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64)
운빨로 탑스타-164화(164/200)
제164화
마이야르 픽쳐스의 신작.
아직 정식 제목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가제로 [록하트].
이 영화의 기본적인 내용은 이러했다.
[지금부터 스토리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아직 미정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촬영에 들어서지도 않았으니 이번 회의에서 방향성을 확실히 정하기로 했다.
원래대로라면 몇 달 혹은 몇 년이라도 굴려가며 각본을 먼저 정하고 그다음으로 스튜디오를 구하든, 배우를 구하든 하는 게 정석이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상황이었다.
‘차분하게 뜸을 들일 수 있는 일정은 아니야.’
매스컴의 관심이 쏠린 건 좋다.
그렇다면 그 관심을 유지할 수 있게끔, 조금 무리해서라도 페이스를 올릴 생각.
하지만 그렇게 나쁠 것도 없었다.
마침 [중립지대] 내부 제작 작품이니, 제작 환경 자체는 바깥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로운 모래사장과도 같은 셈.
초창기 멤버들끼리 함께 하나하나 맞춰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망하겠군요.]결과적으로 불발됐다.
회의에 앞서 각자 준비해 온 스토리 구상안은 좀 있었지만.
[방바닥 뮤지션이 인디 씬부터 차곡차곡 정복하는 그런 내용은요?] [음, 나쁘지는 않은데, 너무 클래식하네요. 딱 꽂히는 감이 없다고 할까요? 할리우드를 노릴 정도의 작품이 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이혼남이 음악으로 다시 전 부인과 재회하는 건 어떨까요? 전 아내는 락스타한테 갔고요.] [하나 씨, 좋긴 한데 그거, 표절입니다.]딱 감이 오는 게 없었다.
[으으음.] [후우, 머리 아파.] [민기 씨, 스토리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네요. 민기 씨는 대체 만만투를 어떻게 만드셨어요?] [이분들한테 얹혀가서요.]처음에는 말이 좀 나오다가도 딱 20분 뒤에는 푸념과 잡담으로만 가득해졌다.
대충 찍을 작품이라면 상관없었겠지.
하지만 이번 작품은 [윌리엄 록하트]라는 거물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엮여 있다.
게다가 오스카상을 노리겠다고 공공연하게 알려진 이상, 오기로라도 그에 준하는 작품을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
‘막혀버렸네.’
여기에서 타협안을 찾았다.
[이대로는 답이 안 나올 것 같군요.]심성보 감독이 회의를 취소하고는 강수를 둔 것.
[앞으로 딱 한 달, 한 달 동안은 각자 스케쥴을 전부 비우고 스토리만 생각해 봅시다. 나머지는 그다음에 진행할 겁니다.] [한 달이나요?] [확 당기는 스토리가 잡히지 않는다면, 뭘 만들든 의미가 없습니다. 늪 위에 빌딩을 짓는 것과도 같죠. 지금처럼 지지부진할 바에는 안 만드는 게 낫습니다.]말이 세다.
작품 제작이 시작되자마자 한순간에 사람이 변모한 심성보 감독이었다.
[매주 회의를 열 테니, 다음 주 이 시각에 다시 만나는 거로 하죠.]그렇게 이민기는 의도치 않게 휴가인지 출장업무인지 모를 상황이 되었다.
* * *
“후욱, 후욱.”
탁! 탁! 탁! 탁!
새벽 공원에서 런닝을 달리는 이민기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심장도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미친 듯이 뛴다.
하지만 반대로 그의 머릿속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스토리라.’
머릿속으로 걸리는 게 있을 때, 언제나 몸을 움직이며 생각을 정리했던 그였다.
물론, 옛날과 차이는 있다.
부상이 무서워 걷던 것에서 이제 달릴 수 있게 됐다 정도.
“스토리, 스토리, 스토리, 스토리, 스토리…….”
의도치 않았던 고민에 이민기가 달리기 구호처럼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너무 쉽게 본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심성보 감독이 어련히 잘해주리라고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만만투]라는 우주 명작을 터뜨린 천재 감독 아니겠나.그렇기에 그의 능력에 의존하려는 부분이 있던 게 사실이다.
딱히 이민기가 게으르거나 무책임한 게 아니었다.
단지, 어설프게 훈수를 둬서 혼선을 빚느니 많은 경험을 가진 전문가에게 맡기자는 생각이 있었을 뿐.
하지만 예상외로 심성보 감독도 벽에 막혀 있었던 것.
“스토리, 스토리, 스토리, 스토리라.”
스토리가 뭔데.
어차피 구체적인 각본이나 시놉시스는 심성보&진주연 감독 부부와 함께 다듬기로 했으니 상관없겠지.
하지만 그 아이디어로 쓸만한 게 필요했다.
안 떠오를 뿐.
그만큼 답답함을 느낀 이민기의 움직임 속도만 더 빨라졌다.
“스, 토리. 스토…… 리! 허억, 스토, 리! 허억!”
그렇게 구호를 옮기며 발걸음을 외치기를 한참.
정신을 차리고 보자.
‘여기는.’
어느새 익숙한 동네 앞이었다.
“돌겠네.”
그러니까, 학원 앞이라는 것이었다.
잼 액팅스쿨.
예전부터 이민기가 머리를 비우고 산책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도착하고는 하는 종점이 이곳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여기가 그렇게 중요한 장소인 셈인가.’
이민기가 묘한 감회에 빠진 채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추억을 여물처럼 곱씹다 보면 당장 머릿속을 뜨겁게 달구는 고민도 잠깐은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어째서일까.
“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생각으로 와서 그럴까.
아니면 오래간만에 와서 그럴까.
전에 안 보였던 간판 하나가 학원 위층에 걸려 있었다.
[북카페 꿀맛]북카페.
그러니까 만화방이었다.
먼지가 퀴퀴할 것 같은 옛 분위기에서 벗어나, 요즘 식으로 깔끔하게 다듬어진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
카페라는 이름답게 음료수도 팔고, 부식류도 판다.
멀티방 뺨치는 넓은 개인공간은 덤.
그만큼 비싸지기도 했지만, 요새 데이트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민기에게는 별로 갈 일이 없는 장소였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 북카페라는 키워드를 본 찰나 이민기의 머릿속으로 떠오른 단어가 하나 있었으니.
‘웹소설?’
웹소설.
딱 3년 뒤.
수많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IP의 산실로 자라난 그것이었다.
‘이 시대에 웹소설식 소재를 영화 속에다가 냅다 박아버리면?’
* * *
마이야르 픽쳐스 사무실에서 첫 스토리 회의가 있고 일주일 뒤.
“새 일주일이 밝았습니다. 그동안 많이 고민해 보고 오셨을까요?”
첫 회의가 시작됐다.
오로지 연출에만 개입하겠다는 황의성 감독이 자연스럽게 빠진 뒤, 두 감독과 두 주연으로 핵심 멤버 넷만 참석한 회의.
‘다른 사람들은 준비 잘 해왔으려나.’
나도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가져오기는 했다만.
이민기가 조심스레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 사이, 자연스레 사회자 역할을 맡은 심성보 감독이 작은 헛기침과 함께 운을 띄웠다.
“전 다행히 짚이는 바가 있었습니다.”
“……!”
“예, 주연이와 함께 과거의 여러 명작을 반복해서 보는 사이에 가까스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지요.”
얼굴이 어쩐지 밝다 싶더라니.
역시 월드 클래스로 홈런을 쳐 본 프로답게 벽을 금방 뚫었구나.
자신감이 철철 흘러넘치는 목소리에 이민기가 작게 놀라며 물었다.
“막히신 줄 알았는데.”
“예, 막혔지요. 음악 영화라는 특수한 장르와 윌리엄 록하트라는 흥행 요소를 전부 살릴 방안을 찾다 보니까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윌리엄 록하트를 버리니까 답이 나오더군요.”
“버렸다면?”
“원래 계획대로라면, 어떻게든 윌리엄 록하트를 작중에 등장시키려고 했습니다. 흥행성이 필요했으니.”
심성보 감독이 딱 자르듯 말했다.
“하지만 그건 제 고정관념에 불과했던 겁니다. 결국, 영화는 영화가 재밌으면 그만. 오로지 재미 하나에만 집중하니 길이 보였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말하는 걸 보면 그 나름대로 깨달음이 있었던 모양.
하긴, 만만투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
엄밀히 말해서 작품의 설계적인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재미 원툴로 밀어버린 영화 아니었나.
‘다른 디테일 따위, 태양광 앞의 전구로 만들어 버릴 만큼 압도적인 재미로.’
이번에도 비슷하게 가려나 보군.
‘나도 나름대로 준비해 온 게 있기는 했는데.’
심성보 감독이 좋은 아이디어를 마련해 왔다면, 내가 떠올린 건 그냥 백지가 되는 건가.
그래도 나쁠 건 없겠지만, 좀 아쉽네.
이민기가 자그맣게 의견을 삼키려는 찰나였다.
“하지만.”
심성보 감독이 입을 열었다.
“제 시놉시스 발표는 우선 뒤로 미뤄 두겠습니다.”
한 걸음 물러서겠다는 말이었다.
말하는 것만 보면, 아주 완벽한 스토리를 구상해 온 것 같은데.
“네? 왜요?”
그 연유에 주하나가 놀라서는 되물은 찰나, 진주연 감독이 심성보 감독을 대신하듯 입을 열었다.
“응, 진짜 명작은 끝내주는 아이디어를 더 끝내주는 아이디어로 깨부술 때 탄생한다고 하잖아요? 아무래도 저희 스토리를 먼저 꺼내면 두 분이 거기 휩쓸릴 수 있으니, 나머지 분들 아이디어를 먼저 듣고 결정하려고요.”
나름대로 배려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적잖이 근거가 느껴지는 발언에 이민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교수가 발표하는 자리 뒤에 학부생한테 발표하라고 하면 말이 제대로 안 나오겠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교수님의 의견이다.
꽤나 확신을 품을 만큼 제대로 찾은 답이 있더라도,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해 주겠다는 건가.
‘결정권을 쥔 감독이겠다 그냥 밀어붙여도 문제는 없었을 텐데.’
남의 아이디어가 더 낫겠다면 기꺼이 자기네 자존심을 접어주겠다는 말 아닌가.
어지간히 오픈마인드다.
의외의 행보에 이민기가 작게 감탄한 사이 진주연 감독이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슬슬 진행할까 하는데, 뭐라도 좋으니 먼저 말씀해주실 분 없으신가요? 짧은 텍스트 한 줄이라도 좋아요. 같이 의견 나누면서 브레인스토밍이라도 해보죠.”
시작이다.
두 감독 앞에 선 이민기가 작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치 기업 면접을 보러 간 사회 초년생 기분이 이럴까.
자신감 넘치는 시놉시스를 꺼내 온 두 스타 감독을, 내 시놉시스로 꺾어야 하는 상황이라니.
‘모르겠다. 한번 해보지 뭐.’
이민기가 결심을 다지고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저기.”
먼저 손을 든 사람이 있었다.
“그럼 제가 먼저 할게요.”
주하나였다.
뭔가 준비해 온 건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자신감에 이민기마저 자그맣게 놀란 사이, 그녀가 호흡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전 조금 다르게 생각했어요. 꼭 음악 영화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
윌리엄 록하트씩이나 되는 인물을 초빙했는데, 음악 영화일 필요가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무리수가 아닌가 싶은데 심성보 감독이 흥미롭다는 듯 되물었다.
“호오, 어째서죠?”
“왜냐면, 음악으로 성공한 영화들은 대부분 음악 영화가 아니었거든요.”
음악으로 성공한 영화는 대개 음악 영화가 아니었다.
그 말이 자극적이었다.
윌리엄 록하트와 콜라보를 한다고 해서 당사자를 등장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건 그럴 수 있다.
흔한 일이니까.
하지만 아예, 음악 영화일 필요조차도 없다는 건 무슨 말인가.
“더 자세히 듣고 싶네요.”
진주연 감독마저도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 다음 순간, 주하나가 특유의 또렷한 발성으로 말했다.
“발리우드 영화를 아시나요?”
발리우드.
인도에서 제작된, 인도 특유의 영화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 단어가 예상치 못하게 주하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너무나도 세련된 악센트로.
“전 이번 작품에 발리우드 플롯을 적용하면 어떨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