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52)
운빨로 탑스타-152화(152/200)
제152화
“배우님, 혹시, 거기 스튜디오 낄 자리도 있습니까?”
심성보 감독의 짧은 한마디.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이민기가 숨을 헛들이킨 것처럼 움찔하더니 말했다.
“스튜디오를요?”
“예, 정확히 말하자면 저희 마이야르 픽쳐스입니다만.”
“…….”
마땅히 꺼낼 말을 정하지 못한 채 눈을 깜빡거리는 그의 앞에서 심성보 감독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배우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레이블이 어떤 형태의 사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온갖 매체의 창작자를 어우르는 미디어 집단으로 키우려 하신다고 하셨지요?”
“일단 그렇기는 합니다만…….”
실제로 그럴 예정이다.
창작이라는 데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이 창작이라는 범주 안에만 들어간다면 어느 분야든 수용할 생각이 있었다.
그림, 마술, 게임은 물론.
더 넓게 보자면 건축가나 요리사까지도 말이다.
‘어차피 JC에서도 딱히 배우만 모집할 필요는 없다고 했으니까.’
JC에서 이민기에게 당부한 건 하나뿐이었다.
[사람을 신중하게 받으셔야 합니다.]사람을 가려 받으라는 것.
영업부터 재정까지 폭넓게 도와주는 대가로 요구한 것이 이것이었다.
[집단의 장이 된다는 건, 그 집단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게 좋은 일이 되었건, 나쁜 일이 되었건. 대중 앞에서 몰랐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습니다.]사실상 퍼준 셈.
물론, 말은 구실일 뿐이다.
JC가 대놓고 퍼주는 데는 실제로 다른 이유도 하나 있었다.
[야, 정우야, 배우님 설마 회사 차리려고 이러시는 건 아니겠지?] [그럴 분으로는 안 보입니다만, 어차피 일을 벌인다면 JC 밖보다는 안에서 벌이는 게 나을 겁니다.]어차피 마음 생각 사람은 못 말린다.
그러니까 차라리 JC에서 전폭적으로 도와주고 내부 레이블로 두자.
이민기 정도 되는 배우라면 묶어두는 게 이득이니까.
어디까지나 그런 물밑 계산 하에 이루어진 것.
아무튼.
당장은 친목 집단이다.
단지, 좀 근본이 없…… 이 아니라, 장르가 넓고 잠재력 넘치는 친목 집단.
하지만 그 구성원은 어디까지나 개개인이었지.
여기까지만 생각한 참이었는데, 심성보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멤버 간 협업도 고려하고 계시겠지요?”
“강압적인 접근만 아니라면요.”
“거기에 저랑 주연이를 포함해서 스튜디오 전체가 들어간다면, 무슨 일을 하든 썩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영상 쪽으로는 꽤 보탬이 될 텐데.”
이 사람, 정말 진심이었구나.
그렇지.
그야 그렇겠지.
마이야르 픽쳐스 같은 미래의 슈퍼 스튜디오가 내 레이블에 합류한다면, 브랜드 가치로는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겠지.
‘내 이름 하나로만 모집하려고 했는데, 여기에 마이야르까지 합쳐지면.’
폭발이다.
대중 앞에서 가볍게 발표만 해도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까.
온갖 분야의 창작자들이 합쳐져 있는데, 그 창작자들을 한 데 묶어줄 스튜디오까지 있다.
이걸 어떻게 그냥 친목 집단으로 여기겠나.
뻔하지.
거대한 투자라도 받고 사업 하나 일군 게 아닌가 의심하리라.
‘나라도 의심하지.’
어째 일이 커지려는 것 같은데.
분위기가 영 저쪽으로 흘러간다.
이러다가 잘하면 오스카상까지 타내는 거 아닌가.
그건 너무 김칫국인가.
아무튼, 이민기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앞으로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야말로.”
심성보 감독이 진주연 감독을 바라보며 눈을 찡긋했다.
그 모습에 진주연 감독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또, 또, 앞으로도 배우님한테 들붙어서 꿀 빨려고.”
“야! 분위기 좀 잡겠다는데! 배우님, 저 그런 의도 아닙니다. 진짜 순수한 의도로.”
“하이고, 퍽이나 순수하겠다. 빈대가 따로 없네.”
“주연아! 야! 배우님, 오해하지 마세요.”
어쩐지 너무 진지하더라니.
이민기가 마침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조만간 발족하긴 해야 하는데, 그냥 개봉 전에 해버리죠.”
낙장불입이니까.
더 뜨고 나면 마이야르 픽쳐스에서 딴생각 들 수도 있으니, 그냥 지금 하자.
이민기가 그렇게 말하려니 심성보 감독이 감동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야 하하! 배우님 바라시는 대로 따라갈 뿐이죠. 참, 그럼 이거 그 그룹? 크루? 이름은 어떻게 될까요?”
“이름 말인데요. 제가 또 신중하게 생각해 봤는데.”
왜 이 말이 안 나오나 했다.
이민기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였다.
뚜루루.
진주연 감독의 호주머니에서 갑작스러운 핸드폰 울림소리가 들려왔다.
“어?”
“누군데.”
“넷플레이 측.”
* * *
넷플레이.
현재 전 세계 OTT 업계를 삼등분하는 세 거인 중 하나이자, 그중에서도 단연 필두를 달리고 있는 곳.
이 회사가 최근 들어서 크게 고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었다.
“이민기, 이민기, 이민기…….”
이민기의 신작이 그러했다.
마이야르 픽쳐스라는 무명 제작사와 함께 만든 작품, [만만투] 말이다.
“그 작품에 뭐라도 있나.”
넷플레이 미국 본사의 CCO(최고 크리에이티브 관리자)인 미타니 딜런이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만만투.
엄연히 따지자면 넷플레이 입장에서 봤을 때 만만투는 한국이라는 변두리 국가의 그저 그런 작품 하나일 뿐이었다.
비록 화제작이라고는 하나, 넷플레이에는 그런 화제작이 많다.
세계적인 유명한 감독을 초빙한 작품도 발에 챌 지경.
할리우드 스타쯤이야 마트 진열대 위 사탕만큼이나 널렸다.
최근 미국에서마저 인지도를 얻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순간적인 밈에 불과했다.
‘한국 영화계에 포텐셜이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미국 시장에서 특별히 증명된 바는 없지.’
결과적으로, 미타니 딜런의 시선으로 판단한 [만만투]는 아주 기대작이라 부르기는 힘든 작품이었다.
이벤트를 몰아줄 생각도 딱히 없고.
그런데 왜.
왜일까.
‘AST에서 이렇게까지 간섭하려 드는 이유가 뭐지?’
AST에서는 그 영화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듯했다.
그것도 경영에 간섭하면서까지 말이다.
새삼스럽지만, AST는 그 거대한 자본력에 힘입어 어지간한 영화사와 제작사에 전부 지분을 조금씩이라도 뿌려두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투자만 할 뿐, 크게 간섭은 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지.’
그게 요즘들어 금이 가는 와중이었다.
아마도 오딘 유니버스의 흥행과 더불어 세를 늘리려는 수작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설마, 만만투 같이 작은 작품의 계약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할 줄은.’
그것도 아주 무례한 방식으로 말이다.
겉으로는 작품 내 정치적 올바름(PC) 이슈가 있다고 하지만, 그건 핑곗거리일 터.
작품 제작과정에서 흑인과 성 소수자 배우 및 직원을 단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다고 까는 게 말이 되나.
애초에 배경이 한국인데.
또 마이야르 픽쳐스 직원들의 성적 지향은 어떻게 알았고.
“으음.”
AST가 정치적 올바름을 중요시하는 건 유명하지만, 다른 회사에까지 요구할 정도로 무례하진 않았는데.
미타니 딜런이 거듭 신음을 흘렸다.
‘거절한다면 거절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앞으로 충돌할 게 부담스럽군.’
대주주의 요구다.
설마 주주들의 의견을 잘못 거슬렀다가는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CCO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다.
하물며 AST.
그들이 지분으로 장난질을 벌인다면 좀 귀찮아질 터.
‘상영업체 측으로도 이미 엄포를 놨다고 했나.’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미타니 딜런이 인상을 찡그렸다.
‘엠마 스펙터가 이민기를 섭외하려다가 거절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거 때문인가?’
말도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AST가 작은 회사도 아니고, 작은 섭외 하나하나에 감정을 두면 기업을 어떻게 운영하나.
‘말도 안 되지. 헛소문이다. 그건.’
미타니 딜런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타깝지만 정답이다.
미타니 딜런은 상식적인 사고를 고집한 탓에 진실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담배만 뻑뻑 피우고 있는 참이었다.
“딜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다소 친근하기까지 한 목소리에 미타니 딜런이 이마 위 주름을 걷어내며 말했다.
“쿠싱.”
하비 쿠싱.
넷플레이의 CFO(최고재무관리자)를 역임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미타니 딜런의 옆자리로 자연스럽게 걸어와서는, 호주머니 속에서 시가를 꺼내 들었다.
“비싼 건가?”
“귀한 거지.”
그렇게 말없이 담배나 태우려는 찰나였다.
미타니 딜런은 문득, 궁금해졌다.
‘쿠싱이라면 이번 일을 두고 어떤 생각을 할까.’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사람이다.
단순한 기업 간의 이해관계를 넘어, 금전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어떨까.
그런 관점에서 미타니 딜런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뭘?”
“엠마 스펙터에 대해서.”
“그 정신병자?”
그렇게 약 10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대화가 끝났을 무렵.
미타니 딜런은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주주들이랑 싸워야겠군.”
엠마 스펙터.
엿이나 먹어라.
* * *
“넷플레이에서 극장 동시 상영을 제안했다고요?”
극장 동시 상영.
넷플레이가 제안한 것이 그것이었다.
“말도 안 돼. 갑자기 왜?”
심성보 감독이 숨이 가쁠 정도로 눈을 깜빡거렸다.
“넷플레이는 독점 작품으로 먹고사는 기업인데, 극장에 상영을 풀어주겠다고?”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듯한 말 앞에서 이민기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아니죠, 극장에 선공개한 작품들이 종종 있기는 했어요.”
“예, 배우님 말대로 있었지요. 하지만.”
심성보 감독이 문장을 마치려는 찰나, 진주연 감독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런 작품들은 이미 몸값이 큰 기대작들 한정이었죠? 아마?”
그렇다.
극장 선공개.
이건 넷플레이 입장에서도 일부 기대작에게만 제공하는 특권이었다.
온라인 상영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진출할 기회 말이다.
이 정도로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작품성에 자신 있으니까, 한번 극장에서 보고 공짜로 더 보고 싶으면 우리 OTT 서비스에 가입해라.
다소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작품의 수익성을 한계까지 빨아먹어 보겠다.
그럴 정도의 파괴력을 갖춘 작품에게만 제안했던 일이다.
‘그런 걸 만만투에 제안하다니.’
심사 통과만으로도 감지덕지했는데.
예상치 못한 역제안에 심성보 감독이 쩍 벌린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그보다 더 놀란 사람이 있었으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이민기였다.
‘OTT로 런칭했다가 역주행한 게 만만투였는데, 갑자기 틀어서 극장에서 선상영을 하겠다고?’
대체 미래가 얼마나 바뀌고 있는 건가.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건가.
넷플레이가 [만만투]를 처음부터 전폭적으로 밀어주겠다고 선언한 셈 아닌가.
‘말이 돼?’
그가 참여한 [만만투]는 대체 무슨 물건이 되어가고 있는 거지.
이민기가 눈을 깜빡거리는 사이 진주연 감독이 입을 열었다.
“후, 후후, 두 사람 다, 다 참 별것도 아닌 거로 놀, 놀라고 계시네, 네요.”
그쪽이 더 놀란 것 같은데.
게슴츠레한 눈빛에 진주연 감독이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극장에 선상영한다면 아마 개봉일을 조율해야 하니까, 런칭일도 조금은 바뀔 거예요.”
“뒤로 미루겠네?”
“욕 엄청나게 먹겠군요.”
“벌써 두 번째 연기니까 아마 그렇겠죠.”
진주연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현지 언론 시사회가 곧이니까, 잘하면 기대치를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거예요.”
“……시사회라.”
이민기가 발음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천천히 중얼거렸다.
‘넷플레이에서 무슨 변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작품을 더 높게 평가한 건 분명해.’
그렇다면.
그게 확실하다면.
지금은 겁먹을 타이밍이 아니다.
이민기가 호흡을 가볍게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입을 한번 털어 봐야겠네요.”
한발 물러나고 싶을 때, 두 걸음 나아가자.
* * *
2주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을 무렵.
[만만투]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꽤 차갑기 짝이 없었다. [두 번이나 연기하네.] [뭔가 구린 구석이 있는 거 아니야?]만만투의 단기간에 반복된 개봉 연기 탓이었다.
[이민기 보려고 넷플레이 가입했는데, 쌩돈 나가게 생김] [오히려 이민기가 범인 아님?] [이제 막 신인 딱지 뗀 배우가 작품 만들겠다고 간섭하다가 싸웠다는 데 건다.]여론이 고울 수가 없다.
기대치가 컸던 만큼, 연기하면 할수록 역풍도 더 크게 부는 게 인지상정.
하물며 이민기라는 배우는 이런 상황에 사과하고 해명하기는커녕.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연기입니다. 힘든 결단이었지만, 그만큼 제 배우 이민기의 삶에 한 획을 그을 최고의 작품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여전히 작품을 포장하기 바빴다.
위로하듯 특전 영상을 조금 더 공개했지만, 그것만으로 달래질 민심은 아니었다.
응원하는 사람도 분명 있지만, 이민기라는 배우에 대한 불신도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게 현실.
그런 와중에.
[LA 현지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 시사회 반응]현지 언론 시사회가 열렸고.
모두의 반신반의한 기대가 뭉친 가운데.
평론가들의 첫 마디는.
[The entertainment]좀 의미심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