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62)
운빨로 탑스타-162화(162/200)
제162화
인정받으려고 만드는 게 아니다.
명쾌하기 짝이 없는 한마디에 이민기가 자기도 모르게 푸흡 웃은 순간이었다.
“풋.”
“크흐흐.”
주위에서 웃음소리가 자그맣게 새어 나왔다.
누가 봐도 오경욱 감독이라는 사람은 그런 범생이 타입이 맞았으니까.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공부로 잴 것 같은 타입.
그런 시선이 오경욱 감독의 눈에도 들려온 걸까.
“…… 큭!”
그의 당당하기 짝이 없었던 얼굴이 술에 취한 사람만큼 시뻘게졌다.
아니, 실제로 술에 살짝 취해 시뻘게져 있는 것도 맞았다.
“황 감독 지금……!”
그가 무어라 반박하려는 찰나였다.
“감독님, 그건 아니죠.”
이민기가 선수를 가로채듯 입을 열더니 황의성 감독에게 말했다.
“기말고사 성적표에는 주관이 안 들어간다고요.”
“……!”
오경욱 감독이 성적을 잘 거둘 수 있는 건, 평론가 입맛에 맞는 영화를 잘 만들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오경욱 감독의 그나마 연지 정도였던 얼굴빛이 아예 홍두깨살 단면처럼 붉게 물들어버렸다.
“으으윽!”
이를 뿌득 갈았다.
하지만 동시에 머리를 가시로 찔리는 듯한 충격을 받으며 이성도 살짝 돌아왔다.
‘보는 눈이 많다.’
어느새 너무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의 시선이 두렵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황의성 감독을 조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조롱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었다.
해서, 이 순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어디, 두고 보자고.”
한발 물러나는 것이었다.
오경욱 감독이 얼핏 당당한 척하면서도 입술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과연 오늘, 누가 상을 타는지.”
“오 감독은 끝까지 고등학교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군.”
“……!”
마지막까지 따라온 조롱에 오경욱 감독이 울컥하더니, 부들부들 떨며 다리를 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박하지 않고, 차분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뒤, 차례차례 뜻하지 않은 관중의 시선도 자취를 감췄을 무렵.
“휴우.”
한순간에 긴장이 풀린 이민기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감독님도 말싸움 좀 하시네요.”
의외였다.
황의성 감독이 저렇게까지 사람을 돌려 깔 줄 알다니.
차라리 앞에서 욕을 받는다면 박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찰나, 황의성 감독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태연히 대답했다.
“말싸움은 수준이 맞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니 말이지요.”
“푸흡.”
이 사람, 처음부터 오경욱 감독을 상대로 여기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일방적인 라이벌리였던 모양.
작게 웃음을 터뜨리려니 황의성 감독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 감독이 열등감이 많은 사람입니다.”
“풉.”
추가타였다.
그 오경욱 감독이 열등감이라니.
아무리 봐도 농담이 아닌 것만 같은 표정에 이민기가 뿜을 뻔했다.
하지만 황의성 감독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나한테 인정을 받고 싶은 거지. 여태껏 한 번도 칭찬해 준 적이 없으니까.”
“프흐흐.”
“시상식만 열리면 있는 연례 행사니까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아, 이 사람.
진짜로 오경욱 감독은 안중에도 없었구나.
괜히 걱정했네.
응, 만에 하나라도 적으로 돌리지는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한 순간, 황의성 감독이 흘러가듯 한마디를 던졌다.
“그보다, 옛날에 배우님이 한 말 기억하고 있습니다.”
“네?”
“내 작품을 세계 최고의 작품으로 여기겠다는 것. 그 마음 여전히 변치 않아 줘서 고맙군요.”
황의성 감독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동시에 이민기도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아.”
대전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 그거 지금까지 쭉 기억하고 있어 주셨구나.
어째선지 낯이 뜨거워졌다.
이제 진짜로 이야기 멈추고 시상식이나 마저 구경하려는 찰나, 황의성 감독이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지난번에 권유해 주셨던 모임 이름이, 중립지대라고 했던가요?”
“아.”
이민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전번에 권유했었지.
그리고 또.
‘거절당했었고.’
어딘가에 소속되는 거 자체가 싫다나.
타인의 평가를 싫어하고 홀로서기를 선호하는 황의성 감독다운 판단이었다.
그 탓에 헬스장 모임 때도 초대를 못 했었고.
아쉬웠다.
그의 이름값 하나로 생길 프리미엄을 놓친 셈이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른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민기가 설마 하는 생각을 머금은 찰나, 황의성 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때 그 권유, 아직 유효합니까?”
“……!”
이민기가 눈을 크게 떴다.
저 질문.
대답해야 할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직 유효기간 1시간 남은 것 같네요.”
* * *
본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이 너무 요란스러웠던 탓일까.
‘이렇게 결과를 보니까 좀 심심하긴 하네.’
막상 진짜 시상식은 국수 해치우듯 후루룩 스쳐 지나갔다.
“백룡상, [내 두 번째 아내]의 오경욱 감독입니다.”
백룡영화제의 최고상이자 감독상인 백룡상은 오경욱 감독에게 갔다.
내 두 번째 아내.
한 남자가 아내와의 불화로 이혼한 뒤, 아내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병문안을 간 것을 계기로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실화 바탕의 이야기를 각색하며 적절한 감동 코드를 버무린 작품.
좀 대놓고 신파를 노렸다는 비평도 있었지만.
[우리, 결혼하자.]그 신파가 너무 잘 먹혀버렸다.
신파인 걸 알아도 당한다며 전 국민의 눈시울을 붉게 물들였으니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당연하지만 오경욱 감독의 작품답게 흥행으로는 깔 게 없었다.
‘영화만 볼 때는 좋았는데, 그 방정맞은 오경욱 감독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니까 좀 깨네.’
이민기는 앞으로 감독들을 많이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역시, 창작자의 성격을 모르면 모를수록 창작물을 즐겁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배우상은.
“남우주연상, [내 두 번째 아내]의 김요한 배우님, 축하드립니다.”
같은 작품의 주연에게로 돌아갔다.
아쉽게 됐다.
내심 [패션 앤 패션]으로 상 하나쯤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빈손이 됐으니.
아니, 빈손은 아니었다.
“인기스타상, 이민기 배우님, 축하드립니다.”
상을 받기는 받았다.
하지만 황의성 감독과 찍은 [패션 앤 패션]과는 전혀 무관한 상.
인기스타상이라는 이름 따라 가장 화제가 된 상이니, 작품성을 평가받고 싶은 이민기로서는 마냥 기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진짜 황의성 감독님을 싫어하는 거구나.’
되게 노골적이다 싶다.
어찌 됐든, 안 받는 것보다는 낫지.
인기스타상이라도 백룡영화제 수상은 수상 아니겠나.
또.
[아성쌤 – 이제 민기 씨도 백룡영화제 수상자네.] [아성쌤 – 앞으로는 눈 마주치기도 무서울? 것? 같아] [김탁 – ㄹㅇㅋㅋ]재밌지 않나.
가장 주목받은 배우 자리에 오른 것만 해도 기념비적인 성과인 게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얻은 게 있고.’
이번 시상식에서는 어마어마한 부수입이 하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백룡영화제 인기스타상 수상 따위는 대수롭지도 않을 만큼, 아주 거대한 부수입이.
“어우, 춥다.”
백룡영화제를 마친 다음 날.
이민기는 마이야르 픽쳐스 신설 스튜디오에 깜짝 손님을 데리고 방문했다.
“아 배우님, 오셨군요. 마침 보여드릴게.”
반갑다는 듯 뛰쳐나온 심성보 감독이 그 손님에게 닿은 찰나였다.
“있…….”
말이 멈추더니 동공이 태풍 속 찻잔처럼 흔들렸다.
이럴 줄 알았지.
이민기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연출 감독으로 합류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그의 옆에 당당하게 서 있는 사람은.
“초면이군요.”
황의성 감독이었다.
백룡영화제의 부수입이기도 했다.
“인사할게요. 저희 중립지대에 새로 합류한 신입이셔요.”
* * *
황의성 감독.
눈앞에서 일어난 기적, 아니, 거인의 모습에 심성보 감독이 입을 뻐끔거렸다.
아니, 분명 현실이다.
물리적으로 양자역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논리학적으로 현실임이 분명했다.
니체가 봤더라도 이건 의심 못 하겠다며 따봉을 외쳤을 터.
그런데 그 현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있어야지.
‘황의성 감독님께서 내 작품에 합류하신다고?’
하필 그 현실이 황의성 감독이니까 그러했다.
마이야르 픽쳐스 사무실, 그 앞에 황의성 감독이 무뚝뚝한 얼굴로 홍차를 기울였다.
“차가 뜨겁군요.”
“아, 그, 그게, 좀 식혀서 드릴 걸 그랬나요?”
“식힌 차를 무슨 맛으로 먹지요? 그런 걸 먹는 사람도 있습니까?”
“제, 제가 실례했습니다.”
별것도 아닌 대화에 심성보 감독이 덜컥 겁을 먹고는 숨을 집어삼켰다.
‘지금 좀 날카로우셨던 것 같은데, 나 뭔가 말실수 저질렀나?’
아니다.
원래 말투가 저런 사람이다.
그냥 심성보 감독이 황의성 감독이라는 사람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리고 또.
‘내가 황의성 감독님이랑 같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니.’
예로부터 황의성 감독의 팬이었던 것도 있었고.
‘하, 살다 보니까 이런 복이 다 오는구나.’
그렇다.
심성보 감독이라는 사람은 황의성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동경하며 감독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었다.
무엇이 황의성이라는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었는가.
어째서 그가 신인부터 중견까지 즐비한 감독들의 워너비가 되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감독님은 만들고 싶은 작품만 만드셨지.’
황의성 감독은 찍고 싶은 것만 찍고, 그걸로 대중에게 널리 인정받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라는 게 마법 지팡이로 두드리면 뿅 하고 튀어나오던가.
전문 교육을 받은 엘리트 중에서도 거르고 거른 엘리트가, 대중의 입맛에 맞추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쳐도 흥행을 입에 담기 어려운 시장이었다.
‘천재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저자본 영화 한두 작품 간신히 찍고 이 판 떠나는 일, 너무 즐비하지.’
그런 시장에서, 대중 입맛은 어쨌든 자기가 찍고 싶은 작품으로 인정받은 게 황의성 감독.
“차가 미적지근해졌군요.”
감독들의 로망을 이뤘으니 그 또한 거대한 로망이 된 것이었다.
‘기쁘다.’
엄밀히 말해, 심성보 감독 또한 세계적인 히트를 친 감독이었다.
비록 [만만투]는 매절 계약이라 인지도에 비해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세계적인 인지도로 따지자면 그 황의성 감독조차 새 발의 피일 터.
스타 감독답게 러브콜도 쏟아지는 와중이었고.
하지만.
‘역시, 자신감이 안 생겨.’
그럼에도 심성보 감독은 명백히 황의성 감독을 영화 제작자로서 자기 위로 보고 있었으며, 또 주눅 들어 있었다.
‘황의성 감독님께서 합류하고 싶다며 찾아오셨다는 건…….’
아마 그거겠지.
심성보 감독이 아랫입술을 살짝 곱씹고는 물었다.
“저기, 저희 차기작은 그럼 감독님께서 메가폰을 쥐시는 거겠군요.”
이거였다.
황의성 감독이라는 거물이 합류한 이상, 그의 자리는 없었다.
적어도 심성보 감독은 그렇게 판단했다.
“…….”
황의성 감독이 아무런 말도 없이 찻잔만 한 차례 더 기울이는 사이, 심성보 감독은 자기 판단에 확신을 얻었다.
‘역시.’
아니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현실은 이렇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하하, 사실 제 전작이 원 히트 원더이긴 했지요. 아무래도, 좋은 작품이니 더 실력 있는 분이 맡아 주시는 게 맞습니다.”
나는 연출로 빠져야겠지.
아니면 공동 감독이라는 감투 하에 보조 정도 하거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영광이다.
감독님의 노하우를 열심히 배우고, 그걸 거름 삼아 다음 작품을 공들여 만들자.
“배우님께서는 인복이 참 많으십니다. 황의성 감독님이라면 저도 믿고 부탁드릴 수 있…….”
그런 다짐으로 말한 순간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민기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독을 왜 바꿔요?”
“예?”
“당연히 우리 심 감독님께서 맡아 주셔야죠. 애초에 여기 마이야르 픽쳐스는 감독님 회사인데.”
“…….”
잠깐, 이게 무슨 말이야.
무슨 상황이지?
예상을 배신한 말에 심성보 감독이 눈을 깜빡거렸다.
“잠시만요. 황의성 감독님을 데려오셨는데. 분명 합류하신다고.”
“네, 합류하시죠.”
“그럼 당연히 감독.”
“감독은 감독이죠. 연출 감독이요.”
“예?”
“총감독은 심성보 감독님께서 지금까지 해 주셨던 대로 쭉 맡아 주시고요.”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이민기의 말에 심성보 감독의 얼굴이 한층 더 크게 구겨졌다.
황의성 감독쯤 되는 거물에게 연출 감독을 맡긴다고?
진심인가?
‘아니, 제정신인가?’
그간 배우님을 보면서 사고관이 비범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긴 했지만, 이건 선을 넘은 게 아닌가?
황의성 감독한테 연출만 맡기라고?
심성보 감독이 뭐라 생각하든 이민기는 꿋꿋이 자기 할 말을 이었다.
“이거, 제가 정한 거 아니에요. 황의성 감독님께서 직접 요청하신 거지.”
“황 감독님께서?”
심성보 감독이 히끅 딸꾹질을 했다.
이 정도 체급이 되는 감독이 연출로 내려가겠다는 건가.
연출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조선 영화판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싶은데, 마침내 황의성 감독이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딸꾹.”
“연출에 집중하고 싶을 뿐. 나머지는 생각이 안 들더군요.”
그 태연한 목소리에 심성보 감독이 거듭 딸꾹질을 연발했다.
그렇지.
조선 영화판, 특히 충무로 영화판에서는 없다시피 한 일이겠지만, 미국에서는 꽤 흔하지.
블록버스터 총감독을 몇 차례고 역임한 AAA급 감독이 다른 영화에 연출로 협력하는 거.
흔한 수준을 넘어 널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여긴 한국인데.’
딸꾹.
심성보 감독의 폐가 자기도 모르게 경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