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65)
운빨로 탑스타-165화(165/200)
제165화
“발리우드라면.”
심성보 감독이 눈을 깜빡이기를 잠시, 아리송하다는 듯 물었다.
“인도 봄베이 지역에서 제작한 영화 말입니까?”
발리우드.
최근 순식간에 규모를 부풀리고 있는 인도 영화시장을 칭하는 말인데, 주하나가 각오를 굳힌 듯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이번 작품에 발리우드 스타일을 접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흠.”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유통될 영화에 다른 것도 아니고 발리우드 스타일이라.
뮤지컬이 낫지 않나.
잘 이해는 되지 않는다만, 계산하는 바가 있는 걸까.
심성보 감독이 그 내면을 떠보듯 물었다.
“설명이 가능하리라고 믿습니다.”
“물론이죠.”
주하나가 입을 열었다.
“발리우드 영화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들과 공식이 달라요.”
“음악 이야기겠군요.”
“네, 보통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음악 그 자체가 중심에 서요.”
그 순간, 이민기는 주하나가 의도했던 바를 정확하게 예상했다.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발리우드에서 음악은 포맷이다.”
“네, 민기 씨 말씀이 맞아요.”
주하나가 맞장구를 치듯 빙그레 웃었다.
“발리우드에서 음악은 곧 영화와 하나죠. 스토리와 따로 있지 않아요. 영상과 함께 작을 이끌어나가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봐도 무방해요.”
“흠.”
어느새 썩 얼개가 보이는 해설에 진주연 감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나 씨 말씀은, 음악 그 자체를 흡사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아예 메인 연출로 써먹자는 말이군요.”
그렇게 말하는 진주연 감독의 말에는 작은 흥미마저 서려 있었다.
정답이다.
주하나는 그 반응에 작은 짜릿함마저 느끼며 경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굳이 음악을 스토리의 핵으로 삼을 필요는 없어요. 단지 계속해서 중요한 장면마다 음악이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이 가벼운 춤을 추며 관객들에게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거죠.”
그렇다.
발리우드 영화라는 것은 뮤지컬과 밀접하게 맞닿은 면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음악이었다.
중요한 장면마다 춤과 음악을 섞어주는 것만으로도, 영화 속에는 그 자체의 고유한 맛이 피어나기 마련.
하지만 여기에서 뮤지컬과의 차이 또한 존재했다.
음악은 어디까지나 연출일 뿐, 장르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하나 씨, 발리우드 영화까지 보셨구나.’
이민기도 작게 놀랐다.
한국에서 영화를 좀 좋아한다는 사람 중에서도 발리우드 영화를 보는 사람은 굉장히 드문데.
봤다고 해 봐야 한국 극장가에서도 흥행한 두세 개 정도일까.
물론.
‘민기 씨네 집에서 봤던 게 참고가 될 줄은 몰랐어.’
정작 주하나 본인으로서는, 이민기가 강제로 인풋을 채우게 만든 주범이었지만 말이다.
‘민기 씨, 안 본 작품이 없다시피 했지.’
절대적인 인풋의 벽을 느꼈다.
그녀가 본 작품은 이민기가 모두 봤다.
이민기가 안 본 작품?
‘……그런 게 존재하기는 하나?’
뭘 봐도 안다.
감독의 특징부터 배우의 특징, 작중 연출의 노림수까지 완벽하게 달달 외우고 있는 듯했다.
마치 어떤 영화를 보든 모두 복습인 듯했지.
압도적인 분석 능력 앞에서 벽을 많이 느꼈다.
같은 배우로서 격의 차이마저 절감했다.
하지만.
덕분에 많이 배웠다.
‘고마워요. 민기 씨.’
그런 주하나의 의견에 심성보 감독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단순히 연출로만 소비하기에는 음악이 아깝지 않습니까? 그 윌리엄 록하트인데.”
“그게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반대였어요.”
어느새 기세를 얻은 주하나가 말을 이었다.
“발리우드 영화 속에는 아주 큰 장점이 있어요. 바로 언어와 국경의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음?”
“음악에서는 의외로 언어가 중요하지 않잖아요? 즐기려는 마음만 있다면, 영화 속 문화적인 벽을 넘어 역으로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문화적인 벽을 넘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싶은 찰나, 주하나가 방점을 찍듯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즉, 미국 시장에서 한국인이라는 약점을 해소할 수 있는 거죠.”
그리 틀린 말이 아니었다.
발리우드 영화라는 장르의 가장 큰 장점이 저것이니.
주하나가 자신 있게 미소를 머금었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인 인도이기에 누가 봐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놨지. 영화가 잘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음악과 춤은 통하니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우린 상대적으로 소수 민족인 한국인이다.
그런 우리가 만든 영화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에 저건 엄청난 강점이 될 수도 있는 요소였다.
하지만.
‘틀렸어.’
저 그럴듯한 제안 속에는 아주 큰 결함이 하나 있었다.
발리우드 영화가 어디까지나 발리우드 영화이기에 할리우드에서 먹히기 어려운 아주 큰 약점이.
‘하나 씨한테는 안타깝지만, 저건 못 쓰겠네.’
이민기가 저 제안의 끝을 알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삼키는 사이.
“괜찮은 아이디어입니다만.”
심성보 감독이 그 부분을 마치 마체테로 도려내듯 날카롭게 답했다.
“저희가 노리는 시장은 인도가 아닌, 미국입니다.”
그렇다.
시장 자체가 틀렸다.
“미국인들에게 문화적인 장벽이라는 건 아무런 장점도 되지 못합니다.”
“아, 미국이.”
주하나가 당황한 사이 심성보 감독이 얼핏 매정하게 보일 정도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인도라면 발리우드 특유의 언어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요소가 큰 장점이 될지 모르지만, 미국인들에게는 다릅니다.”
“…….”
“그들에게 있어서 언어의 장벽이라는 건, 너무 당연하게 원래 없는 겁니다.”
사소하다.
하지만 아주 거대한 차이이기도 하였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언어의 장벽이라는 개념은 없다고 해도 좋으니까.
‘인도라면 언어만 수백 가지라니까 저런 요소가 강점이 될 수 있겠지.’
하지만 할리우드의 본진인 미국은 다르다.
그들의 언어는 세계 공용어인 영어이며, 그들이 보유한 할리우드는 서양 영화의 대명사라고 불릴 정도이지 않나.
메이저리그 그 자체.
그런 압도적인 영화시장을 갖춘 그들에게 있어서, 언어 장벽이라는 건 없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있으면 그게 이상할 정도로.
즉.
“언어적인 장벽을 조금 넘어선다 한들, 그건 장점이 될 수 없습니다.”
주하나의 아이디어라는 건 그저 다른 영화들과 함께 같은 시작점에 서는 게 전부였다.
잘해야 약점을 가릴 방법일 뿐.
끝내, 고유의 강점을 창출할 영역에는 다다를 수 없었다.
“그래도 아이디어는 참고가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잘랐네.
개평과도 같은 말과 함께 주하나의 제안이 무 썰듯 뚝 끊겼다.
‘윽, 매정하네.’
순두부와 쿠크다스를 섞어놓은 것 같은 사람이 업무랑 엮이면 칼 같다.
“네에…….”
어느새 의기소침해진 주하나가 안쓰러운 찰나.
한 새싹을 태연하게 짓밟은 심성보 감독이 이민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배우님께서는 어떤 아이디어를 준비해 오셨습니까?”
총구가 돌아왔다.
한 방만 터져도 심장이 뚫릴 게 분명한 총구가.
* * *
‘역시, 회의 들어가고 나니까 사람이 바뀌네.’
주하나가 까이는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한 이민기의 이마 위로 작은 식은땀이 포물선을 그렸다.
‘조금만 결점이 있어도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는 건가.’
그래, 그게 맞다.
흔들거리는 지반 위에 고층빌딩을 세울 수는 없는 법.
하물며 우리가 세우려는 건 마천루다.
목표치가 높으니만큼 까일 각오 따위는 충분히 해야겠지.
‘오히려 상대가 하나 씨라서 말을 부드럽게 한 게 저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겁먹지는 말자.
없는 걸 만들어서 반박할 사람은 아니다.
한 발 물러서지 말고, 두 걸음 나아가서 넘어서자.
잠시 뒤.
심호흡과 함께 마음을 굳힌 이민기가 눈을 뜨고는 입을 열었다.
“파격적인 걸 하나 포장해 왔죠.”
“흠?”
“지금까지는 시장에 단 한 작품도 없었던, 아주 파격적인 걸로요.”
파격적이다 못해 오만한 발언이었다.
그 단적인 말에 회의실의 나머지 세 사람의 얼굴에 이채가 감돌았다.
‘지금까지 없었던 거라고?’
그중 긍정적인 의미로 놀란 건 주하나.
‘역시 배우님은 보는 관점이 다른 건가? 감독으로서도 경험이 있으신 분이니까.’
그녀는 이민기가 정말로 [만만투] 제작에 크게 개입했다고 믿고 있었다.
이민기 본인은 부정했지만, 겸손해서 그랬으리라고 단정 중.
한편, 나머지 두 사람은 긍정보다는 의구심이 더 컸다.
‘배우님한테는 미안하지만 이거 딱 봐도…… 그건데.’
‘우매함의 봉우리.’
그렇다.
이민기의 저 파격적이라는 말을 두고, 모르기에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라고 판단했을 뿐이었다.
딱히 이민기를 나쁘게 보는 건 아니다.
단순히, 초심자의 자신감은 대부분 물로켓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스토리를 많이 짜본 적 없는 사람일수록, 자기 아이디어가 독창적이고 훌륭하다고 믿는 비율이 크지.’
파격적이라고 주장하는 아이디어의 태반은 그러했다.
시장에 별로 안 나온 스토리가 안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 구조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
‘제작비가 무식하리만치 높다거나, 전개가 급발진이라거나, 결함이 있다거나. 대중의 수요에서 벗어나 있다거나.’
천재라도 된 마냥 그럴듯한 의견 하나둘 던지는 건 너무나도 쉽다.
멋진 장면 하나만 구상하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중요한 건 그 장면을 앞뒤로 연결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을 재밌게 그릴 노하우이지 않겠나.
거대 괴수가 치고받는 장면?
그걸 영화 런 타임 2시간 내내 칠하면 매출로 10억 달러를 찍어도 본전이 안 남을 터.
‘정말로 중요한 건, 그게 과연 현업에서 통할까 하는 것.’
제아무리 기똥찬 아이디어라고 해도 영상화에 지장이 있으면 거기에서 끝이다.
이민기의 자칭 파격적인 아이디어 속에는 현실성이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겠지.’
회의적이었다.
심성보 감독은 이민기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감과는 별개로, 경험주의에 입각한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 불신의 원인인 이민기에게는 다른 의미에서 확신이 있었다.
‘상업성 문제는 없다. 수많은 선례로 영상화가 보장된 소재니까 괜찮아.’
그 또한 경험주의에 입각한 믿음을 품었으니까.
“설명해 드릴게요. 자세히.”
어차피 주장할 거라면, 자신 있게 주장해야 설득력도 붙는다는 감각으로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소재는요. 인터넷 방송이에요.”
“인터넷 방송?”
그 말에 심성보 감독의 눈길에 담긴 의문이 한층 더 짙어졌다.
인터넷 방송이 그리 파격적인 소재라는 건가.
하지만 이민기는 자신 있게 거듭 외쳤다.
“주인공이 홧김에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 하나가 확 떠서, 하루 만에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어 버린 거죠.”
“예?”
심성보 감독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너무 급전개 아닙니까?”
“아니에요. 거기서부터 시작이에요.”
이민기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말했다.
“그 영상이 너무 떠서, 아예 록하트의 귀에 들어갔다면 어떨까요?”
“말도 안…….”
무어라 반박하려는 그 찰나였다.
“아!”
진주연 감독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작게 탄성을 질렀다.
“이거, 감이 오는데요?”
“그렇죠?”
“잠시만요. 이거 혹시 시놉시스 짜 놓은 거 없나요? 자세히 디테일을 보고 싶은데.”
“아, 그럼 아예 텍스트로 보여드릴게요. 저도 그게 편해서. 잠시만요.”
이민기가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타다닥 두드리기를 잠시 뒤.
회의실 4명 각자의 핸드폰에 까똑! 하고 크게 울림이 울렸다.
“지금 막 보냈어요. 한번 읽어 봐주세요.”
“흠.”
“나름대로 자세히 써 왔는데, 제 신경은 쓰지 마시고 맘껏 지적해 주세요. 감독님들 보시기에 정 아니다 싶으면 엎어도 무방하고요.”
“영화 퀄리티와 직결된 일로 눈치를 살피지는 않습니다.”
심성보 감독이 자르듯 말했다.
그 칼 같은 모습이 역으로 믿음직해 이민기도 씨익 웃었다.
“물론이죠.”
지금부터 심판의 시간이다.
적막한 회의실로 오직 에어컨 소리만 스산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저 소리는 중요하지 않다.
손가락으로 핸드폰 액정을 문대고 있는 저 소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일단 진주연 감독님은 좋게 봐주신 것 같은데.’
마치 교수들이 대학원생의 논문을 심사하는 것처럼 진중한 분위기.
처음으로 짜 본 스토리를 난데없이 업계 최정상 프로들에게 평가받게 생긴 이민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심성보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할까?’
쿵, 쿵, 쿵.
유산소로 단련된 이민기의 심장 소리만이 크게 들렸다.
깔 거라면 까도 좋다.
각오했으니까.
복싱 영화에서 이르길, 어차피 맞을 곳이라면 미리 각오하고 맞아야 그나마 덜 아프다고 했다.
물론, 덜 아프더라도 아픈 건 마찬가지겠지.
그러니까 더 각오하자.
무슨 아픈 말을 듣더라도, 비료 삼아 더 큰 성장으로 환원할 수 있게끔
이민기가 나름대로 마음의 대비를 전부 갖춘 찰나였다.
“음.”
가장 먼저 고개를 들어 올린 사람이 있었다.
유약한 외모에 실제로도 유약하지만, 일단 일을 시작했다 하면 그 누구보다도 믿음직해지는 남자.
심성보 감독이었다.
그가 피로한 듯 안경을 벗고는 눈가를 비비기를 잠시, 안경을 고쳐 쓰더니 말했다.
“배우님, 전부 읽어봤습니다만.”
“네.”
다음 한마디가 그가 땀 흘려 준비한 텍스트의 생사를 결정할 터.
꿀꺽.
마치 판사의 앞에서 선고를 기다리는 피고인의 마음으로 몇 초의 찰나가 영겁처럼 흐르기를 잠시.
이어서 심성보 감독의 입에서 들려온 말은, 이민기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 스토리 그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이민기가 다년간의 연기로 단련된 눈가 안륜근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넸습니다?”
아, 연기 실패.
그에 심성보 감독이 종지부를 찍듯 말했다.
“아이디어만 보면 완벽에 가깝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