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54)
운빨로 탑스타-154화(154/200)
제154화
이민기가 옅은 호흡과 함께, 계약서에 도장을 찍듯 반복해서 말했다.
“중립지대에 합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립지대.
그가 만들어낸 레이블의 이름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특별할 게 없는 단어지만, 그 안에 담긴 이민기의 고민은 생각 외로 진중했다.
‘누구나 적대적인 세상에 휘둘리면서, 외부적인 요인으로 자기 포텐셜을 못 펼치고 있지.’
그가 최근 몇 년간 톡톡히 느낀 것이었다.
근래 누려왔던 성공이 온전히 그의 몫이던가.
혹은 그가 정말로 바닥부터 근본적으로 달라져서, 배우로서 거목만큼 성장해서 거둔 성공이었던가.
‘일부는 그렇겠지.’
부인하기 어렵다.
김아성 트레이너의 교육이 있었다.
배우 동료, 선후배들과의 경쟁이 있었다.
권준용 관장의 엄격한 트레이닝이 있었다.
이런 걸 겪으면서 성장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동시에 이민기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기에 전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과 만난 것 자체가 운이었다고.
배불러서 삼키기 벅찰 만큼 성장의 기회를 누릴 수 있었던 환경 그 자체.
이것이야말로 그가 이번 생에서 얻은 가장 큰 운이었다.
“엄청 상투적인 말이지만, 솔직히 저 혼자 잘나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민기가 얼핏 기만으로 들릴 듯한 말을 시작했다.
“다 상부상조하면서 왔죠. 대표님, 이사님, 관장님, 트레이너님, 감독님, 선아 씨, 탁…… 씨. 누구든 제게는 은인입니다. 진심이에요. 트레이너님이 없었으면 전 우물 안 개구리였을 것이고, 관장님이 없었다면 전 지금의 건강한 이미지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이민기의 연설 아닌 연설을 보며 청중들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화했다.
‘잘 아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매일 운동하기 싫다고 울더니.’
‘다른 배우분들도 저런 마인드를 한 톨이라도 가져 주신다면 좋을 텐데.’
평소 일장연설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저러니까 좀 재밌다.
구경하는 맛이 있다고나 할까.
나중에 이불 팡팡 차겠지.
그런 기분으로 이민기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와중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은 운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민기의 목소리가 한층 무거워졌다.
피아노의 낮은 건반을 주먹으로 쿵 누른 것처럼, 한순간 그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변화했다.
“누군가는 시장이 못 알아봐 줘서.”
잠시 유규언 대표에게 시선이 향했다.
“파파라치에게 당해서.”
돌아간 시선이 주하나에게 닿았다.
“조급해진 나머지, 그릇된 선택을 할 뻔해서.”
유선아에게 닿았다.
“누군가는 사기 계약에 속아서.”
이민기의 눈이 빈 허공을, 정확히는 저 멀리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다.
한번 입술을 깨문 이민기가 거듭해서 입을 열었다.
“오롯이 누렸어야 할 행복에서 멀어져가고 있을 겁니다.”
행복.
사람의 삶을 꿰뚫는 단 하나의 단어이기도 하였다.
누구나 다 행운이 함께하는 삶을 살 수는 없다.
똑같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여서,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흔히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고 합니다만, 그 탓에 어느 집안에서는 실패가 성공을 32년째 부양하고 있을 겁니다.”
청중 사이로 작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농담으로 한 말이긴 한데, 저게 내 이야기라서 좀 슬프다.
웃으니까 괜히 좀 그렇네.
‘김탁, 기억해 뒀다.’
이민기가 뉴런 한구석으로 훗날을 기약하며 말을 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대치동에서 영재 교육을 받으며 배를 두드릴 때, 지구 반대편의 똑같이 총명한 누군가는 쓰레기통 속 빵조각을 뒤적이다가 범죄 교육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겠죠.”
극단적이다.
하지만 원래 세상은 극단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누구도 아닌, 운으로 성공한 이민기이기에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하지만 작은 인연 하나로 사람이 바뀔 수 있습니다. 전 적어도 제가 타인에게 있어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 깨달음이 여기에 다다랐다.
“그걸 위한 중립지대입니다.”
사람을 돕는 것.
남을 돕고, 그 도움이 무상의 호의가 아닌 호혜로운 관계가 되는 것.
“저희 인연이 타인에게 행운이 되고, 그 행운이 다시 저희에게도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민기의 짧은 연설이 끝났을 때, 자그마한 박수가 따라왔다.
진심으로 공감하기에 우러나는 박수.
그냥 재미 삼아 들어주자고 한 말인데 어느새 몰입해서 듣고 있는 그들이었다.
‘사람이 저렇군.’
문득, 서정우 이사는 생각했다.
‘대다수의 매니지먼트 사업은 저런 발상으로 시작하지.’
이민기의 발상은 그리 참신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매니지먼트든 그러하다.
다 정직하게 장사하고 많이 벌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게 쉬울까.
한없이 이타적으로 장사하려다 보면, 경쟁 속에서 버틸 수가 없어 곰팡이가 피기 마련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악덕 소리 듣고 있는 거지.’
처음부터 한탕 해 먹고 도망가겠다고 세운 곳은 드물다.
소속 연예인들에게 퍼준다고 하는 JC조차 어느 면에서는 이기적인 운영을 펼칠 때가 잦았으니.
하지만.
‘배우님께서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면, 도와는 드려야지.’
그 의지를 비웃을 생각은 없었다.
두 눈에 이민기라는 배우를 담은 서정우 이사가 묵묵히 박수를 이어나갔다.
저 젊은 배우의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해서 박수를 이어나갔다.
‘형씨한테는 배울 게 있다니까.’
‘역시 민기 씨.’
김탁과 유선아도.
‘같은 신인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차이가 생겨버렸군.’
김태양도.
‘시간제 페이 모델로 고용했던 시절이 아직도 눈에 훤한데, 서로 이렇게까지 와 버렸네요.’
유규언 대표도.
‘역시 거물은 바라보는 곳도 다르네.’
‘성보도 저런 가치관을 좀 길렀으면 좋겠는데.’
심성보, 진주연 감독도.
‘중립지대가 그런 뜻이었나?’
얼떨결에 합류한 송우당도.
‘앉아서 올려다보니까 의외로 하체가 부실하네. 쓰읍, 이따 정리할 때 런지 한 세트만 시켜야겠군.’
권준용 관장도.
* * *
중립지대라는 레이블을 가장한 창작집단이 생긴 직후.
이민기의 행보는 간단했다.
“후, 오자마자 코가 뻥 뚫리네.”
바로 미국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개봉하는 영화는 무조건 당일날 봐야 하지 않겠나.
물론, 당연하지만 [만만투] 이야기였다.
이민기가 살짝 아쉬운 마음에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한국에서 개봉했으면 굳이 미국까지 안 왔을 텐데.’
그렇다.
만만투는 한국에서 개봉하지 못했다.
무슨 뒷사정이 있었는지만 모르겠지만, 스케줄이 너무 급했다나.
또 기존 극장가와 OTT 사이에 존재하는 경쟁도 있었고.
미국에서도 모든 지역에 개봉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일부 지역의 개봉관을 확보한 게 한계였다고 했지.
[AST 측에서 은근히 압박을 넣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만, 소문은 소문이니까요. 맹신할 건 못 됩니다.]넷플레이 측 투팍(Two-park)의 해설이 있었다.
‘이번 작품 덕에 출세는 따놓은 당상이라며 샴페인 파티를 벌이고 계셨지.’
이민기가 쓴웃음을 지으며 극장가로 향했다.
그러기를 잠시.
“아.”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네, 이때쯤 개봉 시기가 겹쳤구나.’
AST의 오딘 유니버스 신작.
[스피어]가 런칭하는 시기였다.국내보다 미국에서 먼저 개봉일이 잡혀서 은연중에 혼동한 것.
그 포스터를 눈앞에 둔 이민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스피어라.’
영화라면 아무리 사소한 작품이라도 그 스코어를 달달 외는 이민기이니만큼, 오딘 유니버스의 작품인 스피어 정도 되면 완벽하게 꿰고 있었다.
‘이거, 월드 스코어 8억 달러 찍었지.’
8억 달러.
가히 천문학적인 수치였다.
보통 할리우드에서 초대박 영화의 기준점이 10억 달러라면, 대박 영화의 기준점은 5억 달러 정도가 된다.
즉, 스피어는 오딘 유니버스라는 틀을 넘어 미국 영화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명실상부한 대박작으로서, 초대박작으로 가는 갈림길에 위치한 작품이었다.
‘창 한 자루로 싸우는 고대 초인이 현대에 깨어났다는 내용. 굉장히 흥미로웠어.’
온갖 현대 병기를 썰어버리면서 싸우는 그 모습.
그 명대사까지도 귀에 들려오는 듯했다.
[내 창은, 주군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다.]원래부터 액션에서 강점을 보였던 AST 유니버스가 아예 득도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지.
단점이라면 오딘 유니버스 특유의 틀이 다소 진하게 느껴진다는 정도일까.
그 [스피어]가 지금 [만만투]의 경쟁 상대가 되었다.
꺾을 수 있을까.
아니, 비빌 수라도 있을까.
‘OTT로 간다면 몰라도, 박스오피스 점유율로는 절대 못 이길 것 같은데.’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쯧.”
가장 즐거워야 할 영화 첫 상영일.
이민기는 작게 쓴맛을 다시며 영화관 입구가 있는 골목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아니, 들이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누군가가 그를 바라보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거기.”
“잠깐만, 내가 제대로 본 거 맞지?”
세 청년이었다.
골목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롤 키가 큰 세 명.
키를 평균치를 낸다면 190쯤 될까.
가죽 재킷을 걸친 탓에 원래부터 더 큰 덩치가 더더욱 크게 느껴졌다.
이민기가 뭐라 반응할 틈도 없이, 세 명의 위협적인 청년이 그를 에워싸듯 그에게 다가왔다.
‘뭐지?’
그 험악한 분위기에 이민기가 움찔했다.
호주머니에서 잭나이프 한 자루가 튀어나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이 위협적인 상황.
이크.
아무리 날씨 좋고 사람 많은 캘리포니아라지만, 너무 방심했나.
그래도 치안이 한국보다는 좋다고는 볼 수 없는 미국인데.
동양인 차별 범죄도 흔하다고 하고.
‘차라리 돈을 달라고 하면 나을 텐데.’
다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대비한 찰나였다.
“누군가 했더니, 가까이에서 보니까 알겠네.”
날 아나?
가장 앞에 선 남자, 머리에 기름을 잔뜩 발라 올백으로 넘긴 청년이 이민기의 얼굴을 깊게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잠시.
보조개가 패일 만큼 활짝 웃으며 외쳤다.
“혹시 다이빙 리 아니야?!”
“…….”
다이빙 리?
그의 별명이자 밈이기도 한 그 단어에 이민기의 표정이 황당함에 물들었다.
그런데 이어서 좌우로 나열한 두 명의 청년도 감탄하듯 말했다.
“맞네.”
“와우, 다이빙 리를 실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말했잖아. 다이빙 리 맞다고.”
어쩌라고.
내가 다이빙 리가 맞긴 하다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민기가 좀처럼 대답을 못 고르고 있는데, 뒤에 선 험상궂은 스킨헤드 스타일의 청년이 앞으로 걸어나와 이민기의 코앞까지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슥.
가죽 점퍼 속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듯 손을 집어넣었다.
‘총? 칼?’
이민기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달아나려 작정한 찰나.
“우리, 당신 팬인데.”
청년이 영화 티켓을 내밀었다.
[The war of all against all]이라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인쇄된 티켓이었다.즉, [만만투] 티켓이었다.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줄 수 있어요?”
“예?”
사진?
무슨 말이지.
내가 리스닝이 안 돼서 뭘 잘못 들었나?
눈앞의 현실과 이민기의 머릿속 끔찍한 상상이 좀처럼 매칭이 안 되는 가운데, 올백 청년이 입을 열었다.
“……안 되나? 나 이거 개봉하는 거 당일에 보러 가려고 오늘 휴가까지 냈는데.”
그 말에 옆자리 대머리 청년이 툴툴거리듯 말했다.
“어쩌라고. 그나마 넌 휴가지, 난 가게 문을 아예 닫고 왔다고. 아내한테 들키면 큰일 나.”
“네 아내지, 내 아내는 아니잖아.”
유부남이셨구나.
[만만투] 보려고 이 이른 시각에 여기까지 찾아왔고.아직 상영까지 30분이나 남았는데 주변 골목에서 시간 떼우던 참이었고.
‘와.’
이민기가 허탈한 마음에 중얼거렸다.
“사진 찍는 건 좋은데.”
심장 두근거렸던 게 억울해서라도 뭐 하나는 받아가야겠다.
“그냥 제 SNS에 올라갈 인증샷도 하나 찍을래요?”
* * *
[만만투]가 한국보다 일주일 더 빨리, 미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했다.큰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
영화의 품질이 제아무리 좋다고는 하나, 유통망이 중요한 오프라인 영화 시장의 특성상 힘겨운 싸움이 예상됐다.
당장 개봉일부터 평일이지 않나.
영화라면 자못 첫날 스코어 펌핑을 위해 주말에 개봉하는 게 정석인데, [만만투]는 이것마저도 무시당한 것.
[최종 5천만 달러만 달성해도 잘한 거지.] [5천만이 우습냐? 한국 영화 중에서 5천만 찍은 게 얼마나 있다고.]미국인들은 물론, 한국인들까지 모두가 별 기대를 안 하는 가운데.
[만만투]의 첫날 매출액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120만 달러]매출 12억 원.
미국의 대박 영화들의 스코어가 보통 개봉 첫날에 수천만 달러.
흥행의 기준치로 잡는 첫 주말 수익에서 1억 달러에 근접하거나, 넘긴다는 걸 생각해 보면 한없이 초라한 수치였다.
120만 달러.
그저 그렇게 망한 작품 중 하나라고 말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숫자.
한 달은커녕 보름이면 매출 부진으로 극장에서 내려갈 것만 같은 숫자.
하지만.
그러한 작품들과 [만만투]의 사이에는 한가지 아주 거대한 차이점이 있었다.
[개봉관 좌석 점유율 81% 달성]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