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68)
운빨로 탑스타-168화(168/200)
제168화
촬영 현장.
그 극한의 아수라장에서 가장 기피당하는 배우라고 하면 누가 있을까.
실력 없는 배우?
아니다.
그런 배우는 너무나도 많다. 단순히 연기를 못하는 정도로는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없다.
애초에 그런 경우에는 좋은 역할을 못 받을 때가 많을뿐더러, 눈칫밥 좀 먹여줄 수라도 있다.
그렇다면 인성을 말아먹은 배우?
이것 또한 아니다.
실력 없는 배우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게 인간말종 배우니까.
‘애초에 대중에게만 들키지 않는다면, 현장에서는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다는 주의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가장 기피받는 배우라고 하면 누가 있을까.
정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실력은 없는 주제에 눈칫밥 대놓고 먹여주기 힘들만큼 빽이 탄탄한 배우가 그러했다.
“우리 건주 배우님 덕분에 이게 무슨 떡이래? 아주 복이야, 복.”
“……감사합니다.”
천건주.
폭망한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 바로 천건주야말로 앞선 예시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사람이었다.
그의 앞에 선 문효성 감독은 뭐가 그리 좋은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이래서 인맥 좋은 게 중요하다니까. 아, 건주 씨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니고, 내가 고맙다고. 무슨 말인지 건주 씨도 알지?”
“네, 감독님한테 도움이 돼서 저도 기쁘네요.”
“어유, 건주 씨는 사람이 겸손해서 참 좋아. 건주 씨, 그럼 해지면 바로 촬영 시작할 거니까 가서 쉬고 있어. 이민기 배우님 오시면 같이 말이나 나누자고.”
“네, 감사합니다.”
덜컹.
감독과 짧은 대화를 마친 천건주가 사무실 문을 닫고 빠져나왔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썩 석연치 않아 바닥을 보며 복도를 걷던 중, 저 멀리서 우연히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연기도 못하면서 꼴에 소속사빨로 주연 자리 앉더니, 어떻게든 건수 하나 올리네?”
“그것도 자기 실력은 아니겠지만.”
복도 저 너머, 은근히 들려오는 조롱에 천건주가 한숨을 슬쩍 내쉬었다.
주어는 없지만 대상이 뻔한 말들. 그걸 천건주가 듣고 있는 걸 알기는 하는지 남녀 셋이 피식피식 웃으며 불만이 섞인 잡담을 늘어놓았다.
“저런 식으로라도 보태야지. 눈치라도 있어서 다행이네.”
“JC 좋겠다. 거기에 남는 자리 하나 없나?”
“몰랐어? 거기 요즘따라 콧대 엄청 높아져서 사람 안 받잖아. 다 이민기 때문이지, 뭐.”
천건주가 감독의 비호를 등에 업고서도 차마 가서 따질 용기는 없어 슬쩍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다 들리거든요.’
씁쓸하다.
하지만 아무리 이가 갈린들, 저들의 말 자체는 본질적으로 따지자면 반박하기도 여의치 않다는 게 문제일까.
‘나도 알아. 내가 과분한 위치에서 연기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그렇다.
천건주는 전형적인 인맥빨 낙하산 배우에 속했다.
공중파 연기 오디션에서 탑8 안에 들면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은 뒤 아이돌로 데뷔했지만, 막상 그 뒤에 잘 안 풀렸다.
[야, 요즘은 배우들도 다 아이돌 한 번씩 거쳐서 가는 거야.]사장의 말에 속아 원래 꿈이었던 연기를 포기하면서까지 데뷔한 아이돌은 크게 실패. 해체한 뒤에는 다시 연기자로 살겠노라고 온갖 곳에 다 지원한 끝에 얼떨결에 JC에 붙은 것.
최근 들어 배우에 한해서는 3대 기획사에 필적하는 기획사 [사황] 소리를 듣고 있는 JC 말이었다.
‘왜 나 같은 사람을 뽑았는지 모르겠어.’
천건주 본인으로서도 스스로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음, 연기 보니까 경험만 좀 쌓이면 되겠는데? 마스크도 있고, 아이돌 할 때는 랩을 했다고 했나? 발성이 잡혀 있어. 톤만 좀 연기 톤으로 만지면 되겠다.]구인모 대표가 뽑자고 해서 뽑혔다. 회사 사장보다는 조폭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 사람이었는데, 그의 픽이었어서 그런지 더 미심쩍다.
아무튼,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합격하더니 얼떨결에 이번 드라마 [우주에서 온 남사친]에 주연으로 발탁된 것.
‘처음에는 좋았는데.’
보잘것없는 커리어에 찾아온 기적에 눈알이 띠용~ 튀어나오는 줄만 알았다.
신인 배우로서는 두말할 것 없이 운이 좋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빌드업. 하지만 그 탓이었을까. 주위 시선은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뭐야, 신인이 바로 주연 발탁이라길래 뭐 얼마나 잘하나 했더니…… 단역부터 다시 해야겠던데?] [JC라서 기대했더니.] [감독님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걔를 뽑았대?] [아무리 연출로 커버해도 저 정도로 연기가 어색해서야, 시청자들도 알아보겠다. 아까도 상대역 눈도 못 마주쳐서 시선 처리 떠는 거 봤지?]온 사방에서 고막을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의 험담이 들려왔다. 내부의 적이라는 게 이런 거겠지.
이 지경이다. 주연 발탁이 기뻤던 것도 하루 이틀이지, 지나치는 시선에도 비웃음이 서려 있으니 차마 자존감이 오를 여지도 없었다.
천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명백히 현장의 걸림돌이지만, 배경이 워낙 탄탄하고 감독이 싸고도니까 말 한마디 세게 못 하는 슈퍼 모난 돌. 그 스스로 생각해도 미움받는 게 정상인 인물이었다.
“후아.”
쏴아아-
흐르는 물로 얼굴을 쓸어내린 천건주가 정면을 바라봤다.
나름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얼굴도 이제는 비참하게만 느껴질 뿐. 하지만 이렇게 찌푸린 채로만 있을 수는 없다.
‘이민기 배우님 오실 때만이라도 잘하자.’
알고 있다.
출연진들뿐만 아니라, 어쩌면 시청자들도 그보다는 이민기에게 더 큰 기대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적어도 발목이라도 잡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풀 죽은 얼굴을 시청자님들한테 어떻게 보여드려.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게끔, 마음 다잡고 최선을 다해 보자.’
배우로서의 초심은 늘 가지고 있다. 성공하는 작품을 찍은 연기자가 아닌, 성공한 연기를 하는 연기자가 되는 것.
마음을 다잡은 천건주가 얼굴을 말리고는 화장실에서 걸어 나갔다.
자기 스스로조차 믿지 못하면서.
* * *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 이민기의 머릿속에는 줄곧 한 생각만 떠 있었다.
‘까메오라는 게 원래 이런 건가……?’
어질어질하다. 주위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러했다.
“선배님! 저 팬입니다!”
“와, 감사합니다.”
“만만투 너무 재밌게 봤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 저 진짜 그거 보고 연기자의 꿈을 기른 거 있죠.”
온 사방에서 그를 연예인 취급한다고 해야 하나. 아니, 연예인 맞긴 한데 이건 좀 과하잖아. 내가 무슨 팬 미팅을 온 것도 아니고.
이민기의 안면 근육이 어색하게 꿈틀거렸다.
‘만만투가 아직 1년이 안 된 작품인데, 나를 보고 연기자의 꿈을 길렀으면 대체 언제부터 연기를 시작했다는 거야? 데뷔 개빨리했네.’
온 사방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띄워주는 게 영 적응이. 이런 건 내가 바라는 상황이 아니야.
이민기는 주위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시선을 살짝 흘리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또 저기 혼자서 있네.’
천건도.
이민기가 오늘 이 스튜디오까지 찾아오게 만든 장본인이 정작 몇 걸음쯤 떨어져서 주위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이민기의 눈에는 썩 이상하게 보였다.
‘왜 저렇게 기운이 없지?’
겸손하다기보다는 좀 겁먹은 강아지 같다고 해야 할까.
주연이 저러고 있으니 어색하다. 조연이든 단역이든 그에게 말 한마디를 못 붙여서 안달인데, 정작 여기에서 그나마 편해야 할 사람이 저러고 있다니.
처음 스튜디오 와서 인사 몇 마디를 나눈 뒤에는 줄곧 저 모양새였다.
‘음, 그래도 난 이쪽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저쪽이 편한 것 같은데.’
좀 어색한 사이가 대놓고 살갑게 구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편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무렴 됐다. 얼른 까메오 연기나 마치고 돌아가야지.
“선배님, 연기하실 때 시선 처리는 어디에 중점을 두시나요?”
“시청자의 시선에 가깝게…….”
“아! 시청자의 시선! 연기자를 넘어서 카메라 너머까지 고려하며 연기한다는 말씀이시네요. 캬, 역시 다르십니다.”
이민기가 영혼 없는 시선으로 시계 초침 돌아가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배우님, 바쁘실 텐데 지금 바로 시작하시죠.”
감독이 다가와서는 그에게 시작을 알렸다.
이민기도 그 목소리에서 흡사 천사의 나팔 소리를 느끼기를 잠시.
이내 기다렸다는 듯 익숙한 씬 하나가 시작되었다.
‘음, 역시 이 장면이구나.’
우주흥행작 [우주에서 온 남사친].
그 안에서도 유독 유명했던 장면 하나가 있었으니, 지금의 그가 촬영하는 장면이 그러했다.
[종족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차마 저버릴 수 없는 주인공, 건융. 그런 건융에게 조언을 건네려 옛 친구가 다가온다.]내적 고민에 빠진 주인공에게 먼 친구가 다가와 조언을 하는 장면.
이민기가 여기에서 연기하는 캐릭터가 바로 그 먼 친구였다. 딱 한 번 나오고 앞으로 안 나올 캐릭터에게 딱 맞는 역할.
‘자, 시작해 볼까.’
어두운 저녁 공원.
그곳 그네에 천건주가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서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비운의 남자주인공이라고 과시하듯.
‘와, 저건 좀 어울리는걸?’
이민기가 작게 놀랐다.
원래부터 자신감이 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외려 저런 역할이 찰떡이다.
‘저걸 위로해 주는 게 내 역할이라 그거지.’
가급적 대본을 따르되, 어느 정도의 애드립을 허용한다고 했다.
그에 이민기는 호흡을 가다듬기를 잠시.
“레디, 액션!”
감독의 신호와 함께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 불과 몇 분짜리 연기에 불과하지만, 기왕 맡은 역할이니까 잘해야지. 까메오한테 기대하는 게 그런 거 아니겠나. 약방의 감초, 숨겨진 차밍 포인트, 조커, 그런 거.
뚜벅, 뚜벅.
카메라 바깥에서부터 천천히 구둣발을 옮긴 이민기가 어느새 천건도의 코앞에 다다랐다.
그의 그림자가 천건도의 덩치 위로 살짝 드리워졌을 무렵. 천건도가 흠칫 놀라더니 말했다.
“형.”
“어, 형이다.”
그렇게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기를 잠시. 이민기가 옆 그네 안장에 엉덩이를 얹더니 흠칫 놀라며 말했다.
“으악, 쉬, 여긴 의자를 왜 이렇게 흔들리게 만들어? 이 행성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네.”
“풉.”
그 말에 침울해하던 천건주가 작게 웃었다.
“형, 그거 의자 아니야.”
대본에서도 저런 게 있긴 했지만, 이민기의 놀라는 눈치가 워낙 천연덕스러웠기 때문. 어찌 보면 진심으로 웃었다고 볼 수 있었다.
“아, 뭐예요. 놀랐잖아.”
“내가 놀라야지, 네가 왜 놀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주인공의 기분은 침울한 상태니까, 침울한 연기를 보여 줘야 하지 않겠나.
‘해 보자.’
천건주가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형.”
“왜.”
“형은요. 지구 사람들은 어떤 것 같아요?”
“…….”
오글거리는 대사였다.
누가 판타지 드라마 중에서도 오글거리는 작품 아니랄까 봐, 이런 진지한 상황에서조차 대사가 오글거리기 짝이 없었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배타적이고. 그런 종족으로 보이세요? 평의회 장로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런 대사를 입에 올리는 당사자로서도 피부에 닭살이 찌릿하게 오를 정도로.
하지만 이민기의 표정은 차분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저런 대사를 입에 올리는 천건주 본인조차도 눈빛 한 번에 이 상황에 녹아들어 버릴 만큼, 미동조차 없이 너무나도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배우님은…….’
고작 눈빛 하나에 놀라려는 찰나였다.
“아주 똥을 싼다.”
이민기의 입에서 애드립이 터져 나왔다.
“네?”
설마 했던 돌발상황에 천건도가 잔뜩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상황. 하지만 놀란 건 이민기도 마찬가지였다.
‘아, 실수.’
제대로 실수했다.
이 애드립, 원래 이번 드라마 각본에 없던 거였는데. 전생에 본 [우주에서 온 남사친]에서 이 장면을 워낙에 많이 보면서 따라 한 바람에, 그만 그쪽 대사가 먼저 튀어 나와버렸다.
원작 팬으로서 본능에 의거해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못 참지.
하지만.
‘말리지는 않는 거 보면…… 이대로 계속하라는 말이렷다.’
흘끗 바라본 시선 끝, 감독이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나오시겠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기왕 친 애드립, 어떻게든 이어나가 봐야 하지 않겠나. 이민기가 그런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질문 자체가 쿨하지 못하네.”
“형.”
“진짜 쓸모없는 고민이라고. 투명한 물에도 그림자가 드리우는데, 세상에 욕먹을 구석 없는 사람이 어딨어?”
이 악물고 가 보자. 심성보 감독의 말버릇을 되새기면서.
[촬영 멈추면 실수지만, 촬영 계속하면 애드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