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35)
운빨로 탑스타-135화(135/200)
제135화
“역시, 제 눈이 정확했군요.”
불연 듯 옆에서 들려온 중후한 목소리에 유규언 대표가 움찔 떨고는 옆을 돌아봤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 편집장님. 벌써 오셨군요.”
그렇다.
지금 유규언 대표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아서 단토.
패션 전문 잡지 [LE]의 편집장 되는 사람이었다.
“예, 혼잣말을 하시기에 잠시 떨어져 있었습니다.”
“크흠, 혹시 어디까지 들으셨나요?”
“어차피 못 알아들었습니다. 한국어는 할 줄 몰라서.”
참.
나 한국어로 중얼거렸지.
유규언 대표가 헛기침을 뱉으려니 아서 단토가 걸어 나가 주위 옷을 차분히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봐도 무엇 하나 훌륭한 제품들입니다. 당장 시장에 내놓아도 무방하겠군요.”
“감사합니다.”
“이번 FW 시즌의 행방이 조금이나마 느껴집니다.”
얼핏 부드러운 칭찬 앞에서 유규언 대표가 거듭 숨을 삼켰다.
‘그 아서 단토한테 내 디자인을 칭찬받을 날이 오다니.’
아서 단토가 누구인가.
미국의 패션 트렌드를 결정하는 몇 안 되는 거물 중 한 명이다.
누군가는 그를 일개 잡지의 편집장이라며 깔보고는 하지만, 천만의 말씀.
유규언 대표가 보기에 아서 단토야말로 실세 중의 실세였다.
‘이 사람 한 명만 통하면 할리우드 전체에서 통한다.’
그는 경계선이었다.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달려 있다.
아서 단토를 구워삶기에 따라 앞으로 [테르미누스]의 운명도 달라질 터.
‘물론, 배우님도.’
기사가 눈앞에 결과물로 나오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유규언 대표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힌 채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 모델이 걸치면 더 멋질 겁니다.”
“이민기 말이지요?”
“네, 이런 말을 하면 좀 부끄럽지만.”
유규언 대표가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저희 옷은 전부 이민기 배우님이 입으실 걸 가정하고 만들었거든요.”
그렇다.
유규언 대표는 이민기를 모델로 기용한 이래, 어떤 옷이든 이민기에게 입힌다는 가정을 거쳤다.
예외는 없다.
설령 그에게 입히지 않을 옷이라고 한들, 한 번쯤은 가정해 보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개 모델에게 그랬던 이유라고 하면.
“알겠군요. 이민기는 대표님의 뮤즈였습니다.”
“네, 그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어느 순간, 이민기가 유규언이라는 디자이너의 뮤즈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유규언 대표가 희미하게 웃으며 아서 단토의 옆으로 걸어 나갔다.
이어서 그가 바라보고 있는 옷을 집어 들더니 옷감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 옷은 옷으로 사람을 묻어버리기보다는, 사람의 장점을 돋보이게 만드는 옷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로맨틱하군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민기 배우님은 특별합니다. 마치 하이 스탠다드, 표준이라고 하면 될까요? 이민기 배우님이 잘 소화하는 옷이라면, 누구에게 입혀도 어울리겠다는 직감이 있었지요.”
이민기라는 모델의 특징이었다.
한눈에 봤을 때 바로 눈에 박힐 만큼 특별한 체형은 아니다.
하지만 얼핏 친근하기에 보면 볼수록 호감을 불러일으키며, 깊게 볼수록 그 진가가 배어났다.
경외감이 아니다.
동경심이다.
‘배우님의 스타일을 보면 무심코 따라 하고 싶어지지.’
대중의 아이돌.
그 위치에 오르기 가장 좋은 몸이 바로 이민기의 몸이리라.
유규언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편집장님도 실물로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 말에 아서 단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차분히 턱수염만을 쓰다듬었다.
‘이민기라.’
그의 머릿속으로 마치 파우더룸과도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이민기를 어떤 방식으로 조명하면 될까.
특징, 장점은 어떻게 드러낼까.
대중에게 팔기 위한 방식은.
‘키 180에도 못 다다르는 동양인 모델의 힘은, 과연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수없이 많은 고민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한번 시험해 보고 싶군.’
아서 단토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가장 좋은 사진사를 데려와야겠군요.”
“예?”
그 말에 유규언 대표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스튜디오와 사진사는 이미 결정된 것 아니었나요?”
그것도 일류로 말이다.
LE의 전용 스튜디오와 LE에서 전속으로 고용한 사진가.
“그랬습니다만, 바꿔야지요. 결과물을 위해서라면.”
태연한 대답에 유규언 대표의 시선이 한층 더 황당함에 물들었다.
어느 쪽이든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라고 불러 무방할 텐데, 이걸 교체하겠다는 건가.
유규언 대표는 자기가 뭔가 착각했나 싶어서 물었다.
“……외람된 말입니다만, LE의 전속 사진사분도 이미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분은 이제 대타입니다.”
아서 단토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튜디오의 조명 도구가 아무리 밝다고 한들, 자연광 앞에서는 그 색깔이 잃습니다. 대표님도 도미닉 첸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겠지요?”
도미닉 첸.
중국계인가 싶은 그 이름이 아서 단토의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이었다.
“그 사람을……!”
유규언 대표가 눈을 크게 뜨더니, 주위를 살짝 살핀 뒤 회의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데려올 수 있는가는 둘째치고, 모델님을 찍으려고는 할지 모르겠군요.”
* * *
이민기의 미국 일정은 이렇다.
현지에 도착한 뒤 사흘간 휴식하고, 나흘째 되는 날 [LE]와 인터뷰 겸 화보 촬영에 나선다.
너무 늦는 게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배우님, 보정으로도 충분히 때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그래도 더 나은 컨디션에 보정하면 더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첫 미국 시장 데뷔니까 멋진 모습으로 비치고 싶어서요.]이민기의 고집이기도 했고.
[배우님, 데뷔는 처음이라는 뜻을 포함한 단어입니다. 역전앞처럼 들리는군요.] [……저 나름 멋진 말 던졌는데, 이럴 때는 좀 봐주시지.]물론, 미국을 천천히 둘러보고 싶기도 해서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비행기에서 사람을 구한 데부터 시작해 바로 퀴즈쇼까지 출연해버렸고.
거기에서 우승까지 해 버린 탓일까.
[스톰브링어, 이민기]화보로 첫인사를 하려 했던 계획에서 아득히 멀어져, 이상한 방향으로 명성을 떨쳐버리는 와중이었다.
[이번 라스트 맨 스탠딩 우승자는 진짜 전설적이다] [데뷔하고 바로 연예계 톱에 오른 다음 비행기에서 사람을 구하고 미국에 오자마자 퀴즈쇼?] [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미국에는 왜 온 거지?] [혹시 할리우드에서 작품 하나 촬영하려는 거 아니야? 히어로 영화로.] [굳이 히어로 영화에 나올 필요가 있을까? 이미 히어로잖아.]이미지가 좋아졌다.
그것도 다소 심각할 만큼.
라스트 맨 스탠딩에서 나눴던 인터뷰가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가버린 탓이었다.
더욱이 리처드 무어가 난입해서 직접 문제를 냈다는 점도 그러했고.
본인은 그럴 의도가 티끌만큼도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민기의 화제성에 한 몫 거들었다.
“사람이 좋아서 다행이에요. 사진도 찍어 주시고, 사진도 찍어 주신데다가 사진까지 찍어 주시고.”
“SNS에 업로드했던 그 사진 말씀이시군요.”
“네, 벌써 기사 나왔던데요?”
이민기의 말대로다.
한국 언론에서는 이민기가 미국에서 벌써 인맥 갑이 되어가고 있다며 기사가 뿌려지는 와중.
[이민기, 할리우드에서도 특별한 인맥 과시] [별이 별을 알아봤네] [미국 진출 시동 초읽기?]그야말로 탄탄대로라고 볼 수 있었다.
이게 전부일까?
그럴 리가.
‘오늘 아침에는 아이스크림 하나 샀더니 당첨이었지.’
점심에는 계란 깠더니 노른자가 두 알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갔더니 버스가 딱 10초 만에 도착했다.
심지어 노트북에 카메라 USB 케이블을 꽂는데 한 번에 꽂히기까지.
‘이게 인생이지.’
하루가 멀다는 듯 몰려오는 행운 속에서 인생이 잘 풀리고 있다는 걸 직감한 이민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화보만 잘 찍으면 된다.’
이것만 잘하면 된다.
깔끔하게 마치고 돌아가자.
이민기가 그런 생각으로 [LE] 스튜디오 건물에 발을 들인 순간이었다.
“배우님!”
다급하게 그에게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아.”
그 모습에 이민기가 반갑다는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계셨어요?”
“예, 어제는 덕분에 푹 쉬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횡설수설하듯 떨더니 말했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 겁니까?”
마법.
그 말에 이민기가 바닥에 못처럼 고정되더니 말했다.
“네? 마법이요?”
“이해가 안 되는데, 배우님은 도대체 무슨……! 사람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과장된 반응 속에서 이민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나.
최근에 놀랄 일이 많기는 했었지.
하지만 그거, 어제 술자리에서 회포 다 풀었잖아.
‘물론 나는 한 잔도 안 마셨지만.’
오늘 내가 뭐했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뭔가 저지르기라도 했나.
이민기가 의문에 사로잡힌 사이, 유규언 대표가 그의 팔목을 잡더니 잡아끌며 말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어서 가서 일부터 마칩시다.”
“마음이 바뀌어요? 누가요?”
“아.”
그 말에 유규언 대표는 지나치게 설명을 생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 급히 진정하더니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사진사입니다. 도미닉 첸. 도미닉 첸이 지금 배우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게 누군데요?”
이민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은 찰나였다.
가만히 보디가드처럼 뒤에 서 있던 박한모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도미닉 첸은 전설입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번만큼은 그 또한 평정심을 잃은 표정이었다.
* * *
사진사, 다른 말로 사진작가라는 건 대체 어떤 직업일까.
간단하다.
[사진기 들고 찍으면 다 사진사지.]촬영하는 직업이다.
화보를 찍어도 사진사다.
종군 기자는 사진사다.
풍경 사진을 찍어도 사진사다.
디자인 시트지 샘플을 촬영해도 사진사다.
음식을 찍어다가 홍보지를 쓴다고 해도 사진사가 맞다.
웨딩 사진, 자동차 사진, 인터뷰 사진, 매장 홍보 사진.
사진을 찍는다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간다면 누구나 다 사진사라고 볼 수 있었다.
하물며 장비도 그렇다.
[옛날에는 수백에서 천 이상을 호가하는 장비를 질러야 콧방귀 좀 뀌었지. 근데 요즘은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돈 버는 사람이 꽤 있거든?]폭이 넓은 직업이다.
대외적인 시선과는 달리, 요즘 같은 세상에는 프로가 되는 문턱 또한 아주 높지만은 않았다.
소질만 충분하다면 불과 6개월만 공부해도 프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이러한 사진사 업계에서 널리 적용되는 말 또한 있었으니.
[돈 많이 벌고 싶어? 그럼 사진사를 하면 안 됐지.]사진사라는 직업은 수요가 많은 이상으로 공급이 넘쳐흐르고, 그 탓에 제대로 된 페이를 받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직업이라는 것이었다.
일류 사진사라고 한들 대기업 신입사원 정도 벌면 잘 버는 수준.
자기 스튜디오를 가진 사진사라 해도 마찬가지다.
페이를 높게 부른다고?
그럼 고용주가 할 말은 하나뿐이다.
[그래, 가, 딴 사람 쓰면 그만이야.]실력을 아무리 늘린들 몸값 높이기는 너무나도 요원한 업계.
감히 블러드 오션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런데 이 복마전 속에서 업계의 상식을 초월한 존재가 있었으니.
“도미닉 첸이다.”
“실물이야.”
“듣던 대로 카리스마가 엄청나군.”
도미닉 첸.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사진사라 불리는 남자가 그러했다.
화보면 화보.
영화 포스터면 포스터.
뭘 찍든, 뭘 만지든 그가 찍으면 최고가 된다.
그러니 수요가 공급을 초월해버린 독보적인 존재라 볼 수 있겠지.
드높은 실력만큼이나 그 콧대 또한 어마어마하게 높고.
[도미닉 첸은 자기가 찍고 싶은 작품만 찍는다.]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바로 짐 싸고 돌아간다던데?] [고용주가 수정 요구도 못 해]그렇게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자랑하는 그가 지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부드러운 표정으로 한 남자에게 말했다.
“오늘은 느긋하게 촬영해 보지요. 최고의 결과물을 약속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민기가 환하게 답하자 도미닉 첸도 응답하듯 말했다.
“감사하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게 제 일이니까.”
이상하다.
그 도미닉 첸답지가 않다.
명백하게 세상의 이치를 벗어난 모습에 유규언 대표, 아서 단토, 박한모 매니저 및 스튜디오의 대타 작가까지 모두가 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