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33)
운빨로 탑스타-133화(133/200)
제133화
라스트 맨 스탠딩.
할리우드에서도 인지도로는 손에 꼽는 그 로컬 퀴즈쇼에 이변이 일어났다.
“1997년 어느 좁은 사회의 비리를 폭로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끌었던 작품의 이름은…….”
“정답, 3번, 엔트리 건이요.”
“……정답입니다. 이민기가 추가 포인트를 가져갑니다.”
한 남자가 미친 듯한 속도로 정답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민이라는 걸 하고는 있는 걸까.
“2000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한 이 애니메이션의 이름은.”
“1번, 심즈 가족이요.”
“정답입니다.”
가히 말도 안 되는 속도.
질문이 나오면 그 즉시 정답을 공개해버린다.
“저게 말이 돼?”
“출제자 입에서 문제가 다 나오기도 전에 정답을 때려 맞추고 있잖아.”
“벌써 7문제 연속으로 정답이야.”
뭐라고 하면 좋을까.
사내의 머릿속에는 그 정답지가 그대로 들어 있는 듯했다.
‘쉽네.’
실제로도 이민기는 그렇다고 생각했고.
문제의 태반이 아는 내용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출제자의 입에서 문제가 나오기도 전에 말이다.
‘이거, 잘 생각해 보니까 옛날에 봤던 거잖아.’
그렇다.
이민기는 이번 회차 [라스트 맨 스탠딩]을 이미 시청자로서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언제?
계단에서 뒤로 자빠지고 이마가 깨져 죽기 전에 말이다.
‘거의 수백 편을 넘게 방영했던 것 같은데, 내가 본 에피소드가 마침 당첨되리라고는.’
라스트 맨 스탠딩의 포맷은 안다.
배틀 로얄 시스템을 채용한 퀴즈쇼지.
그 안에서도 매 시즌마다 시스템을 조금씩 바꾸기에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는데, 우연히도 그에게 유리하게 뽑혔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것 같기는 했지만.’
여기까지도 이민기의 예상했던 범위 안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제프리 로저스와 처음 만나 엑스칼리버 버거에서 협상을 나눴을 때부터 그러했다.
[혹시 이번 시즌에 문제 방식은 어떻게 되나요?] [시즌제라는 걸 아시나요?] [그럴 것 같아서. 미국 TV쇼는 보통 그렇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군요.]처음부터 그에게 유리한 포맷이리라고 예상한 채 달려들었다.
또한, 지금 내고 있는 문제도 그러했다.
“이번 문제는 서술형입니다. 대사를 듣고 떠오르는 영화의 제목을 적어, 선착순으로 공개해 주십시오.”
제프리 로저스를 대신해 투입한 MC가 천천히 입으로 대사 한 줄을 읽기 시작했다.
“Old man said that there is angel with a shotgun…….”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문장이 불과 한 줄도 채 다 완성되지 않은 순간이었다.
이민기는 가히 전광석화와도 같은 속도로 보드를 들어 올렸고.
“정답입니다.”
페인킬러.
이번 문제도 마찬가지로 정답이었다.
“미친.”
“저 사람, 혹시 미래에서 왔나?”
“여기 한 천재가 나타났습니다! 퀴즈쇼의 왕 앞에 모두 머리를 조아리십시오!”
웅성거리는 방청객들과 게스트들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에 이민기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태양 씨랑 예전에 같이 봤지. 밤새 토론도 나눴고.’
참으로 우연이다.
하지만 또 필연이기도 하였다.
이민기이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말이었다.
[라스트 맨 스탠딩]은 무려 수백 회를 방영한 쇼다.그 안에서 한 에피소드를 지나치듯 봤다고 하여, 그 내용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게 말이나 되겠는가.
수천, 수만 편의 작품을 본 와중에 단 하나였을 뿐인데.
이건 전적으로, 그가 이민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운이 좋네.’
평소 영화에 미쳐 사는 이민기 말이다.
세상에 안 본 작품이 없을 정도이니 머릿속에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꾸려져 있다.
실제로 그가 이번 에피소드를 보지 않았다고 한들 결과는 달리 바뀌지 않았으리라.
희미한 기억이 그에게 주는 메리트라면 고작해야 자신감 정도였으니.
‘너무 날로 먹는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자, 어느새 15명의 참가자만 남았습니다. 100명 중 15명입니다. 축하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위키피디아에 한 줄로 기억될 겁니다. 정말 자랑스럽겠군요. 자, 그럼 다음 문제……(중략) 라고 한다. 이 작품의 이름을 맞추시오.”
“오딘스 아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도 슬슬 지겹군요.”
그렇게 이민기의 독주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한 사람의 독주가 언제나 좋은 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이건 좋지 못하군.’
이번 방송을 감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러했다.
미국 코미디쇼의 전설이자 감독으로 전향한 뒤 다시 한번 전설을 현재진행형으로 써 내려가는 남자, 레너드 무어가 그러했다.
‘제프리 로저스, 대체 뭘 데리고 온 거지?’
그는 쇼가 망해가고 있다고 느꼈다.
제프리 로저스를 공동 호스트로 앉힌 이래, 다양한 게스트를 유치하며 성공적으로 쇼를 이어나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에서 한층 큰 권력을 쥐고 있는 그의 눈에는 뭐랄까.
‘이러면 곤란하지.’
작금의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레너드 무어라는 자는 연식만큼이나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자이기 때문.
‘답안이라도 유출했나? 고작 동양인 배우 하나 때문에?’
그는 이미 제프리 로저스가 짜고 친다고 생각했다.
아마 작품을 흥행시키려고 그런 거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정답이 아니다.
그 또한 참가자 중 한 명과 짜고 치고 있는 와중이기 때문이었다.
‘저 모지리 같은 자식, 계속 순서를 놓치다니.’
지금 참가자 중 계속 얼타고 있는 모델이 그러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데려온 월드 클래스 모델.
그녀를 우승시켜 지적인 이미지를 씌워 주겠노라고 뒷거래를 하지 않았나.
여러모로 인지부조화겠지만, 인간은 원래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간신히 탈락은 하지 않고 최종 10인까지 들었다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저 모델의 에이전시와 사업 투자를 두고 맺은 약속이 있다.
어떻게든 우승해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후우.”
레너드 무어는 작게 한숨을 내쉬기를 잠시.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나설 수밖에.’
방송에 자그마한 변주를 선사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민기에게 불리하고 저 모델에게 유리한 변주를 말이다.
드륵.
미국 코미디쇼의 거인이 그 낡고 무거워진 몸을 일으켰다.
* * *
MC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최종 세 명이 남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내친김에 혹시나 해서 물어보겠는데, 지금이라도 다른 참가자에게 영광을 양보해 주실 뿐?”
그 말에 남은 세 명의 게스트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는 곤란하다는 듯 웃었다.
“푸하하하!”
이내 폭소가 방청 객석에 번져나갔다.
MC는 이번 즉흥 농담이 성공적이었다는 걸 직감하며 잠시 대본을 검토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면 저 잘생긴 동양인 친구가 우승하게 생겼군.’
제프리 로저스가 특별 게스트로 긴급 투입하길래 뭐 하는 사람인가 했다.
뒷돈이라도 받았나 싶기도 했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 풀리고 있지 않나.
아주 훌륭하게 역할을 다하고 있다.
‘혹시 답안이 유출됐나 의심스러울 정도인데, 뭐, 아니겠지. 중간에 한 문제 틀리기도 했으니.’
앞으로 세 명 남았을 뿐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슈퍼 모델이 한 명.
세계적으로 수위를 다투는 명문대의 교수가 한 명.
그리고 이민기.
이 셋 중에서 우승자가 나오리라.
MC는 이쯤이면 슬슬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어느덧 우승까지 한 걸음입니다. 각자 우승하면 상금으로 뭘 할지 소감이나 듣고 싶은데, 딱 한 마디씩만 하시지요. 두 마디는 탈락입니다.”
저벅저벅 걸어온 MC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은 모델이 작게 기침을 뱉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커다란 집을 사서 부모님에게 드릴 거예요. 전 가족이 아주 많거든요.”
두 마디였다.
아무튼, 그 짧은 말에 방청객 사이에서 부럽다는 듯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MC도 웃더니 말했다.
“10만 달러로 집을 살 수 있나요?”
“아르헨티나 시골에서는 집이 저렴하거든요.”
“대단하군요. 아주 화목합니다. 이사벨 몬테스, 그 외모만큼이나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아름답군요.”
청초한 외모만큼이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발언.
MC는 이번에는 타겟을 돌려 박사학위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연구자금에 쓴다거나 하는 그런 고리타분한 대답을 하진 않겠지요?”
“연구는 고리타분하지 않습니다.”
“그런 대답이 고리타분하군요. 한마디 잘 들었습니다. 기왕이면 탈모 치료제 연구를 부탁드립니다.”
“제 대답은 아직 끝나지 않…….”
“자! 그럼 다음!”
한 남자의 순정을 간단하게 짓밟은 MC가 마지막으로 이민기에게 마이크를 돌렸다.
따로 멘트는 없다.
그저 마이크를 들이밀 뿐.
‘이거 쉽지 않네.’
이민기가 마이크를 눈앞에 둔 채로 잠시 고민했다.
딱히 우승 상금의 용도를 생각해 두지는 않았지만, 뭔가 대답하기는 해야겠지.
고리타분한 대답은 좀 그렇고.
물질적인 뭔가를 들이밀고 싶지도 않다.
가뜩이나 처음 나온 와중에 이미지에 나쁠 테니까.
‘어중간하게 여지를 주면 농담거리로 써 먹힐 것 같고. 그건 또 싫은데.’
딴지를 안 잡히면서도 좋은 대답이 없을까.
이미지도 챙길 방법으로.
이민기는 고민하기를 잠시.
‘아.’
딱 적절한 수단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우승하거든 상금은 폐 질환 관련 의료 재단에 기부하겠습니다.”
“……!”
그 순간 방청객 사이에 놀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기부라니.
다른 무엇도 아니고 기부라니.
그 말에 어떻게든 농담을 던질 준비를 갖춘 MC마저도 잠시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기부한다는데 저걸 가지고 놀리면 야유나 듣기 딱 좋겠는데.’
여지를 줘 볼까.
한 다리 꺾어서 가 보자.
MC가 진하게 웃더니 거듭 물었다.
“좋습니다! 그런데 사실 어울리지 않는군요. 동양에서 온 미남 모델과 기부는 매치가 안 맞잖습니까? 퀴즈쇼를 위해 즉석에서 급조해낸 대답이 아닐지 의심스럽군요. 안 그렇습니까?”
그 말과 함께 다시 이민기에게 마이크가 돌아왔다.
“하하, 이유도 말씀드려야 하나요?”
“방송 분량을 챙기기 싫다면 거절해도 무방합니다만?”
이민기가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적당히 좀 놓아주지마는.
하지만 MC에게는 안타깝게도, 여기까지 이민기의 상정 범위 안이었다.
이민기는 자그맣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관중들의 시선이 온통 그의 다음 한 마디에 집중되며 분위기가 고조된 찰나.
이민기의 입에서 가히 필살기에 가까운 말이 터져 나왔다.
“어제, LA로 오는 비행기에 탄 와중에 옆자리 환자가 폐 질환으로 쓰러져 사망할 뻔했거든요.”
“……!”
따끈따끈한 경험담이었다.
MC마저도 입을 크게 뜬 사이, 이민기가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정말 조짐도 없이 바로 쓰러져 버리셔서, 간신히 살리기는 했습니다만.”
“와우, 직접 살렸다는 겁니까?”
“네, 그때 느꼈습니다. 이 사람은 다행히도 항공기 비즈니스석에, 옆자리에 대처법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살았지요.”
이민기가 호흡을 고르고는 작게 헛기침을 뱉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환경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사이 이유도 모르고 죽었을 겁니다.”
“분명 그렇겠지요.”
“네, 그래서 전 이쪽에 상금을 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의미 있게 사용되기를 바라면서.”
이민기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관중석에서 놀라운 함성이 파도타기처럼 번져나갔다.
백 점 만점을 넘어선 정답이었다.
선한 이미지를 챙길 수 있을뿐더러, 최근 이슈까지 거듭 강조할 대답.
저 대답을 듣고 어찌 지적할 수 있을까.
‘사람이 저렇게 착할 수가.’
‘역시 케이팝 스타들은 윤리 교육이 잘 되어 있군.’
‘할리우드의 방탕한 스타들과는 다르네.’
‘동방예의지국다워.’
미국에서 이민기의 이미지는 이미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단순히 재밌는 사람에서, 좋은 사람으로.
‘와우.’
MC마저도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백기 들어야겠군.’
어떻게 조롱하겠나.
관중들마저 모두 저 남자의 편이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너무 숙연해졌다.
감동 분위기는 취향이 아니다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왔다면 어쩔 수 없지.
무엇보다도.
‘나까지 응원하고 싶어지는군.’
그의 안에서마저도 이민기의 아군이 되고 싶은 욕망이 차차 꿈틀거린다는 점에서 더 그러했고.
“좋습니다, 그럼 다음 문…….”
MC가 그대로 최종전을 진행하려는 찰나였다.
툭.
옆에서 날아온 손이 그의 마이크를 뺏어 들었다.
뭉툭하게 살집이 잡힌 데다가, 주름이 온통 가득한 손.
그 손의 주인은 통통하게 불은 얼굴만큼이나 고집이 가득해 보였다.
불청객이다.
하지만 이 자리의 사람이라면 누구 하나 환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레너드 무어?”
레너드 무어.
미국 코미디쇼의 전설이자, 이번 쇼의 제작자이기도 한 그가 난입했다.
“레너드가 무대 위에 올라왔어.”
“연출인가?”
방청객들이 그의 존재감에 웅성거리는 사이, 레너드 무어는 여유롭게 그 목소리를 즐기고는 입을 열었다.
“기부도 좋겠지요. 세금 혜택으로도 홍보로도. 하지만 백지수표든 보증서든 전부 우승을 거머쥔 다음의 이야기겠지요.”
“……그렇죠.”
이민기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순간.
레너드 무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마지막 문제는, 제가 직접 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