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3)
운빨로 탑스타-13화(13/200)
제13화
“아니, 어떻게 그 형씨가 지각을 할 수가 있지? 해가 서쪽에서 뜨려고 하나? 해가 서쪽에서 뜨면 어떻게 되지? 지구가 망하는 건가?”
김탁의 되는 대로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평소 그의 말에는 반박만 하던 유선아가 긍정을 표했다.
“……그러니까요. 지구가 망하려고 이러나. 어떻게 민기 씨가 지각을.”
이민기가 지각했다.
사람 하나 지각 좀 한다고 뭐 그리 대수겠냐만, 그건 어지간한 사람의 이야기다.
이민기가 지각한다면 그건 대수가 맞았다.
“맨날 제일 빨리 오던 사람인데. 으음.”
“전 그 형씨 맨날 여기에서 먹고 자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는 언제나 1위로 도착해 커피를 얻어먹던 인물이기 때문.
흡사 지구가 반대로 공회전하는 것만 같은 희귀 현상에 유선아는 짧게 신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민기 씨가 오늘 안 오는 이유라면 그것밖에 없네요.”
최근 들어, 이들 사이에서는 커다란 화젯거리가 하나 있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아무래도 오디션 떨어진 게 충격이 컸나 봐요.”
바로 이민기가 다온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서 탈락했던 것이었다.
유선아가 양손으로 뺨을 찰싹 치며 말했다.
“하긴, 평소에 매일 선생님이 까는데도 다온을 그 정도로 가고 싶어 하셨고, 또 열심히 했으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기는 한데.”
남이 탈락한 걸 자기가 떨어진 것만큼 충격을 받아 중얼거린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어리둥절한 듯 김탁이 물었다.
“그런데 왜 선아 씨는 별로 데미지가 없어요? 떨어진 건 마찬가지면서.”
“…말을 해도 꼭 그런 식으로.”
“앗, 죄송.”
김탁이 입을 급히 틀어막았다.
유선아는 그를 얄밉다는 듯 한 번 째려보고는 말했다.
“애초에 전 다온 붙으면 좋고, 떨어져도 그만이었어요.”
“왜요?”
“어차피 배우는 실력만 있으면 어딜 가든 자기 하기 나름이니까.”
“오호라, 제가 또 하나를 선아 씨한테 배우네.”
김탁은 그녀의 마음가짐에 진심으로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민기 씨는 다르다?”
“민기 씨한테는……워낙 오래간만에 돌아온 기회였잖아요. 매일 서류도 떨어지셨는데. 처음 학원 오셨을 때부터 진짜 열심히 하셨고.”
유선아는 학원에 온 첫날의 이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연기는 못 하면서 열심히는 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굳이 접점이 없어서 대화는 안 나눴다.
하지만 그가 열심히 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의식했다.
끝내 다온 엔터라는 구심점으로 뭉쳤을 때는 마치 자기가 성공한 것처럼 기쁘기까지 했다.
“어느 시대든 노력하는 사람은 보답을 받아야 해요.”
사람으로서 응원하는 게 당연했다.
유선아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게다가 잘생겼고.”
“그게 중요했네.”
“당연하죠. 배우잖아요? 외모도 능력인데요. 그보다 탁 씨야말로 아쉽지도 않아요? 저보다 민기 씨랑 더 친했잖아요.”
아니다.
딱히 안 친하다.
적어도 이민기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유선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니까.
김탁 본인조차도 스스로 이민기와 친하다고 생각했고.
“에이, 그야 당연히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죠. 민기 씨 제가 얼마나 응원하는데. 하, 우리 민기 씨 요즘 실력 되게 늘었는데. 다온이 눈깔이 삐었나?”
“진지한 일이니까 장난스럽게 말하지 말고요.”
“완전 진심인데?”
김탁도 이번에는 진심이었다.
이민기를 객관적으로 무시했던 그이니만큼, 이민기의 탈락에도 은근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충격받아서 안 나오면 어쩌지?’
그럼 심심한데.
이제부터 학원을 무슨 맛으로 다니지.
그렇게 두 사람이 은근한 고심에 빠진 순간이었다.
끼익.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건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이민기였다.
오늘도 달려왔는지, 몸에서 자그마한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왜 그래요?”
화들짝 놀란 시선에 이민기가 어리둥절해져서는 말했다.
“저 얼굴에 뭐 묻었나?”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반가워서.”
“오늘은 제가 제일 늦었네요. 커피 사 올게요.”
“전 히비스커스 에이드, 사이즈업해서요.”
“…….”
딱 이름만 들어도 비싸 보이는 걸 턱턱 주문하는구나.
이민기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네, 선아 씨는요.”
“아, 저는 제 돈으로 사도 되는데.”
“됐어요. 맨날 얻어먹었잖아요.”
“……그럼 전 아이스 아메리카노.”
“금방 올게요.”
이민기는 곧 짐만 내려둔 뒤 바로 연습실에서 떠났다.
언뜻 활달했던 그의 모습에 놀란 두 사람이 황급히 머리를 맞댔다.
“저 형씨, 괜찮은 거 맞댑니까?”
김탁이 경악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사람이 밝아 보이니까 오히려 내가 다 불안한데?”
“충격이 너무 커서 오히려 저런 거 아니에요? 왜, 그렇잖아요.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다가도 며칠 지나면 본격적으로.”
“밝은 척하는 거네. 저거 우울증 전조 아닌가?”
“모르죠. 그런데 혹시 모르니까 일단 탁 씨는 오늘은 입 간수 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니, 제가 또 왜요?”
“정신과 병원 추천하거나 그러려는 거 아니었어요?”
“들킴.”
그렇게 두 사람이 속닥거리는 한편, 이민기의 생각은 이러했다.
‘후련하네.’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다온 엔터 오디션에서 탈락한 건 탈락한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특별히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열심히 했다.’
그는 애초에 실패 한번 했다고 좌절할 만큼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했다.
좋은 스승 아래 좋은 연기를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성장했다.
이민기는 이 사실 하나로 만족할 수 있었다.
오디션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지만, 한껏 준비한 연기만큼은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100% 선보였다.
고작 하나 떨어졌다고 축 처지기에는 얻은 게 많지 않나.
‘실패 따위는 익숙해.’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아쉬운 것과 괴로운 건 엄연히 다르다.
다온 엔터 오디션이 아니더라도 다른 기회가 얼마든지 있겠지.
이제부터는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할 따름이다.
‘좋아, 다시 열심히 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건물을 나와 카페까지 걸어가려는 와중이었다.
“오.”
“어?”
1층 로비에서 우연히 한 사람을 마주쳤다.
아무리 봐도 선생보다는 백수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모습을 한 남자, 김아성 트레이너였다.
“오, 민기 씨.”
김아성이 먼저 손을 흔들더니 털레털레 걸어왔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네. 혹시 주눅 들어서 빨랫감처럼 늘어져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 지나간 일이니까요.”
“그렇지?”
김아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다온 엔터 거기 별거 아니야. 그냥 잊어버려. 왜,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나? 똥차 가고 벤츠 온다잖아.”
이거 위로하는 거 맞나.
첫 만남부터 일관적으로 다온 엔터를 씹어 왔던 김아성 트레이너의 모습에 이민기가 쓴웃음을 지었다.
‘괜히 분위기 잡으면서 위로하는 것보다 편하기는 한데.’
기왕 커피 사서 들어가는 김에 한 잔 더 사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내가 벤츠 한 대 몰고 왔는데.”
벤츠라니.
좀 이상한 비유에도 불구하고 이민기가 설마 하는 기대를 품은 순간이었다.
김아성 트레이너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기나 한번 들어볼래요? 커피 빨면서.”
* * *
카페에 머쓱하게 앉아 있기를 잠시.
부우웅.
진동벨이 울렸다.
“아.”
“내가 가져올게.”
김아성이 그렇게 커피를 가지러 간 사이, 간신히 숨통이 트인 이민기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벤츠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굳이 불러낸 걸까.
어딘가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풍겼지.
고민은 고민의 줄기를 타고 이내 한가지 기대감에 다다랐다.
‘회사에 소개를 시켜 주겠다는 건가?’
설마.
이민기는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서도 퍽 우스운 일이라 웃고야 말았다.
지난 한 달 동안 배웠다고 엄청 가까워진 사이로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김아성 트레이너는 업계에서 심히 잘나가는 사람이다. 잠깐 배운 제자 정도쯤이야 이름조차 다 외우기 어려울 정도로 쌓여 있겠지.
그래, 너무 기대하지 말자.
기대감이 크면, 그만큼 실망감도 커진다. 애초에 기대를 하니까 실망이 찾아오는 거다.
‘응, 선물이라도 하나 주시려나 보지. 그거면 됐다. 핸드폰 케이스라던가. 넷플레이 월정액 이용권이라던가. 영화 쿠폰이라거나.’
기대를 낮추자.
짧은 추론으로 이민기가 자기방어모드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딸깍.
어느새 자리로 돌아온 김아성 트레이너가 이민기의 앞으로 커피잔을 쭉 밀었다.
“아, 감사합.”
“시간 없으니까 본론만 바로 말할게.”
그래도 잡담 조금 떨다가 말할 줄 알았는데, 바로 본론이란다.
시간이 정지한 것만 같이 가슴이 조마조마한 몇 초 뒤.
김아성 트레이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민기의 머리를 망치로 후려치는 듯한 단어였다.
“JC 들어올래?”
“쿨럭!”
JC 영입 제안이었다.
이민기가 기함을 뿜어냈다.
“쿨럭! 컥! 쿨럭! 쿨럭.”
사레, 사레가 거세게 들렸다.
이민기가 고통스럽게 기침을 연발했다.
운을 돌려받은 이래, 사레들려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이다. 운으로는 어찌 못할 만한 상황이었나 보다.
‘아니, JC에 들어오겠냐고? 갑자기?’
당황하는 게 정상이다.
간신히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숨을 고르고 골라도, 좀처럼 진정이 안 된다.
그런 이민기의 모습이 웃겼던 걸까.
김아성 트레이너는 배꼽이 빠져라 웃더니 눈물까지 닦으며 말했다.
“민기 씨, 뭘 그렇게 놀라.”
“아니! 쿨럭! 그걸 깜빡이도 없이 편하게 말해요?”
“깜빡이는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야. 분명 말했잖아.”
“네?”
김아성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더니 말했다.
“기억 안 나? 똥차 가고 벤츠 온다고 했잖아.”
“…….”
“다온이 똥차면 벤츠는 다른 회사인 거 당연한 거 아니야? 민기 씨, 머리 좋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논리가 약하네.”
그야 그렇지.
하지만 보통 다온을 똥차라고 말하나.
다온 정도면 아무리 못해도 독 3사 정도는 되지 않나.
‘침착하자. 침착해. 선생님 성격 원래 이런 거 알잖아. 이건 깊게 따지면 지는 거다.’
이민기가 자기 자신을 다스렸다.
평소 연기에서 릴렉스하듯 고요하게 머릿속을 비워가며 진정을.
‘응, 안되네.’
안 된다.
불과 단어 하나를 되새길 때마다 심장이 말을 안 듣고 미친 듯이 뛰었다.
JC다.
다른 기획사도 아니고 JC였다.
JC가 그냥 기획사인가. 순수 자본력과 규모로 따지자면 경쟁자가 있다고 말하는 것조차 실례가 되는 곳이었다.
기획사라기보다는 가히 미디어 재벌이라고 말하는 게 빠르겠지.
그런 곳에 들어오겠냐고 대뜸 제안했으니, 놀라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다온에서 탈락해서 운을 조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이민기가 놀란 가슴을 다스리는 사이, 김아성 트레이너가 커피를 호로록 빨더니 말했다.
“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다온 거기 별로 좋은 곳 아니라고.”
“음, 그랬죠.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지망생 앞에서 그런 것 가지고는 농담 안 하거든요. 어디 말 잘못 흘러가면 업계에서 매장될 일 있나.”
김아성 트레이너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물론, JC에 소개를 해 준다고 해서 무조건 계약 도장을 찍을 수 있다는 건 아니야. 절차가 있거든.”
“절차요?”
역시 뭔가가 있다는 건가.
의심한 순간 김아성 트레이너가 손에 든 커피를 빙글 돌리며 말했다.
“그래, 이 잘난 나조차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