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31)
운빨로 탑스타-131화(131/200)
제131화
이민기가 LA 공항에 도착한 직후.
그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이러했다.
‘날씨가 좋다.’
날씨가 어마어마하게 좋다는 것.
서울에서는 뻥 뚫린 하늘 보기가 한 달에 두세 번도 드물지 않나.
그런 날씨조차도 LA에 비하면 그저 흐린 날씨인 듯했다.
공항에서 나와 숙소까지 가는 길, 이민기가 어린아이처럼 한껏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매니저님, 오늘 날씨가 유독 좋은 건가요?”
“평범하군요. 구름도 보이고.”
그렇다고 한다.
아무튼, 날씨 다음으로 이민기가 체감한 것은 바로.
‘편하다!’
편하다는 것이었다.
공항부터 시작해, 도로 어디를 가든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었던 덕이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길을 걷는다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라니.’
몰려오는 감동에 이민기가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마스크 안 끼는 게 이런 기분이었군요.”
그렇다.
지난날, 얼마나 남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던가.
문밖에 나설 때면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는 건 상식이요, 마스크를 끼는 건 교양이었다.
그래도 모자랐다.
타고난 몸이 좋은 탓일까.
얼굴을 가려도 알아보는 사람이 속속들이 등장해버린 탓이었다.
자연히 옷가지를 가능한 한 두껍게 걸치는데, 더운 날씨에는 아예 찜통 속 만두가 되는 줄 알았다.
‘배부른 소리기는 한데, 이게 가슴에 사무치네.’
저벅, 저벅.
한국에서는 풀 무장을 안 하거든 제대로 걷기조차 어려웠다.
번화가에 놀러 가는 건 이미 반쯤 포기했지.
하물며 공항 라운지에서 기다릴 때조차도 주위에서 불시에 카메라 들이미는 게 아닌가 불안하기도 했다.
“후후.”
평범하다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던가.
걷는다는 행위 하나마저도 흥이 난 이민기가 콧노래를 부르려니, 박한모 매니저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네, 마지막으로 마음 편히 조깅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서요. 여기에서는 절 알아보는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어서 좋네요. 아직 덜 유명해서 그런 거겠죠?”
“글쎄요. 그건 모를 일이군요.”
말꼬리에 여지를 남긴 그가 잠시 몸을 돌려 거리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아마 배우님이 유명해진 뒤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요?”
“할리우드에서 스타라고 한들 거리에서 마주치는 정도는 간혹 있는 정도의 일인지라, 일상을 존중해 주는 게 암묵적인 에티켓입니다.”
“그럼 파파라치들은요?”
“그래서 파파라치입니다. 에티켓이 없으니까요.”
“아하.”
그렇다고 하신다.
마치 일본의 유명 정치인을 떠오르게 만드는 말에 이민기가 무릎을 탁! 쳐 버렸다.
[3을 물어보셨습니까? 대답을 드리자면, 3은 2와 4 사이에 있는 숫자입니다.]공항 앞 거리.
‘걸을 수 있을 때 잔뜩 걸어 둬야겠네.’
이민기가 짧은 틈을 이용해서 한껏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끼익!
갑작스럽게 자동차 한 대가 그의 발치에 멈춰 섰다.
고풍스러운 클래식카.
적어도 20세기의 물건이 아닐까 싶은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도장 면에 이민기가 감탄하며, 동시에 박한모 매니저에게 말했다.
“매니저님, 저 때문에 멈춘 거 아니겠죠?”
“예, 여기는 할리우드니까요. 아마 이 앞에 볼일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만에 하나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지만, 여기는 할리우드입니다.”
박한모 매니저가 거듭 강조하듯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앞 햄버거집에 용무가 있겠지요.”
그러고 보니 마침 그들의 옆에 햄버거집이 하나 놓여 있었다.
가게 상호가 엑스칼리버 버거.
‘엑스칼리버? 영국 전설에 나오는 거?’
이름에 걸맞게 가게 간판에 칼 한 자루를 박아넣은 것이, 영 심상치 않다 싶은 마음에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여기 유명해요?”
“할리우드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맛집이지요. 중세 복장을 입은 직원들이 메뉴를 가져다줍니다.”
와, 이런 곳도 있구나.
오늘 점심은 여기에서 먹을까.
어차피 권준용 관장이 미국까지 쫓아와서 식단을 체크할 리도 없고.
이민기가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마저 옮기려는 찰나였다.
위이잉-
그 앞에 세운 클래식카의 창문이 자동으로 열리더니, 하얀 얼굴에 진주처럼 새하얀 치열을 드러낸 사람이 있었다.
‘누구지?’
그가 이민기를 향해 고른 치열을 자랑하듯 씨익 웃으며 영어로 말했다.
“Mr. 민기 맞으시죠?”
“…….”
“꼭 보고 싶었습니다. 잠깐 이야기 좀 되겠습니까?”
그 말에 이민기는 눈을 깜빡거리더니, 대답하기에 앞서 고개를 슬쩍 돌려 박한모 매니저를 흘끗 바라봤다.
“음.”
우두커니 서 있던 박한모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여긴 행정구역으로 따지자면 할리우드보다는 베벌리 힐스에 가깝기 때문에.”
* * *
엑스칼리버 버거의 안쪽 한적한 자리.
쪼로록.
“실버 에이지 커피 나왔습니다. Sir, 제발 목숨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농노 복장을 한 웨이터가 가져다준 커피를 이민기가 쪼록 빨려니, 테이블 건너편의 남자가 한없이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커피 맛이 좀 괜찮죠? 저도 자주 옵니다.”
조금 전 클래식카를 몰던 사람이었다.
서양인이라 나이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지만, 나이는 대략 40대쯤 됐을까.
하지만 관리를 잘했는지 얼굴에는 주름이 드물다 못해 윤기가 흘러넘쳤다.
“핸드폰을 계속 보고 계시는데 약속이라도?”
“아뇨, 잠깐 친구랑 연락하느라. 이따가 만나기로 해서요.”
“친구라면 혹시 할리우드에서 지내는?”
“비슷해요.”
댄디한 중년 같은 느낌.
자기 이름을 제프리 로저스라고 밝힌 그가 마치 코미디쇼의 호스트를 연상시키듯 화려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후, 오늘은 제가 너무 운이 좋았지 뭡니까. 주변을 지나치던 참이었는데 이런 우연한 만남이라니.”
“절 아셨나 봐요?”
“하하, 아침에 기사 봤거든요. 설마 이런 사람이 세상에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도 못 했는데.”
과장된 제스쳐로 팔을 흔들던 남자가 슬쩍 테이블 위로 몸을 올려 넣으며 말했다.
“설마, 출근하러 길을 가던 중에 그 유명한 Mr.민기를 만나게 될 줄이야. 하늘이 절 도운 셈이지요.”
마치 이민기를 만난 게 우연이라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잠복하길 잘했다.’
그는 이 근방에서 꽤 오래 대기했다.
비행기에서 이민기가 대형 사건을 터뜨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쭈욱.
미국에서 그는 인지도가 모자라며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도 그렇게 널리 퍼진 건 아니다만, 인터넷에서 충분히 확인했다.
왜 그가 이민기를 이렇게 절실히 기다렸는가.
그건 바로.
‘아서 단토가 직접 나서서 선점했을 정도라면 믿어 볼 만하지.’
패션 잡지 [LE]의 편집장, 아서 단토가 이민기를 낙점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가 이유도 없이 그랬을까.
제프리 로저스의 생각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잡지사 놈들은 그 누구보다도 정보에 귀가 밝지. 게다가 연고지도 없는 미국에 아서 단토가 직접 초대했다고? 안 봐도 뻔하다. 모르긴 몰라도 큰 건수가 있겠지. 확실한 아이템이 있다.’
이민기에게는 뭔가가 있다.
할리우드에 차기작을 계약했다거나, 아니면 대형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약속했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사업 투자라도 하러 왔겠지.
그러니까 아서 단토가 굳이 미국에까지 초대했겠지.
이게 제프리 로저스의 추측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아서 단토는 그저 이민기에게 삘이 꽂혀서 초대했을 뿐이지만, 이런들 저런들 어찌하리.
착각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 아니겠나.
하물며 사회에서 입지 있는 거물의 말장난 하나가 확대해석 당해 앙증맞은 돌풍을 일으키는 정도야 널린 일이고.
‘후후, 아서 단토의 선구안은 정확하다. 이 사람도 당장은 동양의 로컬 배우에 불과하지만, 나중에 스타가 될 포텐셜 정도는 갖췄겠지.’
적어도 하나는 정확히 맞추기는 했다.
그리고 또 하나.
“Mr. 민기가 저희 쇼에 깜짝 게스트로 출연해 주셨으면 해서, 흐흐.”
제프리 로저스가 쇼 호스트이기 때문이었다.
호록.
그 말에 이민기가 커피를 마저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쇼라면 어떤 쇼 말씀이시죠?”
“혹시 라스트 맨 스탠딩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그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온 순간이었다.
“……!”
이민기가 눈을 크게 떴다.
라스트 맨 스탠딩.
미국 쪽 예능에 관심이 있다면, 아예 모르기는 어려운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그거, 꽤 잘나가는 방송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민기가 기억 저 너머에서 기억을 불러오는 사이 제프리 로저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외국에서라면 생소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어려운 포맷은 아닙니다. 100명이 참가해서 마지막 1명이 남을 때까지 겨루는 거지요. 단지 퀴즈로 싸울 뿐.”
그렇다.
라스트 맨 스탠딩은 전형적인 퀴즈쇼다.
다만 배틀로얄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100명에서 인원이 줄어들수록 상금이 점차 올라가는 구조였다.
끝내 마지막 한 사람에게 상금을 몰아주도록 말이다.
그래서 라스트 맨 스탠딩.
“중간에 문제를 틀려 탈락한다면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이라고는 0달러. 하지만 자진 하차한다면 적당한 돈을 챙기고 나갈 수 있지요.”
“끝까지 가서 우승한다면 액수가 어느 정도 되죠?”
이민기가 물어본 찰나였다.
제프리 로저스의 쌀국수처럼 하얀 치열이 다시 한번 반짝였고, 그의 입에서 당찬 숫자가 튀어나왔다.
“10만 달러.”
“……!”
10만 달러.
1억.
고작 퀴즈쇼 하나에 돌아가는 상금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퀴즈쇼 하나 우승하면 스포츠카 한 대가 따라오는 셈이죠. 어떻습니까. 좀 달콤하죠?”
달콤하지.
하지만 그보다 더 달콤한 게 있다.
이민기의 눈에 욕망의 기운이 감돈 걸 느낀 걸까, 사내가 아예 기세를 몰 듯 말했다.
“LA 지역 방송이지만, 그래도 전국적으로 마니아층을 보유한 방송입니다.”
“그럼 시청률은 어느 정도 나오나요?”
“적어도 수백만 명은 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해외 OTT 시장을 생각하면 훨씬 더 많이.”
“…… 많이 보기는 하네요.”
숫자가 크긴 크네.
내수용 로컬 방송이 저 정도라니, 역시 시장 큰 게 장땡이구나.
혀를 다시는 이민기의 모습에 사내가 승기를 잡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여기는 할리우드니까요. 못해도 전국으로 팔리죠. 무슨 말이겠습니까? Mr. 민기가 미국에서 앞으로 활동하는데, 인지도에 적잖은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딱 보니까 끝났다.
아예 확신마저 품은 그가 이어서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말했다.
“적어도, 재미 삼아 출연해 봐서 손해 볼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이민기가 손가락으로 천천히 입술을 쓸었다.
솔직히 말해서.
‘좀 솔깃한데.’
구미가 당기기는 했다.
토크쇼 같은 일반적인 예능이라면 영어 실력이 부족할 테니까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터.
그의 영어 실력이 꽤 괜찮은 편이라고는 하나, 프리토킹이 되는 것과 예능이 되는 건 완전히 별개니까.
왜, 이래서 미국에 진출한 한국 연예인들조차 토크쇼만큼은 열심히 피해 다니지 않았던가.
하지만 퀴즈쇼라면 또 달랐다.
‘언변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어.’
중요한 건 퀴즈를 푸는 실력 그 자체다.
입을 열 타이밍이 대폭 분산될뿐더러, 결과만 남겠지.
만약 붙는다면 이득이다.
이민기가 슬쩍 떠보듯 물었다.
“혹시 이번 시즌에 문제 방식은 어떻게 되나요?”
“시즌제라는 걸 아시나요?”
“그럴 것 같아서. 미국 TV쇼는 보통 그렇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군요. 아무튼, 3개의 답지 중에서 1개를 선택하면 됩니다. 가끔 그 외 문제도 나오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지요.”
대부분 삼지선다라는 건가.
문득, 이민기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찍는 것도 운 아닌가?’
퀴즈만큼 운이 반영되는 물건도 없다는 것이었다.
주관식이라면 어렵겠지.
하지만 삼지선다라면 또 어떨까.
‘셋 중 하나를 찍으면 된다는 거잖아.’
그의 운이 좋다는 건 수 차례의 반복 교차 검증으로 증명된바.
여기에서 퀴즈쇼를 나가, 제프리 로저스의 말마따나 수백만 명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인다면 또 어떨까.
‘아마 앞으로의 미국 활동에 도움이 되겠지.’
어떤 식으로든 화제가 되면 이득이다.
시간이 날아간다고는 하나, 그것도 하루 정도면 되겠지.
이민기가 그렇게 생각한 찰나였다.
“대신, 저희도 공짜로 다 퍼줄 수는 없습니다.”
제프리 로저스가 선을 긋듯 말했다.
“첫 출연이기도 하니 출연 로열티는 없습니다. 이 정도는 부디 감안해 주셨으면 하는군요. 대신 홍보가 되지 않습니까?”
당근을 먼저 던진 뒤 협상에 들어간 것이었다.
돈을 먼저 말했더라면 거절했겠지.
하지만 방송에 출연함으로써 얻을 인지도를 먼저 거론한 뒤이니, 이민기의 입장에서는 솔깃할 수밖에 없으리라.
다소 약아빠진 방식이었다.
해외라고는 하나 명백히 스타에 속하는 이민기를 공짜로 써먹겠다는 말이니.
하지만 실제로 이 전략은 잘 먹히고 있었다.
‘뭐라도 하는 게 중요하기는 해.’
이민기의 머릿속은 핑핑 돌고 있었으니.
‘좋아, 이렇게 또 한 건 낙찰이군.’
제프리 로저스가 입꼬리를 씨익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는 아직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정확히 두 개.
그중 첫 번째는 이민기가 미국 예능이라면 어지간한 건 다 챙겨볼 정도로 잘 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이민기는 아서 단토를 모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당황 좀 했는데, 진짜 본인일 줄이야.’
바보도 아니고 외국에서 처음 본 사람이 대뜸 이야기 좀 나누자고 한들 괜히 제 발로 따라가겠는가.
그리도 두 번째.
이민기는 자기가 미국 연예계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JC가 미국 시장에 밝지 못하다는 것도.
그렇기에 당연히.
“이야기가 재밌네요.”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우군을 불러두었다.
“퀴즈쇼라, 나도 퀴즈쇼 좋아하는데.”
보야나 올슨.
박한모와 이민기를 만나러 마중을 나온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민, 거기 출연하면 돈 많이 주나 봐요?”
“…….”
그녀의 등장에 제프리 로저스가 어정쩡하게 놀란 표정으로 이민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만나기로 했다는 친구가?”
“네.”
이민기가 비로소 웃으며 말했다.
“보시는 대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