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43)
운빨로 탑스타-143화(143/200)
제143화
우지직!
나무 한 대가 깔끔하게 쪼개진 채로 쓰러진 채 바닥을 굴러다녔다.
눈앞의 광경을 오직 마체테 한 자루로 저지른 장본인, 이민기가 부끄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제가 오버했나요?”
“…….”
그 말을 수줍다는 얼굴로 하지 마.
무서워.
부끄럽다는 듯 마체테를 덜렁거리는 이민기의 모습에 심성보 감독의 표정이 황당함에 물들었다.
‘애초에 오버의 문제가 아니다.’
저 나무.
저게 칼질 한 방에 무너질 두께였던가.
‘어떻게 한 거지.’
힘이 생각보다 엄청난가.
아니면 원래 금이 가 있었나?
나무 상태 좀 안 좋다고 한방에 토막 내는 게 말이 되나?
아니다, 성보야.
이미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과학적인 합리성을 따져서 뭐 하겠냐.
부질없다.
‘그래도 이상해.’
평소 칼질 한번 안 하던 배우가 저렇게까지 완벽한 각도로 친다는 게 말이 되나.
‘이게 말이 돼?’
심성보 감독의 여전히 의문이 안 풀린 표정에 이민기가 머쓱하니 뒷머리를 긁더니 말했다.
“음, NG면 다시 찍을까요?”
“그건…….”
심성보가 우물쭈물하더니, 고개를 한차례 흔들고는 답했다.
“아니요. 이게 더 느낌이 좋네.”
“그런가요?”
“원래 NG가 보기 좋으면 애드립입니다.”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다.
주인공 [남석구]가 나무에 마체테를 꽂는 장면을 찍어 섬뜩한 분위기를 주려고 했는데, 아예 쓰러뜨려 버렸다.
그래서 별로인가?
‘아니, 오히려 좋다.’
감독으로서 두 손을 벌려 반길 NG였다.
이런 걸 부르는 용어가 따로 있다.
애드립.
좋은 NG는 애드립으로 승화되는 법 아니겠나.
먼 옛날, 어느 판타지 영화 속에서 NG로 깃발이 부러진 게 망국의 징조라며 그 연출이 추앙받았던 것처럼.
이민기 또한 그러했다.
그라는 배우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는 사이에 이미 애드립의 화신이었다.
‘이 배우님이랑 촬영하다 보면 자꾸 좋은 장면이 떠오른다.’
심성보 감독이 쓰러진 나무의 모습에 작은 현기증마저 느끼며 침을 삼켰다.
이거 하나뿐이던가.
‘미쟝센이 끊이질 않아.’
계속 그러했다.
어떤 장면을 의도했든, 이민기가 끼어들면 느낌이 더 맛깔나게 살았다.
[꽈드득!]주인공이 기습당하는 장면에서 우연히 나뭇가지를 밟는다.
순수하게 육감으로 기습을 눈치챘다고 하려 했는데, 개연성이 생겨났다.
[첨벙!] [죽어! 죽어 이 새끼야!]몸싸움을 벌이다가 넘어지는 장면에서 우연히 발을 헛디뎌 진흙 웅덩이에 넘어졌다.
그 덕에 한층 더 처절한 모습이 연출됐다.
[꾸르륵]이민기가 걷던 중, 어딘가에서 짐승 울음소리가 울려왔다.
그 덕에 섬의 스산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살아났다.
잦다.
하나라면 모를까, 계속 이어진다.
이민기라는 배우에게는 우연히 따르는 좋은 연출이 너무나도 잦았다.
“배우님은 운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런 말 자주 들어요.”
일단은 웃어넘기는데, 이대로 웃어넘겨도 좋을 지경인지 모르겠다.
의도했던 연출에서 계속 하나씩 틀어지니까.
그런데 그게 너무 좋아서 문제지.
기쁘면서도 아쉬운 복잡한 심경에 심성보 감독이 이마에서 흘러나오는 식은땀을 닦았다.
‘배우님의 뒤에는 애드립의 신이라도 따라다니는 건가.’
알 것도 같다.
이민기라는 배우의 뒤에는 영화의 신이 그 몸을 감추고 있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된다.
어떤 연기를 하든 감독의 영감을 자극한다고?
남들이라면 주연이라고 한들 한 작품에 한두 번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우연한’ 상황이 계속해서?
‘말도 안 되지.’
고민하기를 한참.
심성보 감독은 그냥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작품만 잘 찍히면 그만이야.’
결과물이 잘 나오고 있는 이상, 배우에게 너무 간섭할 필요는 없다.
한편, 이민기만 잘난 것도 아니었다.
그가 데려온 다른 두 사람도 이민기에게는 못 미칠지언정 배우로서 우수한 건 마찬가지였으니.
“으아아아악! 뱀! 뱀! 배-앰!!”
“저기요. 뱀 처음 봐요? 누가 부잣집 도련님 아니랄까 봐.”
이민기의 요청으로 섭외한 두 사람.
김탁과 유선아가 그러했다.
“쫄지 마요. 우리가 더 세.”
“아니, 그런 선생님께서는 왜 이렇게 침착하십니까?”
“돈 받으니까.”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캐릭터로 합류한 김탁.
그리고 그런 김탁에게 돈을 대가로 팀을 꾸린 보디가드, 유선아.
두 배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폭발하는 케미를 과시했다.
‘실력이 좋아. 괜히 민기 씨가 꽂아 넣은 게 아니었군.’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시점에서 심성보는 이렇게 생각했다.
‘마음이 편하네.’
그래.
저게 정상적인 배우들이지.
기대한 각본과 연출 안에서 제대로 소화하는 그런 배우들.
마치 제 몸에 처음부터 붙어 있는 사지를 다루듯 편안했다.
저게 정상이지.
이민기 배우님이 이상한 거고.
‘나는 이상하지 않다.’
심성보는 그 둘의 연기에서 자그마한 위안마저 느끼며 입을 열었다.
“준비됐죠? 슬슬 큰 장면 하나 찍어 봅시다.”
[만만투]의 하이라이트.이 영화의 전설이 되어야만 할 장면이 하나 있다.
* * *
어느 화려한 건물.
할리우드의 7대 영화사 중 하나, AST.
그곳의 고층 사무실에서 한 여성이 이를 으드득 갈더니 말했다.
“이민기, 그 배우가 넷플레이로 갔단 말이지.”
엠마 스펙터였다.
자기가 직접 행차해서 섭외했는데 까였다고 원한마저 품어버린 소인배.
그녀가 이민기의 최근 소식을 전해 듣고는 한층 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비교적 작은 회사와 손잡은 것 같습니다만.”
그 목소리에 비서가 움찔 떨고는 말했다.
“마이야르 픽쳐스라고, 한국의 영화사 중에서도 이름 한번 못 들어본 곳입니다. 아마 신생인 것 같군요.”
“전작은?”
“망했습니다.”
“풋.”
엠마 스펙터가 작게 코웃음을 치더니, 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별 볼 일 없는 것들이 다 그렇지. 안 봐도 뻔해. 하룻강아지가 콧대만 높아서는, 주위에서 들어온 제안 다 걷어차다가 찾아주는 회사가 없어졌던 걸 거야.”
말은 거창하다만, 그녀의 악감정이 한없이 개입된 추측이다.
하지만 동시에 흔한 일이기도 하였다.
이제 막 뜬 신인 배우가 거만하게 굴다가, 업계에서 아예 자리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한둘이었던가.
꼭 그런 사람들이 시간 지나면 이름 없는 스튜디오와 손잡고 작품 찍고는 했고.
“넷플레이에 한국 작품이 있던가?”
“예, 몇몇 감독들이 작품을 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성적이 좋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여기서부터는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비서가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아마 세계 시장에 지나치게 목을 매단 결과 아닐까 싶습니다.”
“자세히 말해봐.”
“아시아 국가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해서 작품을 만들지만, 오히려 그게 어색해서…… 외국 기준으로는 이도 저도 안 되는 영화가 되는 거지요.”
그의 말마따나 흔한 일이었다.
할리우드에서 동양풍으로 겨냥하고 만들었다는 영화를 막상 동양인이 보면 어떤 느낌을 받던가.
[에게, 이게 무슨 우리나라야]쌍욕이 안 나오면 다행이다.
[파주 사람들이 무슨 뱀술을 담가 먹어] [제작진이 한국에 와 본 적이 한 번도 없나?] [이건 태국이 아니라 베트남 같은데] [요시무라 김현수가 한국인 이름이라고? 무슨 한국이 아직도 일제강점기인 줄 아나?]서양의 기준으로 동양을 바라보기에 생기는 오류였다.
한국 지방에서 뱀술을 담가 먹는다고 해서, 한국의 지방 도시인 파주를 뱀술 담그는 도시로 만들어버린다.
태국과 베트남이 인접한 국가라고 해서 같은 건축양식을 깔아버린다.
서양에서 여러 국가의 이름을 섞어 쓰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동양 이름도 대충 섞어 버린다.
이게 일방적인 실수일 리가.
동양의 감독들 또한, 서양풍 작품을 만들 때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잦았다.
까득.
엠마 스펙터가 입술을 자근자근 씹었다.
‘한국이 영화를 못 만드는 나라는 아니지만, 어설픈 도전은 안 하느니만 못하지.’
그녀 또한 한국 영화를 영화제에서 종종 봤던 기억이 있었다.
연출이나 각본에서 내공은 충분하지만, 제작비의 한계에 봉착해 그 이상을 못 하는 나라였던 것으로 기억했다.
‘이민기, 결국 그 정도 배우였다는 거지.’
내수용.
그 정도 배우라면 한계도 뻔하다.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찝찝함을 느끼는 와중이었다.
그 찝찝함을, 바로 옆에 선 비서가 풀어주었다.
“놀랍게도, 이번 작품은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고 합니다.”
“……!”
그 말에 엠마 스펙터가 눈을 크게 떴다.
“뭐?”
“인터뷰를 전부 체크했는데, 할리우드를 비롯해 중국, 인도, 유럽까지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선언했다 합니다.”
“……하, 하하.”
엠마 스펙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제정신이 아니네. 그냥 멍청한 배우인가 했더니, 정신병자였어.”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된다.
이제 막 시장 구조를 파악하기에도 바쁠 커리어에 직접 제작에 참여했다는 것도 웃긴데, 무슨 세계 시장.
견제할 가치도 없는 배우였네.
엠마 스펙터가 코웃음을 치고는 입을 열었다.
“넷플레이에 런칭할 일정은?”
“5월이라고 합니다.”
“5월? 잘됐네.”
엠마 스펙터가 거듭 웃고는 말했다.
“6월에 런칭하는 우리 작품 하나 있지?”
“예, 뉴 가디언즈.”
뉴 가디언즈.
뉴욕을 지키는 세 명의 영웅을 그린 드라마였다.
[만만투]와 마찬가지로 넷플레이에 런칭할 예정.본래 극장가 중심으로 활동하지만, OTT 시장도 눈독에 들이고 있는 AST 입장에서는 상당한 공을 갈아 넣은 자신작이었다.
아마 성공할 게 분명한 상황.
남은 건 대박이냐 초대박이냐 정도일까.
‘본인이 직접 지시해서 만든 작품이면서 나한테 묻는군.’
그 작품을 엠마 스펙터가 왜 언급했나 싶은 찰나.
“영화 제목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했나? 그래, 영화판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맞지.”
그녀가 불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5월로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지 한번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어.”
* * *
이민기가 새로이 과거로 돌아와서 작품을 촬영하기 시작한 이래.
유독 잦게 겪고 있는 현상이 하나 있었다.
바로.
‘스토리가 자꾸 바뀌는데?’
그가 참여하기만 하면 원래 알던 스토리에서 대폭 틀어진다는 것이었다.
‘캠퍼스 스토리에서도 그랬지.’
한번 씹다 뱉는 빌런으로 들어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삼각관계 서브남주가 되었다.
‘언제까지고 푸르른에서도 그랬고.’
갑자기 주연급 조연이 됐다.
‘카페 델 디아에서도.’
이때는 김지환의 캐릭터 해석이 완전히 바뀌었다.
캐릭터들의 구도 자체를 아예 새로 짠 덕에 작품의 맛 자체가 완벽하게 바뀌었지.
‘패션 앤 패션도.’
서양 영화제에서 수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이 작품.
최종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현재까지 이민기가 쌓은 커리어 상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이 작품 또한.
‘작품 자체를 아예 새로 찍는 수준이었고.’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민기가 기억하는 [패션 앤 패션] 속 훤칠하고 시크했던 옛날 그 주인공은 없어졌다.
그저 감정이 마모된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을 뿐.
‘나만 참여하면 너무 바뀌어.’
작품 내용도 바뀌고, 성적도 대폭 바뀐다.
이 흐름 자체는 그러려니 해 왔다.
그가 참여하든 말든 옛날 영화와 같으면 열심히 준비한 연기 속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는 게 낫다.
그게 맞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만…….
“흠, 이번에도 애드립을 넣으셨군요.”
“별로였나요?”
“아닙니다. 훌륭하군요.”
그게 [만만투]라면 조금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으로 히트 칠 작품인데, 내가 망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일말의 불길함이 남는다고나 할까.
너무 히트작이다 보니, 역으로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물며 체급 문제로 마이야르 픽쳐스가 그의 눈치를 다소 과하게 살피고 있는 것 같은 점도 컸고.
‘지금까지 찍었던 작품들은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그의 커리어가 미진했던 시기에는 감독들이 그의 애드립을 무시했다.
신인 배우의 치기를 받아주다가 작품의 큰 그림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물론, 심성보 감독 입장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머릿속으로 어떤 결과물을 예상했든, 막상 찍고 나면 무조건 더 나은 장면이 나오는군. 이민기 배우님은 괴물이 맞다.’
그냥 결과물이 좋아서 받아들이고 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게 무슨 문제인가.
하지만 정작 이민기에게는 그런 말들이 아부로 와닿을 뿐이었고.
그 결과.
[애드립은 뭐든 좋습니다!]무한 오케이가 반복되는 앞에서 이민기는 만만투의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망할까 두려운 게 당연.
‘으음, 어떻게든 리스크를 줄일 방법이 없나. 하다 못 해 믿을만한 제삼자한테 봐달라고 부탁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이민기가 고민에 빠져 있는 참이었다.
심성보 감독이 툭 던지듯 화제 하나를 꺼내 들었다.
“벌써 시사회가 내일이군요.”
시사회였다.
그냥 시사회는 아니고, 중간 시사회.
넷플레이 측의 검증을 받을 차례가 왔다.
“이번 결과에 따라 향후 투자나 프로모션의 행방이 정해질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이민기의 솜털이 쭈뼛 섰다.
‘이런 제삼자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