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61)
운빨로 탑스타-161화(161/200)
제161화
그렇다.
이민기는 백룡영화제 시상식에 참가했다.
그것도 제일 좋은 자리 중 하나에 앉은 이민기가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황의성 감독님 파워가 좋기는 좋아.’
황의성 감독의 이름은 곧 한국 영화계에서 예술 영화 그 자체로도 통한다.
상업성을 아예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예술에 몰빵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워낙 작품성으로 인정을 받는 감독이다 보니, 자연히 백룡영화제 기회도 따라온 것.
‘하, 신난다.’
시상식이라니.
내가 여기에 서다니.
원래는 꿈에서조차도 못 서던 게, 아니, 꿈에서도 설 기대조차 못 했던 게 백룡영화제였는데.
‘현실 맞나? 와, 샹들리에 화려해.’
반짝반짝한 실내를 구경하며 감탄을 연발하고 있으려니, 옆자리에 앉은 황의성 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민기 씨는 지금까지 받은 상이 없군요.”
“…….”
“초대받은 적도 없을 것 같고.”
말이 세다.
하지만 이민기는 이미 황의성이라는 사람의 화법에 통달한 자.
저 말을 뇌내 알고리즘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받은 상이 없군요. 초대받은 적도 없고.]에라이.
틀렸다.
해석하려고 해도 똑같은 대답이 나온다.
그간 다른 작품 찍는다고 떨어져 지냈더니, 얼마나 지났다고 통역기 성능이 무뎌졌나 보다.
“작품 선택 문제가 좀 있었죠.”
이민기가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제 데뷔작은 청춘 로맨스물이었는데, 사실 그 장르가 상 받기는 좋지 않다 보니까.”
“언제까지고 푸르른은 상을 받을 목적으로 찍은 작품이 아니었고.”
“네, 오락성에 집중한 영화니까요. 끝내주게 재밌지만.”
“카페 델 디아는?”
“으음, 음식을 소재로 찍은 작품은 시상식에서 워낙 불리해서 아닐까요.”
흔히 있는 말이었다.
백룡 영화제 평가위원들이 음식 소재 작품을 그리 안 좋아한다는 것.
그래서 그쪽 작품을 찍으려 하면 이런 말까지 따라왔다.
[상 받기 싫은가 보네.]그만큼 불리하다는 뜻.
덕분에 그간 상 하나 못 받은 게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겨 이민기가 작게 웃고 있는 참이었다.
“평가위원들은 눈이 없으니 말입니다.”
“…….”
“언제나 자기들의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지요. 21세기가 되어서도 흑백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입니다.”
아뿔싸.
저렇게까지 말을 거세게 하다니.
‘그러고 보니까 평론가들 어마어마하게 싫어하셨지.’
이 사람, 평론가들이 자기 작품에 삿대질하는 건 싫어하는 성격이었지.
꼬투리 잡는 건 더더욱 싫어했고.
그나마 공평한 건, 저쪽에서도 황의성 감독을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점.
[상대가 널 이유 없이 싫어한다면, 싫어할 만한 이유를 하나 만들어 줘라.]저 말을 완벽하게 반박하는 황의성 감독의 행동에 이민기가 쓴웃음을 지었다.
‘중립지대에 들어오셨더라면, 중립지대에서 찍은 작품도 상을 못 받았으려나.’
가능성은 있다.
한국에서는 스튜디오 이름보다 감독의 이름이 가지는 브랜드가 훨씬 더 크니까.
하지만 그래도 중립지대에 초대하지 못한 건 아쉬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절당했다.
[사람 관계에 엮이는 걸 그리 좋아하질 못해서.]참 단순한 이유로.
이민기가 말없이 아쉬움을 삼키는 사이에도, 그 장본인인 황의성 감독은 이민기가 말을 하든 말든 자기가 할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가정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모든 걸 싫어하게 교육을 받았으니,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겠지요.”
“…….”
여기서 패드립을?
언제 이렇게 수위가 높아졌지?
아무리 그래도 여기 영화제 시상식장인데.
급히 주위를 둘러보려니,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커흠.”
“날씨가 덥네.”
은근히 공감하면서도 대놓고는 공감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리라.
나름 권위자라는 사람들한테 찍혀서 좋을 게 없으니까.
에라이, 모르겠다.
이 사람이 내 감독인데 반박해 봤자 어쩌겠나.
‘아, 결과나 잘 나왔으면 좋겠다.’
이민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오스카를 목표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 다니지만, 국내 영화제 상 하나 못 받고 오스카상을 받겠다고 하면 좀 그렇지 않나.
‘가능하면 이번에 미련 털고 싶다.’
그렇게 이민기가 터질 듯 가슴을 움켜쥐는 와중이었다.
“어이쿠, 요란해서 찾아와 보니까 이게 역시나 누구신가.”
한 남자가 코웃음을 치더니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예술병 환자분 아니신가?”
“…….”
누군데 말을 저 따위로 하지.
뒤통수가 이민기 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목소리는 낯익은 것 같기도 하고.
이민기가 그 정체를 확인하려 고개를 튼 찰나, 사내가 먼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바라봤다.
“흠.”
그러기를 잠시, 다시 황의성 감독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황 감독은 여전히 배우 괴롭히면서 미안하지도 않나?”
* * *
갑작스럽게 끼어든 남자의 말투에 어떤 못 배워먹은 놈인가 이민기가 눈살을 찌푸리기를 잠시.
이내 그 정체를 확인하고는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이 사람, 상업 영화의 신 오경욱이잖아.’
그렇다.
오경욱.
한국 영화계에서 손에 꼽는 스타 감독, 그 오경욱이 저 무례한 발언의 주인공이었다.
업계인들로 북적거리는 회장 안에서도 인지도로는 걸출한 세 사람인 만큼, 어느새 이목이 크게 쏠렸다.
하지만 오경욱 감독은 주위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아니, 오히려 즐기듯이 말했다.
“황 감독,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을 하는 것도 좀 고달프겠어. 그렇지?”
누가 봐도 황의성 감독의 고질병을 긁는 발언이었다.
바로, 시상식에서 유독 약하다는 것.
그의 작품 탓이 아니었다.
작품만 보면 워낙 완성도가 높을뿐더러, 예술 노선을 타 수상하기에도 유리해야 정상이니까.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황의성 감독님이 평론가들이랑 사이가 진짜 나빴지.’
업계의 높으신 분들과 한결같이 앙숙 관계라는 것.
더불어, 이 사람과도 말이다.
걸친 턱시도만큼이나 뺨에 귀티가 줄줄 흐르는 남자, 오경욱 감독 말이다.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이라면 이 두 사람의 경쟁 구도를 모를 수가 없었지.’
황의성과 오경욱.
두 사람 다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비슷한 시기에 충무로에서 등단했다지.
비슷하게 천재 신인 감독으로 유명했고.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작품 성향은 성격만큼이나 극단적으로 달랐다.
‘황의성 감독은 극단적인 예술성에 최소한의 상업성을 섞고. 반대로 오경욱 감독은.’
이민기가 경박하기 짝이 없는 오경욱 감독의 표정을 바라봤다.
‘철저하게 상업적인 영화를 밀어붙였지.’
관객 동원에 모든 걸 건 작품.
작가주의나 미쟝센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더라도, 일단은 잘 팔리는 영화가 오경욱 감독의 전공 분야였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국뽕 영화 같은 거.
알면서도 당하는 신파 장인, 그게 오경욱 감독이다.
당연히 황의성 감독과는 서로 완벽하게 상극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시상식 심사위원들은 오경욱 감독을 선호했다.
‘업계인들 사이에서 눈치를 워낙 잘 살핀다고 했었나. 평론가들한테 깍듯하고.’
황의성 감독은 정반대.
남이 자기 작품을 내려다보듯 평가하는 그 시선 자체를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뭘 기대하는 건지 매년 시상식장에는 등판한다만.
‘꿋꿋이 상을 안 주는 심사위원들 상판 구경하러 오나?’
이렇게까지 서로 다르니 앙숙이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다.
묵묵하게 자기 길을 걷는 사람.
그리고 철저하게 타인의 눈높이를 계산하고 공략하는 사람.
이 둘은 태생부터가 물과 불처럼 다를 테니.
그중 후자인 오경욱 감독이 이죽거리듯 입을 열었다.
“황 감독도 일류니까 잘 알겠지? 예술이라면 자고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는 거 말이야.”
번지르르한 말투와는 달리 속내는 좀 달랐다.
네 예술을 인정해 주는 시상식이 이 세상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었다.
“아, 물론 황 감독의 작품에 예술성이 없다는 건 아니야. 마니아층은 분명히 있지. 그런 작품도 이 시장에는 필요해. 이건 내 인정하지.”
아무런 말이 없는 황의성 감독의 앞에서 오경욱 감독이 노골적인 조롱을 쏟아냈다.
후안무치하다.
하지만 그럴 만한 입지의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
이렇게도 무례한 말이 쏟아졌음에도, 황의성 감독은 아무런 반박 없이 가만히 있기만 듣고만 있는 듯했다.
주눅이 든 걸까.
아니면 반박할 거리를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 걸까.
확실한 건.
‘꼴 좋군.’
오경욱 감독은 그걸 자신의 완벽한 승리로 해석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묵묵부답인 황의성 감독의 모습에 코웃음을 치더니, 이민기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 배우님, 배우님도 황 감독이랑 같이 찍으면 앞으로 상 타기는 글렀어.”
“…….”
“차라리 다음 작품은 나랑 같이 찍는 게 어때?”
그 말에 이민기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선을 넘었다.
명백히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감독 앞에서 그 주연 배우에게 침을 바른다는 건, 타 기업의 대표 앞에서 직원을 스카우트하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크.’
‘저러다 싸우겠네.’
주위 사람들마저도 조마조마해진 찰나였다.
오경욱의 무례한 언사에 반박한 건, 황의성 감독도 아닌, 주위에 늘어선 수많은 업계인도 아닌.
“저기.”
바로 이민기였다.
그가 굳은 표정에 곧은 눈동자로 오경욱 감독을 직시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전 한국 최고의 감독님과 작품을 찍고 싶어서요.”
“…….”
그 말에 오경욱이 눈을 깜빡거렸다.
예상 밖의 대답에 갈 곳을 잃은 그의 입이 뻐끔거리기를 잠시.
“최고의 감독? 내가 아니라?”
한국 최고의 감독이 자기가 아니라는 건가.
반박이 아닌 반박이 나온 찰나.
이민기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언젠가는 오스카상을 받아낼 분이요. 예를 들면.”
오스카상이라는 거한 말에 오경욱 감독이 기가 차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 찰나, 이민기가 고개를 돌려 옆 사람을 바로면서 말했다.
“황의성 감독님처럼이요.”
“……하, 오스카상?”
그 말에 오경욱 감독이 거듭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 감독이? 백룡영화제 상 하나 못 받으면서?”
거의 어린아이 장난을 바라보는 듯한 이죽거림이었다.
황의성 감독은 한국 전체를 통틀어서도 그 실력으로는 손에 꼽는 감독이 맞다.
상복은 없지만, 능력 자체를 의심할 수는 없지.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오경욱 감독이 제일 잘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스카상은 함부로 입에 담을 물건이 아니었을 뿐이다.
‘요즘 외국에서 잘 나간다고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건가?’
미친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감수하고, 신앙에 가까운 확신을 품은 남자가 있었으니.
“네, 황 감독님이라면 언젠가는 받으실 거예요.”
바로 이민기가 그러했다.
“……!”
이민기의 확신을 거듭 확인한 오경욱 감독이 미간을 구겼다.
그가 무어라 반박하려는 찰나, 이민기가 질세라 말을 이었다.
“개인 취향은 존중할게요. 하지만 제 마음속 최고는 황의성 감독님이에요. 물론, 객관적으로도 그렇겠죠.”
이건 단순히 황의성 감독의 편을 들어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심이다.
이민기는 진심으로 황의성이야말로 세계구급 감독들과 정면에서 겨룰 가능성을 내재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냐고?
두 눈으로 봤으니까.
‘황 감독님은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됐던 분이야.’
비록 후보였지만, 수상까지 불과 한 발자국을 앞뒀던 사람.
그게 황의성 감독이라는 사람이었다.
이민기는 자신할 수 있었다.
그에게 몇 년만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그가 본 황의성 감독이라면 분명 한 발을 더 내디뎠을 거리고.
분명 그러했으리라고 믿었다.
팬이니까.
팬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려면 그 전에 각오도 해야지.
‘당신이 잘난 감독이라고 내 감독한테 말을 함부로 해도 되는 건 아니잖아.’
말싸움이 터졌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기왕 못 무를 말싸움을 시작했다면.
‘이겨야지.’
오직 오경욱 감독에게 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이민기가 입을 연 그 순간이었다.
“오 감독은.”
한참이나 합죽이가 되어 있었던 황의성 감독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당장이라도 불이 붙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눈이 황의성 감독에게 돌아간 찰나, 그가 차분하게 물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 기말고사 성적표 보여주길 좋아하는 타입이었나?”
그 순간이었다.
“뭣?”
오경욱 감독의 표정이 어리둥절함에 물들었다.
학교 성적표?
무슨 의도로 한 말이지.
좀처럼 감이 안 잡혀 눈썹만 상하 반복운동을 하는 찰나 황의성 감독이 거듭 입을 열었다.
“큰 의미 두지 말게. 그냥 묻는 거니까.”
순간적으로 이민기의 머릿속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황의성 감독의 말투라면 대강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영 그답지 않아, 좀처럼 진의가 파악이 안 되는 찰나.
황의성 감독이 종지부를 찍듯 한마디를 던졌다.
“난 딱히 평론가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영화 찍는 게 아니라서.”
아, 그 말이 귀에 들려온 순간 이민기는 깨달았다.
이건 비유다.
너는 평론가들에게 평가받기 위한 영화를 찍느냐는 듯한 그런 말.
“학생 때도 그랬고. 자네랑은 다르게.”
그 직설적인 황의성 감독이 비유라는 걸 한 것이었다.
‘감독님은 말을 못 가다듬는 게 아니라, 가다듬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였구나!’
인간의 재발견 앞에 그랜드 캐년의 웅장함마저 느낀 찰나였다.
“풉.”
주위에서 웃음소리가 작게 터져나왔다.
“프흐흐.”
“야, 웃지 마. 듣는다.”
“어떻게 안, 푸흡. 웃어.”
대상이 너무나도 명확한 웃음.
오경욱 감독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