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4)
운빨로 탑스타-14화(14/200)
제14화
김아성 트레이너가 진심으로 아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 잘난 나조차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절차.”
“…….”
자기가 잘났다고 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기애의 화신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김아성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귀했다.
미끼가 그 JC니까.
“어떤 절차죠?”
이민기의 질문에 김아성 트레이너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큭큭 웃더니 말했다.
“원래 JC라는 기업이 말이야. 덩치만 크지 소심한 구석이 있어서 사람 한 명 뽑을 때도 되게 신중하거든.”
널리 알려진 JC의 특징이었다.
덩치에 비해 소속된 연예인의 수가 상당히 적은 편이라는 것.
다온 정도로 극단적인 소수정예는 아니지만, 그에 비견될 정도로 한 명 한 명의 질을 까다롭게 챙긴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일개 트레이너가 지망생이라고 누구 데려와서는 막 계약해 달라고 억지 부릴 수가 없어요. 그러면 백 퍼센트 뒤에서 말 나오거든. 그리고.”
한참이나 중얼거리던 김아성이 이민기를 곁눈질로 보며 말했다.
“그게 민기 씨한테도 좋은 일은 아닐 테고. 낙하산 되기는 싫을 거 아니야.”
“음, 그렇죠.”
솔직히 말하자면 낙하산도 꽤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반박하면 안 될 타이밍이었다.
김아성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더니 말했다.
“이게 다 민기 씨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아무튼.”
그가 눈을 깜박이더니 말했다.
“조금 있다가, 이 학원에 JC 심사위원들 데려와서 비공개 오디션을 개최할 예정이야.”
비공개 오디션.
몇몇 학원에서 비정기적으로 찾아오는 특혜였다.
이민기는 비로소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감을 잡으며 물었다.
“저한테 거기 지원하라는 거네요.”
“맞아, 보통 이런 오디션은 학원 학생이라고 아무나 다 지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추천제로 진행하는데, 내가 여기에 민기 씨를 추천할 거야.”
“저를요?”
이민기가 살짝 놀라는 추임새를 넣자 김아성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물론, 오디션을 나 혼자 보는 게 아니라 나머지 심사위원들도 같이 보니까 날로는 못 먹는다는 거 명심하고.”
“그 말은.”
이민기는 바로 답하지 않고 조금 고민하는 듯하다가 자그맣게 말했다.
“나머지 심사위원들을 제가 실력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거네요.”
“이제 조금 사고가 돌아가나 보네.”
김아성 트레이너가 커피를 호록 빨더니 말했다.
“물론, 내가 직접 가르친 학생이라고 해서 무작정 좋게 평가하진 않을 거야. 오디션은 오디션이니까. 공정해야 하잖아? 안 그러면 다른 학생들 억울하게.”
편의를 봐주지 않고, 순수하게 실력으로 평가하겠다는 말이었다.
어찌 보면 섭섭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
하지만 이민기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좋죠.”
그런 태도가 고마웠다.
시원하게 나온 대답에 김아성 트레이너는 의외라는 듯 웃더니 물었다.
“민기 씨는 떨어져도 괜찮나 봐?”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질 사람이라면, 떨어지는 게 맞아요.”
정답이다.
김아성 트레이너는 이민기가 꺼낸 대답에 속으로 폭소를 터뜨렸다.
오디션 합격은 어디까지나 오디션 합격에 불과했다. 배우의 삶을 한 권의 소설이라고 친다면, 오디션은 그중 프롤로그 몇 장에 불과했다.
‘사람이 흥미로워.’
저 말이 단순 허세가 아니라 진심이라는 게 잘 보여서 더더욱 그러했다.
하기야, 어차피 실력 따라 자리도 가기 마련이지.
인맥으로 분에 겨운 자리를 얻은 사람은 끝내 대중의 손에 몰락한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김아성 트레이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오늘부터 다시 힘내서 연습하자고.”
“네!”
다시금 즐거워졌다.
그렇게 김아성 트레이너와 함께 연습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아! 민기 씨!”
김탁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그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 커피는!”
“…….”
그러고 보니까 커피 사 오는 거 까먹었네.
문득 다시 나갈까 생각하는 와중이었다.
‘돈 어쩐다.’
슬슬 생활비가 아슬아슬할 때가 됐는데.
알바를 늘려야 하나.
헬스를 접어야 하나.
복권을 뽑을까.
새 오디션을 가는 건 가는 거고, 생활비의 기로에 섰다.
지망생이라는 건 언제나 배고픈 시기였다.
밝았던 꿈은 잠시, 조금은 현실을 생각해야 할 시기가 왔다.
* * *
권준용 관장.
이민기가 사는 집 근처에 있는 [집 근처 헬스장]의 관장이자, 내로라하는 경력을 갖춘 괴물.
인자한 얼굴과는 달리 몸은 거대한 맹수만큼이나 위협적이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서는 최근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흠흠, 흠흠흠, 흠흠.”
트레드밀을 타며 안 어울리는 노래를 흥얼거릴 만큼.
그런 그의 모습에 회원들이 수군거렸다.
“권 관장이 요즘 좀 이상한데? 맨날 실실 웃는 것이, 노망이라도 들었나?”
“그려, 슬슬 치매 걸릴 나이가 됐나벼.”
“하이고, 아직 정정한 양반이 이걸 어찌한다.”
동네에서 우연히 몰려든 노인들이었다.
몸은 우락부락하지만, 나이는 영락없는 노인들.
그들이 권준용 관장의 변화에 이질감을 감지했다.
“허, 이걸 어쩐대.”
사람이 좀 기뻐하는 것 가지고 뭐가 그리 놀랍냐 싶다.
하지만 그들은 평소 워낙에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시간이 많은데 체력까지 남아돌았다.
그렇기에 이런 별것 아닌 일로도 몇 달을 떠들 수 있었다.
“아.”
그러던 중 한 노인이 번뜩이는 추리를 내놓았다.
“그 젊은 사람 때문 아닌가? 요새 그 자주 오는 사람 있잖아.”
이민기였다.
“그 뼈다귀만 남은 친구?”
“그래, 그 톡 차면 부러질 것 같은 친구.”
엄연히 말해서 이민기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정상인보다 살짝 마른 정도일까.
하지만 그는 배우 지망생이니까 적정 체중이라고 볼 수 있고, 타고난 골격에 근래 점점 근육이 붙으며 보기 좋은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몰라.”
노인들에게 그런 사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근비대와 근메스가 최우선이니까.
마르면 마른 대로 문제고, 지방이 많아도 지방이 많은 대로 문제다.
그들에게는 오직 근육이 정의고 선의였다.
“한창때에 그 몸이면 쯔쯔, 어디에 쓴디야.”
“남자는 힘이지.”
“아암, 그렇고 말고.”
“얼굴도 잘생긴 친구가 아주 사골도 안 나오게 생겼어.”
그렇게 어느덧 이민기의 몸으로 화제가 넘어간 회원들.
그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일 때까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 친구가 오고, 분위기가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
이민기가 등장하며 헬스장에 점차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
“그렇네, 요즘은 새로 오는 사람들도 늘었고. 대부분 상담만 하고 나가지만.”
“전에 그 여자분도 세 번이나 나왔잖아. 그리고 환불받았지만.”
“잘생겨서 그래. 얼굴 보고 잠깐 와서 간이라도 보는 거지.”
“경사여, 경사.”
이민기가 자주 온다.
때마침 젊은 회원들이 정말 가끔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정말로 변화가 찾아왔을지는 모른다.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에게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권준용 관장의 얼굴이 밝아졌으면 된 것 아니겠나.
“금방 안 관두게 붙잡아 두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네.”
“뭐 없어? 그 친구 돈도 없어 보이던데.”
“하긴, 오죽하면 보충제도 국산 먹드마.”
“아이고, 몸 다 상하겠네. 전에 권 관장이 그러는데, 밤에 편의점 알바 다닌다며?”
별다른 알맹이라고 할 것 없이 이야기가 마냥 흘렀다.
이민기는 이 헬스장에 꼭 필요한 인물이지만, 가여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
물론, 당사자는 나름대로 자기 삶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오히려 운이 좋아졌다고 행복에 겨워하고 있지.
하지만 원래 이런 이야기에서 당사자의 의견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편이었다.
“불쌍해.”
“불쌍하네.”
“젊은 청년이 딱하게.”
“뭐라도 딱 하나만 해 주면 내가 속이 다 시원하겠네.”
그렇게 이야기가 한참 흐르는 와중이었다.
“가만, 나한테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말이여.”
한 회원이 거세게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우리 아들내미가 쇼핑몰을 하나 하거든.”
* * *
다온 오디션 결과가 나오고도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원래 어떤 어려운 시험이든 준비할 때만 심각하고 끝난 뒤에는 그냥 그렇듯, 이민기의 일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은근히 그냥 그렇네.’
아침에는 학원까지 뛰어간다.
일찍 도착해 오전부터 유선아와 김탁과 함께 자습 시간을 가진다.
오후에는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야간 편의점 알바를 뛴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보며 인풋을 쌓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슬슬 평화로웠던 일상에 균열이 스멀스멀 자라났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슬슬 모아뒀던 돈이 바닥을 쳐가네.’
통장 잔고였다.
이민기는 ATM 기기 앞에 서서 통장을 붙잡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에 빠졌다.
‘언제 이렇게 돈이 사라졌지?’
당연하지만 연기 학원의 학비는 비싸다.
애초에 배우 지망생들의 평균 자산이 금수저였다.
이민기처럼 가진 거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으로서는 하루하루를 남들처럼 보내는 것조차도 버거웠다.
여기에 최근 헬스를 시작하며 지출이 대폭 늘었고.
‘부모님들은 내가 연기 관두기만 손꼽고 기다리고 계시니까 기댈 수도 없고. 어디 돈 빌릴 곳 없나. 사채는 위험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고민해 봤지만, 마땅한 수가 안 떠올랐다.
‘예전처럼 다시 공장에라도 들어갈까.’
그것도 어렵다.
지금 그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김아성 트레이너에게 일대일 수업을 듣고 있기 때문.
돈을 보따리로 준비해도 그에게 수업을 받을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아니, 솔직히 보따리로 들고 가면 되겠지.’
이민기는 평소 태연히 커피를 얻어 마시는 김아성 트레이너의 모습에 평가를 정정했다.
아무튼, 이제 정말 위험하다.
편의점 알바로 충당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헬스장을 관둘까.’
당장 생각나는 건 그것뿐이다.
하지만 헬스도 결국 배우 일을 하려면 필요한 것 아닌가.
‘진짜 대출밖에 없나.’
그렇게 이도 저도 못 하고 반쯤 공황 상태에 빠져 집 앞 공원을 12바퀴쯤 돌았을 때였다.
부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그 순간 이민기가 인상을 찌푸렸다.
‘윽.’
평소 그는 연락이라는 게 달갑지 않았다.
연기에만 미쳐 살겠다며 인간관계를 깔끔히 포기한 결과, 그가 마땅히 연락하는 사람이라고는 없었기 때문.
연락을 10번 받으면 8번은 광고문자인 남자, 그것이 이민기였다.
그리고 두 번은 권준용 관장의 연락이었다.
오늘 식사 메뉴 사진 보내라는 그 연락.
‘사진 안 찍었다고 하면 또 뭐라고 하실 텐데.’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집어 든 순간이었다.
“역시.”
이민기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핸드폰 화면.
그곳에 연락한 사람은 그가 생각했던 그 사람 그대로였다.
[광장님: 민기 씨] [집 근처 헬스장] 권준용 관장의 연락이었다.평소 집요하게 식단과 운동 지식을 주입하려고 시도하는 그의 연락에 이민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에서 연락을 해왔다면 레파토리가 정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광장님: 내가 민기 씨한테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오늘은 사정이 조금 다른 듯했다.
[광장님: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막 모델 알바도 뛰고 그런다고 하더라고] [광장님: 그 아나운서 누구도 무명 때는 모델 일로 학비 냈다잖아]어딘가 심상치 않은 문자의 홍수 끝에, 예상치 못한 제안 하나가 적혀 있었다.
[광장님: 혹시 민기 씨도 모델 알바 하나 해볼 생각 없나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