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48)
운빨로 탑스타-148화(148/200)
제148화
“뭐? 계약 조건?”
함치현의 눈빛이 황당에 물들었다.
이민기 방송에 미디어 퓨처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문제가 될 부분이 있었나.
잠깐 마주친 게 전부일뿐더러, 그 짧았던 대화 속에서도 만에 하나 걸리는 건 없었던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아니다.
지금, 이런 걸 고민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비켜.”
함치현은 대뜸 걸어가서는 직원을 밀어내고 그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식은땀과 함께 거센 호흡을 쉭쉭 몰아쉬기 시작했다.
‘이민기, 진짜 미친놈인가?’
* * *
짧은 실시간 방송을 마친 이민기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말에 세 남녀가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와, 정말 힘들었어요.”
“진짜루.”
“속이 시원하긴 한데…… 좀 무섭기도 하네요.”
이 세 사람이 누구인가.
아주 간단했다.
세 사람을 앞에 건반처럼 세운 이민기가 조마조마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두 분이 없었더라면 이번 기획은 어려웠을 거예요. 하지만 좀 걱정되네요.”
그렇다.
미디어 퓨처 측과 계약을 맺은 배우 두 명이었다.
한 명은 [만만투]에 출연한 사람.
나머지 둘은 이민기의 설득을 받고 방송에 기꺼이 힘을 보탠 사람.
“용기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민기가 돕기로 힘을 모은 사람들이었다.
“저희야말로 미디어 퓨처가 이랬을 줄은 몰랐는데요.”
“배우님이 아니었으면 용기도 못 냈을걸요.”
“진짜, 진짜루.”
세 사람이 간단하게 소통을 나누는 사이, 이민기는 고개를 돌려 다시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마치 소낙비처럼 쏟아져 있는 텍스트들이 있었다.
[저거 미디어 퓨처 진짜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들이네] [이거 말 됨?] [계약에서 저렇게 후려쳤다고?] [신인들 털어먹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구나.]미디어 퓨처를 향한 분노가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민기가 그들을 고발했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함께 분노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했다.
‘잘 유도했네.’
이민기가 이번 방송을 두고 미디어 퓨처를 저격하겠다며 대놓고 거론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대화의 흐름이 ‘우연히’ 그쪽으로 흘렀을 뿐.
[계약서상으로는 보통 배우가 갑이죠. 기획사는 을이고. 계약금도 배우가 받잖아요.] [네? 저희는 못 받았는데?] [네?] [미디어 퓨처가 그런가?]세 사람과의 질답을 통해, 미디어 퓨처의 계약이 한없이 사기에 가깝다는 걸 언급했을 뿐.
[그리고 지난번에 서면 쪽 토크바에 초청해서…….] [잠시만요. 토크바에 나가라고 했다고요?] [어? 다들 그렇지 않아요?] [노출시켰다면서요. 보통 배우 지망생들은 이미지가 중요해서 안 그러는데. 이상하다. 참, 정산은 어떻게.] [정산을 받아요? 저희 같은 신인도?] [아직도 정산을 안 받았어요? 데뷔한 지 4년 차라고 하셨으면서?] [회사에서 투자금에 손해분이 아직 크다면서 다 까고 준다고.] [아이돌도 아니고 배우잖아요.]하나같이 미디어 퓨처의 악덕 계약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렇다.
이번 방송은 이민기가 신인 배우들의 고민을 들어준다는 포맷으로 제작했던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 퓨처의 계약 조건을 노출시켰을 뿐.
[강원도 리조트 쪽으로 출장을 보냈는데, 밥도 안 줬어요?] [원래 주나요?] [교통비는요?] [그…….] [환장하겠네.]지극히 자연스럽게 말이다.
미디어 퓨처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적용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이민기의 승리다.
‘방송에서 언급한 노예계약이 전부 사실이라는 걸 인정한 기획사에 누가 가겠어.’
자살골이다.
이미 방송에 노출된 시점에서 죽은 셈이지만, 여기에 소송을 걸거든 두 번째로 죽는 것이다.
“잠깐만 쉬었다가 진행하겠습니다!”
딸깍.
“이제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이민기가 잠시 마이크를 끄자, 게스트로 참가한 배우들이 지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질렀다.”
“저희 이제 어쩌죠?”
“미디어 퓨처랑 싸워야죠.”
시간을 돌아가 불과 하루 전.
이민기가 JC의 서정우 이사에게 제안한 일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간단했다.
[그냥 정면 승부로 부딪쳐 보죠.]정면 승부였다.
미디어 퓨처라는 적을 상대로, 아예 자기 얼굴을 까고 맞부딪쳐 보자는 것이었다.
[켕길 일이 없어요. 제가 안면 튼 신인 배우들이랑 고민 상담을 나누는데, 그 과정에서 계약 이야기가 나올 뿐이에요.]이민기의 SNS 팔로워 수는 그의 이름이 온 세상에 거론되는 사이 어느새 500만에 근접했다.
그 파급력은 어지간한 중소 언론사보다도 높을 지경.
하물며 전부 이민기의 강력한 지지자들.
가진 무기를 휘두른다면, 가장 강력하게 다룰 곳이 바로 그의 SNS였다.
“그런데 괜찮겠어요?”
이민기가 세 사람을 향해 물었다.
“앞으로 배우 업계에서 더 일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뭐…… 아마 그렇겠죠.”
만만투 촬영을 통해 안면을 튼 남자 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잖아요. 사기 계약이라면서요.”
“제 말을 믿어요?”
“계약서를 다 보여 주셨으니까요.”
그가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음, 저도 마냥 무사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피해자가 더 생기기 전에 제대로 터뜨리는 게 맞다고 봐요.”
이쪽은 설득을 통해 내부고발자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어차피 관두려고 했는데, 사장이 협박해서 못 그러고 있었어요.”
“후, 시원해.”
미디어 퓨처라는 기업의 본색을 이미 맛본 사람들이었다.
정산금으로 장난질을 치는 데 제대로 노한 사람들.
그들 중에서도 특히나 감정의 골이 깊은 두 사람이 이민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공개적으로 밝힐 기회가 생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는데요.”
“맞아요. 배우님은 오히려 저희한테 기회를 주신 거죠. 한 방 먹여줄 기회를.”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요?”
이민기의 질문에 여성 참가자가 웃으며 말했다.
“배우님께서 도와주시기로 하셨잖아요? 저희 이야기 듣고.”
당찬 말에 이민기도 씁쓸하게 웃었다.
“그것도 그렇지만요.”
알았지.
이 둘의 존재는 옛날 옛적에 알았다.
함치현이 야반도주를 했을 무렵, 함께 분노를 터뜨렸던 피해자들이었다.
[그 개새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언론사에 고발이라도 하는 거였는데.]이미 분노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당시에는 힘이 없었던 탓에 끓어오르는 가슴을 알콜로 삭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이민기라는 거대한 빽이 그들의 뒤에 당당하게 섰다.
‘당당하게 한 방 먹이는 겁니다.’
아직 이들에게 모든 걸 밝힐 수는 없다.
기껏 해 봐야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저지를 만하다는 것 정도.
이민기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도 한정되어 있다.
기껏해야 목소리를 울릴 자리 정도일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평생 당하고만 살 줄 알았는데, 하늘도 알았나 봐요? 저런 나쁜 놈이 있다는 거. 깨소금이다.”
초청한 배우가 큭큭 웃었다.
감정의 골이 깊었던 모양.
다른 누구도 아닌 이민기가 가장 잘 아는 그 감정이기에, 작게 쓴웃음을 지은 뒤 입을 열었다.
“아마 큰 문제는 안 생길 거예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일 거고.”
단순히 위로하려고 둘러대는 말이 아니다.
이미 JC 측 법무팀을 향해서 충분히 확인하고 저질렀다.
[계약 문제로 생긴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그 손해를 정확하게 입증해야 합니다. 아마 못할 겁니다.]증빙 과정 자체가 껄끄럽겠지.
‘애초에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그게 절대적으로 통하는 건도 아니고.’
노동법을 어길 정도로 악독한 조항은 저항의 여지가 있을뿐더러, 해석에 따라 애매모호해지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법원에서 어떤 해석을 내리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애매모호한 해석을 내리기까지 걸릴 시간이었다.
왜냐.
‘내년이면 정산금 주기 싫어서 튈 타이밍이잖아.’
미디어 퓨처 입장에서 가장 치명적일 그 타이밍, 그것을 이민기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루고 미뤘던 그 정산금, 내줘도 죽고 먹어도 죽는다.
함치현의 더러운 속내가 조금이라도 공공연한 장소에 드러나는 순간, 바이러스가 사멸하듯 죽는 거다.
‘그때까지 소송전 한번 벌여 보게?’
못 그러겠지.
먹고 튀어야 하는데 위험부담을 어떻게 감수할 텐가.
‘자, 그럼 이제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한 찰나였다.
‘아, 왔네.’
기대했던 그것이었다.
뚜두둑!
이민기가 어깨에 걸린 담을 풀 듯 기지개를 크게 켰다.
* * *
악인(惡人)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이 공통점일까.
간단하다.
‘사람을 못 믿지.’
그 누구에게든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얼핏 마음을 내준 것 같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이익이 따라주는 선에서 보일 뿐이다.
‘그 누구든 자기 뒤통수를 칠 것 같고, 자기 돈을 뺏어갈 도둑처럼 보였겠지.’
함치현이라는 사람도 같았다.
그는 오랜 지인들을 못 믿는 수준을 넘어, 자기 가족조차도 믿지 못했다.
실제로 베트남으로 도주했을 때도 혼자서만 도망갔지.
피를 나눈 가족들조차도 그의 악행을 알지 못했다.
그랬던 사람이다.
과연 그런 그를 믿는 사람이 흔했을까.
[야간에 일을 시켰다고 합니다.]“그때가 18살이었죠?”
[네, 대화 나눈 기록도 다 남아 있다 하니, 이것까지 포함해서 언론사에 제보하기로 했습니다.]어림도 없지.
박한모 매니저의 혀를 내두르는 목소리에 이민기가 한숨을 내쉬고는 답했다.
“혹시라도 뒤에 보복당하지 않게끔 부탁드릴게요.”
[배우님에게 보복할 만큼 간이 크진 않을 겁니다. 아마 긴가민가하겠지요.]“아니요. 저 말고 그 제보자분이요.”
[아…….]“많이 무서울 거예요. 잘 케어해 주세요.”
이민기의 말에 박한모 매니저가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게 바로 매니저가 하는 일입니다.]불과 한마디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신뢰감에 이민기가 작게 웃으며 답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추후 일이 있으면 또 연락 부탁드릴게요.”
[예.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겠습니다.]곧 연락이 끊겼다.
박한모 매니저의 말이 끝남과 함께 이민기가 지난 제보자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차마 나만 믿으라고는 말 못 했지.’
버킷리스트 하나를 포기한 이민기가 쓴웃음을 지었다.
할 수 있는 선까지 노력해 보겠다고 말했을 뿐.
확신이 나쁘다는 걸 안다.
대신,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거든, 딱히 최선까지 갈 것도 없는 듯했다.
‘많네.’
방송이 있고 고작 이틀.
이민기의 SNS를 통해 제보가 말 그대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당한 계약 내용을 당하신 분들은 하기 연락처를 통해 제보 부탁드리겠습니다.]계약한 배우들부터 시작해, 전 미디어 퓨처 직원들까지.
지난 방송이 있고 난 뒤부터, 피해자들이 본격적으로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네? 말도 안 돼요.]처음에는 자기가 속았다는 걸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혹은 단순히 용기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랬던 그들이, 이민기의 지난 방송을 보고 본격적으로 의지를 얻은 것이었다.
[뮤직비디오에 짧게 출연하는 단역이라고 해서 갔는데, 설마 그게 샤워 씬일 줄은 몰랐어요.] [차마 그건 출연 못 하겠다고 거절했더니 위약금을 물겠다며 협박했어요. 녹음도 해 놨어요.]피해자가 많았다.
아니, 많다는 건 당연히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을 줄은 몰랐는데.’
그 양이 이민기의 예상을 한참 초월해 버렸다.
불과 이틀.
고작해야 48시간이 안 되는 사이에 걸려 온 제보자가 스물을 넘어섰다.
장난 제보가 그 다섯 배가 넘었지만.
결과가 지금 눈앞에 떠오르고 있는 기사들이었다.
[속보) 미디어 퓨처 컴퍼니, 내부 고발이 연이어져.] [이민기가 쏘아올린 작은 폭죽은 어디까지 닿는가.] [미디어 퓨처 대표 함치현, 본지 취재 거부 후 연락 두절.]미디어 퓨처라는 기업 그 자체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본래대로라면, 1년 뒤에야 본격적으로 점화가 되어야 할 논란이다.
하지만 그게 1년 앞당겨졌다.
딱 1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함치현 대표에게는 더없이 치명적이겠지.
‘투자를 취소하겠다는 곳도 있었고, 광고 계약 손배소를 걸겠다는 말도 있었고. 경찰에서 초동 수사를 들어가겠다고도 했고.’
몸을 움직였을 뿐이다.
특별히 뭔가 하지도 않았다.
방송 하나 켰을 뿐인데, 그거 하나만으로도 과거의 가장 큰 악연 하나가 너무 깔끔하게 묻히고 있었다.
게임 유저들이 흔히 하는 말로, 트럭에 치인 것처럼 말이다.
문득, 이민기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함치현이라는 사람은 고작 이 정도였던 거 아닐까.’
내 마음속 괴물의 정체는 사실 이 정도 아니었을까.
어둑시니가 사람의 두려움을 먹고 자라듯, 함치현 대표 또한 이민기의 트라우마를 먹고 몸집을 부풀렸던 게 아닐까.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했나.’
쉽다.
미디어 퓨처라는 흑역사를 청산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손쉬웠기에, 더더욱 가슴 한켠에서 오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난 이제 옛날처럼 힘없는 개인이 아니구나.
스스로에게 힘이 있으며, 날 도와줄 집단도 있구나.
아니다.
‘강해졌네. 사회적으로.’
내가 남을 도울 수 있게 됐구나.
그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은 이민기가 작게 웃음을 지었다.
‘일단, 나머지는 회사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했으니.’
믿을 수 있다.
JC라면 나보다 잘하면 잘하겠지, 못하지는 않겠지.
이민기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앞을 바라보았다.
마침 저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배우님, 이번 장면은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심성보 감독.
그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이민기에게 말했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