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34)
운빨로 탑스타-134화(134/200)
제134화
어느새 3명만 살아남은 라스트 맨 스탠딩.
그 최종 스테이지에.
“마지막 문제는, 제가 직접 내지요.”
레너드 무어가 난입해서는 깜짝 발언을 바위처럼 떨군 순간이었다.
한마디.
그 한마디에 좌중이 일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
“레너드 무어가?”
“라스트 맨 스탠딩 초대 쇼호스트잖아.”
“그 시절이 돌아오는 건가?”
마치 있어서는 안 될 기적을 목도한 신자들과도 같은 반응.
충격을 받은 시선이 여간 예삿일이 아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제작자가 직접 문제 내겠다고 하는 저 말 한마디가 왜 이렇게 무게감을 가지는가.
그 이유는 바로.
“설마, 우승자가 아예 안 나오는 거 아니야?”
레너드 무어가 악독하리만치 사악한 출제자인 탓이었다.
방청객들이 걱정에 물든 시선으로 중얼거리는데, 누군가는 그게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묻기도 했다.
“그게 그렇게 문제인가?”
“네가 몰라서 그래. 옛날에는 우승자가 아예 안 나오는 에피소드가 과장 안 보태고 절반은 됐다고.”
“맞아, 한 10위 정도만 가도 만족해서 자진 기권하고 그랬다는데.”
그렇다.
지금은 호스트를 교체하며 비교적 유해진 라스트 맨 스탠딩이지만, 예전에는 정말로 배틀로얄을 방불케 할 만큼 문제 난이도가 지독했다.
왜 라스트 맨 스탠딩에 중도 기권 시스템이 있겠는가.
그만큼 위로 올라갈수록 문제 난이도가 극악이기 때문이었다.
우승 상금을 포기하더라도, 중간에 얼마 먹고 빠지는 게 이득이었기 때문.
어지간하면 우승자가 나오는 지금과는 달랐다.
‘뭐, 이것도 전부 내 계획대로였지만.’
술렁이는 반응에 레너드 무어가 만족한 듯 입꼬리를 당겼다.
초대 호스트이자 제작자로서 뒤에서 실세로 군림하며 전체적인 방향을 좌지우지했던 게 그다.
호스트와 진행자는 바뀔 수 있어도, 출제 난이도가 낮아진 건 전부 그의 의도.
“어이쿠, 보아하니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 지금부터 문제를 시작하겠습니다.”
레너드 무어가 쇳가루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 문제이기도 하니, 문제 내용은 조금 어렵게 가 보겠습니다. 울던 아기도 뚝 그칠 만큼.”
* * *
갑작스러운 레너드 무어의 난입에 이민기가 잠시 혼란 상태에 빠졌다.
‘여기에서 이런 변주가?’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그는 여태껏 쇼에서 옛날 기억으로 승승장구해 왔던, 아니, 해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승까지 거의 다 왔는데.’
역시 운이 좋다고 해서 모든 걸 떠먹여 주지는 않는단 말인가.
하긴, 너무 날로 먹기는 했지.
은근한 아쉬움과 동시에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진짜 실력으로 마지막을 맞이하는 정도라면야.’
더군다나 이미 처음 목표 정도는 달성하지 않았나.
인지도.
3위까지 올라오면서 몇 번이고 주목받았다.
MC의 노련한 진행 덕분에 중간에 비행기에서의 일도 다시 한번 거론했지.
이것만으로도 이미 수백만 명에게 홍보한 것과 다름이 없을 터.
나아가 언론마저 탄다면, 수천만 명에게 소식을 전한 것과도 같지 않겠나.
‘하지만 은메달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동메달이라면 더더욱.’
결국에는 우승 아니면 본말전도다.
그렇게 보자면, 지금부터가 본선이라고 봐도 좋았다.
0인가 1인가.
기계어와도 같은 간극 사이에 선 이민기가 식은땀을 흘리는 사이 레너드 무어가 입을 열었다.
“일단 나오기는 나왔는데, 뭘 문제로 내면 될지 모르겠군요. 제가 사장이었다면 저 같은 사원은 잘랐을 겁니다. 계약직은 퇴직금을 안 줘도 돼서 다행이군요.”
그의 입에서 능글맞은 멘트가 흘러나오기를 한참.
가장 적절한 순간.
어두운 산길 도적처럼 문제가 흘러나왔다.
“요즘 패션쇼는 재밌죠. 저도 자주 봅니다. 내가 입으려고 보는 건 아니고.”
작은 웃음이 흘러나오는 찰나 문제가 나왔다.
“2016년은 미국 속옷 시장이 크게 성장한 해였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슈퍼스타가 된 모델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유명한 축구 선수와 연인이 돼서 화제가 됐던 모델. 돌체 앤 가바나의 런웨이에서도 섰다지요? 자, 함께 맞춰 봅시다. 이 모델의 이름은 과연 뭘까요?”
어렵다.
대놓고 어려운 문제였다.
돌체 앤 가바나의 런웨이에 선 적이 있고, 유명 축구 선수의 연인이 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니.
“힌트를 주자면, 최근 LE에서 보도된 바가 있군요. 설마 여기에 LE도 안 읽는 사람은 없겠지요?”
힌트는 개뿔이.
‘저걸 누가 알아.’
방청객들이 공통으로 하는 생각이었다.
‘이런 문제는 삼지선다로 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떨어뜨리려고 작정했군.’
‘레너드 무어, 정말 악마다.’
하물며 함께 무대에 서 있는 MC와 모니터실에서 보고 있는 제프리 로저스마저도 충격에 빠졌을 정도.
‘저 노인네, 무슨 생각이지?’
‘이거 설마…….’
그나마 제프리 로저스가 할 수 있는 추측이라면 하나뿐이었다.
‘뒷돈이라도 받아먹은 건가?’
뒷돈.
알면서도 모르는 그것이었다.
쇼 호스트를 역임하고 있는 제프리 로저스가 모를 리가 있나.
평소 리처드 무어가 쇼에 과하게 개입할 때면, 매번 기이한 우승자가 탄생했다는 걸 말이다.
또 그 우승자들이 하나같이 셀럽이 되었다는 것도.
‘그렇다면 이번 우승자는 저 아르헨티나 출신 모델일 테고, 나쁜 습관이 또 발동했군.’
이가 갈릴 따름이다.
그리고 그의 추측은 실제로도 정확했다.
‘애송이, 3위에서 만족하고 물러가라.’
리처드 무어는 저 모델에게 대놓고 유리한 문제를 출제한 게 맞았으니.
‘조지나 로드리게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연인이지.’
정답이 이것이었다.
저 아르헨티나 모델이 아무리 퀴즈에 무식하나 한들 모를 수가 없었다.
왜냐고?
조지나 로드리게스는 아르헨티나 출신 모델이니까.
더욱이 모델 업계에서는 가히 전설적이라 불러도 좋을 성공 신화를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면 모를 수가 없겠지.’
대놓고 퍼준 문제였다.
하지만 저 애송이, 이민기라면 어림도 없겠지.
축구 선수와 사귀는 모델이 한두 명이겠나.
돌체 앤 가바나의 런웨이에 선 사람은 족히 수백 명은 될 거다. 그중 아르헨티나 출신을 정확하게 골라낼 수 있을 리가.
‘동양인 따위가 알겠나.’
리처드 무어가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안 됐지만, 여기까지군. 자, 슬슬 정답이 나올 때가 됐다.’
곧 답이 나오고, 모든 게 순리대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며.
하지만.
“…….”
시간이 흘러도.
“…….”
“…….”
그가 바라는 정답 같은 건.
“…….”
“…….”
“…….”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천하의 명문대의 박사라고 해도.
이민기라고 해도.
그가 대놓고 정답을 맞히라고 퍼준 아르헨티나 출신 모델이라고 해도.
그 모두가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리처드 무어가 황당함에 물든 눈빛으로 모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환장하겠군.’
그저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좌우로 번갈아 보고 있는 광경뿐이었다.
마치 먼 하늘 위에 정답이 뚝 떨어져 있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크으윽.’
리처드 무어가 환하게 웃으면서도 속으로 입술을 씹었다.
설마 같은 나라 출신의 슈퍼 모델 이름도 모른다는 건가.
대놓고 퍼준 건데, 이것도 모르다니.
머릿속에 뭘 집어넣고 사는 건가.
바로, 여기.
여기에서 리처드 무어의 첫 번째 실수가 드러났다.
‘어쩌지?’
그녀에게는 짐작이 가는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아마라 심슨? 가브리엘라 사무엘? 클레어 민트? 조지나 로드리게스? 이중 누구지?’
축구 선수와 결혼한 아르헨티나 출신 모델을 너무나도 많이 안다.
돌체 앤 가바나의 런웨이에 선 모델도 너무나도 많이 안다.
이게 바로 그녀의 문제점이었다.
모르는 게 아니라, 역으로 짚이는 바가 너무 많다는 것.
차라리 문제가 여기까지라면 아무나 하나를 말하고 둘러댈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리처드 무어가 장애물을 하나 깔았다.
[힌트를 주자면, 최근 LE에서 보도된 바가 있군요.]힌트랍시고 던진 말이었다.
안 읽었다.
그녀는 최근 [LE]를 안 읽었다.
안타깝게도, LE는 대중 지향 패션지이다 보니, 그녀가 주로 활동하는 분야와는 트렌드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힌트 하나가 그대로 외통수가 됐다.
‘LE에 나온 게 누구지? 여기에서 잘못 말했다가 탈락하면…….’
그건 큰일이다.
에이전시에서는 그녀가 우승할 거라고 확실하게 일러뒀으니까.
실수가 두려워 아무런 움직임도 못 보이는 와중이었다.
쾅!
갑작스럽게 벨을 올린 사람이 있었다.
이곳의 세 참가자 중에서도 유독 말수가 적던 사람.
바로.
“할 말이 있는데.”
명문대 출신의 박사였다.
그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벨을 눌렀다.
‘설마? 그렇게 안 생겼는데?’
리처드 무어의 눈빛에 숨길 수 없는 당혹스러움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기권하겠습니다.”
박사의 말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으니.
예상 밖의 대답에 리처드 무어가 간신히 한숨을 돌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상금으로 누적된 1만 달러를 가지고 가겠군요. 연구자금으로 충분하겠습니다.”
“연구자금이 아니.”
“박사님 덕분에 인류는 더 발전하겠지요. 축하드립니다. 모두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불과 한순간에 1명이 자진 하차했다.
어느덧 두 명만 남은 상황.
이 밧줄 하나에 의존해서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아직 총기를 빛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건가?’
이민기였다.
‘그거 맞는 것 같은데?’
불과 지금으로부터 24시간이 지나기 전.
아직 한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비즈니스석 시트에 몸을 맡기고 있었을 때, 그가 읽고 있었던 책이 있었다.
[LE]그렇다.
이민기는 비행기 시트에서 LE를 읽었다.
굳이 설명할 것도 없이 당연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곧 LE와 화보를 촬영하니까.
미팅을 가질 회사의 상품을 점검하는 건 기본 아니겠나.
이민기 같은 준비 성애자들에게는 당연하다 못해 고기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또 다른 사람 있나?’
이민기가 우선순위를 둔 채로 다른 답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전혀 안타깝지 않게도.
‘모르겠네.’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걸 누가 외우고 살겠나.
같은 한국에서도 이름 외운 모델이 50명이 안 되는데, 어떻게 아르헨티나 출신 모델을 다 외우고 살겠나.
이게 오히려 이 순간에는.
‘어차피 내가 말할 수 있는 이름은 하나밖에 없는데.’
장점으로 떠올랐다.
후보군을 줄일 수 있다는 것.
무기가 지나치게 많다면 그 안에서 한 가지를 골라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꺼낼 수 있는 답이 오직 하나밖에 없다면 이거라도 꺼내고 봐야 하지 않겠나.
옆자리에 있는 저 아르헨티나 출신 모델이 보란 듯이 정답을 던져버리기 전에 말이다.
‘에라이, 모르겠다.’
마음을 굳힌 이민기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벨을 눌렀다.
탕!
이어서 그의 울림이 엄숙한 회장의 공기를 타고 퍼져나갔다.
“조지나 로드리게즈, 조지나 로드리게즈가 정답입니다.”
너무나도 또렷한 목소리.
얼핏 떨리는 듯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발음.
그 이름 앞에서, 리처드 무어가 내릴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우승자가 나왔군요.”
작은 탄식과 함께 인정하기 싫은 마음, 모델 에이전시에게 들을 항의에 대한 짜증까지 이를 악물고 꾹꾹 억누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축하드립니다. 케이팝스타.”
차마 불편한 결과 앞에서 그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하지만 분위기 망치기 싫으면 축하해 줘야지 어쩌겠나.
“우승 소감을 듣고 싶군요.”
자기 입으로 말하면서도 붉으락푸르락하는 그의 앞에 선 이민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같이 사진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
천진난만한 그 목소리에 리처드 무어가 한껏 팔자주름을 떨며 답했다.
“……촬영 끝나고 봅시다.”
라스트 맨 스탠딩.
이민기가 마지막에 섰다.
잠시 뒤.
환호성이 장내를 물들이듯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 * *
어느 조용한 창고.
“…… 배우님은 대체 뭐지?”
한 남자, 유규언 대표가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다가 비행기에서 사람을 살리더니, 오자마자 퀴즈쇼에서 우승까지 해?”
그의 눈은 핸드폰 기사 한 통에 고정되어 있었다.
[케이팝스타 이민기, 라스트 맨 스탠딩 최종 우승]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사태가 일어났다.
미국에서 먼저 일하고 있을 테니, 시간만 맞춰서 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이게 뭔가.
‘무슨 시골 논밭에서 농사짓다 과일 하나씩 따먹듯 화제를 하나씩 모나.’
저게 사람 인생인가.
남들은 살면서 한 번만 겪어도 평생 자랑거리로 삼을 일을 왜 이틀 연속으로 겪나.
무슨 소설 속 주인공도 아니고.
“미치겠군.”
어처구니가 없는 마음에 혼잣말을 읊조리는 와중이었다.
그와 함께 창고에서 옷을 둘러보던 또 다른 남자가 그의 옆으로 훌쩍 다가오더니 말했다.
“역시, 제 눈이 정확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