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22)
운빨로 탑스타-122화(122/200)
제122화
김탁.
머릿속으로 그 이름 세 글자를 떠올려 보자면, 빈말로도 이미지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경박하고, 생각이 짧고, 쓸데없이 목소리가 크고. 튀고 싶은 것처럼 자꾸 남 하는 일에 끼어들고, 얼굴값 못하고.’
흔히 말하는 나대는 캐릭터라고나 할까.
이민기처럼 차분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사람으로서는 처음부터 어울리기 어려운 성격이었다.
그래서 색안경을 끼고 봤을지도 모른다.
아주 짙은 색안경을.
[형씨, 밥이 그게 뭐예요? 아, 컵라면 좋아하시는구나! 오늘은 나도 컵라면이나 먹어야지.]돈 없어서 학원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는데 대뜸 말을 걸어오더니 시비를 걸었다.
[아까 그 연기 뭐예요? 무슨 생각으로 하신 거? 어디 가세요. 같이 토론을 나눠 보자니까.]연기 수업 조져서 스트레스받고 있으려니 와서 도발을 시전했다.
[오오, 매일 걸어오시네? 걷기 좋아하시나 봐요? 하긴, 대중교통은 좀 불편하지.]지는 어디서 돈이 솟아나는지 맨날 택시 타고 다니는 주제에, 학원 좀 걸어 다닌다고 놀렸다.
복합적으로 짜증 났다.
지금 당장도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시끄러워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적어도 돌려받은 삶에서 깨달은 게 있다면.
‘적어도 악의는 없는 사람이었지.’
그에게는 악의라고는 한 톨도 없다는 것이었다.
피하지 않고 대화를 나눠보니 알았다.
순수한 호의를 품고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었으며, 말투가 다듬어지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그의 성격은 부정적으로 보자면 나대는 게 맞다.
하지만 유리컵을 돌리듯 30도만 다른 방향으로 빙글 돌려서 보자면.
그래.
‘나 같은 사람한테도 열심히 말을 붙여댔네. 맨날 무시당하면서도.’
붙임성이 좋은 것이었다.
상대방 눈치를 안 볼 정도라는 게 문제이긴 하다만.
그랬던 그가, 지금 이민기의 기억 속에도 남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나 아직 대학생이라고!! 가지 말라고!!! 아빠가 가면 나 생활비는 누가 보태줘! 대출 빚도 남아 있는데!”
더럽게 부모 속 썩인 자식이라는 컨셉으로 말이다.
학원 수업 과제 중 [신파 연기]로 준비해 온 그것이었다.
아주 선명하게도 기억하고 있다.
왜냐.
‘이건 못 잊어버리지.’
그가 과거로 돌아오고, 가장 처음으로 봤던 연기였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연기력이 별로라서 놀랐던 그것.
막돼먹은 자식이 슬퍼하는 연기였는데, 그냥 막돼먹은 자식만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진짜…… 왜 벌써 가냐고오오……. 말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얼른 취업해서 차라도 뽑아주고 싶었는데…….”
명백하게 슬픔이 느껴졌다.
김탁의 날 것 같은 목소리 속에 자글자글한 떨림이 공존했다.
디테일이었다.
김탁은 이제 연기에서 더 많은 걸 표현하는 법을 익혔다.
‘많이 발전했지.’
발전.
김탁이 지난 2년간 거둔 것이었다.
이민기가 현업에서 프로 배우로 활동하기를 한참, 그사이 김탁은 배우 지망생으로서 열심히도 연습했다.
잘 생각해 보면 그랬다.
‘매주 정기 연습에 단 한 번도 안 빠졌지.’
남들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며 빠지고 싶다는 눈치를 비출 때도, 김탁만큼은 의문을 품지 않고 혼자 연습하고 돌아갔다.
[탁 씨는 그래, 호흡이 너무 경박하네. 시간 나면 바둑이라도 둬 보는 거 어때?]김아성에게 지겹도록 지적을 들으면서도, 의문을 품고 반박하지는 않았다.
[크아아악!]괴성은 질렀지.
그 괴성 한번 지르고는 지긋지긋한 훈련을 이어나갔다.
그 결과물이 저것이었다.
“나 장학금 받아 왔는데 왜 오늘 가냐고. 적어도 잘했다고 칭찬 한마디는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발전.
꾸준한 발전이 결국, 김탁에게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어느 만화에 나오는 말이 있다.
연기의 신은 지독한 구두쇠라서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연습한들, 부모도 못 알아볼 만큼의 발전을 준다고 했던가.
김탁은 그 티끌만큼의 발전을 부단히도 끌어모아.
“저, 끝났는데.”
산을 쌓았다.
티끌은 어느새 태산이 되었다.
‘잘하네.’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같이 한 작품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의 세 사람에게는 차마 느낄 수 없었던 그 감정이었다.
촬영장 밖에서는 가급적 같이 멀리하고 싶다만.
이민기가 평가를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잘 봤습니다.”
“휴.”
“재밌는 연기네요. 옛날에 봤던 작품인데, [불량아들, 대학 가다] 맞죠? 엄청 오래된 작품.”
“캬, 이걸 아시네. 재밌어서 워낙 많이 봤거든요. 아, 진짜 재밌는데.”
김탁이 뿌듯하다는 듯 뇌 주름이 깨끗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민기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이사님 생각도 여쭙고 싶습니다.”
“음.”
서정우 이사가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긁적였다.
사실, 그는 김탁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인물이었다.
이민기와도 업무 관련해서만 깊게 엮일 뿐, 사적인 만남은 거의 가지지 않을 정도이니.
그런 그가 입을 열었다.
“부족한 부분이 없다고는 말을 못 하겠습니다. 군더더기가 많군요.”
“…….”
부정인가.
이민기가 내심 아쉽다는 생각을 품은 찰나였다.
“하지만 확실한 자기 영역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스크린에서 보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
긍정이었다.
무거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숨기지 못한 김탁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심사위원님을 위해 절차탁마해서 갈고 닦았습니다!”
“……!”
그 말에 이민기가 눈을 크게 떴다.
‘김탁이 사자성어를?’
지성이 느껴진다.
그 누구보다도 동물 본연의 자세로 살아가는 김탁의 입에서 지성마저 느껴지는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발전한 건가.
연기뿐만 아니라, 두뇌까지 발전한 건가.
이라고 생각한 찰나.
“아니지, 절치부…… 심? 절차부심? 독고탁마? 심기부전? 맞나?”
아니었다.
봄바람처럼 잠시나마 머물렀던 지성이 휘발유 마르듯 도로 떠나갔다.
“큭큭.”
옆자리에서 조용히 종이 위로 펜만 끄적이던 심사위원도 작게 웃을 지경.
이제 대충 의견은 다 알았다.
이민기도 대충 메모장에 뭔가를 적는 척을 하며 말했다.
“하나만 더 묻고 싶은데, 이만한 실력이면 다른 곳에도 지원해 봤을 법하거든요. 혹시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이건 좀 궁금했다.
‘2년 동안 어디 오디션을 많이 다닌 것 같지는 않았지.’
궁금해도 참았지.
같은 동기였다만 이제 성공한 배우가 된 입장에서 지망생으로 남은 김탁에게 오디션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을뿐더러.
사적으로 김탁과 말을 많이 섞고 싶지 않아서 주저했다.
그래도 기회가 기회이니만큼 물어본 순간이었다.
김탁은 멀뚱멀뚱 서 있기를 잠시, 싱글벙글 웃더니, 자기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말했다.
“형ㅆ…… 배우님이 JC 갔는데, 나도 JC 가야죠!”
아, 그런 이유.
떨어지면 어쩌려고.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캐릭터가 딱히 싫지는 않다.
이민기가 웃으며 말했다.
“네, 잘 봤습니다. 이대로 오른쪽 문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 * *
이후로도 비공개 오디션이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JC 측에서 따로 마련한 사람이 열 정도.
그리고 이민기가 요청한 가 김탁과 유선아, 김지환까지 세 사람.
남은 두 사람 중.
“매일 생각했습니다. 올바른 언론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유선아는 당연히 잘했다.
“나는 더는 기자라는 직업이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원래부터 잘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유독 오디션 배정 운이 안 좋았지.
이유라면 알 것도 같다.
‘선아 씨는 분명 잘하기는 되게 잘하는데, 색채가 옅었지.’
현업 배우 중에서도 유선아 만한 내공을 갖춘 사람이라면 흔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째서일까.
왜 유선아가 장수생으로 전락했던 걸까.
그 자세한 이유라면 이민기가 가장 잘 알았다.
‘착한 연기에만 지나치게 함몰됐던 거야.’
착한 연기.
다르게 말하자면, 단점이 없는 연기에 너무 빠져들었다.
장수 배우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빠지는 가장 전형적인 함정이었다.
‘단점이 없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개성이 없다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냉정하게 말해서 무미 무취하기만 해.’
단역이라면 모른다.
어느 상황에서든 투입해서 요긴하게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기획사들이 바라는 인재상은 그것과는 달랐다.
단점이 조금 있어도 되니, 확실하게 자기 캐릭터를 갖춘 사람을 선호하기 마련.
[음, 선아 씨 연기는 뭐라고 해야 하나?]김아성 트레이너도 지적한 부분이었다.
[분명 잘해. 잘하지. 졸라 잘해. 어우, 내가 아는 지망생 중에서 연기 하나는 이거야. 근데 흠, 연기를 볼 때는 좋다가도 끝나고 뭔 연기했나 돌이켜 보면 떠오르지를 않아.]그렇다.
유선아라는 사람은, 심사위원들의 인상에 남지 않는 사람이었다.
가진 실력만큼이나 눈이 높았던 것도 있을 테고.
하지만.
“기자는 정의로워야 합니다. 기자는 솔직해야 합니다. 기자는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기자는 과감해야 합니다.”
이제 그녀에게도 색깔이라는 게 붙었다.
‘용감해지셨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는 착한 연기를 벗어던졌다.
지적을 당해도 좋으니, 나 하나만 봐달라는 연기를 할 줄 알게 되었다.
문득, 이민기는 그녀의 연기 속에서 김탁을 엿보았다.
‘아, 그렇네?’
왜 몰랐을까.
김탁은 개성은 과할 정도로 강하지만 연기력이 모자랐다.
반면, 유선아는 연기력은 출중한 반면, 정작 개성이랄 게 희미했다.
이 둘.
서로가 단점을 반반씩 나눠 가진 셈 아닌가.
‘뭐지?’
이민기가 의문을 품는 사이, 서정우 이사가 가로채듯 말했다.
“요즘 잘하는 여자 배우가 드물었는데, 한 명 찾은 것 같군요.”
더 볼 것도 없다.
저만한 제스처가 있을까.
그 말이 나온 순간 유선아의 다리가 휘청 떨리는 듯했다.
사심을 보이지 않기 위해 분위기를 살피던 이민기도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같이 연기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기쁨을 감출 줄을 모르는 유선아를 향해 이민기가 작게 물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연습하셨나요?”
“음.”
그 말에 유선아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이민기 배우님만큼이나 최고의 신인 배우가 되는 생각이요.”
푸훗.
이번에는 서정우 이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들어도 아부 느낌이 감돌면서도 객관적으로 아부가 아닌 말이라니.
“오늘은 유독 이민기 배우님 좋아하는 지원자가 많네요. 안 그렇습니까?”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그렇게 가벼운 농담과 함께 유선아의 차례가 끝나고.
다음으로는 김지환.
이번만큼은 이민기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 되게 오래간만인데.’
지난번 다온 사태 이후로 반쯤 잠적한다며 연습에도 안 나온 게 김지환이었다.
사실, 이번 오디션 제의도 가까스로 거절할 줄 알았다.
집안이 부자라 가진 돈도 많겠다.
굳이 대중의 비난과 불명예를 덮어쓰면서까지 연기자 생활을 고집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니까.
아니, 다 떠나서 굳이 오디션 자리가 고픈 사람이 아니다.
실력으로만 보면 차고 넘치지.
커리어도 다온 일만 아니었다면 기획사 측에서 영입하려고 전방위로 영업을 뛰었어야 할 수준이고.
어찌 보면, 오디션에 부른다는 것 자체가 치욕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민기가 작게나마 의심을 품은 찰나였다.
김지환의 실력은.
“멀리 가 봤자 서면이겠지.”
그 첫마디부터 이민기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지경이었다.
오싹.
명백하게 여타 참가자와 격이 다른 연기에 이민기가 솜털을 삐쭉 세웠다.
캐릭터와 스킬, 그런 것으로 분석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니다.
‘원래부터 잘했는데, 훨씬 더 레벨업 했어.’
김지환.
그는 잠적 생활 동안 몸을 웅크리지 않았다.
불명예를 씻어버릴 각오로 갈고닦았다.
‘방심하면 따라잡히겠네.’
어쩌면 다온이 무너졌기에 김지환이 성장할 계기가 생긴 것 아닐까.
든든한 뒷배가 사라졌다.
세상은 이제 더 이상 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쌓은 커리어는 모두 치욕이 되었다.
이 모든 게, 김지환이 연기자로서 성장해야만 할 이유가 되어준 것.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야생 동물처럼 살아야 해. 동물처럼. 사냥에 실패하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어느덧 평가가 아닌 감상의 자리.
숨을 죽이고 2분의 시간이 흐를 무렵이었다.
“잘 봤습니다.”
한참이나 조용히 있었던 제3의 심사위원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끝나고 가시는 길에 잠깐 이야기 좀 나누고 싶군요.”
다온 묻은 배우라고 치부하기에는, 과하게 뛰어난 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