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32)
운빨로 탑스타-132화(132/200)
제132화
보야나 올슨이 엑스칼리버 버거에 등장하고 정확히 12분 뒤.
결과적으로 말해서.
‘이게 이렇게 되네.’
잘 풀렸다.
그것도 아주 잘.
“정말 괜찮겠습니까?”
제프리 로저스의 긴가민가한 듯한 목소리에 보야나 올슨이 키득키득 웃는 얼굴로 답했다.
“오늘은 일정도 비워 뒀는데 뭐 어때요. 친구랑 같이 놀러 갔다 오는 셈 치지.”
그렇다.
보야나 올슨이 [라스트 맨 스탠딩]에 이민기와 함께 게스트로 참가하는 전개가 펼쳐졌다.
“정말 참가하는 거겠지요? 정말로?”
제프리 로저스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불과 얼마 전에 빌보드 차트 5위 안에 진입한 초신성이기 때문이리라.
데려오기만 하면 시청률은 보장된 결과.
쇼 호스트로서 눈이 돌아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대신 약속은 지키세요.”
“아, 물론이죠. 신뢰로 먹고사는 게 쇼 호스트라는 직업 아니겠습니까. 하하!”
여기서 약속이란 바로, 이민기에게 출연 로열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아깝지는 않았다.
백 번 남는 장사라면 모를까.
‘보야나 올슨을 초빙할 수 있다면 이민기한테 로열티를 퍼 주는 정도쯤이야.’
엄밀히 말해서, 미국에서의 몸값에 한해 말하자면 그녀는 이민기와 감히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
‘으음, 이거 괜찮을지 모르겠네.’
난데없이 보야나 올슨이라는 구원투수를 맞이한 이민기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혹시 사기당하지 않게끔 지켜봐 달라는 정도만 부탁하려 했는데.’
암묵적인 보증인 역할 정도를 기대했을 뿐이었다.
어차피 구체적인 협상은 박한모 매니저를 통해 진행할 예정이니.
그런데.
[민, 그럼 나도 출연할까?]보야나 올슨이 대뜸 끼어들며 제안을 던져버린 것.
처음 계획에서 상황이 꼬였다.
하지만 깊게 따져보자면, 이민기를 비롯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후후후후후후, 이민기를 스카우트하러 온 길에 보야나 올슨이 딸려 들어오다니!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매스컴 노출을 꺼린다는 보야나 올슨이! 이런 행운이 또 있을 수가!’
제프리 로저스는 말할 것도 없이 큰 이득을 봤고.
‘재밌겠네. 나중에 퀴즈쇼 마치고 수다나 잔뜩 떨어야겠다.’
보야나 올슨은 원래 쾌락주의자다.
[라스트 맨 스탠딩]에 출연한다고 문제 따위는 생기지 않을뿐더러, 친한 친구와 함께 노는 것뿐.더욱이 이민기는.
‘퀴즈쇼 출연만 해도 운이 좋은데, 보야나 올슨까지 낀다면…… 화제성은 정말 확실하겠네.’
호박 넝쿨인 줄 알고 뽑았더니 산삼이었다.
그것도 50년근 이상 묵은 신선 산삼.
이 모든 광경을 뜻하지 않게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박한모 매니저로서는 그저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이사님이 배우님의 운을 매번 극찬하는 이유를 알겠군.’
어떤 상황이든 무조건 긍정적으로 돌아간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성실하게 살아가는 입장에서 보자면, 좀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깊은 상념에 빠진 사이 보야나 올슨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 근데 분장은 하기 귀찮으니까 안 할 거야.”
“저기, 너 그래도 대중의 꿈과 환상으로 먹고사는 직업이거든.”
“그럼 악몽이네.”
“자랑이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는 부쩍 체급이 커져서도 옛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대학생 때부터 넌 남의 시선을 신경 안 썼지.”
“여긴 미국이야.”
“넌 미국 사람 아니잖아.”
“영어 쓰고 미국 살면 미국인이지.”
“그러니까 넌 법적으로 호주 사람이라니까.”
“애초에 이민청 가서 귀화 이야기 조금만 나누면 금방 허가 나올……”
“그럼 저스틴 비버는 어느 나라 사람이지?”
“미국 사람.”
“이거 봐. 넌 이러니까 안 된다는 거야.”
“잠시만요!”
두 사람의 철없는 말싸움을 보다 못한 이민기가 끼어들며 외쳤다.
“두 분은 만나기만 하면 자꾸 논쟁을 하시네요. 우리 어른이잖아요. 그렇죠? 손님도 계시니까 여기서는 우선 멈추시고.”
“배우님, 지금 하시는 말씀은 간과하기 어렵군요.”
“네?”
아무리 그래도 어른이라고 말한 게 급발진이었나 이민기가 되짚어 보는 찰나, 박한모 매니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했다.
“확실하게 말해 두겠는데, 자못 논쟁이라는 건 비슷한 지적 수준을 갖춘 생명체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겁니다.”
“…….”
“이건 그보다는 가르침입니다. 제가 지적하고 교정해 주는 겁니다.”
이 사람 뭐지.
박한모 매니저가 입에서 태연하게 흘러나오는 막말에 이민기의 표정이 황당으로 물들었다.
‘평소에는 쿨하면서, 왜 보야나 올슨 앞에서는 정신연령이 내려가지?’
당신 이런 캐릭터 아니잖아.
그렇게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려는 와중이었다.
“자, 자, 자! 그럼 결정된 걸로 알고!”
제프리 로저스가 급히 분위기를 환기를 시키더니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이동합시다! 촬영장으로!”
* * *
미국의 스튜디오는 뭐라고 해야 할까.
‘크네.’
컸다.
그것도 정말 엄청나게.
한국의 스튜디오도 크다면 큰 편이지.
영상 산업을 수십 년 전부터 밀어준 만큼, 있을 만큼은 있다.
특히나 지상파 스튜디오들은 어지간한 대기업 사옥이 부럽지 않은 수준.
하지만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방송국이 아니라 대학교 캠퍼스라고 해도 믿겠는데?’
미국의 스튜디오는 면적부터가 달랐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가로 면적의 문제였다.
‘땅이 남아도나?’
한국의 방송국은 주로 세로로 쌓는다.
하지만 여긴 층고는 낮으면서, 그 낮은 층 하나하나의 면적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면 될까.
“와…… 커도 진짜 엄청나게 크네요. 역시 잘나가는 방송국은 다른가.”
이민기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한 찰나였다.
박한모 매니저가 불쑥 입을 열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여긴 2번 스튜디오고, 메인 스튜디오는 따로 있습니다. 이 근방은 땅값이 비싸다 보니 어쩔 수 없고, 그쪽은 여기의 3배 정도로 큽니다.”
“들러 보셨나 봐요?”
“학생 때 인턴 겸 견학을 했었지요.”
참, 그러고 보니까 박한모 매니저가 미국에서 영상을 전공했다고 했지.
이민기가 새삼스러운 사실을 되새기고 있으려니, 앞장서서 걷던 제프리 로저스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호오, 어쩐지 발음이 좋더라니. 이쪽 방송국에서 인턴 생활을 했었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말이겠지요?”
떠보듯 말이 나온 순간이었다.
“GIA(그래프턴 아트스쿨)에서 영상을 공부했습니다.”
그 한마디에 제프리 로저스의 눈빛에 의외라는 듯 작은 이채가 감돌았다.
“전공은?”
“프로듀싱을 배웠죠.”
“GIA인 것만 해도 놀라운데, 거기에서 프로듀싱을? 엘리트군. 혹시 쿰라우데(우수 성적 졸업)는 받았나?”
“숨마쿰라우데(최상위 성적 졸업)를 받았습니다.”
“……이거 놀랍군.”
이번에는 가식도 뭣도 아니다.
제프리 로저스가 진심으로 놀란 양 눈을 크게 떴다.
‘매니저님이 대단하기는 한가 보네.’
업계에서도 유명한 쇼 호스트가 관심을 보일 정도의 학벌이라 이건가.
보통, 사회인이 되고 나면 학벌이 어쩌고 할 일은 드물다.
사회인은 사회인이 된 뒤에 업무 능력으로 새로이 평가받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랄 수준인가.
‘참, 그러고 보니 한국에 와서 일하는 이유를 종종 얼버무렸던 것 같은데.’
궁금하다 싶은데 제프리 로저스가 그 부분을 꼬집듯 물었다.
“그러면 왜 미국에서 일하지 않고?”
“…….”
“불편한 이유라면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아닙니다.”
박한모 매니저가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업계에서 종사할 수 있다고 해서, 꼭 미국에서 일해야 한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그래도 시장이 너무 작지 않나?”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 다음 순간, 그가 이민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어서 나온 한마디는 뭐라고 해야 할까.
듣는 입장에서 시간이 살짝 멈추는 것만 같은 말이었다.
“한국에 갔기에 저희 배우님과도 인연이 닿은 게 아니겠습니까.”
“…….”
이 사람.
한국에 간 덕에 나랑 만난 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한국행을 결정한 가치가 있었다고 하는 건가.
가히 그 정도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말인데, 제프리 로저스가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어이쿠, 이건 내가 오만했군. 사과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자주 듣는 말이라서.”
“이 사람, 마음에 드네.”
불과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임에도 제프리 로저스는 박한모 매니저가 썩 마음에 든 눈치였다.
작게나마 마음의 안식을 느낀다고 하면 좋을까.
매사가 들뜬 사람이라 같은 들뜬 사람끼리 죽이 맞을 줄 알았더니, 박한모 매니저처럼 차분한 사람이 취향이었나 보다.
“오늘은 내가 운이 정말로 좋은 날이야.”
“그렇습니까?”
“진심이지. 이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생각하는 건데,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난 날이 곧 좋은 날이지.”
그렇게 걷기를 한참.
제프리 로저스가 헛기침을 뱉더니 한쪽 복도에 멈춰 서며 말했다.
“그럼 잠시 뒤 바로 시작할 예정이니, 두 사람은 가볍게 꾸밉시다. 우리 스튜디오의 스타일리스트가 도움을 줄 테니.”
“네.”
“전 싫은데.”
“머리카락만 가다듬는 정도라도 충분할 겁니다.”
그 말과 함께 제프리 로저스는 곧바로 모습을 감췄다.
급하다는 말이 대충 한 말은 아니었던 모양.
* * *
그것 아는가.
미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동양인 연예인들이 주로 사는 오해가 있다.
바로.
[시청률 때문에 쿼터제마냥 데려온 인간들이 태반이지.]실제 배우로서의 기량과는 무관하게, 현지 시장의 비위를 맞춰주려 기용한 사람이 태반이라는 것이었다.
영화부터 시작해 드라마, 뮤지컬, 예능까지 동양인이 소세지 속 옥수수 알갱이처럼 박혀 있지 않았나.
오해라고 말하기도 뭣하다.
실제로, 해당 국가의 연예인 1명을 넣고 빼고에 따라 매출이 크게 오르내리는 게 사실이기도 하니.
[동양인은 안 나왔으면 좋겠어.] [연기 못 해도 한 명씩 꼭 뽑혀 있는데, 그게 너무 싫어.] [하이틴 영화에서 주인공 친구 동양인은 필수지. 안경 끼고 있고 노트북 잘 다루고.]이런 인식은 어찌 보면 진입장벽이기도 했다.
동양인이 시장에 진입하기 수월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나, 반대로 말하자면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니 말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새로 진입한 동양인 연예인에게 미국 시장은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아메리칸드림은 환상이다.
미국은 로컬이다.
배우 본인이 제아무리 노력한들 억센 거부를 마주한 끝에 튕겨 나가는 게 태반.
[동양인 빨로 메이저 작품 하나 운 좋게 참여한 놈.]이 정도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말이다.
자.
그런 시장에 지금, 한 남자가 마침내 두 다리를 들이밀었다.
그것도 무려.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의 케이팝 슈퍼스타, 에어닥터, 보야나 올슨의 친구, 한국에서 온 댄스 마스터, 이! 민! 기!”
퀴즈쇼로 말이다.
“누구야?”
“유명한 사람인가 본데?”
“보야나 올슨 친구?”
“소속사에서 친구 하라고 시켰나?”
여전히 그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방송이 시작하고 불과 10분.
“아이쿠, 다음에 차트에서 다시 만나요.”
보야나 올슨이 단 세 문제 만에 광탈하고 또 20여 분이 지나.
“그럼 다섯 번째 문제를 지금 공개하겠습니다.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만든 미국 서부극을 지칭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100명에 달하던 참가자가 어느덧 20여 명으로 줄어들었을 때.
쾅!
언제나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답안을 제출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스파게티 웨스턴입니다.”
이민기가 그 당사자였을 무렵, 이 자리에 더 이상 그를 두고 색안경을 낀 채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또 맞췄어?”
“거의 문제가 나올 때마다 즉답인데.”
“머리가 진짜 빠르다.”
감탄이 이어지는 한편, 이민기의 머릿속에 담긴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 문제가 너무 쉬운데?’
쉽다.
좀 너무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