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6)
운빨로 탑스타-16화(16/200)
제16화
“후후.”
한참이나 연습에 열중하던 이민기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간지러워서 웃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기분이 너무나도 좋을 때 절로 흘러나오는 그 상쾌함이 깃들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음료수 광고로 써도 될 것만 같은 웃음에 유선아가 물었다.
“민기 씨, 무슨 좋은 일 있었어요?”
“아, 네. 그렇죠. 있었어요.”
“그 모델 일?”
“후후, 네.”
이민기가 재차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단순히 모델 일당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었다.
‘설마 한 달 치를 한꺼번에 주실 줄이야.’
모델 월급이었다.
유규언 대표가 그에게 나눠서 주는 것보다는 몰아서 주는 게 좋겠다며, 앞으로 매달 정해진 날에 4회치를 일시금으로 주겠다고 천명했다.
물론, 이민기가 혹여나 도망갈까 봐 보험을 든 것에 불과하다.
목돈으로 던지면 쉬이 못 그만둘 테니까.
하지만 그 덕에 이민기의 머릿속에서 유규언 대표의 이미지는 단순 고용주를 한참 넘어서 버렸다.
‘천사야. 대표님은 천사다.’
그 덕에 인터넷으로 그간 사고 싶었던 것을 잔뜩 주문했다.
번들 쇠고기라면 대신 짬뽕 라면.
유통기한이 임박해 염가에 할인 판매하는 쌀 대신, 맑고 깨끗한 유구에서 자란 유구미 햅쌀.
너무 오래 입어서 색이 바랜 티셔츠 대신 상쾌한 새 셔츠.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있겠나.
‘매주 하루를 바깥일에 할애하는 것만으로 생활이 이렇게까지 윤택해지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콧노래마저 부르고 있으려니 김탁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뭐 좋은 거라도 샀나 봐요?”
“이것저것 샀죠.”
“자동차나 시계? 아니면 집?”
“후후, 농담이 과하네요.”
“음? 저 농담 아닌데.”
김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괜찮은 매물 많이 나왔던데요.”
“네, 네, 알겠습니다.”
더 말하면 뇌절이다.
평소 그리도 가증스러웠던 그의 얼굴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뻔뻔한 표정조차 조금은 봐줄……만하지 않았다.
‘이미지가 쉽게 지워지지 않네.’
김탁이 그럭저럭 모나지는 않은 사람이라는 건 최근 깨달았다.
적어도 그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몇 년씩 품었던 악감정이 금방 씻겨나갈 리가.
뭐, 아무래도 좋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기분이다. 오늘은 학원 끝나고 집 가면 모처럼 닭가슴살 말고 돼지고기 앞다리살 구워 먹어야지.’
마음속으로 하루의 사치를 결정한 순간이었다.
끼익.
연습실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나 왔습니다.”
김아성 트레이너였다.
그는 오늘도 세상만사가 귀찮다는 듯 하품을 내뱉더니 말했다.
“나 지각했나?”
“그렇죠.”
“어제 밤새 회의가 있어서 늦잠 잤네. 마침 오늘 말해 둬야 할 게 있어서.”
무슨 일이 있나.
어딘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세 명의 귀가 쫑긋 세워진 순간이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특별한 건데.”
김아성 트레이너가 목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JC 오디션 일정 나왔습니다.”
* * *
‘드디어!’
이민기가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JC 오디션이다.
지난번 김아성 트레이너에게 말을 전해 들은 뒤로, 확정되는 순간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던가.
혹여 오디션이 허공으로 증발하는 건 아닐까 매일 조마조마했다.
그게 지금 확정된 것이었다.
“일단 전에 말했던 거에서 크게 변동 사항은 없어.”
김아성 트레이너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비공개로 소수 인원만 추천제로 진행할 거고. 전에 말했던 대로 나 외에 두 명이 더 올 거고, 민기 씨랑 선아 씨가 참가할 거야.”
그렇다.
이번 오디션에는 나 혼자 참가하는 게 아니다. 유선아도 그의 추천에 올랐다.
‘하긴, 실력만 보면 충분하기는 하지.’
유선아가 괜히 이 학원에서 기대주로 꼽히는 게 아니었다.
옆에서 두 눈으로 지켜본 봐, 그녀의 성장 속도는 괄목상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남달랐다.
당장은 경험이 부족하니 어수룩하지만, 곧 날개를 펼 터.
“민기 씨, 우리 잘해 봐요.”
그녀가 민기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같은 오디션 참가자끼리 악수나 한번 하자는 것이었다.
이민기가 무의식적으로 그 손을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저는요?”
김탁이 손을 들어 올리더니 김아성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그 오디션 저는 참가 못 해요? 들어보니까 꽤 좋은 것 같던데.”
“흐음, 탁 씨도 참가하고 싶어?”
“네.”
“그건 좀 봐야겠네. 나 혼자서 갑자기 막 결정할 일이 아니라서.”
“우.”
김탁이 아쉽다는 듯 야유를 뱉으며 물러났다.
이민기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원래 이런 건 오디션 당사자 아니면 잘 안 알려주는데.’
김탁은 그래도 지난 한 달 동안 같이 수업을 들은 정이 있어서 알려주나 보다.
아니면 쓸데없이 꼬투리를 잡을 성격이 아니라고 봤거나.
아무튼, 그렇게 해서 가닥이 잡혔다.
김아성 트레이너는 세 사람을 한 차례 훑어보며 아무런 말도 없이 생각에 빠졌다.
그가 말이 없으니 앞의 세 사람도 말이 없다.
마땅한 말도 없이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기를 잠시.
“쉽지 않네.”
김아성 트레이너는 고개를 꺾으며 말했다.
“이대로는 잘 모르겠다.”
“뭐가요?”
“너희가 오디션에 붙는 거.”
“네?”
유선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데 그가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말 안 했었나? 내가 이 학원에 왜 오는지.”
“특강 있어서 온다면서요.”
“맞아, 그런데 그 특강을 받는 사람들이 이번 오디션에 참가할 예정이지.”
“……그쪽 실력이 꽤 좋나 봐요?”
살짝 불길한 뉘앙스가 담긴 질문에 김아성 트레이너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건 너무 당연한 거고.”
“…….”
“안타깝지만 이 학원 구조가 그렇잖아. 더 상위 반 학생이니까 더 잘하는 게 당연하지.”
잼 액팅스쿨의 구조는 크게 나누자면 둘러 이루어져 있다.
취미반과 데뷔준비반.
지금 이 자리의 세 사람은 모두 데뷔준비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학원에 돈을 지불하고 가르침을 얻는 고객이었다. 하지만 간혹 원장의 지시하에 특별한 강의가 개최될 때가 있는데.
“저쪽은 전부 전액 장학금 받으면서 다니는 애들이야.”
바로 장학생 제도였다.
아예 학원 차원에서 돈을 호주머니에 꽂아 넣으면서까지 데리고 있는 학생들이 존재했다.
장학생.
이름만 들어봤던 그 존재에 이민기가 눈을 크게 뜬 사이 김아성 트레이너가 심드렁한 태도를 고수하며 말을 이었다.
“전부 연극영화과 출신 엘리트에 아예 연기 경험을 가진 애들도 있지. 데뷔는 당연한 거고, 언제 어디에 가느냐가 더 중요한 친구들이야. 실력만 보면 이미 프로지.”
일반 학생들은 어디가 됐든 기획사에 넣기만 하면 끝이다.
하지만 장학생들은 그보다도 한 단계 위를 노렸다.
“바로, 이름만 들어도 바로 알 만한 기획사에 집어넣는 거.”
어지간한 기획사는 바라보지도 않는다.
실적이 될 만한 곳만 본다.
이건 그 자체로 학원의 명성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렇기에 굳이 역으로 돈을 주면서까지 데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여기에 데리고 온 것도 그런 이유일 테고.’
JC는 아예 최고는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한 기획사였다.
여기에 그를 징검다리 삼아 수강생들을 꽂아 넣는 게 원장의 노림수였으리라.
‘원래대로라면 민기 씨한테도 장학 시스템의 기회가 있었겠지만.’
떨어졌으니 아쉬울 따름.
김아성 트레이너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게 한숨을 내미는데, 이민기가 손을 들며 물었다.
“제가 저쪽보다 많이 못한가요?”
“그건.”
김아성 트레이너는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말했다.
“꼭 그렇지도 않지.”
“네?”
“오히려 몇몇 부분에서는 더 나아.”
장학생들 실력 좋다면서.
이제는 그가 더 낫다니.
앞서 강조했던 것과는 완전히 뒤집힌 말에 이민기가 의문에 빠진 와중에, 김아성 트레이너가 조목조목 짚었다.
“민기 씨는 실력이 좋고 나쁘고가 문제가 아니야. 오히려 민기 씨는.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 얼마나 더 빛나느냐의 문제라고나 할까.”
빛난다니.
대답이 되기는커녕, 한층 더 의문에 빠진 찰나였다.
김아성이 손가락을 딱 퉁기더니 말했다.
“오디션은 경쟁자를 이기는 공간이 아니라, 심사위원의 눈에 들어야 하는 공간이잖아. 그러니까 경쟁자들보다 뛰어난 것도 뛰어난 거지만, 존재감이 필요해. 훨씬 뛰어나서 나 혼자만 빛날 정도의 존재감이.”
“아.”
“지금의 민기 씨한테는 그 아우라가 필요한 거야.”
김아성이 이민기의 연기를 볼 때 주로 느꼈던 것이었다.
충분히 잘한다.
하지만 그의 연기에는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의 빛을 죽이려는 듯한 뉘앙스가 있었다.
‘이런 건 보통 조연이나 단역 많이 하는 사람들이나 보이는 건데.’
신인들은 대부분 반대다.
나 혼자만 잘나려고 난리 치다가 전체적인 그림을 망쳐버리지.
그런데 이민기는 정반대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힘을 뺀다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트레이너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대체 왜? 지망생이 이 정도로 실력을 갖췄으면 자만심이 생길 법도 한데, 왜 자꾸 자기를 못 낮춰서 안달이지?’
영문을 모르겠다.
이대로도 당장 조연 자리에 앉혀 놓으면 굉장하겠지.
하지만 오디션은 조연이 아닌, 주연을 지향해야 하는 자리다.
설령 끝내 조연이 될 사람이라도 오디션에서만큼은 주연을 지향해야 한다.
밝게 빛날 줄 아는 모니터는 자유롭게 광량을 조절할 수 있지만, 타고난 광량 자체가 작은 모니터는 정작 빛나야 할 순간에 초라해지는 법.
다온 엔터 오디션에서는 이 작은 광량을 역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이민기에게는 필요했다.
타인을 제칠 만큼의 주연으로서의 존재감이.
‘고만고만한 놈들 사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하지만 나 혼자 잘났다는 놈들 사이에서 튀려면 맛이 조금 달라야지.’
그걸 빠르게 얻을 방법.
김아성 트레이너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다고.”
그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솔직히 지금도 크게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모자라지 않은 정도만 생각하면 배우 일은 못 해 먹잖아?”
그렇게 일련의 말을 쏟아낸 순간이었다.
“맞아요.”
한참이나 이어진 김탁의 말에, 이민기는 공감한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더 잘해야죠.”
잘해야 한다는 말.
장학생들을 밑으로 깔아 조연으로 만들겠다는 말이었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 튀어나왔다.
정석인 것을 넘어 무모하게마저 느껴지는 그 자세에 김아성 트레이너가 작게 실소했다.
‘보통 저런 말이 쉽게 나오나. 내가 먼저 꺼내기는 했다만.’
역시, 자세가 됐다.
이민기는 지망생들과는 어딘가 마인드가 원초적으로 달랐다.
이 업계를 겪다 보면 기본적으로 프로의 마인드가 안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운이 나빠서, 인맥이 모자라서, 시류를 못 타서, 투자자가 갑질해서. 여러 가지 변명이 존재했다.
그런 걸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겠지.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당장 몇 년이라면 몰라도, 십 년 뒤에도 자리에 남는 건 언제나 정직하게 실력을 늘린 사람이었다.
“옛말에 부처님 가라사대.”
김아성은 일말의 뿌듯함마저 말하며 말했다.
“지금부터 가르침을 줄 테니 알아서 받아적어라. 폰트는 12pt에 바탕체로.”
응.
부처님 그런 말 안 했잖아.
이민기는 산뜻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결과적으로 말해서, 김아성 트레이너가 편법을 제공한 건 아니었다.
오디션 내용을 유출한다거나.
뒤에서 로비를 넣는다거나 하는 등의 노골적인 수를 쓰지는 않았다는 말이었다.
오디션에 참가할 심사위원들도 오디션 며칠 전에나 확정되니, 미리 취향에 맞춰 준비해 봤자 별 의미 없다고 했고.
하지만.
그는 마땅히 가르침이라고 할 만한 것을 제공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이게 훈련이 될지 모르겠는데.’
경기장.
야구 경기장 관중석의 한가운데에 선 이민기가 작게 웃으며 생각했다.
‘연습보다는 실전이 최고라고 했지.’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존재감을 과시하지 못해서 안달인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보는 게 최고라고 했다.
얼핏 공감하기는 했지.
‘하지만 설마 이런 식일 줄이야.’
넋이 나간 이민기가 허탈하게 웃음을 짓는데, 옆자리 사람이 한 손에 맥주캔을 콰득 우그러뜨리며 외쳤다.
“그따위로 할 거면 해체하라!”
그 소리에 호응해 뒷자리 사람이 외쳤다.
“해체하라!”
“해체하라!”
한국 스포츠 훌리건의 고향이자 본진.
야구 경기장.
이민기가 그곳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