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46)
운빨로 탑스타-146화(146/200)
제146화
과거, 이민기라는 사람의 인생이 왜 꼬이다 못해 나락까지 처박혔는가.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자면 하나다.
‘운이 지독하게 나빴지.’
이게 크다.
하지만 운이 나쁜 형태는 사람마다 다양한 법이다.
부주의에서 비롯한 불운이 있는가 하면, 이따금 인간의 악의에서 비롯한 불운이 덮치기도 하는 법.
눈앞의 남자.
함치현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이민기가 겪었던 불운이라는 것을 인간의 형태로 빚어 놓은 듯한 인간.
“하하, 이민기 배우님이 절 알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요.”
남자가 서글서글한 눈매에서 한없이 사람 좋은 웃음을 발산하며 말했다.
“저희 초면 맞지요?”
“……그렇죠.”
모를 수가 없지.
함치현.
당신이야말로 내 인생을 망친 주범 중 하나였으니까.
한껏 너스레 떠는 목소리에 이민기가 웃으며 답했다.
“기획사라면 전부 외우고 있어서요.”
그렇다.
함치현의 정체는 바로, 기획사 사장이었다.
함치현.
그라는 악마가 어디에서부터 자라났는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뱃속에 감춘 구렁이 만큼이나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으니.
다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말주변 하나는 좋았지.’
그는 사람을 꼬드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특히나 인생의 밑바닥을 핥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노출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몸의 아름다움을 보이는 겁니다. XXX 소속사의 XX 알지요? 그 친구도 원래 이쪽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식으로 데뷔하면서 차차 얼굴을 만졌지만.]모델 지망생을 데려가서 노출 사진 촬영회에 굴린다던가.
[처음부터 메이저 방송 출연은 어렵습니다. 대신 인터넷 방송으로 기틀을 닦는 방법도 요즘은 많이 거론되고 있지요. 이번 출연은 큰 일감입니다. 공중파로 갈 교두보가 될 수 있습니다.]온라인 방송이라고 둘러대며 성인 방송 플랫폼에 등장시킨다던가.
그 외에 싸구려 코미디 프로그램에 망가지는 역할로 내보낸다던가.
밤무대에 가서 춤을 추라고 한다던가.
일주일 사이에 다섯 개나 되는 일감을 소화하라며 강요한다거나.
몸이 망가질 액션 씬에 집어넣거나.
철저하게 눈앞의 수익만 바라봤다.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으며 일을 한없이 구겨 넣는데, 배우 당사자의 장기적인 로드맵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당장 현찰만 끌어 모을 수 있으면 되는 사람.
그게 함치현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내년 초쯤이면 정산을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정산으로 사기를 친다는 점이 그러했다.
정산이라는 것은 회사 측의 투자비용을 배우의 활동 수입으로 깐 다음부터 지급되는 것인데, 사실 배우나 모델 기획사에서는 드문 개념이었다.
이쪽은 애초에 교육에 큰 투자를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막상 정산할 시기가 되면.
[영업에 들어간 비용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배우님께서 잘하셨더라면, 우리도 정산을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회사 사정이 안 좋아서 몇 달만 기다려 줄 수 있지?]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것이다.
이게 함치현이라는 사이비 대표의 주된 수법이었다.
[이상하지 않아요?]물론, 계약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의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당히 말로 구워삶을 뿐.
정보력이 부족한 지망생 따위가 업계에서 닳고 닳은 대표를 이길 수 있을 리가.
그래도 어떻게든 깊게 따지면 뭐라고 하겠는가.
[계약 해지? 좋지, 하지만 지금까지 들어간 투자비는 전부 돌려줘야겠다.]여태껏 들어간 투자비용을 명목으로, 어마어마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었다.
교통비부터 의류비, 영업비용까지.
그리고 미리 잡아놓은 행사의 기회비용이라며 발생하지 않은 매출까지도.
여기까지 했는데도 따진다?
이때부터가 함치현이라는 사람의 진면목이었다.
[연예계에서 더 활동할 생각 없나 봐.]연예계에서 인맥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좋지, 다 좋은데, 아예 은퇴할 각오는 되어 있겠지? 몇 년도 못 버티고 포기하는데 다른 기획사들이 널 보고 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네.]힘없는 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더 할게요.]버텨야지.
‘그렇게 한 5년 동안 열심히 해쳐 먹다가, 나중에 회사 돈 가지고 날랐지.’
이민기도 그 피해자 중 하나였다.
‘듣보 기획사 사장 따위가 뭐라고 업계에서 매장을 운운했는지.’
멀리서 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데, 한껏 가스라이팅을 당한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 만큼 안다.
함치현이라는 사람의 본질은 그렇게 거대하지 않다.
그저 말재주가 좋은 사기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신인 때는 때 엮이기 싫어서 내버려 뒀는데, 결국 이렇게 돌아왔나.
‘마주치기 싫었는데.’
나중에는 돈을 가지고 해외로 튀었다고 했던가.
결국, 이렇게 다시 만났군.
입지는 좀 바뀌었지만 말이다.
아직 안 튄 사기꾼과 많이 성공한 배우로서 말이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민기에게 있어서 함치현은 변기 커버 아래 모서리와도 같았다.
더러운 걸 안다.
언젠가는 청소해야 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피치 못할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 최대한 피하고 싶은 그런 사람.
이민기가 몇 번이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이 그가 웃는 표정을 연이으며 말했다.
“배우님이 찍는 작품은 제가 전부 집중! 하고 있는데,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 아니겠습니까.”
“그러게요. 우연이네요.”
“아침부터 영화관에 오실 줄이야. 시장 조사도 철저하시군요. 배우들은 촬영 중에 작품 안 보는 사람도 많은데.”
“그러게요. 영화가 재밌더라고요.”
이민기가 영혼 없는 대답을 이어나갔다.
악연을 마주했다고는 하나, 특별히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없었다.
저쪽에서 할 말이라고는 아부 외에 별달리 없으리라고 짐작도 했고.
겪지 않은 일로 여기서 따진들 큰 의미도 없겠지.
“이번 신작 촬영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배우님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셨다고 하는데, 원래 관심이 있으셨나 보군요?”
“그러게요. 관심 생기더라고요.”
“저희 기획사에서도 [만만투]에 단역을 한 명 보냈다 보니까, 그 친구를 통해 배우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어떤 연기든 솔선수범하셨다고.”
“그런가요? 감독님이 대단하셔서요.”
“하하, 대단한 건 배우님이시지요. 저희 배우가 워낙 신세를 많이 져서,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습니다만.”
그 말에 이민기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간 보려는 거군.’
인맥 하나 만들어서는 두고두고 우려먹는 함치현 특유의 행동이었다.
필요할 때 언급해서 자기 말의 신뢰성을 더하는 수법.
“이것도 인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요즘 식단 관리 중이라서요.”
함치현은 이민기에게 있어서 경계 대상이었다.
짧은 말 한마디로 식사 제의를 거절한 이민기가 미소와 함께 말했다.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이번 작품도 개봉일이…… 7월쯤이라고 했던가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른 화제로 끌고 가겠다는 듯 함치현이 말을 돌렸다.
그런 말의 앞에서.
“영업 담당자가 따로 있어서 그 부분은 잘 모르겠네요.”
이민기는 거듭 차선 변경을 반복했다.
“넷플레이 측에서 말이 있었나 보군요?”
“제가 영업 쪽은 잘 몰라서요. 전적으로 스튜디오에 맡기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군요. 이상적인 협업 형태입니다.”
“그런가요?”
“예, 단체로 손발을 맞출 때는 특히나 그렇죠.”
“그렇군요.”
그렇게 숨 막힐 만큼 영혼이 없는 질답을 주고받기를 한참.
“역시 배우님답습니다. 미국에 진출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요.”
“아직 판매 루트는 잘 모르겠네요. 제작 단계다 보니.”
“…….”
끝까지 이렇게 나오겠다는 건가.
이민기의 정보 한 스푼도 주지 않겠다는 듯한 철벽 앞에, 함치현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살짝 꿈틀거릴 무렵이었다.
“아! 이제 시작하겠네!”
김탁의 철없는 목소리와 함께 초승달 앞 동아줄이 툭 끊기듯 대립이 끝났다.
이민기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고는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제 명함입니다.”
함치현은 그조차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다음에 한번 연락 주시면 좋은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민기는 그 명함만 마지못해 슬쩍 받고는, 일행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상영관 안으로 발을 옮겼다.
어두운 복도.
그 안을 차차 걸음과 함께, 이민기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히며 머릿속으로 어두운 생각이 스멀스멀 떠오른 찰나 유선아가 입을 열었다.
“아까 그분이요. 성격 되게 좋아 보이지 않아요?”
이민기도 웃으며 답했다.
“네, 그렇네요.”
사람은 좋아 보이지.
그건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박의 껍질과 살이 다르듯, 사람도 겉과 속은 다른 법.
이민기의 눈에 비친 함치현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사기꾼 기질이 가득하네.’
거대한 악을 꾹꾹 반죽해 인간의 형태로 압축해 놓은 괴물이었다.
[만만투]에 단역 하나 보냈다고 했나.누군지 알겠다.
아마 어제 진득하게 대화 나눈 그 사람이었겠지.
‘영화관이랑 볼 영화까지 전부 알려준 보람이 있네.’
대표씩이나 되는 사람이 기꺼이 행차까지 해 주시고.
아마 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겠지.
‘살짝 두드려 볼까.’
복수는 필요하다.
마음속에 걸리는 상대라면 더더욱.
* * *
JC 엔터테인먼트.
휴일임에도 시간을 내어 이민기가 찾아온 그곳.
“미디어 퓨처 컴퍼니라고 하셨지요.”
이민기의 눈앞 테이블 위로 서정우 이사가 노트북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대표 이름은 함치현, 한번 정보가 닿는 선에서 알아보고 왔습니다만.”
그 순간 이민기의 가슴이 작게 두근거렸다.
같은 업계인으로서 어떻게 평가할까.
어쩌면 같은 업계인이라고 저쪽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찰나였다.
“전형적인 기획 사기꾼이군요.”
서정우 이사의 입에서 단도직입적인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그 사람이 운영하는 미디어 퓨처 컴퍼니는 전형적인 사기 기획사에 속하고.”
“……허.”
“왜 그러시죠?”
“아니요, 그냥 사람은 겉만 보고는 모르겠다 싶어서요.”
이민기가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했거든요.”
“감이 오셨던 거지요.”
서정우 이사가 당연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배우님께서는 아직 모르시겠지만, 이 업계에는 재능 있는 신인들을 갈취하는 기획사가 많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많았습니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음, 음.”
지당한 말에 이민기가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인 플랫폼에 돌리는 정도쯤이야.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뒷 영업을 시키는 곳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도 있었지요. 3Y.”
“음, 음.”
옳은 말씀만 하시는군.
“그렇게 하나둘씩 시키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쓰다 버리기 좋은 잡역 전문으로 전락해 있는 겁니다.”
“음…….”
이건 좀 가슴이 아프군.
쓰다 버리기 좋은 잡역 전문이라.
그 말이 이민기의 가슴 한구석을 후벼 파는 것처럼 들렸다.
옛날에는 사실이었으니까.
“이사님도 그쪽에 안 좋은 감정이 좀 있으신가 보네요.”
“모르셨나요? 옛날 기획사들은 다 이랬습니다.”
서정우 이사가 의외라는 듯 한쪽 이마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구인모 대표님이 적어도 우리끼리라도 배우 등쳐먹지 말고 정직하게 장사하자고 만드신 게 지금의 JC지요. JC가 어떤 말의 줄임말인지 아십니까?”
“조이 앤 크리에이티브죠.”
이민기의 입에서 곧바로 답이 튀어나왔다.
조이 앤 크리에이티브.
기쁨과 창의력이라는 단어였다.
한때 황금나무위키 기획사 항목을 달달 외우다시피 했던 이민기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질문.
그 대답에 뿌듯한 찰나였다.
“그건 공식적인 표어에 불과합니다.”
서정우 이사가 고개를 젓더니 거듭 물었다.
“진실은 따로 있습니다. 맞춰 보십시오.”
심화 과정인가.
암기형에서 서술형으로 변한 질문에 이민기가 작게 턱을 짚고 고민하기를 잠시.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졸라 착한 기획사?”
“……비슷하지만 좀 다릅니다.”
답이 안 잡혀서 대충 던져본 말에 서정우 이사가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적어도 우린 착취하지 말자.”
“음.”
한국어였구나.
어쩐지 구인모 대표라면 그럴 것 같아 이민기가 작게 감탄하며 끄덕인 순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서정우 이사가 입을 열었다.
“미디어 퓨처, 이런 쓰레기는 업계에서 도태되는 게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