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41)
운빨로 탑스타-141화(141/200)
제141화
넷플레이가 세계적인 OTT 업체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막상 한국에 제대로 진출한 지 어느덧 2년.
돈을 쏟아부으려면 쏟아붓고 있건만, 정작 넷플레이의 시장 공략은 가면 갈수록 지지부진해져 가고 있었다.
시장 점유율과는 별개로, 독점 콘텐츠라는 면에서.
“오늘도 공쳤네요.”
“다리 아프다.”
두 영업 사원이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일까.
“이거 참 시장이 어렵네.”
“네, 어딜 가든 거절부터 당하고 보니.”
가는 곳마다 거절당하고 있다는 게 그 원인이었다.
무엇을 거절당하는 걸까.
따로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
작품 계약이었다.
“2차, 3차라면 몰라도 1차 유통처로는 고려조차 안 하는 것 같아요.”
한국 영화 제작 스튜디오들이 그러했다.
[OTT에 독점작을 제공하는 건 조금…….] [다른 감독님들도 꺼리실 겁니다.] [알지요. 해외에서 잘 나가는 거 알지요. 하지만 한국 시장은 극장가에서도 충분히 잘 팔리고 있거든요.] [OTT로 잘못 진출했다가 인식이 찍히면 메이저에서 안 받아줄 텐데,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한국의 시장 구성 문제가 컸다.
근본적으로 서로 거미줄처럼 짜여 있다.
소수 유통사와 소수 스튜디오들끼리 너무 잘 붙어 있지 않나.
OTT로 진출했다가는 뒤에서 배신자 취급받기 딱 좋을뿐더러, 기존 극장가로 복귀하기도 힘들었다.
“우리랑 손 좀 잡는다고 하면 극장가에서 대놓고 견제한다고 했었나.”
“네, 눈치 심하게 보더라고요.”
기존 큰손들의 견제가 넷플레이의 생각 이상으로 격렬했다.
그리고 또 큰 문제.
“하필 기껏 섭외한 양반들이 다 성적을 망쳐버려서.”
선례를 잘못 깐 게 큼지막했다.
“이럴 줄 알았나. 잘났다는 양반들을 데려다 놓고 봤더니, 다 줄줄이 말아먹을 거라고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감독 셋을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다.
넷플레이는 매절 계약을 기본 전제로 선금을 어마어마하게 높게 부르는 편인데, 몸값이 몸값이다 보니 저들에게도 거액을 내줘야만 했지.
그 결과가 무엇인가.
“대체 왜 돈만 줬다 하면 평소에 찍던 거 안 찍고, 대중들 입맛 무시하는 작품만 찍는 거야?”
극한의 힙스터였다.
OTT 시장을 제대로 된 영화판이 아닌 실험장으로 취급한 것.
원래 OTT에 실험적인 작품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도를 넘지 않았나.
‘저들이 잘해서 잘 팔아줬더라면 한국 공략이 조금이라도 수월해졌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앞선 선두주자들이 제 다리에 걸려 넘어져 버리니, 후발주자들이 그걸 보고 뭘 배우겠는가.
[아! 넷플레이는 역시 아니다!]시장을 무시하게 될 뿐이지.
[한국인에게는 한국형 영화 시장이 있다!] [넷플레이는 2차 유통으로도 얼마든지 진출할 수 있잖아?]그렇게 된 결과가 지금이다.
“끄응, 어디 이름값 좀 하는 양반 하나 왔으면 좋겠네. 기똥찬 작품 하나 들고.”
선배 직원의 푸념에 부하 직원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그게 쉬울 리가요. 차라리 작은 회사들부터 차례차례 공략하는 게 맞을 수도 있어요.”
“보증된 감독들을 버리고?”
“그 보증된 감독들을 꼬신 결과가 안 좋았잖아요. 실력 있는 작은 스튜디오들을 키워보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극장가 견제도 덜할 테고.”
“……역시 그게 맞나?”
“해 봐서 나쁠 건 없잖아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몇 년 뒤, 중소규모 스튜디오를 키우는 방식으로 시장 공략에 성공했으니.
그때가 되어서는 기존 넷플레이를 꺼리던 대형 영화사들도 역으로 한 다리 걸쳐보려 쩔쩔맬 수준이 됐고.
시간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아직 이들은 그런 미래를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알지도 못했다.
요원한 마음에 한탄이나 중얼거릴 뿐.
“그래도 이민기 같은 사람들 하나만 어디 와 줬으면 좋겠는데.”
그래.
이민기 하나면 좀 풀릴 것도 같은데.
일단 화제성만 있으면 그다음은 마케팅으로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이민기 정도 되는 한 수 없나?’
지금처럼 본사 이름빨에 의존하는 거 말고.
“참, 이민기 할리우드에서 찍혔다던데요?”
“이민기가 왜? 오히려 그쪽에서 잘나가는 거 아니었나?”
“오딘 유니버스 섭외 거절했잖아요.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 봐요. 협력업체들한테 절대 이민기 쓰지 말라고 경고 내려왔대요.”
“허, 저쪽도 극장가에서 찌질한 짓을 하는 건 마찬가지네.”
“이 김에 저희가 데려오면 딱 좋겠는데.”
“그게 말이 되냐. 이민기가 뭐가 아쉽다고.”
그렇게 두 사람이 좀처럼 묘수 한 방에 대한 집착을 못 버린 와중이었다.
뚜루루――
핸드폰 벨소리가 거세게 울렸다.
그 소리에 핸드폰을 꺼내 들고 액정 화면을 확인한 선배 사원이 얼굴을 강하게 찌푸렸다.
“아, 꼰대 팀장이다.”
“또요? 그 탈모, 왜 전화했대?”
“뻔하지. 또 어디 가서 작품 하나만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오라 하려는 거 아니겠어.”
“어우, 말은 쉽지. 자기는 앉아서 명령만 하면서.”
그렇게 푸념을 내뱉으면서도, 일단 위에서 온 전화니까 받긴 받은 찰나였다.
“네?”
한참이나 푸념을 뱉기 바쁘던 선배 직원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민기가 제작한 영화? 그걸 넷플레이에서 유통한단 말씀이십니까?”
이상한 말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이민기가 넷플레이에 왔으면 중얼거리고 있었던 건 그가 맞다.
하지만 설마 진짜로 이루어지다니.
망상은 허구이기에 망상이라 부르는 것 아니겠나.
‘내가 뭘 잘못 듣고 있나?’
넷플레이에서 대체 뭘 제안했길래 이민기가 여기로 오지.
할리우드에서 작품 낸다고 하면 또 모를까.
여전히 못 믿는 마음에 자기 볼을 꼬집어 본 찰나였다.
“네? 이민기가 먼저 제안을 넣었다고요? 자체 기획작품으로?”
분명해졌다.
이건 꿈이다.
* * *
JC 본사.
한 남자가 사내 식당에 앉아 룰루랄라 웃으며 고기를 퍼담았다.
‘JC에는 단백질이 많아서 좋다니까.’
이민기였다.
새삼스럽지만, JC의 사내 식당은 뷔페식인데 업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적잖이 잘 갖추어진 편에 속했다.
배우들이 식단 관리를 잘할수록 그게 곧 회사의 수입으로 연결되기 때문일까.
삶은 닭가슴살부터 싱싱한 샐러드, 리코타 치즈, 프로틴 보충제까지 운동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는 모조리 다 갖춰 놓았다.
‘왜 사람들이 이걸 안 먹는지 모르겠네.’
정작 볼 때마다 아무도 안 집어 가서 의문이지만.
‘이민기 배우님은 저게 맛있나?’
남들이 볼 때는 저걸 잘도 집어먹는 이민기가 괴인처럼 느껴졌고.
달그락.
어쨌든 이민기가 한 움큼 제대로 퍼다가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끼익.
대뜸 그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이 있었다.
“트레이너님?”
“오냐, 그게 나야.”
김아성 트레이너였다.
미국으로 떠난 이후 좀처럼 얼굴 마주하기 어려웠던 그가, 이민기의 앞자리에 바람처럼 나타났다.
그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껄렁한 후드티를 본 순간 이민기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게 얼마 만이에요? 한국 와서도 뵙기 힘들어서 아쉬웠는데. 출장 다녀오셨다면서요?”
“나야 뭐, 워낙 부르는 곳이 많아서.”
“어디 가셨는데요?”
“일본에서 예능 하나 한다고 초청받았지.”
“아, 그거.”
“말도 마, 이 김아성을 이민기 가르친 선생이라는 타이틀로 데려다 놓는 게 말이 돼? 민기 씨가 김아성의 제자가 돼야지.”
“…….”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신감이 가득한 사람이다.
조금은 바뀌면 신선한 맛이 있을 텐데.
그런데 오늘은 김아성 트레이너의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마치 할 말이 있어서 온 것 같다고나 할까.
“무슨 일 있어요?”
이민기가 앞서 입을 연 순간이었다.
“있지.”
김아성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리고는 근처에 엿들을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듯 잠시 상반신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어디 가서 못 할 이야기도 아니고.
왜 주위를 살피시지.
이민기가 작게 의아해하는 찰나 김아성 트레이너가 목소리를 작게 낮추며 입을 열었다.
“민기 씨, 요즘 뭐 영화 하나 새로 찍는다며.”
“네, 들으셨네요.”
이민기가 거리낄 게 없다는 듯 흔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넷플레이에 독점으로 하나 넣었어요. 아직은 제안 단계.”
“……에라이.”
그 말에 김아성이 신 젤리라도 씹은 어린아이마냥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어쩐지, 이상한 말이 돈다고 했다.”
“이상한 말이요?”
“그래, 내 귀에까지 들어오고 말이야.”
김아성 트레이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몇 초 뒤.
김아성의 입에서 태연하게 한 마디가 흘러나온 순간이었다.
“민기 씨, 미국 쪽 관계자들한테 민기 씨 쓰지 말라고 말 퍼지고 있어.”
“네?”
이민기가 눈을 크게 떴다.
“절 쓰지 말라고요?”
“목소리 죽여. 누가 들으면 오해할라. 입 싼 사람 많다.”
참.
이래서 주위 사람을 살폈던 건가.
그런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할 거면, 아예 남들 없는 장소에서 하면 그만 아닌가.
이민기가 어찌 생각하든 김아성 트레이너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국내 영화사들은 거의 다 국내 자본으로 돌아가지만, 일본에는 미국 쪽 자본도 많이 섞여 있거든.”
“음, 거기에서 들으셨나 보네요.”
“아직까지는 소문이야. 그러니까 위에서도 민기 씨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고.”
“쌤은요?”
“난 원래 남의 말 안 듣잖아.”
“참.”
“아무튼, 엠마 스펙터가 민기 씨를 쓰지 말라고 노발대발했다는 말이 있어.”
“……엠마 스펙터 말이죠.”
짚이는 바가 있는 말에 이민기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 사람, 자존심이 엄청난 거로 유명하기는 했지.’
할리우드에서도 콧대가 높은 감독 하면 손에 꼽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물로 봤을 때는 사람 꽤 괜찮아 보였는데.
높은 직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쾌활했고.
‘설마, 내가 섭외를 거절했다고 그런 건가.’
이건 좀 황당하네.
조건이 조건이라서 거절한 건데.
아무리 오딘 유니버스가 대단하다고 한들, 무려 네 작품을 AST 측이 요구하는 대로 질질 끌려다니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애당초 계약이 안 맞으면 끝이지, 남의 앞길까지 막아서나.
‘무슨 애야?’
이민기가 어처구니가 없으려니 김아성 트레이너가 말을 이었다.
“미국이 워낙 인맥 위주로 굴러가는 것도 심하고, 아무리 시장이 넓다고 해도 AST가 가진 입김이 좀 강해? 거기에서 제대로 찍히면 할리우드 자체에서 퇴출당하는 판인데.”
“그렇게까지 할까요?”
“아마 안 하겠지. 하지만 민기 씨 미국 진출이 힘들어진 건 사실이야. 괜히 위험부담을 감수할 필요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AST의 입김 하나면 극장가에서 퇴출까지는 몰라도, 아주 큰 장애물이 세워지는 건 분명하니까.
첫 단추가 제대로 꼬였다.
할리우드에서 꿀만 얻어온 줄 알았더니, 쓴맛도 따라올 줄이야.
‘이건 좀 어려운데.’
엠마 스펙터라는 거물의 노기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민기는 그게 꼭 두렵지는 않았다.
‘결국, 내가 그걸 극복할 만큼 뜨면 된다는 말 아닌가.’
인지도의 문제다.
영화사랑 관계 조지고도 잘 활동하는 사람이 한둘인가.
그래, 뜨면 된다.
하물며 이민기에게는 뜰 방법도 머릿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AST의 눈치를 안 봐도 될 만큼의 성적을 터뜨린다면, 그때부터는 AST를 제외한 회사들이 내 편이 되어주겠지.
자신 있다.
자신이 없더라도, 있어야 한다.
힘없이 기죽은 채 있어 봐야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쌤,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기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조만간 할리우드에서 제 바짓가랑이 붙잡을 거예요. 작품 하나만 달라고.”
함 뜨자고.
그 말이 나온 순간이었다.
김아성 트레이너가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더니.
“……얼씨구.”
작게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이 당당해졌어?”
많이 달라졌다.
예전이었다면 누가 겁 한번 줬다고 기죽었을 사람이, 이제 할리우드 거물의 위협에도 기가 안 죽는다.
마치 사람이 뿌리부터 변한 듯했다.
갈대.
싹수가 기이하리만치 푸르렀던 갈대가 어느새 바오밥나무로 자라났다.
“쌤이 그렇게 가르쳤잖아요. 언제는 연기에 자신감이 모자라다며.”
“은근슬쩍 반말 섞지?”
“애정 표현이에요.”
그 장본인, 이민기가 큭큭 웃으며 말했다.
“얼마 안 걸릴 거예요. 제가 그 정도 스타가 될 때까지.”
굳세다.
세상의 거센 풍파 따위 영양분으로 취급하겠다는 각오가 돋보인다.
우스워졌다.
제일 겁을 먹어야 할 당사자가 이렇게까지 힘이 넘치는데, 남이 겁을 부추길 수가 있겠나.
“그래, 사람은 그래야지.”
마침내 김아성 트레이너도 피식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 어디 코리안 핫김치맨 맛을 보여 주자고.”
“네,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요.”
이민기가 큭큭 웃더니, 예비 포크로 닭가슴살을 한 점 집어 들며 말했다.
“이거 한 조각 드실래요?”
“아니.”
* * *
먼지가 차분하게 내려앉은 사무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영혼마저 빠져나갈 듯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설마 정말로 제안이 통과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심성보였다.
툭 치면 그대로 부러질 만큼 심약한 목소리에 이민기가 큭큭 웃더니 말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넷플레이도 보는 눈이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