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25)
운빨로 탑스타-125화(125/200)
제125화
스케쥴이 급하게 잡혔다.
‘이번 주말이라.’
불과 4일 뒤 바로 광화문에서 팬미팅을 열자고 말이 나온 것.
하지만 안 그래도 동시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 딱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느꼈다.
“여기에 정규 계정으로 오는 건 처음인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이민기가 닭가슴살을 우물거리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타다닥, 타닥.
시원한 타건음이 흘러나오기를 잠시, 이내 그의 진짜 계정이 등장했다.
[protein140g]프로틴140그램.
이민기가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계정이었다.
보통은 눈팅 정도만 하는 편.
그 외에는 평소 배우, 모델 활동을 하며 홍보했던 제품들 후기를 쓰고는 했다.
[제목: 리얼프로틴 신제품 나왔네요~] [작성자:protein140g] [내용: 배우님이 홍보한 물건 나왔다고 해서 바로 가져왔어요.예전에는 퍽퍽한 맛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물에 타도 맛있네요 ㅎㅎ
우유에 타니까 더 맛있어요] [댓글(2)] [안녕하세요] [이 사람은 배우 커뮤니티 온 건지 헬스 커뮤니티 온 건지]
딱 이 정도로만 활동했던 게 그였다.
정체를 숨겼지. 본명을 드러내면서 활동하면 너무 이목이 쏠릴까 봐, 일부러 숨겼다.
그렇게 한 발자국 물러나서 남들이 올린 글 보는 것도 즐거웠고.
[스포! 패션앤패션 보면서 나만 울었어?] [우리 민기 배우님 진짜 ㅠㅠㅠㅠㅠ 너무 잘 컸어 ㅜㅜㅜㅠㅠㅠ] [옷 출시한다는데 언제 나온데??? 아는 하나들은 공유 좀 해줘]나는 다 알고 있다.
내가 당신들의 글을 알고 있다.
댓글도 달고 있다!
[protein140g: 상품 거의 다 나와서 조만간 화보 찍는대요.] [ㄴ 진짜요? 오피셜 링크 좀] [ㄴ 근데 이 사람 누구임] [ㄴ ㅁㄹ 맨날 홍보글만 쓰는 사람 있음]반응이 늘 좋은 건 아니었다만.
아무튼, 이제 힘을 숨기고 노는 것도 끝이다.
정체를 공개하고 본격적으로 팬클럽의 힘을 밝힐 순간이 나타났다.
“후우.”
이민기는 호흡을 다듬기를 잠시.
재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려 지난 하루 동안 머릿속에 꼼꼼히 준비해 놨던 글을 써 내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닥!
[제목: 안녕하세요. 배우 이민기입니다.] [작성자: protein140g] [내용:(첨부사진)
안녕하세요.
배우 이민기입니다.
공식 팬클럽 민기단의 여러분께 처음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뒤에서 지켜보며 많은 기운을 받았습니다.
패션 앤 패션의 개봉을 기념해, 공약 이벤트를 진행하려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첫 주 150만 관객 달성 시 광화문 팬미팅!은 어떨까요?
정해지면 SNS에 공식 공지를 올리려고 하는데, 그 전에 우리 하나들 의견을 한번 묻고 싶습니다!]
조잡할 수는 있다.
하지만 명색이 JC에서 검수까지 받은 내용이었다.
[흠, 다소 난잡한 구석은 있지만, 오히려 배우님 느낌이 물씬 풍겨서 낫군요. 너무 깔끔하게 쓰면 그것도 사무적이라 그닥입니다.]혹시 몰라서 인증 사진까지 함께 올려놓았으니 따로 의심하지는 않겠지.
딸깍.
그렇게 완성한 글을 업로드한 순간이었다.
어떤 댓글이 달릴까 가슴이 두근두근한 것을 애써 참고 있는데.
“민기 씨, 와서 요리 좀 도우십시오.”
부엌에서 계속 후라이팬으로 뭔가를 지지고 볶던 김태양이 대뜸 사자후를 내질렀다.
“오, 냄새 좋다. 뭐예요?”
“시홍스챠오지단이라는 요리입니다.”
“시몬스초오진다?”
“아니, 시홍스챠오지단. 중국에서 가정식으로 많이 먹는 건데, 한국말로 토마토 달걀 볶음입니다.”
“아, 토달볶.”
“제가 볶는 동안 옆에서 토마토랑 모짜렐라 치즈를 썰고 그릇 위에 플레이팅해서 올리브유를 뿌리시면 됩니다.”
“카프레제 맞죠? 오늘은 토마토 파티네.”
그렇게 요리를 한 겸 식사까지 마치기를 딱 30분.
배를 두드리며 자리로 돌아와,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을 때였다.
“음?”
그곳에는 이민기의 예상에서 한참 벗어난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 어그로 언제 본색 드러내나 했더니, 이렇게 하네.]* * *
“……?”
이민기의 눈가가 씰룩거렸다.
그가 예상했던 댓글과는 아예 다른 분위기가 펼쳐져 있지 않은가.
[네가 무슨 이민기세요] [이 사람 맨날 홍보글만 쓰더니 ㅋㅋㅋㅋ] [배우님 사칭은 선 넘었네] [운영자는 이런 글 안 자르나?]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인터넷에서 이러면 사회에서 인정받은 기분이 드시나요?] [안 믿음]글 밑에 달린 댓글들이 이상하리만치 공격적이었다.
하물며 글의 추천/비추천 비율이 무려.
[추천: 2 / 비추천: 121]60배를 넘겨버렸다.
뭐지.
정신이 아찔해지는 숫자에 이민기의 눈앞으로 가벼운 현기증이 돌았다.
‘설마, 내가 이민기라는 걸 안 믿는 건가?’
분명 제대로 글 올렸는데, 왜 뭐라고 하지.
사진까지 첨부했잖아.
대체 뭐가 문제라서.
라고 생각한 찰나, 댓글창 밑으로 한창 퍼져 있는 말들이 있었다.
[사칭을 하려면 적어도 인증 사진이라도 한 장 올리고 하던가 ㅋㅋㅋㅋ] [진짜 괘씸하그든요.] [평소에 글 쓴 거 보니까 그냥 배우님 좋아하는 팬 같은데?] [관심 못 받아서 흑화한 듯] [ㄹㅇ 사진 한 장이라도 퍼와다가 올리는 정성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냐]가만.
내가 사진을 안 올렸다고?
혹시 몰라서 이미지 수정으로 들어간 순간, 이민기는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사진이 제대로 안 올라갔잖아.’
아뿔싸.
사진을 올릴 때 WEBP 파일로 업로드했는데, 이 팬미팅 커뮤니티는 WEBP를 지원하지 않는 사이트인 듯했다.
정확히는 업로드만 됐다. 화면에 보이지는 않을 뿐.
핸드폰으로 들어가서 보자, 아무런 사진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
이민기가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얹은 채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거 골때리네.”
운이 나빴던 건가.
아니겠지.
엄밀히 말하면 내가 부주의했던 거니까.
글을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나.
이미 댓글도 100개가 넘게 달렸는데.
욕하는 사람도 있네.
[ㅋㅋ 관심이 필요했나 봐?] [꼭 이런 컨셉충들이 분위기를 망침] [운영자 뭐함? 관리 안 함?]가슴이 아프다.
송곳으로 쿡쿡 찌르는 것 같다.
내 팬클럽에서 내가 글을 쓰면서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에라이.’
그래도 기분이 아예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다 오해에서 비롯된 일일뿐더러, 결국 내 팬들이 날 보호해 주는 거 아닌가.
사칭범에게 날카롭게 반응한다는 건, 그만큼 그를 아낀다는 말이리라.
‘후, 글 다시 쓰자.’
이민기가 한숨 한번 내쉬고는, 이번에는 셀카를 jpeg 파일로 다시 업로드하려고 결심한 찰나였다.
댓글 창.
그 한 가운데에서 일련의 댓글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작성자가 이민기면 내가 광화문 가서 태권도 품새 보여준다] [ㄴ 작성자가 이민기면 내가 그 옆에서 비보이 춤을 춘다] [ㄴㄴ 작성자가 이민기면 내가 그 옆에서 삼겹살을 굽는다] [ㄴㄴㄴ 작성자가 진짜 이민기면 내가 광화문에서 노래 부른다] [ㄴㄴㄴㄴ 작성자가 이민기다? 그럼 난 최유창이다]이상하리만치 긴 댓글이 이어져 있었다.
대강 그가 진짜로 이민기라면, 뭘 하겠다는 내용의 댓글들.
그게 약 20개가 넘게 이어져 있었다.
“…….”
이민기는 컴퓨터 쿨러 소음만 들려오는 방안, 의자에 앉아 화면을 응시하기를 잠시.
글을 새로 올리며 조금 고쳐 썼다.
[제목: 재업로드) 배우 이민기입니다.] [내용:(첨부사진)
(첨부사진)
저 진짜 이민기 맞아요 ㅠㅠ
사진 업로드에 오류 나서 첨부 자료가 안 올라갔네요.
이제 믿어 주실 거죠?
그리고 아까 댓글 창 보니까 …….]
타다닥, 탁!
그렇게 새로 글을 업로드하고 불과 몇십 초 뒤.
댓글 창에 핵폭탄이 터졌다.
[ㄴㅇㄱ] [사쿠라네?] [사쿠라여]* * *
며칠 뒤.
[패션 앤 패션]은 황의성 감독의 영화치고는 유례없는 숫자를 맞이했다.초동(첫 일 주일) 관객 수 170만 명.
개봉 첫날 40만 관객을 넘긴 것에 이어, 일주일 동안 흐름을 유지한 것이었다.
170만.
어찌 보면 적은 숫자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황의성 감독의 영화라는 점에서 이는 특별한 숫자였다.
흔히 말하는 천만 관객급 블록버스터들은 첫 주에 300만에서 많게는 500만을 돌파하기도 하지.
하지만 이건 황의성 감독의 작품이었다.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호불호의 문제로 200만도 넘기기 쉽지 않다는 황의성 감독.
첫 주에 170만이면 300만은 통과하고, 정말 잘 풀린다면 500만 이상도 노려볼 수 있을 터.
그리고.
[배우 이민기입니다.패션 앤 패션을 사랑해 주신 모든 관객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공약!! 하나!!!를 선언하러 왔습니다!
저 첫 주에 150만 달성하고 싶습니다!]
마침 SNS에 올렸던 150만 관객 공약 또한 여유롭게 달성했고.
‘해냈다아…….’
덕분에 이민기도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망친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작품에 출연할 때마다 매번 하는 고민이 있다.
내가 참여함으로써 이 작품의 성적이 추락하는 거 아닌가.
훌륭한 배우들이 완성할 예정이었던 작품들을 내가 끼어듦으로써 먹칠하게 되는 거 아닌가.
이런 걱정을 피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날로 먹겠다는 심보라면 걱정조차 안 할 터.
이민기는 배우지만, 동시에 시네마필이다.
자기 손으로 작품을 망치거든 거룩한 영화사 앞에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개입이 흥행의 초석으로 자라났으니, 뿌듯함과 당당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와, 사람 많네.’
행사 겸 방문한 광화문 광장.
“아마, 제가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할 것 같군요.”
촬영을 마친 뒤 사실상 처음으로 마주한 황의성 감독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국내 시상식 몇 곳에서 제안이 왔습니다만, 그쪽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어차피 큰 의미는 없으니.”
“…… 그런가요?”
“돈과 학연, 지연이 필요합니다. 심사위원들이 중요시하는 가치관이 있어, 그 안에서 맞아떨어져야 선심 쓰듯 상을 건네곤 하지요. 받으나 마나 한 상입니다. 차라리 개 목줄이라고 보는 게 맞겠군요.”
어지간해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답지 않게 적절한 악의가 버무려진 말투다.
개 목줄이라.
이민기가 쓴웃음을 지었다.
‘국내에서 어지간한 상을 받은들 그리 기쁘지 않은 체급이라 그건가.’
하긴, 해외가 목표였다고 했지.
남 입맛 맞춰 주는 건 질색이고.
이민기가 말없이 웃고 있으려니 황의성 감독이 대뜸 말을 이었다.
“민기 씨도 생각이 같을 겁니다. 상이라는 것은.”
“참.”
이민기가 뭔가 떠올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전 목줄보다는 하네스가 더 좋아 보이더라고요.”
“하네스?”
“네, 옷처럼 입히는 목줄 같은 건데. 고양이들은 목줄도 쉽게 탈출하는데 하네스는 안전해요.”
“흠, 그렇군요. 심사위원들이 하는 행동도 그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꽁꽁 묶어놓고 평가하려 드니.”
“묶어놓고 평가한다니까 생각난 건데요. 혹시 백숙 좋아하세요?”
이민기가 태연하게 말을 흘리며 웃음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그쪽의 지금 말은 하나도 맞장구쳐 주지 않겠다.
주위에서 보는 눈이 있으니까.
그쪽은 몰라도, 나는 국내 상도 너무 좋단 말이다.
‘민기 씨, 지금 말 돌렸다.’
‘불쌍해.’
‘매일 감독님한테 붙잡혀서 고생했지.’
‘주관이 너무 강한 사람은 대화하기 불편한데.’
실제로도 그의 추측은 거의 정확했고.
“그런 이야기는 됐습니다.”
황의성 감독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해외 쪽 시상식에도 출품해 두었습니다. 아마 반응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두고 봐야겠지요.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전달해 둡니다.”
해외 시상식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이민기가 어느새 익숙해진 그의 말투에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받을 상은 받으면 좋죠. 0보다는 1이 나으니까요.”
“그것도 틀리지는 않은 말입니다. 상은 상이니. 아무리 싸구려 상이라도 안 받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오.
황의성 감독이 그의 말을 긍정했다.
역시, 그라고 한들 반박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세상의 그 어느 고지식한 사람인들 다 이해하기 나름이지.
이민기도 웃으며 답했다.
“그러고 보니까 상을 치르는 한국 문화가 해외에서는 꽤 오컬트적인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흠.”
“돼지머리 올려놓고 무당이 칼 들고 춤추고, 이거 되게 무섭다던데요? 조상을 제단에 모신다는 것도 그렇고. 시집온 며느리한테 제사를 지내게 하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몇 분 뒤.
한참 잡담을 떨고 있는 와중인데, 광화문 한복판에서 기이한 광경이 나타났다.
“음?”
“저거 뭐야.”
한 남자.
탈을 쓴 채 얼굴을 가린 한 남자가 광화문 한복판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