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47)
운빨로 탑스타-147화(147/200)
제147화
“미디어 퓨처, 이런 쓰레기는 업계에서 도태되는 게 옳습니다.”
나무 위에 도끼날을 꽂아 넣듯 강렬한 한마디에 이민기가 숨을 멈췄다.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 시원하긴 한데, 시원하긴 한데, 시원하긴 한데 뭔가, 뭔가…….’
너무 강렬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반박의 여지를 찾는다고 해야 하나.
생각해 보니까 딱히 반박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민기가 마음을 다잡고는 곧은 눈빛으로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쓰레기 회사는 망하는 게 자연의 순리죠.”
“그렇습니다.”
서정우 이사 또한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수소문해서 내부 구조를 살펴봤는데, 기획사라기보다는 인력사무소에 가깝습니다. 소속된 배우들이 대부분 단역 전문인데, 마구잡이로 돌리며 캐쉬만 빨아들이고 있지요.”
“그 돈은 어디에 쓸까요?”
“이 부분이 문제입니다. 딱히 어딘가에 재투자를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그럼 아마 대표의 지갑 속에 고스란히 있을 겁니다.”
전형적인 사기 기획사의 영업 형태였다.
당장 돈이 되는 곳에 하나씩 돌린 뒤, 수수료 명목으로 일당을 갈취한다.
“이 경우 결말은 대개 같습니다.”
서정우 이사가 작게 분노가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액수가 얼마나 쌓이든, 차후 정산을 해주겠다며 지급을 피일 피재 미루고는, 마지막에 사라지는 겁니다.”
“…….”
“계약한 사람들만 붕 뜨는 거지요. 3년 동안 돈 한 푼도 못 받고 대표 배만 불려준 겁니다.”
정확하다.
너무 정확하다.
이민기가 기억하는 미디어 퓨처 컴퍼니의 행적 그대로가 서정우 이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중간에 계약 커미션 명목으로 끌어들인 피해자들도 더 있을 테고, 투자를 받았다면 그 투자금도 있을 겁니다. 사무실 위치를 보면 페이퍼 컴퍼니에 가까운 형태군요.”
“그럼 애초에 사기를 목적으로 세운 회사였단 말인가요?”
“예, 뻔합니다.”
서정우 이사가 단언하듯 말했다.
“창업 시기를 보아하니 대략 4년 전이군요. 그사이에 계약한 사람들의 숫자와 시기로 보건데…… 아마 슬슬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도 정확했다.
당장 몇 년만 지나도 함치현 대표가 회삿돈을 먹고 튈 테니까.
마치 먼 미래를 들여다보는 듯한 서정우 이사의 추측에 이민기가 작게 감탄했다.
‘아무래도 같은 업계인이기에 보이는 게 있는 건가.’
같은 업계인.
아마 서정우 이사는 그 단어로 한데 엮이는 것조차 치욕으로 여길 테지만 말이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오래 가지 못할 것 같군요. 회사 구조를 보거든 단기적으로 빨아먹기는 좋아도, 장기적으로는 재무 상태가 좋을 수가 없는 회사입니다.”
“망하겠군요.”
“이건 확실합니다.”
회사 자체의 몰락은 필연이었다.
그렇다지만, 그사이에 생길 피해자들은 별개였다.
‘그 단역 맡았던 사람, 나도 이름도 몰랐지.’
이민기 또한 같은 퓨처 미디어 컴퍼니의 피해자였음에도, 그라는 배우의 존재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과연 제대로 된 계약을 맺기나 했을까.
‘그럴 리가.’
아니라는 건 이민기, 그야말로 너무나도 잘 알았다.
[계약금은 받으셨고요?] [네? 아뇨? 처음에는 제가 보증금을 냈어요. 나중에 다 돌려준다고 하더라고요.]계약금을 배우에게서 받는 회사가 어디 있겠나.
당연히 반대로 지급하는 게 정상이지.
하지만 그 단역 배우는 이상한 기색조차도 못 느낀 눈치였다.
[어차피 계약금은 명목상으로 주고받는 거라서 의미 없다고 하시던데요?]함치현이 잘도 구워삶았겠지.
‘이렇게 속아 넘어간 사람이 과연, 그 사람 한 명뿐일까.’
아니라는 걸 이미 안다.
빙산의 일각이겠지.
‘세상에 힘든 일이 있다고 해서 내가 전부 구해주면서 지나갈 수는 없어. 하지만 적어도 찝찝하진 말아야지.’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
이번 한 번.
딱 한 번 한 번만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오지랖을 부려볼 생각을 품은 찰나였다.
왜냐고?
눈앞에서 봐 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돈이 안 되지만, 회사에서 여기저기 열심히 꽂아 주니까요. 내년부터는 정산도 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이제 연기만 해도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하, 언젠가는 이민기 선배님처럼…… 아! 아니에요.]그 신인 배우가 천진난만하게 떠들던 그 모습을 말이다.
안 봤다면 모를까, 봤다면 넘길 수 없다.
그 사람은 이민기였다.
이민기의 거울과도 같았다.
차마 외면하고 싶었던, 하지만 끝내 마주해 버린 전생의 그의 모습이었다.
트라우마.
가까스로 덮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그것이 다시 이민기를 덮쳤다.
하지만.
‘언제까지 슬슬 피하고 살 거야. 내가 피해자잖아.’
계기도 생겼겠다.
이번에는 개인적인 사심 한번 진하게 섞어 볼 생각이었다.
왜 촬영장에서 그 단역 배우를 만났나.
왜 함치현이 그의 앞에 나타났나.
고민해 봤다.
운은 그의 편이 되었는데, 왜 이런 불편한 자리를 마련해 준 건지.
그 끝에, 이민기는 깨달았다.
‘나한테 복수의 기회를 준 거다.’
이것 또한 그의 운이라는 사실을.
“배우님께서 굳이 이런 정보를 요청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습니다만.”
서정우 이사가 한층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음 순간.
그 열린 입에서 조용히 흘러나온 말은.
“이 회사에 원한이라도 품으신 거겠지요?”
무감정한 만큼 무겁게 느껴지는 말이기도 했다.
“…….”
족집게와도 같은 말에 이민기는 가만히 눈을 깜빡거리기를 잠시.
하늘에서 추를 떨구듯 고개를 떨구듯 끄덕이고는 말했다.
“네, 이사님 말씀대로 소속 배우들한테 사기 계약을 일삼는 것 같아서요.”
아직 끝이 아니다.
이민기가 작게 호흡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공익적인 이유가 크기는 해요. 제가 가만히 간과하고 있으면 후배들이 당하는 거잖아요.”
공익적인 이유가 크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지.
그렇다고는 하나, 잠깐 눈을 돌리고 모른 척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합리적이라면 모를까.
외면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올 피해 따위는 없을 테니까.
그의 인생은 평화롭게 흘러가겠지.
지구 반대편에 대홍수가 났다 한들, 옆 나라에 지진이 왔다 한들 내가 사는 곳이 평화로우면 그만인 것처럼.
하지만.
‘그렇게는 못 해. 아니 안 해.’
싫었다.
‘아무것도 안 한다고? 누구 좋으라고?’
악한 사람은 악하게 살아가겠지.
피해자들은 피해를 보리라.
누굴 위한 세상인가.
누굴 위한 외면인가.
‘혹시 모를 후폭풍이 무섭다는 이유로, 고개를 숙이라고?’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내 인생을 망친 사람이지 않나.
또 많은 사람의 삶을 망친 사람이지 않나.
‘내버려 두면 그거야말로 호구 아니야?’
할 수 있다면, 나라도 나서야 하는 게 아니겠나.
합리적인 누군가는 이런 오지랖이 잠깐의 정신승리에 불과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정신승리면 뭐 어때.’
마음의 병도 병이다.
세상이 약을 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나 자신에게 약을 처방해야 하지 않겠나.
그뿐이었다.
선행에는 큰 이유가 필요 없다.
나 자신을 설득하듯 거창한 이유를 둘 필요도 없다.
칼을 뽑았으니 무를 썰 듯, 결심을 세웠으니 실행할 뿐.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알았는데 내버려 둘 수는 없었어요.”
이어진 말에 서정우 이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히 말을 이었다.
“제가 아는 배우님은, 다른 기획사에 굳이 눈길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작은 회사에 관심을 가진다면, 아마 오지랖이리라 생각했습니다만.”
“그…… 오지랖이라는 말씀이 정확하기는 한데요.”
이민기가 헛기침을 뱉었다.
사실, 남의 시선으로 보면 오지랖이라는 단어만큼 정확한 말이 없겠지.
지금의 이민기는 미디어 퓨처 컴퍼니와 엮인 점이 전혀 없는 사람이니까.
그 회사와 대화만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일 뿐.
“나쁜 오지랖이라는 건 아닙니다. 딱히 안 될 오지랖도 아니고.”
서정우 이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말을 잇고 또 이어나갔다.
“적당한 증거 정도만 있으면 이쪽 언론을 통해 충분히 기사를 퍼뜨리고 공론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빠르면 내일이라도 가능합니다.”
“그렇게 빠르게요?”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았습니다만, 마침 연락망에 이쪽 회사와 계약한 신인이 한 명 있더군요.”
“누구죠?”
“김아성 트레이너님의 옛날 제자입니다.”
그 말에 이민기의 표정이 순간 황당함에 물들었다.
여기서 저 이름이 왜 나와.
아니지, 거친 제자만 수백 명이 넘는다고 하니, 아무리 작은 기획사라고 한들 하나둘쯤 엮여 있다 해도 이상할 건 없나.
“아마 계약 조건이나 그간의 활동 내역을 엮어 보면 적당한 논란거리 하나 정도는 나올 겁니다.”
담담한 설명이 물 흐르듯 흘러나왔다.
몹시 익숙해 보인다.
마치 몇 번이고 해봤다는 것만 같이 능숙한 언행 속에서 이민기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물었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JC에 부담이 생기지 않을까요?”
“예, 아마 생길 겁니다. 상도덕도 없이 같은 회사를 저격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고. 굳이 나쁜 이야기를 귀에 담아서 좋을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민기가 위험부담을 감수하려는 게 아니냐 물으려는 찰나였다.
“그래도 이런 회사가 업계에 남아 있으면 두고두고 같은 업계 종사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또.”
탁.
서정우 이사가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
“쓰레기는 먼저 본 사람이 치우는 게 맞습니다.”
“아.”
이민기가 작게 감탄했다.
슬슬 알겠다.
서정우 이사는 이민기의 사적인 원한을 이미 자기네 회사의 일로 여겨주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다른 생각이리라.
[우리가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영업일 수도 있었다.
업계 싸구려 회사 하나쯤이야, 구린 구석을 캐내서 기사로 쓰는 정도 정도는 어렵지도 않다.
개미를 손가락으로 짓이기는 것만큼 간단하다.
이게 JC의 의도일지도 몰랐다.
……
…
여기까지가 이민기의 생각.
서정우 이사의 생각은 여기에서 또 조금 달랐다.
‘미디어 퓨처 컴퍼니, 혹시 했더니 잘 걸렸군.’
알았다.
서정우 이사는 이민기가 거론하기 전에도 미디어 퓨처 컴퍼니라는 회사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을뿐더러, 그 회사의 영업 형태도 대강은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똥밭이라도 엮여 좋을 게 없으니 건드리지는 않았을 뿐이었다.
언론에게 힘을 빌려달라 요청하는 건 곧 빚을 지는 것과도 같으니까.
쓰레기가 있다고 해서 일일이 짓밟으면 끝이 없다.
하지만.
‘배우님에게 뭔가를 했군.’
일단 눈에 들어온 쓰레기가 우리 쪽 배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면, 그건 사정이 조금 달랐다.
‘겸사겸사 처리해야겠다.’
그냥 빚을 지는 건 기부다.
하지만 투자를 위해 빚을 진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이건 장사다.
이민기라는 미래의 스타, 아니, 현재진행형 스타에게 호감을 사는 장사.
그리고 또, 어차피.
‘대표님 귀에 들어가면 그쪽에서 먼저 작살을 내실 테고.’
마침 그의 바로 위에는 선택적 분노조절 장애가 한 명 있지 않나.
일이 시끄럽게 터지기 전에 선수를 치는 정도쯤이야.
여차하면 사무실에 가서 방망이 휘두를 것 같은데, 그렇게 되기 전에 차라리 그의 선에서 끝내는 게 낫다는 게 서정우 이사의 판단이었다.
의지가 있고 힘이 있다.
명분마저 생겼으니 행동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어떤 명목으로 언론에 보도할지 정도겠군요.”
“저기.”
그 순간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저한테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데요.”
* * *
함치현.
신인들을 꼬드겨 계약서로 묶고, 당장 돈이 될 소일거리로 등을 해 먹는 게 전문인 사기꾼.
하지만 명함만큼은 신생 배우 전문 기획사 [미디어 퓨처 컴퍼니]의 CEO.
그런 그는 어째서일까.
오늘따라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불길하단 말이지.’
평소에도 달리 좋을 게 없지만, 오늘은 더더욱 그러했다.
‘뭔가, 뭔가가 걸리는데.’
이민기 때문인가.
어제 만났던 이민기.
건방지게도 그가 거는 말마다 전부 듣는 둥 마는 둥 흘리고 그랬지.
마음에 안 든다.
그래 봐야 데뷔 5년도 안 된 주제에, 그런 고자세는 어디에서 배운 건가.
‘그렇군요? 그렇군요? 그래요? 말버릇하고는.’
맘에 들지 않는다.
사람이 좋은 의도로 접근해서 말을 걸었으면, 적어도 사회인답게 받아주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애새끼도 아니고.
“대표님…….”
“뭔데?”
“아, 아닙니다.”
함치현의 얼핏 날카로운 반응에 직원이 화들짝 놀랐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저 직원 또한, 미디어 퓨처 컴퍼니의 공범에 속했다.
‘일이나 똑바로 할 것이지.’
물론, 저 직원도 업계의 관례 운운하며 법의 한계치까지 후려친 직원이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며 커리어를 쌓으면 용기 씨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딱히 회사의 애정이라고는 없겠지.
하지만 그가 이직하기 전에 회사를 터뜨릴 테니 상관없다.
‘그래, 조만간이다. 조금만 더 참자.’
머지않았다.
딱 1년이다.
1년 뒤, 모아둔 돈을 가지고 베트남 호치민으로 떠나 그곳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호화롭게 사는 거다.
지금 하루하루는 그 밝은 내일을 위해서 참는 시간일 뿐이다.
‘즐겁군.’
역시 사람은 목표가 있어야 한다.
긍정적인 미래를 떠올리자 곧 함치현의 머릿속으로 평화가 찾아왔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찰나.
“저…… 대표님.”
조금 전 꼬리를 말았던 직원이 오들오들 떨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 이민기가 자기 SNS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날이 선 반응에 그녀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거기에 지금, 저희 측 계약 조건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