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58)
운빨로 탑스타-158화(158/200)
제158화
[만만투]가 극장가에서 돈을 갈퀴로 쓸어 담고 있는 게 3주일째.#1 – The war of all against all
#2 – [SPEAR]
미국에서 여전히 신드롬을 이어나가며 [스피어]를 완벽하게 2인자로 만들어버린 가운데, 넷플레이에서 개봉하기까지 불과 며칠을 남긴 상황.
심성보 감독은 모처럼 여유를 누리고 있었다.
‘이제야 밀린 책도 읽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겠군.’
몇 달을 관절이 갈려 나가도록 고생했다.
그렇다면 남부럽지 않게 쉴 자격도 있는 거 아니겠나.
마침 준비하고 있는 일도 하나 있었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안식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윌리엄 록하트?”
이민기가 새로운 일감을 물어다 왔기 때문이었다.
집들이를 핑계로 선물 보따리를 들고 심성보 감독의 자택에 방문한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네, 감독님 스타일이랑 딱 맞을 것 같아서요.”
“……윌리엄 록하트의 곡이 들어가는 새 영화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윌리엄 록하트의 곡으로 만든 영화요.”
“예?”
“전곡 다.”
그리 말하는 이민기의 표정이 무조건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일단 지르기는 질렀다.’
윌리엄 록하트의 제안을 이민기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건 받아들인 거다.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작품이 아니지 않나.
‘감독님의 협조가 꼭 필요해.’
[만만투] 덕에 천재 감독으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 지분의 97.8% 정도는 두 감독에게 있다.이민기는 자기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줄 알았다.
‘나 혼자서 찍느니, 안 찍는 게 나아.’
그가 참여하지 않거든, 이번 제안은 아예 백지화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욕심난다고 해서 객기를 부리면 망해.’
현대 사회에서 괜히 전문가의 영역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심성보 감독. 진주연 감독.
이 둘 없이 신작은 없다.
그러하니 당연히 이 둘을 설득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그런 작품을 왜 제게.”
“감독님이 적임자셔요. 그리고 이건 제가 감독님께 요청한 게 아니에요.”
“그 말씀은.”
“윌리엄 록하트가 감독님의 손길을 직접 요청한 거죠.”
“……!”
심성보 감독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뜬 가운데 이민기가 침착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더불어, 저도 감독님이 찍는 작품이 아니라면 출연할 생각 없어요.”
“허어.”
“같은 소재로 다른 감독님과 찍을 바에는 그냥 안 찍을 겁니다.”
압도적이다.
마치 콘크리트 다리를 두드리는 듯한 거대한 신뢰감 앞에 심성보 감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날 그렇게까지 고평가하고 계시는 건가.’
솔직히 감독으로서는 고맙다.
황송하기까지 했다.
이민기라는 거물 배우의 평가이기 이전에, 이민기라는 사람의 과거부터 보여주었던 일관성이 그러했다.
‘처음 보셨을 때부터 날 계속 저런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지.’
뜬 사람에게 아부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민기라는 사람의 태도에는 시종일관 같은 구석이 있었다.
‘눈빛이 변하지 않는다.’
뜨기 전과 후에 차이가 없었다.
당연하다.
첫 만남부터 뜬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었으니까 시선이 달라지면 그게 더 이상하지.
하지만 어찌 됐든 심성보 감독의 생각이 그러했고.
그 판단만큼이나 이민기는 실제로 심성보 감독의 능력을 완벽하게 신뢰하고 있다.
괜히 오늘 한우 선물 세트를 무려 3kg씩이나 들고 온 게 아닌 것.
핑크색 아령과도 같은 몸무게였다.
‘하지만 음악 영화라. 그것도 윌리엄 록하트.’
심성보 감독이 바로 대답을 꺼내지 못한 채 턱을 쓰다듬었다.
최근 휴양 삼아 스위스에 여행을 다녀왔다는 심성보 감독의 턱은 풍채 넘치는 수염으로 가득했다.
‘배우님께서 찍고 싶으시다면 작품이라면, 받은 은혜 때문에라도 승낙하는 게 맞겠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러했다.
망해가는 스튜디오를 살려내 준 게 이민기이니.
하지만.
그에게는 이민기의 제안을 섣불리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확답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 *
“네?”
이민기가 놀라서 짧은 음절을 뱉었다.
‘이거 나가린데.’
심성보 감독이 안 받아들이면, 이거 망하는 건데.
이민기의 속내가 다 드러날 정도로 투명한 반응에, 심성보 감독은 일말의 죄책감마저 느끼며 입을 열었다.
“촬영 과정에서 걸리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걸리는 점이라면 어떤.”
“이런 음악 영화를 찍을 때의 고질적인 리스크입니다.”
이민기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는 듯 심성보 감독이 말을 이었다. 말했다.
“분명 배우님의 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윌리엄 록하트라는 배우의 이름값만큼이나 화제성도 충분하겠지요. 하지만 저쪽에서 먼저 접선해 왔다는 게 걸리는군요.”
“어째서죠?”
오히려 저쪽에서 호의적으로 봐준 셈이니 좋은 일 아닌가.
이민기가 의아한 마음에 되물은 찰나, 심성보 감독이 찻잔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영화에 음악을 맞춘다면 모를까, 음악을 기반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이잖습니까.”
그가 손에 든 얼그레이를 한 모금 들이켰다.
영국에서 사 온 최고급품.
화두 하나를 던지고 목을 가볍게 축인 그의 입에서 뒤따라 나온 말은 썩 그럴듯한 것이었다.
“윌리엄 록하트가 제작과정에 간섭할 수 있습니다.”
“……!”
“옛말에 사공이 많은 배는 산으로 간다고 합니다만, 사공조차 아닌 인물이 영화에 간섭한다면 맨틀로 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심성보 감독이 입을 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눈이 먼 어린아이가 조타수를 잡는 꼴이 된다. 이 말입니다.”
합리적인 지적이었다.
제작의 방향성이 흔들린다는 것.
어째서일까.
어째서 영화 제작 환경에서만큼은 감독이 무소불위라는 단어로 표현될 만큼 압도적인 권력을 가지는가.
그건 바로.
“윌리엄 록하트가 과연 영화 내용에 간섭을 안 할까요?”
태클을 걸 여지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참고 참아, 대사 몇 줄에 불과한 아주 사소한 수정을 요구한다는 것조차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에서는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왜 음악 영화라는 흥행이 보장된 카드를 제작진들이 남발하지 않는가.
불안정하기 때문이었다.
‘영화업계의 전문가라고 봐도 좋을 영화사들의 지적조차도 까다로울 때가 많은데, 하물며 음악 업계는 차원이 다르지.’
뮤지컬 영화 한 편을 찍는다고 치자.
IP를 쥔 제작사들이 간섭한다.
곡의 저작권을 가진 원곡 작곡가가 간섭한다.
여기에 최악의 상황으로는, 그 뮤지컬의 팬들조차도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원작을 가진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바닥부터 작품을 만드는 게 더 쉬운 상황이 대부분입니다.”
이민기가 건네는 의견처럼 쓸모 있는 의견만 쏙쏙 날아오는 게 아니다.
보통은 듣느니만 못한 쓰레기 같은 것들이었다.
본인들 딴에는 꽤 괜찮아 보이겠지만, 감독의 입장에서 보자면 큰 그림을 볼 줄 몰라서 내놓는 단편적인 지적들.
‘그렇다고 하나하나 설득할 수도 없고.’
적당히 묵살하고 넘어가는 게 관례가 된 것이다.
현장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은 감독 하나로 충분하다.
“배우님께서 절 배려해 주신다는 점은 언제나 감사히 생각하고 있으나, 모두가 그렇지는 못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창작자 중에서는.”
“음, 잘 알죠. 감정 기복 심하고 소소한 디테일 하나로 시비 걸릴 때 많은 거.”
“정확합니다.”
이민기의 감정을 자극하기 싫은 심성보 감독이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전 윌리엄 록하트라는 가수가 그런 사람일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위험 부담을 줄이고 싶다.
PTSD에 걸린 군인 이야기를 그리려는데, 전반부에서 전쟁 장면을 제외하는 게 말이나 되겠나.
그런 사소한 수정조차 영화의 질 전체를 깎아내린다.
샐러드의 신맛이 싫다고 느끼하기 짝이 없는 기름 덩어리 음식을 그대로 제공하는 것과도 같달까.
심성보 감독이 크게 경계하는 부분이 이것이었다.
‘윌리엄 록하트는 거물이니, 작품 속에도 크게 개입하려 들겠지.’
하지만.
그는 아직 몰랐다.
이 부분은 사실 이민기가 윌리엄 록하트와 이야기가 끝난 부분이라는 것을.
“아, 그런 이유였으면 미리 말씀을 주시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민기가 순간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치 이런 지적 정도는 예상했다는 것처럼.
‘뭐지?’
심성보 감독의 미간에 의문이 착 달라붙었다.
이민기의 표정이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까, 그의 이야기를 듣기 전보다도 표정이 한층 더 밝아져 있었다.
왜냐.
“그런 이야기라면, 괜찮아요”
이민기 또한 저런 리스크를 한참 전에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저도 감독님한테 누가 삿대질하고 휘두르려고 하고 그러는 거 싫었거든요. 자기가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해도 어딜 감히.”
“예? 그 정도까지는 아닌.”
“사전에 다 이야기해 놨어요. 감독님한테 작품을 요청하고 싶으면, 되도록 전권을 넘겨달라고.”
“……!”
그렇다.
이민기는 사전에 윌리엄 록하트에게서 협상으로 얻어낼 부분을 충분히 얻어내고 왔다.
‘차라리 쉬고 싶어서 안 찍는다거나, 음악 영화에 관심이 없다고 하시면 어쩌나 했네.’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
정말로 어쩔 수 없지.
당사자가 기호 문제로 싫다고 하는데 어쩔 텐가.
하지만 타협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면, 충분히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다.
“뭘 찍든 간섭 안 하겠다네요. 감독님 찍고 싶은 작품 찍으시면 돼요.”
그럼에도 심성보 감독은 이민기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배우님이 아니라, 윌리엄 록하트를.”
“아직도요?”
“당연한 겁니다. 막상 그래놓고 자기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만 손을 안 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아, 그런 부분.
촬영 외적인 부분에서 간섭하고 시작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것도 잘 해결됐지.’
윌리엄 록하트라는 사람은 성격은 심성보 감독의 예상과는 꽤 달랐기 때문이었다.
“자기 곡으로 아예 SF를 만들어도 신경 안 쓴다는데요?”
그것도 지극히 감독의 권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음?”
황당함에 물든 심성보 감독의 얼굴에 긴장이 풀려버린 이민기가 아예 큭큭 웃으며 말했다.
“서부극을 찍어도 되고, 로맨스를 찍어도 되고, 코미디를 찍어도 되니까 만들어만 달래요.”
“…….”
“이건 어디 밖에 새어나가면 안 되는 말인데, 포르노를 찍어도 뭐라고 안 하겠대요.”
포르노?
그렇게까지나?
이쯤 되면 문제 있는 거 맞지 않나?
심성보 감독이 눈썹을 씰룩거린 사이 이민기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어차피 자기는 음악이나 할 줄 알지 영화 같은 건 건들 줄 모른다면서, 맘대로 하라네요. 대신 곡 제작만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그렇다.
윌리엄 록하트는 스토리를 비롯해 모든 전권을 이민기를 비롯해 창작 집단 [중립지대]에게 위임했다.
아주 완벽하게.
[굳이 노래 내용은 의식하지 말자고요. 그런다고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지도 않으니까. 이 노래 좋죠? 주인공이 잠꼬대로 중얼거려도 되니까 상황은 알아서.]이민기가 그 대화를 되새기며 말을 이었다.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계약서상으로 ‘스토리에 대해 수정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을 명기해 주겠다며 확실하게 의지를 밝히더라고요.”
소송 천국인 할리우드 출신 아니랄까 봐 계약서까지 써 줄 생각을 했다.
그만큼 자기 영역과 타인의 영역을 철저하게 분리한 것.
“윌리엄 록하트는 말 그대로 그냥 OST 담당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대신 그 OST가 스무 곡쯤 되겠지만.”
설명을 전부 들은 심성보 감독은 털이 두툼히 자란 뺨을 실룩거릴 뿐이었다.
“……사람이 좀 독특하군요.”
알지.
독특하지.
이민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보통, 그런 타입은 자기 능력에 자신감이 너무 넘쳐서, 다른 분야를 무시하고 그런데요. 감독님도 아시죠?”
“흔히들 그렇죠.”
“네, 다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하죠. 안 해본 것도.”
윌리엄 록하트는 안 그랬지만 말이다.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세계 일인자에 준하는 자신감을, 타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의 위치를 고수했으니.
‘아니지, 세계 일인자 맞으니까.’
그야말로 한없이 객관적인 인물일 수도 있겠네.
이민기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하실 거예요? 아니면 마실 거예요?”
외통수구나.
Yes or no의 선택지 앞에서 심성보 감독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이 어딘가 의미심장해서 이민기의 심장이 조마조마해진 찰나.
“왜 굳이 물어보시는지 이상하군요.”
심성보 감독이 자그맣게 웃으며 말했다.
“제게 선택권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