 직원들.”
“주의하겠습니다.”
“늘 수고가 많아.”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표의 모습에 김종혁 이사는 참담한 심경에 잡혔다.
‘숙취에 시달리는 사람한테 최종 결정권을 맡겨야 한다니.’
애석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오늘 하루를 위해 며칠간 잠도 안 자고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다.
황인구 대표가 술로 밤을 보낼 때, 그는 황인구 대표를 설득할 자료를 만들며 저녁을 지새우지 않았나.
‘그래도 감은 있는 사람이야. 믿자.’
황인구 대표의 평소 모습이 한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장점은 있었다.
감.
가히 동물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감이었다.
누구를 뽑으면 회사에 돈이 될지 잘 안다고나 할까. 여태껏 황인구 대표의 선택은 크게 실패했던 적이 없었다.
찍기.
실력이라면 실력이고, 운이라면 운이다.
하지만 김종혁 이사는 그게 실력이라고 믿으며 입을 열었다.
“지난 며칠간 치러졌던 정기 오디션에서 눈에 띄는 참가자들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4일간 오디션에서 열정을 빛낸 1000명에 달하는 참가자 중, 유달리 눈에 띄었던 사람들을 걸러냈다.
실력이 충분한 사람이 80%.
그리고 아직 부족하지만 빛나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 20%.
여기에 단 한 명, 이번 오디션의 보석이라고 볼 수 있을 사람은 특별히 강조할 예정이었다.
‘4조 17번이었나. 이름이 이민기라고 했지.’
이민기였다.
김종혁 이사가 생각하기에, 이번 오디션에서 꼭 한 명만 뽑아야 한다면, 단언컨데 그밖에 없었다.
‘기본기는 완숙하고, 연기에 이미 자기 색깔을 갖췄다. 크게 건드릴 것 없이 당장이라도 필드에 투입할 수 있겠어. 우선은 드라마에 단역부터 천천히……아니, 영화에 조연으로 바로 보내도 충분하다.’
자신 있다.
이민기는 매년 쏟아지는 인재 중에서도 흔치 않은 원석이었다.
보석으로 치면 금(金).
최소한의 실력이 보장된 데다가, 다루기에 따라서는 그 가능성이 한없이 넓은 인재였다.
‘대표님이 아무리 무심해 보여도 명색이 기획사 대표다. 일단 보면 뽑을 거야. 보기면 하면 된다.’
자신 있다.
김종혁 이사는 확률을 넘어 확신마저 품은 목소리로 말했다.
“차례대로 정리해 두었으니, 확인해 보시고 말씀 바랍니다. 이번 오디션에 괜찮은 신인이 한 명 있는데, 이 친구가 걸출합니다.”
그 말에 황인구 대표가 눈길도 주지 않고 건성으로 답했다.
“응, 고마워. 한번 천천히 보자고.”
“……!”
그 대답에 김종혁 이사가 눈을 크게 떴다.
“정말이십니까?”
“뭘 놀라? 그깟 거 얼마나 걸린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김종혁 이사를 환희에 차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됐다.
이제부터는 눈으로, 귀로 판단하게끔 몰아갈 수 있다.
“일단 여기 이쪽 후보부터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응, 응. 얼마 안 되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영상 하나를 끝마친 순간이었다.
“흠.”
황인구 대표가 고개를 까닥이더니 말했다.
“잘하네.”
“그렇습니…….”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지?”
다음 순간이었다.
황인구 대표가 손가락으로 눈가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이번에는 뽑을 사람을 미리 골라 뒀는데.”
“예?”
미리 골라 뒀다니.
지금, 이게 무슨 말이지.
뜻밖의 말에 김종혁 이사가 움찔한 찰나 황인구 대표가 말을 이었다.
“그 누구지? 우리 투자사 중에 아이브리엄이라고 있잖아. 그 제약사 알지?”
“예, 대표가 자식 자랑을 자주 한다는 곳.”
일단 맞장구를 친 순간이었다.
황인구 대표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맞아, 그 대표 아들이 연예계에 도전하고 싶은가 보더라고.”
“…….”
“얼굴을 몇 번 봤는데. 훤칠해. 연기는 모르겠는데 일단 와꾸는 꾸미면 배우상이야. 느낌 있어.”
김지환.
그가 가까운 미래 대중의 호평을 받으며 중견 배우로 자리 잡는다는 걸 고려해 보면, 마냥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종혁 이사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알더라도 이민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안 된다. 이건 절대 안 된다.’
그가 차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든 순간이었다.
황인구 대표가 장난기를 머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술자리에서 하도 들러붙기에 알았다고 했지.”
“잠시만요. 대표님.”
“그렇게 알아. 자세한 명단은 이따가 줄 테니까. 그 아들내미가 꽤 가능성은 있어 보이더라고.”
“잠시만요. 그 사람이 괜찮다고 해도, 이 참가자의 역량은 탁월합니다.”
“얘는 남자잖아.”
“그렇습니다만…….”
이민기의 성별이 남자인 게 무슨 상관인가 싶은 순간이었다.
황인구 대표가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알면서 그래? 우리 오디션 한 번에 보통 남자 하나, 여자 하나 보통 뽑잖아. 어쩔 수 없지.”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
순간 말문이 막힌 김종혁 이사가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이 신인은 정말 잘한단 말입니다.”
“그렇게 잘해?”
황인구 대표가 의자째로 빙글 돌더니 물었다.
“예외를 둘 만큼?”
“그렇습니다.”
슬슬 마지막이다.
김종혁 이사는 어떤 종류의 사명감마저 느끼며 답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기회를 주면 언젠가 다온의 대표 배우로 성장할지도 모릅니다.”
대표 배우.
감히 신인을 뽑으면서 입에 담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운 단어였다.
하지만 김종혁 이사는 진심이었다.
그러니까 이민기는, 그가 여태껏 업계에 종사하며 본 신인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완성되어 있었으니까.
“자신 있습니다. 우선 결재만 해 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물건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일단 뽑자.
낙장불입이라고 하지 않았나.
적어도 다른 회사에 건너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을 터.
‘시간은 들이면 된다.’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 외친 순간이었다.
김종혁 이사가 설득한 애써 보람이 있었던 걸까, 황인구 대표는 흥미롭다는 듯 다시금 빙글 돌아서더니 말했다.
“잘됐네. 그럼 다온이 아니라 다른 곳 가서도 잘할 거야.”
“…….”
마냥 무책임한 말이었다.
그 한마디에서 설득의 종말을 직감한 김종혁 이사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대표님, 한 번만 더.”
“잘해, 이사님 말이 맞아. 확실히 잘하네. 그런데 우리 다온 스타일이 아니야.”
지나치게 주관적인 대답이었다.
스타일.
한 신인의 객관적인 능력을 두고 거론하기에는 너무나도 주관적인 단어.
그 말에 김종혁 이사는 마침내 깨달았다.
틀렸다.
이건 답이 없다.
어떤 이유를 댄들 거절할 상황이었다.
원석을 확인조차 안 하고 다른 회사로 넘겨버리겠다니.
‘다른 회사로 가서 대박을 터뜨리면 어쩌려고.’
속이 탔다.
무책임하다 못해 아둔했다.
안 봤다면 모를까, 보지 않았나.
하지만 그런 사람의 앞에서조차, 김종혁 이사는 어금니를 한번 꽉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대표다.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다온은 그의 회사였다.
* * *
다온 엔터의 오디션이 있고 나서 며칠 뒤.
끼익.
잼 액팅스쿨의 문이 열리더니, 그 안으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잇값 못 하게 건들건들한 몸놀림에 대충 입은 것 같은 옷. 하지만 어째서인지 심상치 않은 몸선이 돋보이는 남자.
“오셨군요.”
김아성 트레이너였다.
“예이, 원장님.”
그는 원장실이 자기 집 안방이라도 된다는 듯 편하게 눌러앉더니 그저 가만히 있었다.
마치 상대가 할 말을 기다리듯.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박 원장이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오디션 결과.”
“아, 그거요.”
김아성은 잠시 입꼬리를 바짝 당기더니 말했다.
“그렇지, 오늘 아침에 결과 연락이 왔죠.”
다온 엔터 오디션의 결과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원채 소규모로 진행한 만큼 발표가 나오는 것도 순식간이었는데, 그 결과에 박 원장이 주의를 기울였다.
김아성 트레이너와 지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했던 내기.
그 결과가 지금부터 나온다.
“그래서, 결과는?”
박 원장의 재촉에 김아성 트레이너는 뜸을 들이듯 웃다가 말했다.
“떨어졌어요.”
“……이민기 학생과 유선아 학생 둘 중에서 누가?”
“둘 다요.”
그렇다.
이번 다온 엔터에서 두 사람은 시원하게 탈락했다.
아주 조금의 여지도 없이, 깔끔하게.
“후우, 제가 이겼군요.”
“그렇게 됐네요. 원장님, 축하드립니다.”
김아성이 늘 그렇듯 이죽거렸다.
하지만 박 원장은 걸리는 게 있다는 것처럼 어딘가 씁쓸한 눈치로 중얼거렸다.
“이걸 좋아해야 할 일일지.”
“왜요, 좋아하셔야지. 내기 이기셨잖아요?”
“그렇기야 합니다만.”
박 원장은 눈을 몇 차례 깜빡이더니 말했다.
“어찌 됐든 학생이 떨어졌잖습니까.”
“…….”
“열심히 하는 걸 알면서도, 기뻐하는 건 교육자로서 도리가 아니기에.”
지난 한 달.
박 원장은 계속해서 이민기의 연기를 관찰했다.
어떻게 발전하는지, 어떤 연기를 준비하는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두 눈에 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민기는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결코 무시당해 마땅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원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는데.”
“제게도 사람 보는 눈은 있습니다. 이민기 학생은 분명 달라졌고, 열심히 했습니다.”
내심 깔봤던 박 원장의 평가를 뒤집을 만큼의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박 원장은 김아성 트레이너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실례가 될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뭐 하나 여쭤도 괜찮겠습니까?”
“말씀하세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의 김아성.
박 원장은 그런 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트레이너님은 이 일이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으신가 봅니다?”
“…….”
“애착이 있으신 줄 알았는데.”
“그야, 뭐.”
김아성은 시선을 책상으로 돌리며 뺨을 긁적이더니 말했다.
“저는 원래 다온 엔터가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요.”
그렇다.
김아성은 진심으로 다온 엔터라는 기획사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었다.
“돌아가는 사정을 안다면 좋아할 수가 없는 곳이죠. 본인이 가고 싶다니까 애써 말리지 않았을 뿐, 기회가 있었더라면 뜯어말렸을 겁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남의 미래 가지고 거짓말 안 합니다.”
박 원장이 김아성 트레이너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평소 장난기 가득했던 눈빛이 지금만큼은 미동조차 없이 한없이 진지했다.
진실이었다.
그는 장난기가 가득한 사람이되,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민기가 하필 그곳을 지망한다는 게 아쉽기마저 했을 정도로.
‘대표가 어지간한 양반이지.’
김아성 트레이너의 정보력은 그가 업계에서 쌓아온 커리어 만큼이나 진짜배기다.
그간 가르친 제자만 세 자릿수가 한참 넘어서다 보니, 외부에서 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더욱이 오디션에 관해서라면 어지간한 기획사의 대표보다도 한 수 위.
당연히 다온 엔터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소문 아시죠? 다온은 대표 새……는 아니고, 대표 놈 힘이 강하다는 거.”
“대략적으로만 들었습니다만.”
“까놓고 말해서, 그게 사실이걸랑요. 다온은 대표 놀이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그 정도입니까?”
놀란 표정을 짓는 박 원장에게 김아성이 담담이 말을 이었다.
“듣기로는 별 깡패 같은 놈들이랑 호형호제 한다나? 맨날 클럽에 죽치고 술 마시면서 소속 연예인한테 접대 강요하거나 빠따 휘둘렀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하고.”
촌철살인처럼 쏟아지는 말에 박 원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게 루머가 아니었군요.”
“지인 중에 피해자가 있어서. 애초에 거기 오디션이라는 것도 사장 입맛에 맞는 사람 뽑는 소꿉놀이죠. 심사위원들이 왜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으음, 오늘은 제가 들어도 되나 싶은 이야기를 너무 듣는데.”
나름대로 잘나가는 학원 원장인 박 원장으로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정말로 아는 사람만 알 이야기.
하지만 김아성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뭐, 오프 더 레코드잖습니까? 없는 자리에서는 대통령도 욕한다는데, 깡패놈 하나 못 깔 이유가 없죠.”
모처럼 화가 난 것도 맞고.
김아성은 모처럼 끓는 속을 감추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그래도 회사가 어찌 굴러가는 걸 보면 마냥 무능한 사람은 아닐 겁니다. 배우 좋아하니까 배우 보는 눈은 있겠죠. 운도 좋을 테고. 하지만 굳이? 능력 있는 사람이 굳이 찾아갈 곳은 아니다, 그뿐입니다.”
그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막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학생의 선택을 막을 의리는 없을뿐더러, 그가 남 행동에 굳이 나서며 간섭할 성격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온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실 지망생들에게는 감지덕지기도 하고.’
이민기가 다온에 가고 싶어 한다면, 가면 그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시간 보고 느낀 게 있다.
이민기의 실력은 진짜다.
재능도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민기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집념이 있었다.
필사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런 집념이.
‘그 정도로 열심히 하는 사람은 현업에도 흔치 않지.’
아주 사소한 연기에도 최선을 다한다.
당장 내일 죽더라도 이 연기는 하고 죽겠다는 듯한 기세.
거기에 이끌렸다.
처음에는 단순 재미 삼아 접근했지만, 어느 사이 이민기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탓일까.
어느 순간부터 그가 다온을 지망한다는 게 안타깝게 느껴졌고, 끝내 결과를 보니 외려 속이 시원하기까지 했다.
‘당장은 한 걸음 물러나는 꼴이 됐지만, 굳이 다온이 아니더라도 열 걸음 전진할 곳이 많아.’
김아성은 업계를 보며 성공할 사람을 점칠 줄 알았다.
이민기에게도 곧 자유가 올 것이다.
“뭐, 그렇게 된 일이니까 이건 그냥 넘어가고.”
김아성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약속 지켜야겠네요.”
“약속?”
박 원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찰나, 김아성 트레이너가 툭 밷듯 말했다.
“내기 했지 않습니까. 민기 학생이 다온에 붙으면 원장님이 전액 장학금을 주고, 떨어지면 제가 뭐 하나 해드리기로. 학원에 비공개 오디션 여는 그거.”
“아.”
박 원장이 짧게 탄성을 뱉었다.
그렇지, 그런 약속을 했었지.
‘어쩌다 보니까 까맣게 잊고 있었군.’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박 원장 그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민기를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응원하는 사람이 실패했을 때의 가정을 할 사람은 좀처럼 없으니까.
“뭐, 그런 겁니다.”
김아성은 주의를 환기하듯 중얼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비공개 오디션 관련해서는 일정 잡아보고 금방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됐지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짧은 대화가 끝났다.
한 사람은 새로운 기대감에 차올랐고, 다른 한 사람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전자는 김아성 트레이너.
후자는 박 원장이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생각이 완전히 바뀐 두 사람이었다.
* * *
잼 액팅스쿨 연습실.
그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두 명의 학생이 있었다.
“안 왔네요.”
“그러게요. 쓰읍, 이거 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유선아와 김탁이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마주하다 보니 나름대로 죽이 맞게 된 두 사람.
그들은 지금 한 사람을 주제로 삼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민기 씨가 오늘은 늦네요?”
이민기가 지각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