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5)
운빨로 탑스타-15화(15/200)
제15화
‘모델 알바?’
순간 뭔가 잘못 봤나 생각했다.
권 관장과 모델 알바라는 단어 사이에는 프로틴과 치즈케이크만큼의 거리감이 존재했기 때문.
하지만 몇 번을 읽어봐도 문장이 그 자리 그대로였다.
[광장님: 혹시 민기 씨도 모델 알바 하나 해볼 생각 없나 해서]모델 일이 맞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제안에 민기의 손가락이 허공에 우뚝 멈췄다.
‘모델 알바라면 아마 쇼핑몰 피팅 모델일 텐데.’
익숙한 단어였다.
그 또한 옛날에 몇 번 해 봤기 때문.
이 업계라는 게 워낙 주위에 외모가 잘난 사람이 많다 보니 티가 덜 날 뿐, 이민기 그 또한 명색이 배우였다.
모델 일을 하기에 모자란 외모는 절대 아니었다.
7년에 달하는 배우 생활 사이에서 자연히 몇 번쯤은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페이는 꽤 센 편이지. 업무 강도도 적당하고. 인지도를 높이기에도 유리하고.’
아무리 못해도 만 원 이상은 쥐여준다.
최저시급이 5천 원밖에 안 되는 시대에, 이런 업종의 지망생이 선택할 수 있는 알바 중에서는 끝판왕이리라.
하지만.
이민기는 애초에 이 일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고려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이 일을 안 했던 이유라면.
‘불안정하지.’
일감이 꾸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이 계속 들어온다면 여간한 아르바이트에 견줄 바가 아니나, 일이 한번 끊기면 한도 끝도 없이 끊긴다.
구두 계약으로 진행되는 업계 특성상, 페이를 심심하면 떼먹히기도 했다.
……라는 게 피팅 모델이라는 일의 상식이긴 하지만, 사실 이민기가 유독 과했던 것 또한 있었다.
평범하게 운이 나빴기 때문.
‘이걸 어쩐다.’
이민기는 확답을 주기에 앞서 주저했다.
제안이 들어왔다고는 하나, 바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잠자는 시간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야간 알바를 늘리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기를 잠시.
[광장님: 돈은 많이 줄 것 같더라고] [광장님: ㅇㅓ때?] [광장님: 민기 씨만 괜찮으면 내일이라도 쓰고 부르고 싶다는데] [광장님: 급하대]이어진 권 관장의 설득에 한숨을 내쉬고는 결정했다.
‘그래, 일단 한번은 해 보자.’
제 발로 굴러들어온 일감을 거절할 건 없다.
급한 불은 끄고 보자.
이민기는 그런 생각으로 답장했다.
[나: 저기 그 전에 제가 관장님한테 고백할 게 하나 있는데요] [광장님: 사진 안 찍었다고?] [나: 사실 오늘 밥 먹은 거] [나: 네] [광장님: ^^]* * *
어느 분주한 쇼핑몰.
한 남자가 짐을 나르는 둥, 포장하는 둥 잠시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치렁치렁한 머리와 집시를 연상시키는 옷차림이 인상적인 남자.
요즘 뜨는 쇼핑몰의 사장, 유규언이었다.
그는 문득 에어컨 앞에 멈춰 서서는 이마의 땀을 닦아 내리며 생각했다.
‘바쁘다.’
일이 바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지만 바쁘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의류 쇼핑몰이라는 건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만큼, 안 되는 곳은 한없이 안 되니까.
한산한 곳이 훨씬 더 많다.
영세 업체를 넘어 중견이 되어가고 있는 그의 사업장이 바쁘다는 건, 사업주로서 행운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규언 대표는 마냥 기뻐만 할 수는 없었다.
‘슬슬 변화를 추구해야 할 시기가 왔는데.’
지난주보다 매출이 줄었다.
이유라면 알 것도 같았다. 원래 일을 하던 모델이 관두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 남친 외모로 나름 유명했던 대학생이었는데, 갑자기 일이 질렸다면서 관둬버렸다.
이해 못 할 건 없다.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으니까.
문제는 새 모델을 구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꾸 도망치고, 기본도 없고, 문제 일으키고.’
모델이라는 게 외모만 되면 도전할 수 있는 만큼, 근본 있는 사람을 골라내는 게 쉽지 않았다.
검증된 A급 모델들은 바빠도 너무 바쁘다.
신인들은 포징의 기초도 모른다.
예의가 없거나, 이성 문제를 일으킬 때도 잦았다.
지각은 기본이다.
그러니 사람이 아쉬울 수밖에.
‘그건 그렇고 한 시간 뒤면 새로 소개받은 사람이 올 시간인데.’
이 사람은 정상일까.
아버지가 워낙 강하게 권해서 억지로 소개받기는 했지만, 별 기대는 안 된다.
포트폴리오 사진은 그냥 참고용이니까 실물을 안 보면 못 믿는 거고.
‘아니다 싶으면 모델분한테는 미안하지만, 오늘 일만 끝내고 돌려보내야겠어.’
그렇게 이민기를 만나기도 전에 마음속으로 미리 체념한 와중이었다.
“대표님.”
한 직원이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말했다.
“도착했다는데요?”
“예? 벌써요?”
유규언 대표가 놀란 표정을 지으려니, 직원이 자기도 놀랐다는 듯 말했다.
“일정이 미리 끝나서 근처에 와 계신다네요. 괜찮으시면 바로 시작해도 괜찮다는데요?”
“흠, 시간이 딱 적당하기는 한데…….”
너무 일찍 온 거 아닌가.
상대가 모델 경험이 없는 신인인 만큼, 혹시 교육에 낭비될 시간까지 합쳐서 넉넉하게 잡았다.
일을 못 한다고 해서 바로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도 더 일찍 오다니.
‘특이한 사람이네.’
할 일도 딱히 없을 텐데.
유규언은 그에게서 조금이나마 호기심이 생기는 걸 느끼며 말했다.
“알았어요. 일찍 시작하고, 빠르게 끝내죠.”
그는 몰랐다.
이민기가 어떤 사람인지.
* * *
불과 1시간이 지났을 때.
결과적으로 말해서, 유규언은 그저 놀라고 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거 초짜 맞아?’
이민기라는 사람이 문제였다.
“저기 이번에는 조금 다른 포즈로 다시 찍어 볼…….”
“이렇게요?”
유규언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민기가 포즈를 바로잡았다.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어진 일이었다.
기본적인 포징을 잡는 데까지 어지간히 시간이 걸릴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었다.
“아, 바로 그거.”
“아니면 이렇게요?”
이번에도 또 수정할 것 없이 바로 각이 잡혔다.
유규언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것도 좋네요. 완벽해요.”
이민기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포즈라는 걸 완벽하게 숙지하고 온 듯했다.
아니, 숙지를 넘어서 몸에 자세가 익었다.
‘아무리 봐도 모델 일 많이 해 본 것 같은데.’
비주얼은 처음 봤을 때부터 합격이었다.
‘기본 피부가 좋아서 보정도 크게 필요 없겠고. 스타일리스트가 칭찬했지.’
하지만 얼굴보다는 몸이다.
기본적으로 골격이 좋다고나 할까. 일단 위에 뭔가를 걸치면 기본적으로 태가 사는 몸이었다.
누더기라도 어울리겠지.
그 위에 적절한 근육이 있다는 것도 가산점이었고.
패션모델이라고 하면 흔히 뼈다귀가 보일 만큼 마른 게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하이패션 쪽 이야기다.
거긴 다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이니, 사람보다는 옷걸이 그 자체를 보니까.
하지만 일반인 대상 쇼핑몰은 조금 다르다.
일반 대중들은 전체적인 모양새를 많이 따지는 만큼, 적당히 마른 몸에 잔근육이 붙은 몸이 적합했다.
여기에 자세가 바르면 더 좋고.
그렇다.
이민기가 처음부터 갖추고 온 그것이었다.
‘최소 5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잘하면 3시간도 안 걸리겠어.’
유규언은 별달리 수정할 것도 없이 실시간으로 포즈를 변경하는 이민기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일이 너무 능숙하다.
야외 촬영이니까 보통 옷 한 벌에 40분을 잡는데, 이민기는 신인이니까 1시간은 걸리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넉넉하게 잡았더니 순식간에 끝나게 생겼다.
“저쪽에서 촬영해 보면 느낌이 또 괜찮을 것 같아요.”
“일단 이것 먼저 마치고요.”
“아, 제가 괜한 말을 했나요?”
“아닙니다. 한번 해 보죠.”
빛을 고려할 줄 알며, 옷의 질감도 본능적으로 잡아냈다.
가진 몸의 장점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현장까지 이용할 줄 알았다.
‘오늘 촬영 빨리 끝나면 시급을 다 쳐줘야 하나.’
유규언은 기뻐해야 할지 어이가 없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물었다.
“저기,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데요.”
“네, 말씀하세요.”
발성도 깔끔하네.
유규언은 이제 놀랄 기운도 안 들어서는 말했다.
“혹시나 해서 다시 여쭙는 건데, 모델 일 처음 하시는 거 맞죠?”
그 질문에 이민기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물론이죠.”
당연하지만, 아니다.
이미 5년 이상 경험해 봤다.
일감이 계속 적응할라치면 날아가서 그렇지, 이민기는 경력직이었다.
그것도 몹시 성실한 경력직.
‘여기는 사람들이 다 착하네. 옛날에 했던 사람들은 엄청 엄격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이민기가 만났던 업주들이 유독 깐깐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트집을 잡아 페이를 후려치기 위함이었다.
네 탓에 촬영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이걸 다 줘야겠냐며 트집을 잡기 좋으니까.
유규언은 그저 평범하게 그를 대우할 뿐이었다.
이게 이민기에게는 기쁠 뿐.
“얼른 다음 옷도 시작하죠.”
어려진 만큼 옷빨이 잘 사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2시간 40분 만에 일이 끝났을 때.
이번에는 이민기가 유규언에게 놀랄 차례였다.
“…….”
현찰로 페이를 받았는데, 이게 예상했던 것보다 컸다.
이민기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기, 조금 더 액수가 많이 든 것 같은데요.”
원래 약속했던 페이는 시급 1.5만 원으로 5시간 촬영이니 7.5만 원이었다.
1.5만 원은 신인들이 흔히 받는 페이보다 조금 더 높은 금액인데, 그렇다고는 해도 현재 최저시급보다 3배는 족히 되는 액수였다.
게다가 촬영을 3시간도 채 못 채웠지.
일찍 끝난 만큼 4.5만 원만 받더라도 그러려니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봉투에 들어 있는 금액은 10만 원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는 꼬박 20시간을 채워야 받는 금액.
“혹시 잘못 계산하신 거 아닌가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묻는 이민기에게 유규언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말했다.
“실력이 좋아서 더 넣었습니다.”
“…….”
“원래 5시간은 걸릴 걸 상정했는데, 민기 씨가 워낙에 능숙하신 덕에 금방 끝났네요. 시간을 크게 아꼈습니다.”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시간을 아꼈으니 그만큼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시급으로 치면 3만 원이 넘는 금액인데, 첫 만남이고 소개를 받았기도 했으니 적절한 페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이민기가 생각하기에는 아니지만.
‘이 사람, 대체 뭐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특별히 그가 의심이 강하다기보다는, 심심하면 사기를 당해왔던 과거 탓이었다.
핸드폰을 사러 가면 36개월 약정을 강요당하고, 중고차를 보러 가면 사고 매물이 걸렸던 게 그였다.
월세방을 계약해도 며칠만 지나면 곰팡이가 피었다.
돈을 더 준다고 하면 나중에 뒤통수를 맞을 것부터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이상하다. 혹시 내가 놓친 게 있나. 이거 받으면 문제 생기는 돈 아닌가?’
그렇게 꼼꼼히 기억을 되새기고 있는 와중이었다.
“깜짝 놀랐네요.”
유규언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다면 종종 뵙고 싶습니다만…… 아니면 민기 씨만 괜찮으시다면 아예 매주 정기적으로 촬영을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예?”
지금 뭐라고 했지.
말을 놓친 것 같아 다시금 귀를 기울인 순간이었다.
“오늘처럼 매일 수요일에 주 1회 만나, 5시간씩 촬영을 진행하는 겁니다.”
“…….”
“오늘처럼만 해 주신다면, 페이는 앞으로도 이 정도로 드리겠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더 많이 가져올 겁니다. 오늘은 너무 일찍 끝나버려서 아쉽네요. 하하.”
계속해서 이어진 말.
그에 이민기는 비로소 유규언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기.”
이민기는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가, 유규언의 손을 잡으려 들며 말했다.
“예?”
“대표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를 넘어 감동한 듯한 목소리에 유규언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저야말로…….”
* * *
같은 날 저녁.
유규언은 어느 남자를 만나 함께 식사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가 꺼내는 화제는 주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을 잘하더라니까.”
이민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약속한 시각보다 1시간이나 일찍 나왔는데, 성실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일도 완벽하게 숙지하고 온 거 있지. 신인이라는데 얼마나 많이 알아보고 온 건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흔치 않은데, 자세가 됐어.”
그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잘했다는 이야기.
혀에 침이 마르도록, 입이 닳도록 칭찬이 쏟아졌다.
유규언의 건너편에 앉은 남자는 그 말을 한참이나 듣다가 물었다.
“그 사람 이름이 뭐라고?”
“이민기라고 했나?”
“이민기?”
그 말에 사내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아니,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서.”
“그런가?”
유규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나이프질을 이르며 말했다.
“이민기가 워낙 흔한 이름이잖아.”
“흔하기는 하네. 흔하지. 많이 흔하지.”
사내가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민기라.
그러고 보니 최근에도 이민기라는 이름을 들을 일이 있었다.
사내는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되새기기를 잠시, 피식 웃고는 말했다.
“나 아는 사람 하나도 이민기라는 사람 칭찬을 입에 달고 살던데.”
“누군데.”
“그런 사람 있어. 연기 가르치는 일하는 사람인데, 성격 좀 이상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