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37)
운빨로 탑스타-137화(137/200)
제137화
21세기.
21세기에 영화계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라면 무엇일까.
영화 좀 보는 사람이라면 깊게 고민하지 않더라도 바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
[유니버스]영화 프랜차이즈의 유니버스화였다.
공유하는 세계관 속에서 여러 영화를 찍어내는 것.
[와, 얘들도 같은 세계관이었어?] [무슨 작품을 1년에 하나씩 찍네. 속도 미쳤다.] [근데 얘네 유니버스 엎은 게 벌써 두 번째…….]한 작품이 뜨거든, 그 작품을 기반으로 세계관을 전개한다.
계속해서 작품을 뽑고, 뽑고 또 뽑아낸다.
그렇게 극장가를 점령하는 것.
그게 유니버스 열풍이었다.
[요즘은 다 유니버스네.] [야, 그래도 공포영화로도 유니버스를 만드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냐?] [공포영화가 유니버스 근본인데.] [뭐?]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영화 속 세상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좋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여러모로 이런 유니버스를 소비하는 사람에게는 영화의 신천지가 펼쳐졌다고 봐도 무방한 현상이었다.
현상이라는 말도 모자라다.
혁명, 혁명이 어울렸다.
영화계의 대혁명이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처럼 할리우드를 덮쳤다.
[볼 영화가 너무 많아.] [뷔페다. 뷔페.]물론, 부작용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저런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극장을 점령한 탓에, 상대적으로 소규모 영화들은 극장 바깥으로 내몰렸으니.
비판이 안 나올 수가 있을까.
[이건 영화(Cinema)가 아니다. 그저 영화(Movie)일 뿐이다.]작품의 프랜차이즈화가 가속될수록 제작비가 헬륨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제작비가 늘면 늘수록 도전하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 상업성에 너무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작품의 예술성을 외면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런 예술 영화들은 OTT 시장에 진출해서 또 다른 터전을 일구는 데 성공했지만.’
잠시 머릿속으로 영화사를 되새긴 이민기가 눈앞을 바라보았다.
‘그 프랜차이즈화의 수장이 지금, 내 앞에 서 있단 말이지.’
엠마 스펙터.
할리우드의 초대형 영화사 AST의 스튜디오들을 총괄하는 자로서, 현 유니버스 돌풍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그녀가 이민기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배정문 씨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잠깐 이야기 괜찮겠죠?”
* * *
돌풍 같은 촬영을 마치고 불과 삼십여 분.
엠마 스펙터와 이야기를 마쳤을 무렵.
“이야기 즐거웠습니다.”
그녀가 이민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더 생각해 보시고, 그럼 좋은 대답 기대하겠습니다.”
“아, 네.”
이민기가 영 찜찜한 눈빛을 지으면서 그 손을 붙잡자, 엠마 스펙터가 립스틱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직은 모를 일이지만, 우리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민기 씨.”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시간을 뺏었군요. 후후, 그럼 또 봅시다.”
그녀는 돌풍처럼 찾아왔듯 태풍처럼 떠나갔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거물을 맞이한 이민기는 뭐라고 해야 할까.
‘이래도 되나.’
기분이 영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배우님, 잠시 걸으시겠습니까?”
“네.”
스튜디오에서 나와 인근 산책길.
누가 캘리포니아 아니랄까 봐 지독하게 날씨가 좋다 싶은데, 그 길거리를 말없이 걷기를 한참.
“매니저님.”
문득, 이민기가 고개를 돌려 박한모 매니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까 그 제안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박한모 매니저가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거절해서는 안 될 제안이기는 합니다.”
“그런가요?”
“예, AST에서 직접 배우님을 스카우트하러 나선 셈이니.”
그렇다.
엠마 스펙터가 이민기에게 직접 연락을 걸어온 이유, 그건 바로.
“하물며 오딘 유니버스의 신작에 말입니다.”
영화 속에 초빙하기 위함이었다.
그것도 오딘 유니버스, 현재 유니버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주자였다.
요즘 오딘 유니버스를 모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수없이 많은 히어로와 빌런이 등장하는 유니버스.
그 작품 수로만 어느덧 서른을 넘겼다.
그중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전부 흥행에서 성공을 거뒀지.
영화를 찍는다면 누구나 경악할 만한 업적이리라.
명백하다.
현 영화계는 오딘 유니버스와 AST가 주역이 되어 이끌고 있다.
“후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기가 마냥 기뻐하지도 못하고 한숨만을 내쉬고 있는 이유라면.
“아무리 그래도 네 작품을 오딘 유니버스에 걸어야 한다니.”
AST가 그에게 내건 조건이 지나치게 무거웠던 탓이었다.
‘세 작품을 연달아 출연에, 촬영 기간 중 영화 외적인 스케쥴도 전부 검토받아야 한다고 했지. 사내 소속 트레이너를 붙여서 몸도 직접 관리하고.’
이것뿐이랴.
중간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거든, AST 측에서 언제든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있다.
해외에서 타 작품을 촬영 중이라도 AST에서 호출하거든 바로 복귀해야 한다.
더불어 AST에서 주최하는 행사에는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것까지.
제공한 각본에 반대하거든 하차를 요구할 수 있다는 건 기본.
말이 스카웃이지, 사실상 목줄을 죄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최소 5년은 배우 인생을 저당 잡히겠지.
‘열매가 달콤하기는 하지만.’
이게 더 문제였다.
“그래도 배우님께서 이번 계약을 마치거든, 아마 몸값이 예전 같지 않으실 겁니다.”
박한모 매니저의 말마따나, 인생을 걸어볼 만한 도박이라는 것.
그 오딘 유니버스다.
무명이었다가도 여기 출연하고 스타가 된 사람이 한둘이었던가.
‘스톡 이미지 모델로 활동하다가 영화 한 편 만에 몸값이 수백 배로 뛴 사람도 있었는데.’
탑스타라면 모를까, 그에는 조금 못 미치는 배우로서는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
아직 어떤 작품을 촬영하게 될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새 히어로 영화의 조연급 인물로 캐스팅해, 반응에 따라서 주연급으로도 올려줄 수 있다고 했을 뿐.
‘대충 짐작은 가지만.’
몇 가지 단서가 있었다.
엠마 스펙터는 신작에서 동양인을 필요로 한다는 것.
조연급으로 시작하지만, 작품 반응에 따라서는 주연으로도 올릴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미래를 알고 있는 이민기로서는 이게 어떤 작품이 될지는 안 봐도 뻔할 뻔 자였다.
‘나한테 어나니머스를 맡기려는 거네.’
어나니머스.
오딘 유니버스에서 유일한 주연급 동양인 히어로였다.
[내 힘은 이 세상 그 자체다.] [나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존재할 뿐.]인터넷 세상을 지배하는 천재 해커.
해킹 집단 어나니머스를 이끄는 수장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초능력을 각성해, 전자기기들을 순수 정신력만으로 조종하기도 했지.
훗날 휴먼 인터페이스라고 불리는 능력이었다.
‘사실, 작품만 따지고 보자면 크게 성공한 작품이 맞아.’
작품의 성적으로 보자면 오딘 유니버스 안에서 평균치를 조금 웃도는 정도.
하지만 말이 평균이지, 그 오딘 유니버스 안에서 평균이다.
영화계 전체를 보자면 그 할리우드 안에서도 최상위권을 깔고 가는 성적이었다.
‘목줄이냐, 성공이냐.’
이민기가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박한모 매니저가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배우님과 같은 시기에는 흔히 선택을 하나 하게 됩니다.”
“선택이요?”
“예, 누구나 한 번쯤은 갈림길에 서기 마련입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싶은데 그가 차분하게 설명을 이었다.
“본격적으로 상업성을 추구하며 큰 무대로 옮겨 블록버스터를 쫓거나, 아니면 배우로서의 자신을 찾는 겁니다.”
“아.”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게 아닙니다. 그저 게임 속에서 직업을 정하듯, 배우로서 앞으로의 노선을 선택하는 겁니다.”
문득, 이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AST의 제안을 수락하면, 예술은 당분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리라.
잠시 눈을 깜빡거린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오딘 유니버스에 합류하고 나면,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죠?”
“보통은 그렇습니다.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고착되기 마련이니.”
오딘 유니버스의 고질병이었다.
작품 속 캐릭터가 배우의 이미지를 덮어씌워 버리는 것.
그런 거 있지 않나.
일단 작품에 출연했다 하면, 이제 영화 바깥에서도 본명이 아닌 히어로 네임으로 불리게 되는 거.
[발키리 멋있지 않냐?] [배우 본인이 히어로 네임으로 불리는 거 싫다고 했는데.] [본명이 뭔지 알아야 부르든 말든 하지 아 ㅋㅋ]쉽지 않다.
오딘 유니버스를 일단 졸업하더라도, 저 이미지를 씻어내려 수많은 배우들이 한참을 고생한다고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박한모 매니저의 말이 맞았다.
이건 갈림길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손해는 보지 않겠지만, 대신 향후 수십 년의 미래가 바뀌게 될 갈림길.
감히 정하기 어려운 두 갈래 사이에 선 이민기가 천천히 눈을 깜빡거렸다.
‘오딘 유니버스에 출연하지 않는다고 해서 따로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
틀렸다.
이건 반대로 너무 많다.
특별히 오딘 유니버스의 대체재가 많다기보다는, 이민기는 원래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 많은 사람이었다.
여기에도 많고, 저기에도 많고.
사실 몸만 허락해 준다면 1년에 10 작품이라도 찍고 싶은 마음이다.
“으으.”
그렇게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하고 신음만 뱉고 있는 와중이었다.
“전 사실, 배우님이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한모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제가요?”
“예, 배우님은 연기할 수 있는 폭이 넓습니다.”
이민기가 움찔하려니 그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연기에 한정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연예계에 있는 모든 분야입니다. 모델일도 좋은 예시겠지요.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많고,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물에서 불이 되는가 하면, 고체에서 액체가 되기도 합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흔치 않은 칭찬에 이민기가 고개를 끄덕인 찰나, 박한모 매니저가 답했다.
“배우님이 희생해야 할 것은 그 전부입니다.”
“네?”
이민기가 눈을 크게 떴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매니저로서 회사 입장을 대변하는 게 아닌, 배우님의 작품을 보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의 말입니다.”
큰일 났다.
지금부터 나올 말을 한번 들으면, 그 전으로 돌이키기 어려워질 것 같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할지도 기대되어 이민기가 귀를 기울인 순간.
박한모 매니저의 입에서 끝내 그 말이 나와버렸다.
“왜 스스로의 가능성을 잘라내려 하십니까?”
“……!”
멍하니 입을 벌려버렸다.
이 사람은 나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었던 건가.
JC 최초의 오딘 유니버스 출연 연예인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하더라도, 그 이상의 성공을 거머쥘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던 건가.
‘회사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데.’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꽂아 넣는 게 맞을 텐데.
내가 박한모 매니저라는 사람을 잘못 판단했던 걸까.
‘회사 입장에서 쓴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소신껏 할 말을 다하는 사람이었던 건가.’
이민기가 놀란 사이.
“배우님은 크게 될 사람입니다.”
박한모 매니저가 옷매무새를 다잡더니, 허물 한 겹을 벗어던졌다는 듯 편하게 말을 이었다.
“오딘 유니버스 외 작품이라도 성공하실 자신이 있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오딘 유니버스에 출연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하셨던 때가 있으셨습니까?”
“그건 아닌데.”
“예, 그럴 것 같아서 해 본 말이었습니다. 배우님이라면.”
저렇게 대놓고 말을 할 수가 있나.
내가 네 작품관을 완벽하게 꿰고 있다는 듯 자신한다는 게 가능한가.
그가 생각보다 상업 욕심이 짙은 사람이라면, 박한모 매니저를 정신병자 취급할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부정하기 어렵다.
이민기가 오딘 유니버스를 선택한다면 얻을 건 오딘 유니버스다.
포기했을 때 얻을 건?
‘전부.’
그 외 전부였다.
‘상업적인 성공? 좋지, 나쁘지 않아.’
성공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민기는 조금 그 노선이 다른 사람이었다.
‘상업적인 성공만 노릴 거였으면, 처음부터 언제까지고 푸르른은 안 찍었지.’
처음부터 그러했다.
아주 먼 옛날, 배우를 결심했던 그 첫 순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