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20)
운빨로 탑스타-120화(120/200)
제120화
세상에는 다양한 부류의 평론가가 존재한다.
[이번 영화를 통해 감독은 보여주고자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식이섬유처럼 유기적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으며, 더 많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을수록 건강하게 잘 설계된 사회……]자리에 앉아 정독해야 할 만큼 구체적인 해설을 길게 늘어놓는 타입.
[몽마르뜨 언덕의 바람을 떠올리게 만든다. 내쉬는 호흡 하나하나가 아쉽다. 결과적으로, 더 깊어졌다.]무당이 듣더라도 혈압이 올라 뺨을 후려칠 만큼 추상적인 타입.
그리고.
[2시간짜리 이민기 화보]한 귀에 꽂힐 만큼 짧고 직관적인 문장으로 응수하는 타입.
어째서일까.
이번 이민기 영화에서는 유독 마지막 타입이 많았다.
[황의성 감독은 좋은 감독이다. 이민기는 잘생겼다.] [패션 앤 패션, 패션이 폭발하고 패션도 폭발하네] [황의성이 이민기를 통해 내놓은 외모지상주의의 결정판] [재능이 필요 없는 천재에게 주어진 재능은 인간을 어떻게 파멸시키는가]황의성이라는 감독은 원래 좋은 영화를 만들던 사람이다.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그 영화의 퀄리티에 관해서는 의문조차 떠오르지 않는 게 그였으니.
하지만 이번 영화에 관해서는 예전부터 유독 잡음이 많았다.
이민기라는 대형 신인이 대뜸 그를 찾아갔다는 게 이유였겠지.
예술병이 걸렸는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황의성 묻었네] [민기 저러다가 예술 영화만 찍는다고 나도는 거 아님?] [요즘 패션에 자꾸 발 담그려고 하는 것도 불안해 ㅜㅜ]하지만 이런 의문조차도 [스타 매거진]의 리뷰 하나에 말끔하게 씻겨나갔다.
[황의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다! 이민기가 나온 영화 중 제일 재밌다!]대중적이고 재밌다.
이것보다 더 직관적인 말이 있겠는가.
영화 개봉까지 불과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
[한 번만 속아 줘 볼까~~~~?]관객들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패션 앤 패션]에 기대감을 품기 시작했다.
한편.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안다] [딱히 할 말 없다]황의성 감독이 시사회장에서 뱉은 말들은 적절한 마사지를 통해 인터넷으로 함께 퍼져나갔고.
안티가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 * *
영화 개봉까지 불과 이틀 남은 시점.
이민기는 그간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보답받을 준비에 돌입했다.
바로.
“배우님께서 벌써 오디션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서정우 이사의 말마따나 오디션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게요. 참 세상일 모르겠네.”
이민기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의 그는 오디션을 보러 온 게 맞다.
하지만 주어를 비롯해 많은 문장 요소가 생략되었다.
전체 맥락을 따져 보자면 이러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데뷔하고 아직 3년도 못 채운 제가 심사위원 일을 하게 될 줄이야.”
이민기가 심사위원으로서 배우 일에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무려.
“옛날에는 같은 도전자 입장으로 오디션 준비했던 사람들인데요.”
예전 그의 학원 동기 및 오디션 동기들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말이다.
그렇다.
불과 몇 달 전, 이민기는 JC 측과 내기 한 가지를 맺었다.
[3개월 동안 팔로워 100만 채우면 찍으라는 거 아무거나 하나 찍을게요. 하지만 300만 채우면 오디션 하나 열어주시는 겁니다.]특별 오디션을 미끼로 말이다.
JC는 약속을 지켰다.
공문 없이 비공개로 오디션이 열렸는데, 김탁과 유선아, 김지환 등을 포함해 JC에서 암암리에 데려온 몇몇 유망주들이 섞였다.
그 심사위원 자리 하나에 이민기가 앉았고.
‘아침에 회사 미팅 겸 출근했다가 납치를 당했네.’
예고했던 것도 아니다.
아침에 회사에 일 보러 잠깐 들렸다가 대뜸 오디션 보라면서 끌려왔다.
‘세상 진짜 모르겠다.’
이래도 되나.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지는 상황에 이민기가 물었다.
“전 다 면식이 있는 사람인데요. 제가 심사에 참여하면 불공평하지 않을까요?”
“그런 가능성이 없진 않겠습니다만,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서정우 이사는 그런 이민기의 말을 간단하게 반박했다.
“현업에서 떨어져 있으면 떨어져 있는 만큼, 감각이 둔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는 배우님의 눈으로 봐야 보이는 것도 있겠지요. 친한 사람도 친하지 않은 사람도 심사위원석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
말은 청산유수네.
짧게 줄이면 네 눈으로 보고 평가해라 그거 아닌가.
사실, 서정우 이사에게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배우님은 운이 좋은 사람이지.’
이민기라는 사람이 알고 지내면 지낼수록 운이 기이하리만치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뭘 하든 잘 풀린다는 건 봤다.
하물며 엮인 사람들조차도 술술 풀린다는 것도 느꼈다.
‘이번 오디션도 이민기 배우님이 뽑으면 잘 풀리는 거 아닐까.’
단순히 미신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오디션 심사위원으로서는 그런 미신에 기댈 때가 의외로 잦은 법이었다.
순간의 삘, 직감 같은 거.
그런 의미에서 서정우 이사는 이민기의 선택을 믿어보기로 했다.
애초에.
‘정 아니다 싶으면 내가 떨어뜨리면 그만일 테고.’
최종 결정권자는 그이기도 하니.
인맥에 휘둘리는 게 선을 넘는다면, 직접 자르면 된다.
참.
이민기를 대뜸 오디션장에 심사위원으로 납치한 것 또한 우연은 아니다.
그가 심사위원이라는 점이 알려지거든 참가자들 사이에 비리가 일어날 수 있기에 일부러 감췄다.
또 이민기에게는 참가자의 구체적인 신상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순수히 배우로서의 직감으로 평가해 줬으면 하는 기대도 있고.
“상품성이나 성장 가능성 등 상업적인 면은 제가 평가할 예정입니다.”
서정우 이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배우님께서는 한 사람의 관객이 되어 솔직한 감상만 봐 주십시오.”
“어렵네요.”
“예, 오디션은 원래 어렵습니다. 도전하는 사람도, 평가하는 사람도.”
하긴, 이쪽은 투자하는 입장이다.
더욱이 내 한치 혀로 타인이 한평생 쌓아온 노력을 재단하는 게 마음이 편할 리가 없겠지.
“진행 순서는 어떻게 되나요?”
“안내 안 드렸습니까?”
“네, 그냥 납치당했는데.”
“한 번에 세 명씩 평가할 예정입니다.”
“평가가 뒤섞이지 않을까요?”
“좋은 의견입니다. 하지만 타인이 보는 앞에서도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도 배우에게는 중요하니까요.”
사실, 알면서 해 본 말이다.
자리가 어색해서.
그렇게 옆에 JC 소속 심사위원 또 한 명을 앉힌 채로 두 사람이 중얼거리는 사이였다.
“시작이군요.”
서정우 이사의 말과 동시에 오디션장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조심스레 열렸다.
그 사이로 들어온 세 사람 중 가장 정면에 서 있는 여성은.
‘아니.’
이민기가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저 인간이 왜 여기에 있어.’
한편.
상대편에서도 이민기를 보고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저 인간이 왜 여기에 있어.’
* * *
SNS가 발달하며 새롭게 생겨난 직업이 있다.
인플루언서.
인플루언스(influence/영향)을 변형시킨 단어인데,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처음에는 직업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사람을 인플루언서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많은 구독자를 보유했다는 건 그 자체로 큰 수입이 되기 시작했고.
어느 시점에 다다라서는.
[인플루언서 OGZ, 패션 독립 레이블 선언]인플루언서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를 잡아버렸다.
바로 여기.
이민기의 눈앞에 그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로 잘 나갔던 사람이 서 있었다.
‘OGZ, 이렇게 다시 보게 되네.’
OGZ.
패션 및 예술 방면으로 꽤나 큰 명성을 떨치는 여성 인플루언서였다.
SNS에서 이미 60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유명인인데, 어지간한 연예인 뺨치는 여신 화장으로 유명하지.
하지만 이민기에게는 다른 방향으로 인상이 각별했다.
‘이 사람 때문에 테러당해서 고생이 장난 아니었는데.’
바로 SNS가 그러했다.
이민기는 그녀의 SNS에 질문 글을 올렸었다.
[혹시 이 옷 어디서 구하셨나요?]SNS에서 그녀가 걸친 코트가 멋있길래 물어본 것이었다.
중성적이기도 하니 입으면 괜찮을 것 같아서.
하지만 그에 반응이 어떠했던가.
[제가 직접 만들었는데요. 왜 프레임을 씌우시죠? 혹시 제가 옷을 만들어서 입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기분이 썩 좋지 않네요.]좀 많이 차가웠지.
그 덕에 이민기가 당했던 수모가 굉장했다.
인플루언서한테 들이대다가 본전도 못 찾은 놈 취급을 당했던가.
[배우 준비하시네요?] [ㅋㅋ 무명이라서 질투했나 봄 자기는 못 나가는데 OGZ님은 너무 잘나가는 인플루언서니까 ㅋㅋㅋㅋ] [진짜 세상에서 이런 사람들이 제일 한심함 ㅎㅎ] [유명한 사람 있다면 좀 묻혀가 보려고 들이대다가 본전도 못 찾았쥬?]이민기가 단 댓글 밑으로 비난만 80개가 넘게 달렸다.
그건 이미 마녀사냥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봐도 치가 떨리는 기분에 이민기가 작게 입술을 씹었다.
‘무서워서 계정 삭제했지.’
그나마 SNS 계정을 만든 직후라 얼굴은 안 깠던 게 다행일까.
전말이 그러하다.
OGZ.
그녀야말로 이민기가 SNS를 접게 만든 주범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내가 정말로 잘못한 건가 고민도 많이 했지.’
하지만 나중에는 알았다.
저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꼽을 주며, 자기 몸값을 올리기를 즐긴다는 걸.
별것도 아닌 일로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며 역으로 상대를 후안무치한 가해자로 만든다고나 할까.
제대로 악취미다.
뭐, 전부 지난 과거의 일이지.
하지만 그 과거라는 시점이 아무래도 조금 달랐다.
‘저쪽은 날 기억이나 할까?’
그렇다.
과거로 돌아왔을 때의 일이 아니었다.
이민기가 한창 연습생에 머물렀을 때 발생했던 일, 그러니까 현재 시점에서는 불과 몇 년 전 일이었다.
‘많이 변했어.’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 당시에는 말 한마디 붙이기도 조심스러웠는데, 이제 관계가 역전되지 않았나.
오디션에 도전하는 SNS 인플루언서.
그리고 한국에서 신인 배우 중 단연 1위 자리를 맡아놓은 배우 겸 심사위원으로 말이다.
“반갑네.”
이민기가 자기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배우님, 사심 드러내시면 안 됩니다.”
서정우 이사의 입에서 농담조로 나온 지적에 이민기가 빙그레 웃었다.
“알죠.”
조용한 오디션장에 이민기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웃음에 OGZ, 은기주의 심장이 한계까지 쪼그라들었다.
‘대박, 진짜 이민기다. 이민기가 심사위원이었어? 미친, 말도 안 돼.’
설마 이런 기회가 올 줄이야.
언제나 연예계 진출을 꿈꾸고 있었는데, JC 측 인사에게 비비고 또 비벼서 얻은 자리다.
그런데 그 자리에 이민기 같은 현역 거물 배우가 떡하니 앉아 있다니.
‘이게 JC구나.’
눈이 획 돌아갈 만큼의 충격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이민기를 마주한 순간, 그녀에게 이번 오디션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되었다.
‘무조건 친해져야지.’
이민기의 SNS 계정은 봤다.
고작 3개월 만에 팔로워 300만을 넘겼던가.
그러면서 자기가 팔로우한 사람은 고작 20명이 안 됐지.
내가 그 안에 들어야겠다.
설령 오디션에서 탈락하더라도 이민기와 아무 관계나 만들면 된다.
인플루언서에게 ‘진짜 연예인’과의 인맥은 천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산이었다.
설령 정말로 친한 관계는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대중의 눈앞에서는 얼핏 친한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되니까.
[대세 인플루언서 OGZ, 이민기와의 인맥 과시. 역시 대세끼리 어울리네.]기사 하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낙수효과를 넉넉하게 받아먹을 수 있으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찰나였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바랍니다.”
서정우 이사의 말에, 어느새 잿밥으로 눈이 돌아간 은기주가 맑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SNS에서 패션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는 은기주라고 합니다.”
다음 한마디가 중요하지.
은기주는 작정하고 이민기만 집중적으로 공략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비록 초면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모델인 이민기 배우님의 심사를 받을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초장부터 이민기에게만 달라붙을 생각이었다.
옆의 두 사람은 상관없다.
이민기에게 인상 남기고, 돌아가서 SNS로 팔로우 신청할 거다.
그리고 친분만 과시해도 본전은 한참 넘긴다.
“배우님, 그렇다 하시는군요.”
서정우 이사가 빙그레 웃으며 은기주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억누르는 와중이었다.
“감사합니다.”
이민기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저희 말 좀 나눠본 사이 아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