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45)
운빨로 탑스타-145화(145/200)
제145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촬영 중반기에 접어든 시점.마이야르 픽쳐스는 대대적인 작품 수정을 감행했다.
바로.
“기왕 투자금도 늘었으니, 스케일을 키워 봅시다.”
퀄리티 업이었다.
개봉 일정을 2달이나 미뤘다.
그만큼 시간이 남아돌게 된 건데, 그 시간을 어디에 써먹겠는가.
놀겠는가, 마케팅하겠는가.
‘당연히 일해야지.’
일이었다.
세계적인 기업에게 인정받은 거 아닌가.
감독으로서는 소름이 돋을 만큼 짜릿할 수밖에.
마이야르 픽쳐스는 넷플레이 측에서 보인 호의를 오롯이 작품에 재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아쉽지 않으세요? 목돈을 만질 기회였는데.”
이민기의 말에 진주연 감독이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저 혼자 결정한 것도 아니고, 성보랑 배우님도 같이 결정한 사안이잖아요?”
“아니, 그렇긴 하지만요. 그래도 회사 입장에서는 거금이라면 거금이니.”
이민기가 입맛을 다셨다.
넷플레이가 추가로 투입한 예산을 보거든, 기존에 약속했던 제작비에서 근 2배에 가깝게 부풀었다.
그 돈을 그대로 먹는다면 인당 못해도 몇억은 돌아갈 터.
마이야르 픽쳐스는 이걸 거부하겠다는 말이었다.
“사업이잖아요.”
진주연 감독이 흔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어느 회사든 맛보기 상품을 열심히 만들어요. 그래야 더 오랫동안 같이 일하니까.”
“……만만투가 맛보기 상품이다?”
이거,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세계적인 히트작인데?
떨떠름한 목소리에 되물으려니, 진주연 감독이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당연하죠. 저희한테는 앞으로도 만들 작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거든요.”
“주연이 말이 맞아요. 물론 만만투도 대단한 작품이지만, 앞으로는 더 좋은 작품만 만들 겁니다.”
“우리 성보, 많이 컸네? 대범해.”
“배우님 앞이잖아. 이럴 때 점수 좀 따 둬야지.”
“진짜?”
“……솔직히 돈이 아쉽긴 해.”
두 사람이 어느새 큭큭 웃기 시작했다.
“돈은 나중에 벌면 그만이지만, 배우님 신뢰는 돈으로 못 사지.”
“주연이 말이 맞습니다. 우리 민기 감독님.”
“하하…….”
어느새 농담까지 스스럼없이 나올 정도가 되지 않았나.
이 두 사람.
자신감이 엄청 붙었다.
‘하긴, 감독은 자신감이 있어야지.’
자신감에는 낙수효과가 있다.
스스로 믿는 감독이어야 제작진을 믿게 할 수 있고, 그런 제작진이 만든 작품이 대중을 설득할 수 있다지.
‘나야 좋은 작품을 내주면 땡큐지.’
이민기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추가 촬영을 진행하기를 또 한 달.
앞으로 2주일 정도만 추가로 촬영하면 대략적인 일정은 끝나는 상황.
이민기를 비롯해 마이야르 픽쳐스는 예상외의 사태에 직면했다.
“쉬었다가 오라고요?”
“예.”
심성보 감독이 찌뿌둥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날씨가 워낙에 안 좋아서, 내일은 촬영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날씨가 문제였다.
“영 파도가 난잡하고 하늘도 우중충한 것이, 뱃사람들도 이런 날씨에는 집에 틀어박혀서 파전이나 구워 먹는다고 하더군요. 사람 하나 죽기 딱 좋아서.”
야외 촬영이 잦은 작품이다 보니, 날씨가 망하면 그날 하루를 공치는 것.
하물며 후반 장면은 해상 전투 장면도 들어가 있어서 더더욱 그러했다.
“오늘은 한발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실내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CG로 보정한다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처음부터 그런 설계 하에 촬영한 작품들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다짜고짜 안 하던 실내 작업을 진행한들, 앞선 분량이랑 어울릴 리가.
‘뭐, 감독님도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이민기도 잠시 생각해 보고는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날씨가 계속 좋았던 게 이상했어.’
보통 현장에서는 날씨 망했다 싶으면 기약 없이 대기를 타는 게 기본인데, 여태껏 시간 낭비 없이 쾌적하게 진행했다.
“내친김에 이틀 쉽시다.”
심성보 감독이 개운하다는 듯 말했다.
“이틀이나요?”
“지금까지 배우님도 쉴 새 없이 달려오느라 많이 피곤하셨을 겁니다.”
그건 딱히.
전혀.
‘오히려 권준용 관장님이 안 쫓아오니까 편했지.’
섬에 갇혀 있느라 생긴 장점이었다.
제아무리 집에 급습하고 회사를 침략하는 권준용 관장이라고 하나, 한반도 끝자락 섬 동네까지 찾아올 수는 없었던 것.
‘하체를 쉬는데 몸이 힘들 수는 없지.’
그 덕에 오히려 하루하루 근질근질한 와중이었다.
근육을 좀 찢고 싶은데, 촬영하는 와중에는 아무래도 그럴 일이 없으니.
[배우님! 다칩니다!]마이야르 픽쳐스 측에서도 어떻게든 그의 몸을 보신하려고 했고.
‘잘됐네. 모처럼 운동이나 좀 다녀와야겠다.’
모처럼 받은 휴일에 헬스장 간다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정상일까.
아마 아니겠지.
하지만 이민기는 이제 저런 당연한 상식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어딘가 왜곡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본인은 극구 부인하겠지만.
[회원님, 원래 운동으로 생긴 피로는 운동으로 푸는 거야.]그 누구처럼 말이다.
[……아닌 것 같은데요?] [광배가 아플 때는 하체 하면 풀린다?] [네?] [일단 해 보면 알아.]그렇게 신안군에서 [만만투] 촬영을 개시하고 어느덧 4개월로 접어드는 차.
드르르르르륵.
“출발합니다.”
섬에서 빠져나가는 길이 그리 심심하지는 않았다.
“배우님 덕분에 이번에 정말 많이 배웠어요.”
현장에 참가한 단역 중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하, 배우님께서 절 알지는 모르겠지만…….”
“기억해요. 심견우 배역 맡으신 분이시잖아요. 어제 화살 맞아 돌아가셨고.”
“헉.”
이민기의 말에 남자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설마 촬영 내내 합을 한 번도 맞춘 적 없는 그가, 일개 단역의 자세한 역할까지 기억하고 있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연기력 굉장하시던데요? 쓰러질 때 눈 회까닥 뒤집는 거, 그거 정말 자연스러웠어요.”
“와우…….”
거의 감동해서 혼절할 것만 같아 하는 남자를 앞에 두고, 이민기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냥 공고 보고 지원하신 단역은 아닐 것 같은데, 혹시 소속되신 곳이?”
“아, 저요.”
호기심이 가볍게 어린 질문에 남자가 허둥지둥했다.
마치 군대에서 장성에서 관등성명을 대는 이등병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이 사람, 반응이 재밌네.’
이민기가 내심 큭큭 웃고 있으려니 남자가 횡설수설하며 입을 열었다.
“아마 이름 들으셔도 모르실 거예요. 그렇게 유명한 회사는 아니라서. 크흠, 그러니까 저도 합격할 수 있었겠지만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더 궁금해지는데요?”
“으으…… 진짜 모르실 텐데.”
잠시 뒤.
사내가 차마 부끄럽다는 듯 헛기침을 뱉고는 마지못해 입을 연 순간이었다.
“저 미디어 퓨처 컴퍼니라고.”
대뜸 튀어나온 이름에 놀란 이민기가 입을 멍하니 벌렸다.
“아.”
그걸 어떻게 해석한 걸까, 남자가 부끄럽다는 듯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그렇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아마 모르실 거라고. 진짜 작은 곳이라.”
그 찰나였다.
이민기가 잠시 눈을 깜빡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아니요. 알죠.”
“네?”
미디어 퓨처 컴퍼니, 그 이름을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아니, 잊을 수 있을까.
이민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알아요. 잘 알죠.”
아무래도 엮이기 싫은 이름이었다.
작게 트라우마마저 일으키는 이름.
열심히 거리를 뒀지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그의 귓가로 찾아왔다.
마치 영광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뜬 남자를 향해, 이민기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말 나온 김에 기획사 생활 이야기나 좀 들려줄래요?”
* * *
섬에서 빠져나왔다.
막상 휴가를 받았다고는 하나, 이민기라는 사람은 태생부터 특별한 취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민기 클럽에서 봤음. 인증사진 有] [그냥 닮은 사람임] [어깨가 이민기가 아니네] [ㄹㅇㅋㅋ 이민기는 어깨로 신원 증명 가능하다고 ㅋㅋ]특별히 유흥을 즐기지도 않는다.
천성적으로 얌전한 삶을 선호하다 보니, 클럽은커녕 클럽이 깔린 거리조차 걷기를 꺼릴 정도.
그렇다면 스포츠를 좋아하는가.
‘운동은 헬스로 족해.’
남이랑 치열하게 부대끼면서 하는 운동은 싫다.
그렇다고 관람을 좋아하는가.
‘영화가 곧 예술이지.’
영화 하나만으로도 모든 게 충분한 사람, 그게 바로 이민기였다.
그런 이민기이기에 가지는 취미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후우, 다 끝냈다.”
조조부터 심야까지 영화관 상영 타임을 모조리 예매한 다음, 개봉한 작품들을 연달아 계속 보는 것이었다.
‘휴일은 이렇게 보내는 거지.’
예매화면을 펼친 이민기가 히죽히죽 웃었다.
[She’s Got A Boyfrind] [화학 폭발] [이만 가겠다] [아라리]그 외에도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의 제목이 빼곡하게 걸린 화면.
사실, 무엇 하나 진즉에 보지 않은 작품들이 없었다.
그중에는 꽤 여러 번 본 작품도 있었고.
최소한으로 잡아도 2회차 관람이며, 많이 본 건 10회차에 달했다.
하지만 이민기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영화는 다 회차가 제 맛이라니까.’
그는 영화를 보면 볼수록 새로운 감상이 배어 나온다고 아주 깊게 믿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절대적인 확신을 넘어 하나의 신앙이라고 봐도 좋았다.
왜, 그런 거다.
라면을 먹어본 맛이라고 해서 다시 안 먹겠는가.
맛있는 음식이면 계속 먹는다.
이 논리를 영화에서도 똑같이 적용하는 사람, 그게 바로 이민기였다.
가능하면 극장에서 보는 게 낫고.
“……설마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하실 줄이야.”
같이 온 다른 두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았고.
“하루에 영화를 7편을 보신다고? 형씨, 진짜 영화광이시네.”
“탁 씨 의견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민기 씨, 이건 좀 무섭긴 하네요.”
김탁과 유선아였다.
휴일 겸 같이 놀러 가자고 꼬시길래 알았다고 외치고 봤는데, 그게 설마 극장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주행이라니.
‘이러니까 실력이 빨리 느시는 거겠지만.’
유선아가 눈가를 씰룩거렸다.
그러고 보니까 김태양은 스케쥴이 있다는 핑계로 빠졌지.
김탁이 대뜸 입을 열었다.
“마음에 안 드네.”
“왜요? 일단 오전에는 두 작품만 보고, 밥 먹고 쉰 다음에 오후 작품 보면 돼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김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 뭔가 그럴듯한 반박이라도 하려는 건가.
의지를 표출하는 건가.
유선아가 모처럼 김탁의 행동에 기대한 순간이었다.
“나는 제로 콜라 말고 그냥 콜라가 좋다니까.”
아.
그런 이유였구나.
영화관에서 그런 걸 항의하나.
유선아가 황당해하는데, 이민기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버릴까요?”
“잘 마시겠습니다.”
“앞으로는 조심하세요. 딱 한 번만 봐 드리는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유선아의 표정이 거듭 황당해졌다.
저게 굳이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나눌 대화인가.
고작 음료수 하나잖아.
카운터 가서 3천 원 주고 새로 사면 그만이잖아.
하지만 어찌 됐든 두 사람한테는 썩 민감한 이야기인 듯했고.
“자, 그럼 슬슬 입장하면 될 것 같은데요.”
어느덧 영화 상영시간도 다 됐겠다.
딱 적당한 타이밍에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아.”
이민기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봐서는 안 될 것을 봤다는 것처럼 멈췄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멈춘 어린아이처럼.
다음 순간, 그의 눈이 당황에 물들었을 때.
불과 몇 미터 앞의 남자가 뒤를 돌아보더니, 이민기를 보며 말했다.
“이민기?”
“…….”
평소였다면 자주 듣는 말이라고 흘리며 말았을 상황이다.
하지만 이민기는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상황을 차마 인식하기도 전에, 성대가 머리를 배신하고 입술 바깥으로 이름 세 글자를 흘려보냈다.
“함치현 씨?”
함치현.
평생 마주치기 싫었으면서도, 한 번쯤은 마주치기를 바라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그 상판을 두 동공에 담자마자 세상의 채도가 살짝 바래진 걸 느낀 이민기가 작게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엮이나.’
미디어 퓨처 컴퍼니.
그 이름조차 떠올리기 싫은 회사의 사장이 지금,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아니, 서 있다기보다는.
돌고 돌아, 다시 한번 그의 앞에 선 이민기가 천천히 눈꺼풀을 깜빡였다.
‘운이라는 게 대체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