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39)
운빨로 탑스타-139화(139/200)
제139화
앞서 말했듯, 2010년대 중반기부터 시작해 전 세계 미디어에 찾아온 변화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유니버스를 위시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제외한 작품들이 대거 극장에서 OTT로 옮겨간 것이 그러했다.
[극장에서는 수익성이 안 나요.] [쟁쟁한 프랜차이즈 작품이 너무 많아서…… 저희 같은 입장에서는 어찌 겨룰 방법이 없죠.] [대기업들한테 중소기업들이 밀려나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상생의 기회 정도는 줬으면.] [보장된 유명 감독들이나 버틸 뿐이지요.]급격한 시장 변화에 소규모 영화사부터 시작해 감독, 배우들까지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불만을 토해냈다.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극장이 테마파크로 변해간다는 것.
이게 너무나도 불안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일이 하나 있었으니.
[OTT도 생각보다 돈이 잘 벌리는데?]OTT가 끝내주는 티타늄 합금 동아줄이라는 점이 그러했다.
[OTT 플랫폼 하나만 뚫으면 일단 전 세계로 팔잖아.] [극장에 영업한다고 해외 각국에 진출해서 열심히 고생하지 않아도 돼.] [제작비도 팍팍 준다는데?]기본적으로 OTT 업체들의 기조가 그러했다.
박리다매.
일단 널리 파는 게 이들의 목표이다 보니, 재미만 보장된다면 소규모 스튜디오 입장에서도 대형 스튜디오들과 정정당당하게 겨룰 장소가 된 것.
OTT에 한해서라면 작품의 순수한 재미가 마케팅을 이길 수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OTT가 세상을 잠식하며 찾아온 변화 두 번째.
그건 바로.
“제가 보기에는, 조만간 한국 작품들이 세계 영상 시장을 집어삼킬 것 같아요.”
전 세계를 집어삼킨 한류 열풍이 그러했다.
이민기의 자신만만한 말에 박한모 매니저가 눈을 물끄러미 뜨더니 말했다.
“……배우님이 국산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어려운 일 아닌지.”
“글쎄요? 앞으로 5년도 안 걸린 것 같은데요.”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에 이민기가 항변하듯 말했다.
“요즘 한국 감독들 작품 엄청나게 잘 만들잖아요. CG 같은 건 자본 규모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연출이나 각본은 진짜 끝내주는데.”
“배우님, 시장의 문제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한국 작품이 미국 극장가에서 흥행하기란 극도로 어렵습니다. 천만 관객 영화를 가지고 간들, 잘해야 보너스 스테이지 정도입니다.”
“OTT로 판다는 방법은요.”
“한국만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지요. 작품의 수가 많습니다.”
가히 물은 물이요, 소금은 소금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반박이었다.
박한모 매니저가 특별히 한국 영화를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오히려 미국 시장을 버리고 한국에 돌아올 만큼 한국 시장에 큰 애정을 품고 있는 사람이지.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시기에는 저게 상식이기도 했다.
‘몇 년만 지나도 한국 작품들이 어지간한 OTT 플랫폼에서 1위부터 줄 세우기를 한다면 누가 믿어.’
미래를 아는 이민기는 저 상식이 산산이 조각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지만.
‘당장 넷플레이부터 한창때는 1위부터 10위 중 거의 절반이 한국 작품으로 가득 찰 때도 있었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국 영화가 미국 시장을 점령하다 못해, 미국 대형 영화사들, OTT 회사들이 한국 스튜디오들에게 작품 하나만 달라고 찾아오는 등 난리 났던 상황을.
제작비는 얼마든지 퍼줄 테니, 작품만 달라고 했던 걸 기억한단 말이다.
‘이런 걸 말한들 누가 믿겠냐만.’
이민기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또한 미래를 전부 봤으니까 알지, 그런 게 아니었다면 가뜩이나 못 떠서 힘들어 죽겠는데 나 놀리냐며 울컥했을 터.
하지만 이제 안다.
그래서 속이 답답했다.
“매니저님, 혹시 한국 작품이 대박 나면, 외국에서 막 제기차기 같은 게 유행하고 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이민기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해 본 순간이었다.
“……배우님, 혹시 어디가 아프십니까?”
환장하겠네.
진짜 죽어도 믿을 생각이 없나 보다.
이민기는 설득을 반쯤 포기하면서 말했다.
“아무튼, 저는 이 작품 꼭 출연해야겠어요. 재밌어 보이네요.”
“왜 하필 다른 작품도 아니고 이 작품을.”
박한모 매니저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으로 노트북 액정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액정 위로 떠 오른 글자가 있었다.
[war of all against all]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일명 만만투.
섬에 떨어진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이고 약탈하고 협력하기도 하며 싸운다는 내용의 작품이었다.
“너무 힙합니다.”
박한모 매니저가 불신에 깃든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B급으로 끝나기라도 하면 다행이겠습니다만, 하물며 감독도 무명이지 않습니까.”
그 말 그대로였다.
감독이 신인인데, 어디 유명 감독의 아들이라고 낙하산처럼 꽂아 넣은 작품이다.
더군다나 공동 감독 체제라니.
“OTT 유통을 생각 중이라는 부분도 그렇습니다. 아마 제작비만 날름 삼킬 생각으로 대충 만들고 말 겁니다.”
이것 또한 신빙성 있는 말이었다.
OTT들에서는 매절(작품 자체를 파는 것)을 기준으로 작품을 팔다 보니, 감독들이 최소한의 작품성만 확보하고 손을 놓는 경우가 많았다.
업계 1위 플랫폼인 넷플레이 정도만 예외일까.
“저쪽에서도 배우님을 섭외할 수 있을 거라고는 진지하게 믿지 않았을 겁니다.”
저것 또한 사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찔러본 수준이었다.
전체적으로 시놉시스만 보면 한탕 장사가 맞다.
정상적인 배우라면 저 판에 몸을 비집고 들어갈 생각이 없겠지.
그래.
‘저게 그 넷플레이에서 랭킹 1위 찍는다는 걸 누가 알겠어.’
성적을 모른다면 말이지.
‘저거 하나면 오딘 유니버스도 안 부러워.’
한 해에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전 세계를 휩쓴 작품이다.
오딘 유니버스에서도 최상위권 작품이나 견줄 수 있겠지.
적어도 [어나니머스] 같은 평균적인 작품은 감히 비빌 건더기도 안 나온다.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린 이민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찍어볼래요.”
“배우님, 제가 이렇게까지 말씀 드리.”
“참, 매니저님, 그러고 보니까 저희 재계약 시기가 곧.”
“이사님은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박한모 매니저님.
역시 판단력이 빠르시다.
* * *
한국 공항으로 귀국할 무렵, 그곳에서 이민기는 이미.
“여기 손 한 번만 흔들어 주세요!”
유사 할리우드 스타가 되어 있었다.
“퀴즈쇼 우승의 비결은 뭐죠?”
“응급조치는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오딘 유니버스 출연에 관해 제안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어떻게 된 거죠? 한마디만 부탁드립니다!”
“엠마 스펙터에게 극찬을 들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말이었죠?”
불과 보름도 안 되는 일정이다.
하지만 그 안에 이민기는 인터넷을 통해 유사 할리우드 스타 정도의 이미지를 쌓은 듯했다.
물론, 한국 한정이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마십시오.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겁니다.”
“네.”
이민기는 박한모의 말에 따라 JC 측에서 보낸 스태프들의 안내를 받으며 조심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기자들에게 한마디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해 주지 않는 게 작전이었다.
[선물상자는 안 깠을 때가 제일 신나잖아. 그냥 상상하게 내버려 두자고. 찬물 붓지 말고.]구인모 대표의 조언이 있었다.
입을 열어서 손해가 될 상황이라면, 말을 아끼면 아낄수록 이득이라고.
‘어차피 AST 측에서도 섭외 제안을 거절당했다고 밝히려면 시간이 좀 남았을 테니까, 그동안 스타 프리미엄을 누리자는 거겠지.’
괜찮은 전략이다.
그 화제성을 끌고 가면서 계속 눈덩이처럼 부풀리면 된다.
허장성세라는 말이 있다.
멋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없는 허세도 부리라는 건데, 이번에는 반대였다.
알아서 멋진 사람으로 오해를 해 준다면, 있는 허세도 감추는 게 맞다.
적어도 한국 내에서라면.
이민기라는 배우에 대한 환상은 이미 극한에 달해 있기 때문.
[신인 배우 중 최고] [미친 커리어] [괴물 배우] [할리우드에서도 군침을 흘리는 배우] [LE에서도 인정받은 패션 감각] [한국 영화계의 레전드를 다시 쓸지도 모르는 남자] [JC가 숨겨둔 비밀병기] [CF계의 마이다스의 손]이미 좋은 것만 골라서 먹어온 상황이다.
김도하 사건 때 생긴 나쁜 이미지 따위,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씻겨나간 게 한참.
이제 언급하는 사람이 어그로 취급을 받을 지경이니 더 말해서 뭐 할까.
‘상황은 더할 나위 없어.’
이 모든 커리어를 다음 업적에서 폭발시킨다.
이민기가 그런 생각을 하며 차에 오르려니, 박한모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바로 가시겠습니까?”
“네.”
국내로 돌아왔다고는 하나, 쉴 틈은 없었다.
최대한 빨리 도장을 찍어두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배우 섭외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야지.’
이게 관건이었다.
[만만투] 제작진은 아마 이민기 섭외에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을 터.제작 일정이 촉박하다고 했으니, 다른 배우를 섭외할 수 있다면 곧바로라도 하려 들겠지.
그 전에 결판을 지어놓을 생각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쪽 감독은 참 운도 좋군요.”
운전대를 잡은 박한모 매니저가 아직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민기는 반박하기보다는.
‘어차피 시간 지나면 알게 되겠지.’
그저 즐겼다.
반년 뒤, 놀라게 될 세상을 기대하며.
* * *
일산에 위치한 작은 영화 스튜디오.
마이야르 픽쳐스.
그곳의 한 남자가 계속해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중얼거렸다.
“믿기질 않네.”
그런 안절부절못한 모습이 거슬렸다는 듯, 의자에 앉은 여성 한 명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긴장 좀 그만해.”
“아니, 어떻게 긴장을 안 해. 지금 내가 긴장 안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암, 그렇고말고.”
어쩔 수 없다.
오늘 긴장을 안 하면 언제 하겠나.
그것도 그럴게.
“이민기가 우리 영화에 관심을 가진다는데!”
지금, 한국 최고의 젊은 남자배우와의 미팅이 잡힌 상황이니까.
“이민기만 끌어들이면 끝이야. 투자든 뭐든 다 끝! 영화 흥행도 보장! 어쩌면 우리가 신드롬 한 편 찍을지도 모르지!”
“또 헛소리한다.”
그런 남자의 호들갑이 우습다는 듯 다른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야, 상식적으로 이민기가 진짜로 우리 영화에 관심이 있겠냐. 할리우드에서 오라고 꼬시는 사람인데.”
“모르지. 의외로 작품성 하나만 보는 사람일지도.”
“작품성? 우리 영화에 작품성이 있다는 건 어떻게 증명할 건데?”
“시놉시스?”
“까놓고 우리보다 시놉시스 잘 쓰는 사람은 천지삐까리거든?”
“야, 그래도 우리 전작 나름대로…….”
“30만 관객?”
“그래, 30만 관객이나 찍었잖아. 이쯤 되면 중견이지.”
“지금 이민기 꼬시는 회사들은 다 천만 관객 노리고 있을 텐데?”
“……윽!”
계속해서 쏟아지는 여성의 반박에 남자가 말을 멈추고는, 홀로 침울해졌다.
‘그건 그렇지.’
이민기가 그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세상에는 잘난 스튜디오가 널리고 널렸으니까.
미팅을 왜 하자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간 정도나 보고 떠날 생각이겠지.
물론, 미팅씩이나 하자고 해 놓고 처음부터 계약할 생각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다른 가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이민기의 합류가 비현실적인 일이기 때문.
“갓 뜬 신인 배우들일수록 안정적인 성공을 추구하잖아. OTT는 좀 아니지. 아예 신인이라면 몰라도.”
차라리 하늘에서 드래곤이 나타나서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면 또 모르겠다.
“후…… 벌써 간만 보고 가는 사람이 몇 명째냐.”
“이민기도 간만 볼 거야. 너무 잘난 사람이잖아. 노쇼만 아니어도 다행이지.”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와중이었다.
아직 이 둘은 몰랐다.
이민기의 지난 삶.
이 둘이 바로 세상을 뒤흔든 두 명의 천재 감독 부부.
진주연과 심성보라는 것을.
“야, 자꾸 그러면 헤어지고 싶어진다.”
“주연아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마…… 나 상처받아…….”
“그러니까 사람 열받게 자꾸 그렇게 빌빌거리지 말라고.”
아직은 연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