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63)
운빨로 탑스타-163화(163/200)
제163화
여긴 한국이다.
영화판이라도 연공 서열이 지켜지고, 더 짬밥 높은 사람이 감독 자리를 해 먹는 게 이 바닥이란 말이다.
‘나한테 지금 황의성 감독님한테 연출을 지시하라고?’
어질어질한 광경에 심성보 감독이 꺼낼 말을 못 고르는데, 이민기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감독님은 절 그런 사람으로 보셨어요? 먼저 제작 부탁해 달라면서 결혼식 사회까지 봐 놓고, 다른 사람 구했으니까 비키라고 하는 그런 속물로?”
“아, 아니요. 그런 건 당연히 아닌데.”
“전 감독님의 능력을 신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이민기가 고개를 돌려 황의성 감독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황의성 감독님도 몇 번이고 감독님 작품을 극찬하셨고요.”
“감독님께서 제 작품을? 극찬을?”
심성보 감독이 숨이 넘어가려는 찰나 황의성 감독이 쐐기를 찍었다.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어, 세 번 정도 반복해서 봤습니다.”
“…….”
“전작들도 찾아봤는데, 재밌더군요.”
세 번이나 반복해서 봤다는 말에, 심지어 전작까지 봤다는 말에 심성보 감독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다음 순간이었다.
긴장이 과해버린 심성보 감독이 옆으로 쓰러졌다.
마치 마이클 잭슨의 카리스마 넘치는 기합을 마주한 관객처럼, 옆으로 픽 쓰러졌다.
‘나, 죽어도 만족해.’
팬이 자기 우상 앞에서 못 버텼다.
딱 그 정도 해프닝이었다.
“차 한잔 더 괜찮겠습니까?”
황의성 감독은 눈앞의 팬보이가 어떻게 행동하든 별 관심이 없었고.
그 대신.
“감독님, 제가 타다 드릴 테니까 이상한 말씀 하지 마시고 그냥 앉아 계세요. 심장 약한 사람 괴롭히지 마시고요.”
“흠.”
이민기 말투가 자기한테 요새 좀 쌀쌀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음.
모임 초대 제안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나.
황의성 감독이 당사자가 들으면 어이가 없어서 콧방귀를 뀔 만한 생각을 되새겼다.
‘다음에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군.’
그 이야기가 온전히 전달될 가능성은 없겠지만 말이다.
황 감독이 이민기를 대신해 표적을 찾았다.
“심 감독님.”
심성보 감독이었다.
양손을 무릎 위에 모은 채 다소곳하게 앉은 심성보 감독이 황의성 감독의 목소리에 덜덜 떨었다.
“네, 네네, 네!”
“왜 말을 떨지요? 틱이 있습니까? 병원이라도 추천해 드릴 테니 가 보는 게 어떻습니까.”
“그, 그런 게 아니라.”
“이유가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염려는커녕 취조로 받아들이지나 않으면 다행일 말투에 심성보 감독이 눈만 깜빡이는 찰나였다.
“감독님!”
이민기가 도로 나타나서는, 심성보 감독이 유럽에서 가져온 티백을 흔들며 말했다.
“아, 사람 좀 괴롭히지 마시라니까요.”
“나는 괴롭힌 게 아닌.”
“감독님은 오해사기 좋은 성격이셔요.”
“…….”
역시, 쌀쌀해진 게 맞다.
깍듯했던 옛날 이민기가 조금 그리워진 황의성 감독이었다.
* * *
[만만투]가 국내외를 통틀어 메가히트를 터뜨리며 세계적으로 서바이벌 열풍을 주도하는 가운데.그중 단연 스타가 된 배우라면.
[이민기 차기작은 뭐 찍음?]이민기였다.
그런 이민기에게 최근 한 가지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민기, 백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실패’] [인기스타상 수상, 하지만 의문의 시선.]월드스타 이민기가 백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에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말이었다.
이민기가 만만투로 지구대스타가 되기 전에, 대체 무엇으로 인정을 받았는가?
[이민기가 연기력으로 못 받으면 대체 누가 받음?]연기력이었다.
그런 연기력을 황의성 감독이라는 걸출한 천재 감독과 만나 꽃처럼 만개했는데, 이게 남우주연상을 못 받다니.
네티즌들이 백룡영화제 심사위원들에게 분노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눈깔 삐었음?] [패션 앤 패션 존나 재밌었는데] [대체 그걸로 남우주연상을 못 받으면 뭘 찍어야 받을 수 있냐?] [또 편파심사 했죠?] [지들끼리 끼리끼리 편 먹고 상 주고 싶은 사람한테 몰아준 거지]말이 나온다.
이민기가 백룡영화제 측에 상을 맡겨두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못 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분노가 폭발했다.
사실, 그간의 업보 문제가 컸다.
[얘네 자기 파벌에 든 사람한테만 상 주는 걸로 유명한 거 모름?]백룡영화제가 이런 짓을 저지른 게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진짜 국내에서 제일 권위 있다는 시상식이 개판이네 ㅋㅋㅋㅋ] [황의성 싫어하는 건 그러려니 했지만 에휴] [오경욱 이번 작 재밌긴 했는데 저게 이민기 밀어내고 상을 받을 정도냐?]비판 여론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그중에는 아예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정도.
[이민기가 아역 출신, 영화과 출신 성골이 아니라서 업계에서 따돌림당한다는 말이 있음] [국내에서 못 떠서 해외로 도망갔다고 욕한다더라]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배우가 잘나간다고 질투 오짐 ㅋㅋ]상 하나 안 줬을 뿐이다.
그간 백룡영화제의 행보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하지만 하필 그 대상이 이민기였고, 그 탓에 포털사이트에 백룡영화제 수상 논란이 아예 기사로 떠오를 지경이 되어버렸다.
권위.
그 오랜 권위라는 성전에 차근차근 조각이 일어나는 가운데.
[현장에서 오경욱 감독이랑 황의성 감독이랑 말다툼 벌였다는데?]마침내 한 기사가 폭로를 터뜨렸다.
[이민기가 황의성 감독이랑 같이 오스카상 받을 거니까 오경욱 감독은 저리 비키라고 했대] [ㄹㅇ?] [국연갤에서는 이미 전문 돌고 있음]두 스타 감독이 대놓고 싸웠다고 한다.
기믹 자체가 자극적이니 말이 퍼지는 것도 당연히 금방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백룡영화제 논란에서 시작된 네티즌들의 말은, 어느새 한 바퀴 돌더니 이민기의 차기작 이야기로 이목이 돌아갔다.
[와 대체 얼마나 끝내주는 작품을 들고 왔길래 오스카를 논하냐]바로 오스카상 이야기였다.
[좀 오만한 듯] [이민기 네임밸류에 황의성 실력이면 노려볼 만하지] [그래봤자 국내파 아님?]사실, 차기작에서 오스카를 받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황의성 감독은 언젠가 받을 거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같이 차기작 찍는다는 말을 한 적도 없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상황이 자극적으로 돌아간 끝에 이민기는 황의성 감독과 차기작을 찍는다는 말이 정설이 됐고.
[근데 뭐 찍음?] [배우 모집 공고 같은 거 올라온 거 없나?]꽁꽁 감추는 이민기의 행보에 대중이 갈증을 못 이길 때쯤.
타이밍 적절하게 기사 한 편이 흘러 나왔다.
[제목: 팝스타 윌리엄 록하트, 한국에 비밀리 방문, 스튜디오와 접선해]윌리엄 록하트.
스튜디오.
이민기.
황의성.
모든 키워드가 갖춰졌다.
[오스카 노릴 만한데?]* * *
북적북적한 스튜디오.
이곳의 이름은 당연하지만, 마이야르 픽쳐스였다.
[만만투]를 저자본으로 찍었던 게 은근 미련으로 남았던 탓일까, 최근 들어서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털어다가 아예 다용도 실내 스튜디오를 하나 만들었다.작품 촬영을 시작하기도 전, 장비를 옮기느라 부산한 실내.
복작복작함 스튜디오에서 이민기가 황당하다는 눈길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속 포털 사이트의 기사를 말이다.
“…….”
눈을 좁게 뜬 채 손가락만 열심히 놀리던 이민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건 어디에서 연재하는 판타지 소설이래요?”
썩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에 책더미를 들고 이동하던 진주연 감독이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웹소설이라도 읽으셨어요?”
“감독님, 그게 아니라.”
이민기가 진주연 감독에게 핸드폰을 보이며 말했다.
“저희 작품이요. 좀 뭔가 이상하게 알려진 것 같은데요?”
그렇다.
이민기의 핸드폰 속 화면.
그곳에는 어느 네티즌이 이번 영화를 두고 짜 놓은 시나리오 추측글이 펼쳐져 있었다.
[제목: 스포有) 이민기 신작 영화 코난]본문: 이민기가 백룡 영화제에서 상 못 탄 거 알지?
그래서 이민기는 지금쯤 벼르고 있을 거임
어떻게 하면 상 하나 제대로 탈 작품을 찍을 수 있을지
차기작에서 오스카 노리고 있다는 건 늒네들도 이미 다 알지? (애초에 이민기 본인 입으로 말했으니까)
상업적으로는 정점 찍었으면 이제 예술로도 인정받아야지
그래서 상 받기 좋은 뮤지컬 영화를 선택한거임
자기가 아는 감독 중에서 제일 이런 거 잘 찍을 것 같은 사람 = 황의성 섭외한 거고
근데 해외에서 인지도 부족하잖아
그러니까 윌리엄 록하트랑 짜고 치는 거지
아마 작중에 까메오로 등장할걸?
윌리엄 록하트 본인 역으로
내 생각에는 할리우드 자본 이미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도 꽤 크다고 본다]
그야말로 판타지 소설이었다.
‘내가 오스카상 받으려고 윌리엄 록하트를 데려왔다고?’
아니다.
저쪽에서 먼저 예고도 없이 이민기에게 접선해왔다.
‘뮤지컬은 무슨.’
음악을 중심으로 한 영화는 맞지.
하지만 뮤지컬 영화와는 거리가 일억 광년만큼 떨어져 있었다.
딱히 영화 장르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윌리엄 록하트라는 사람부터가 뮤지컬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닌 탓.
아니, 저런 추측글은 차라리 낫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에서 미공개 작품으로 추측을 주고받는 것 또한 영화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니까.
하지만.
[스타시티 단독) 이민기 신작 촬영에 대해 내부자가 입을 열었다]저건 좀 우스꽝스러웠다.
이민기가 작게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진 감독님, 이거 보세요.”
“뭔데요?”
“저희 신작 찌라시요. 근거도 없이 저희가 중국 시장 노린다고 글 써놨던데요? 아직 판매 루트는 정하지도 않았는데.”
황당하다는 듯한 이민기의 말에 진주연 감독이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찼다.
“저렇게 기사 막 쓰다가 고소당할 건 안 무서운가 모르겠네.”
“자기들도 아는 거죠. 정정 요구하면 제 발 저리는 거 아니냐고 더 의심할 거라는 거. 흘러가게 내버려 둬야지.”
흔한 일이었다.
영화사들이 가십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걸 악용해서 일단 기사를 쓰고 보는 것.
서정우 이사의 푸념을 생각하며 이민기가 중얼거렸다.
“언론사들이 참 약아요. 저러니까 기레기 소리 듣지.”
“그러니까요. 조회수만 벌면 땡이라니까. 저러다가 문제 생기면 기자의 일탈이고 배우의 과민 반응이죠.”
“아니, 다 떠나서 황의성 감독님이 메인 감독 하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체 왜 근거도 없이 저렇게 믿지. 성보가 찍을 수도 있는걸.”
진주연 감독이 툴툴거리듯 말을 이으려는 찰나였다.
“그렇지…….”
대화를 엿듣고 있던 심성보 감독이 풍선 빠지듯 쪼그라든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나랑 황 감독님이라면 보통은 황 감독님이 찍었다고 믿겠지……?”
“야, 심성보.”
“괜찮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 황 감독님이니까…….”
저 자기비하는 대체 뭔가.
그 어깨가 영 소심해 이민기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이 일관적이야.’
[만만투]를 찍고 스타 감독답게 위엄을 갖추려고 노력했으나, 그 노력이 애처롭게도 몇 주조차 못 가고 부쩍 심약해진 그였다.짝!
진주연 감독이 그의 등짝을 후려치더니 말했다.
“야, 심성보, 내가 몇 번을 말해. 나는 우리 여보 작품이 더 재밌다니까. 황의성 감독님이 찍은 작품보다도 더.”
“으, 그래도 작품성에서는 별로 자신이.”
“네 작품이 내 작품이거든? 더 징징거리면 뒤진다.”
“넵.”
잡혀 사시네.
하지만 말이 저렇지 알콩달콩했다.
허니문이 짧았던 만큼, DLC마냥 스튜디오에서 깨알을 볶는 모습에 이민기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심성보 감독이 소심한 게 걸리기는 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왜냐.
‘저러고서도 결국, 촬영 시작되면 제대로 솜씨 발휘하시겠지.’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장에서 그가 가지는 힘을 봤다.
동업자가 같은 동업자를 안 믿으면 그 누가 믿겠나.
물론, 현장에서 황의성 감독한테 기를 눌린다면 또 모르겠지.
이건 이민기, 그가 조율할 일이리라.
‘황의성 감독님이 생각보다 막 독단적으로 만사를 결정하시는 분도 아니고.’
언론의 생각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꼭 나빠졌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홍보에 돈도 안 썼는데, 벌써 온 사방으로 다 퍼진단 말이지.’
마케팅 비용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었으니까.
아직 촬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이민기의 신작 소식을 알게 되었다.
어떤 내용이고, 어떤 배우를 캐스팅했고, 어떻게 진행하고 있고.
네티즌들이 이 모든 걸 좋을 대로 추측하며 자발적인 마케팅 직원이 되어 주고 있지 않나.
‘신작을 촬영하면 마케팅을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하나 엄청나게 고민했는데.’
고민의 연속이었다.
어느 업체에 맡겨야 하나.
비용은 어느 정도로 집행해야 하나 그런 것들.
산더미처럼 쌓였던 고민이, 논란 한 방에 말끔하게 가셨다.
‘시상식장에서 말싸움 벌일 때는 진짜 운 나빴다 싶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도 연결이 될 줄이야.’
역시, 운은 좋고 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튜디오 설비 설치를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저기.”
한 여성이 사뿐사뿐한 발길로 스튜디오 안에 발을 들이더니 말했다.
“여기가 이민기 배우님 신작 오디션장 맞죠?”
“네? 잘못 찾아오신 것…….”
이민기가 반사적으로 답하려는 찰나였다.
“아.”
발을 들인 여성의 얼굴을 확인한 그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하나 씨.”
주하나.
오래전 그와 함께 [언제까지고 푸르른]을 촬영한 여성 배우.
그녀가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씨랑도 참 오래가네.’
우연히 한 작품 찍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같은 [중립지대]라는 그룹의 멤버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또.
“오셨으니까 바로 회의 시작하죠.”
나아가 이번 작품의 여자 주연이 되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이민기가 거듭 입을 열었다.
“오늘, 저희 신작 스토리 정할 거예요.”
SF가 되었든 로맨스가 됐든 서부극이 됐든, 한번 달려 보자.
중립지대.
그 시작 지점이 오스카상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