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59)
운빨로 탑스타-159화(159/200)
제159화
긴 대화 끝에.
심성보 감독의 입에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제게 선택권이 있습니까?”
“……!”
그 말에 이민기가 눈을 크게 떴다.
저거, 동의한 거지?
동의 맞지?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이민기는 아주 부드러운 케이크처럼 한입에 꿀꺽 삼켜버리고 싶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당근을 던져보기로 했다.
“물론이죠.”
이민기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현재진행형으로 세계 최고의 감독님이시잖아요? 감독님이 싫으시면 윌리엄 록하트라도 대수가 아니죠.”
“허.”
이건 좀 세네.
노골적인 아부 앞에 심성보 감독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계약서에다가 조항 하나둘 적어주는 게 그리 중요해요? 저한테는 감독님 이름이 곧 최고의 계약서인데.”
말을 저렇게까지 하다니.
이쯤 되면 뭐라고 해야 할까.
‘치사하시군.’
거절할 수가 없지 않나.
심성보 감독이 마음속 깊이 자리를 잡아버린 감정 앞에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깔아놓은 판 위에 말려든 것 같아.’
이민기라는 사람은 처음 봤을 때부터 같았다.
거부하기 어려운 조건을 갖춰놓고, 그걸 자발적으로 손에 쥐게 만든다.
‘무서운 능력이야.’
기분 나쁘지 않게, 자발적으로 만들게 한다는 점이 그러했다.
감독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잠시 뒤.
심성보 감독에게 들려온 대답은 썩 인상적인 것이었다.
“미리 할 말이 있습니다. 원래 이건 나중에 말하려고 했습니다만.”
그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주연이랑 허니문 다녀온 뒤에 작업 시작하는 거로 하죠.”
허니문.
단적으로 나온 그 단어 하나에 이민기의 표정이 우스꽝스럽게 구겨졌다.
“네? 허니문이요?”
허니문?
갑자기?
허니문이 내가 아는 그거 맞나?
결혼식 끝나고, 같이 신혼여행 다녀오는 그거?
이민기가 눈을 깜빡이는데 심성보 감독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독일에서 영화제를 보고 온 날, 그날 저녁에 프러포즈를 마쳤습니다.”
“그렇게 빠르게요?”
“결혼식은 인원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스몰웨딩으로 간소하게 치루기로 했습니다.”
“좀 성대하게 하셔도.”
“주연이가 싫다고 해서요.”
“아.”
신부가 그렇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이민기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는데 심성보 감독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참고로, 배우님은 꼭 참석하셔야 합니다. 또 참고로, 이것도 주연이가 신신당부한 겁니다.”
그렇구나.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말이 아침 식사 메뉴 이야기처럼 가볍게 흘러나오는 상황에 이민기가 눈을 깜빡거리다가 말했다.
“감독님 혹시, 사회 볼 사람은 구하셨어요?”
“아직…….”
심성보 감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민기가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제가 할게요.”
이 정도는 해 둬야겠다.
가뜩이나 운빨 좋은 삶이니까, 결혼식에도 운 좀 뿌려야지.
* * *
며칠 뒤.
심성보 감독과 진주연 감독의 결혼식은 [만만투] OTT 개봉일에 이루어졌다.
일약 월드스타로 떠오른 두 감독의 명성에 비해 방문객의 수는 적었다.
‘친한 지인만 부르셨다더니.’
진짜로 친한 사람만 불렀네.
‘내가 말을 잘못 들었나? 스몰 웨딩이 아니라 스물 웨딩이었어?’
딱 스물이었다.
직원들 빼고 참석한 하객이 스물.
비즈니스 파트너나 업무상 얽히는 업계인들을 거의 다 제외하고, 정말로 친한 사람들만 초청한 결혼식이었다.
‘심성보 감독님이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했나.’
어려서부터 보육원에서 자라셨다 하셨지.
문득, 이민기는 진주연 감독이 스몰웨딩을 고집했던 이유를 조금은 깨달았다.
화려한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 양측의 하객 수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비교가 된다.
그 하객의 대다수는 부모의 인맥으로 구성되기 마련이고.
‘결혼식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겠지.’
역시, 진주연 감독은 속이 깊다.
하지만 이민기는 본인조차도 진주연 감독의 계략에 속해 있다는 걸 몰랐다.
압도적인 인맥이 하나 있다면 나머지 하객은 소소해지는 법.
이민기가 마침 그런 사람이었고.
“저거 봐.”
효과가 죽여줬다.
결혼식장에 입성한 이래, 온 사방에서 그를 두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들릴 만큼 들려왔다.
“진짜 이민기네.”
“성보가 출세하긴 했구나.”
“……화보 속 어깨가 합성이 아니었어.”
“배우들 실물 좋긴 좋다더니.”
“내가 친구를 잘 사귀긴 사귀었네. 성보 덕분에 이민기를 옆에서도 다 보고.”
이목이 굉장하다.
여기가 심성보&진주연 감독 부부의 결혼식장인지, 그의 팬미팅 장소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굉장했다.
‘으음, 그나마 안 튀려고 옷도 최대한 수수하게 입고 왔는데.’
이민기 본인은 나름대로 노력했다만, 안타깝게도 의미가 없었다.
타고난 피지컬이 좋을뿐더러.
[수수하게, 주문 이해했습니다.]그의 전속 스타일리스트, 유규언 대표는 수수함 안에서도 미학을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수수함이라는 단어가 곧 멋의 결핍으로 이어져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심플 이즈 베스트라는 말이 있듯, 기본을 잘 갖춘 수수함은 단정함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고는 합니다.]유규언 대표의 열정이 한껏 묻어난 덕에, 지금 이민기의 복장은 그야말로 단정함의 극치라고 봐도 좋았다.
그리고 단정함이란 좋은 피지컬과 환상의 궁합을 보이는 법.
“핏 좀 봐.”
“어디 명품이지?”
“배우들은 옷도 다 전용으로 협찬받는다던데.”
이민기는 향이 뛰어난 꽃과도 같아, 스스로를 감춘다고 감출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 덕에 이민기는 노력해야 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에게 갈 시선을 뺏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정작 진주연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저게 내 남자 인맥이다.’
자기 인맥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겸사겸사 약속대로 이민기가 사회도 소화했고.
“처음 봤을 때부터 두 분이 결혼할 것 같기는 했는데, 이렇게까지 빠르게 할 줄은 몰랐어요. 결혼식 초대를 일주일 전에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그래도 우리 감독님이니까 올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사회다 뭐다 무슨 일이 있었나 기억도 희미한 다사다난한 결혼식이 흘러간 뒤.
바쁜 일이 대강 흘러가고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시간.
“경치가 좋지 않습니까?”
“그렇네요.”
다가온 심성보 감독의 질문에 이민기가 슬쩍 고개를 돌려 테라스 너머를 바라보았다.
강원도의 어느 프라이빗한 별장이 그 결혼식장이었다.
스몰웨딩이어도 행사장 임대료는 별 차이가 없다나.
하지만 그 값어치는 했다.
‘아마 감독님은 지금이 태어나서 제일 행복하시겠지?’
경치가 죽여준다.
산속 별장에서 이뤄지는 동화 같은 결혼식장 분위기에 이민기도 잠깐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결혼이라.’
나도 언젠가는 결혼을 하게 될까.
당장은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지금부터 찾아야 하나.
괜한 상념에 빠져 있으려니, 주의를 일깨우듯 심성보 감독이 말했다.
“배우님, 바쁘실 텐데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저도 쉬는 시기고.”
이민기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사회 보겠다는 사람이 바쁘다고 빠지는 건 당연히 말도 안 되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제가 괜한 말을.”
심성보 감독이 멋쩍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사이 이민기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한적하니 좋네요.”
“옛날에 주연이랑 약속했거든요. 너무 시끄러운 건 싫다고.”
“결혼식을 너무 빠르게 하셔서 놀랐어요. 그래도 이것저것 준비 과정으로만 몇 달은 걸리겠지 했는데.”
“배우님 작품 촬영도 해야 할뿐더러.”
말을 꺼내던 심성보 감독이 슬쩍 시선을 돌려, 살짝 떨어져 담소를 나누기 바쁜 진주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연이가 이미 정한 결혼을 미루는 것도 싫다고 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심성보 감독의 얼굴에는 은근한 미소가 걷혀 있었다.
……하지만, 사라지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 이야기하네?”
그 말을 들은 진주연 감독이 옆으로 샴페인을 들고 난입한 탓이었다.
“우리 성보, 언제는 나 놓아주기 싫다고 최대한 빨…….”
“쉿, 쉿.”
심성보 감독이 다급하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민기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잡혀 사시겠네.’
하긴, 그럴 캐릭터이기는 했다.
요새 무게 잡으시길래 사람이 좀 변했나 했더니, 예전 그대로다.
“배우님은 사귀시는 분 없으세요?”
“야! 주연아, 연예인한테 그런 거 물어보는 거 실례야.”
“전 아직 성공이 더 고파서.”
“와, 사람들이 다 배우님 같았으면 저출산으로 인류가 멸종했겠는데요?”
“야! 진주연!”
“소리를 지르고 그래. 배우님은 여자 줄이 설 것 같은데. 신기해서 그렇지.”
“하하…….”
여자라.
또 그 이야기인가.
하지만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일부러 찾아서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오, 자만추?”
“인연이 있으면 오겠죠?”
인연에는 자신 있다.
그게 이민기가 이번 생에 얻은 가장 큰 운이니까.
심성보 감독이 진주연 감독을 만났고, 진주연 감독이 심성보 감독을 만났듯.
‘내게도 그런 운명적인 만남이 거대한 운을 타고 찾아오겠지.’
운은 사람이다.
그 운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이룰 거 다 이룬 뒤라면 몰라도, 지금 당장은 일이 훨씬 더 좋은 게 사실이고.
“후후, 배우님, 결혼생활도 나쁘지만은 않아요.”
“주연아…… 우리 결혼한 지 아직 몇십 분밖에 안 지났어.”
아무튼, 독특하게 시작된 결혼식인 탓일까.
그 결혼식 피로연조차도 독특하기 짝이 없었는데.
바로.
“지금부터 심성보 감독님과 진주연 감독 부부 두 분과 저! 이민기가 만든 희대의 역작, 만만투 상영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야외에서 [만만투]를 프로젝터로 시청하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넷플레이 공개 시간인 저녁 8시로 정확하게 맞췄다.
‘미국에서도 난리 났겠네. 후우, 순위가 잘 나와야 할 텐데.’
이게 지금 이민기가 집중하는 포인트였다.
[만만투]의 OTT 순위가 제대로 나올 것인가 하는 그것.넷플레이의 순위표는 매 10분 단위로 실시간 집계된다.
거기에서 ‘과연 시청 시간 1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가 지금 이 순간 이민기의 최대 관심사였다.
‘보통 초대박 작품은 2시간이면 1위를 먹는다고 했지.’
넷플레이에서 매년 1위를 차지하는 작품들의 평균적인 수치가 그러했다.
[만만투]는 이미 극장에서 대박을 터뜨리기는 했다만, 역으로 그 탓에 이미 본 사람도 많을 터.과연 본선 무대라 할 수 있을 넷플레이에서 성적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으…… 짠내, 퉷! 퉤퉤! 우욱, 어떤 새끼가.]이민기의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에도 영화 속 화면은 차분하게 흘러갔고.
‘슬슬 10분 지난 것 같은데.’
넷플레이 성적에 안절부절못하면서도 피로연 자리이니 당장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기는 눈치가 보여, 한 30분 있다 봐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스륵.
결혼식의 주인공인 진주연 감독이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을 꺼냈고.
화면이 켜진 채 약 12초 뒤.
그녀의 눈이 마치 프로포즈라도 받은 것처럼 환하게 뜨였다.
“감독님?”
잠시 뒤.
그녀는 이민기의 질문에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연하지만.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깔끔하게 엄지손가락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