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69)
운빨로 탑스타-169화(169/200)
제169화
연기를 진행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아, 이거 그냥 질러 봐? 아니면 말아.’
딱 이 타이밍에 내가 과감하게 애드립 하나만 던져 보면 작품이 확 나아질 것만 같다. 아니, 무조건 나아진다는 직감이 든다.
[질러!]단순한 충동을 한참 넘어서서 확신에 가까운 그 느낌.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든다. 내 애드립 하나가 자칫하면 전체적인 그림을 망칠 것도 같아서 두려운 것.
고등학교에서 친구들의 분위기를 깰 게 무서워 농담을 못 던지는 것과도 같았다. AOS 게임에서 정글러가 무심코 안정적인 플레이를 해버리는 것과도 같았다. 회사에서 아이디어 내놓으라는 말에 입을 꾹 다무는 것과도 같았다.
이런 일은 여러 현장에서 무수히 발생하곤 한다.
[아니야, 내가 뭘 안다고 나서냐. 그냥 남들 하는 대로 묻어가기만 해도 중간은 간다. 나대지 말자.]애드립은 용기와 만용의 산물이었다.
반면, 우리는 언제나 화합을 위해 입에 자크를 채우고 한 발자국 물러서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자중. 그게 우리가 살아온 사회가 여태껏 이어져 내려온 방식이기도 했고.
하지만.
‘난 어차피 까메오인데 뭐 어때.’
가끔은 나대기를 공개적으로 요구받는 자리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민기가 슬쩍 시선을 돌려 문효성 감독의 눈빛을 살폈다.
‘감독님도 안 말리고.’
고집스러운 매부리코 위로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그 눈매에서는 각본이 틀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불쾌감보다는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래, 한층 더 진한 기대감이 돋보였다.
이민기가 마른 혀를 살짝 굴리며 심성보 감독의 입버릇을 되새겼다.
[멈추면 실수다. 하지만 나아가면 한 수다.]좋아, 이만하면 충분하다.
지금부터는.
행동으로 옮길 순간이다.
“야.”
한마디와 동시에 사람 자체가 완벽하게 변모한 이민기가 천건주를 아득히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무슨 방구석에서만 자란 사람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세상에 구린 구석 없는 놈이 얼마나 있냐?”
“…….”
천건주의 눈가가 씰룩거렸다. 그는 아직 이민기의 애드립에 적응하지 못한 눈치였다. 멍하다 못해 백치미마저 느껴지는 눈빛, 그게 바로 증거였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잘 받아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민기는 천건주의 애드립에 섞여들지 못해 발생한 난감한 눈빛을 리액션으로 판단했다.
아니라도 상관 없다.
외려 그게 연기에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 무렵, 이민기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고는 거듭 입을 열었다.
“우리 동생, 네 숙부님, 세상에서 제일 올바른 것처럼 사는 사람. 우리 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 다 존경하고.”
“아, 네.”
천건주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성의원이시잖아요. 숙부님만큼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정말 법 없이도.”
“개뿔이.”
이민기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그 인간, 우리 어머니랑 불륜 관계야.”
“……!”
상상을 한참 넘어서는 파격성에 천건주가 황당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민기의 애드립이 과한 건지 아닌지 헷갈리는 거겠지.
딱히 이민기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이 애드립이 원작 스토리에 아무런 지장도 안 준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알뿐더러, 실패 좀 하면 어떻겠나. 재촬영하면 그만이지.
“그리고 너희 아버지는.”
“잠시만요, 아버지께서는.”
“네 숨겨진 형제가 몇 명이게?”
“…….”
천건주의 눈가가 거듭 꿈틀거렸다. 조금 전보다 한 수 더.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나간 거 아니냐는 무언의 항의가 담긴 표현이겠지. 물론, 이민기는 쥐뿔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주에서 온 남사친은 이 맛이지.’
막 나가기로 이미 정했으니까. 막 나가라고 나온 작품이니까. 게다가 막 나가기에 최적화된 배역이니까.
판을 줬으니 춤춰 주는 거 밖에 또 있겠나.
‘슬슬 애드립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소재도 떨어졌겠다.’
지금부터는 제3의 요소를 섞어 줄 순간이 왔다.
김아성 트레이너에게 만에 하나 현장에서 애드립을 펼칠 일이 있거든 써먹으라고 배운 그것.
[애드립은 플랜만으로는 안 돼. 그건 딱 대사 몇 마디짜리고, 그다음부터는 달라. 진심을 섞어야지. 연기 50%에 본심 50%를 섞어 봐. 특히 민기 씨는 너무 진지한 구석이 있으니까 힘 좀 빼고.]진심 섞기였다.
이민기는 이 순간, 등장인물이 아닌 이민기라는 사람으로서 떠올릴 수 있는 조언을 떠올려 보았다.
남 눈치를 심하게 보는 동생에게 친척 형으로서 할 수 있는 그런 말을.
하나, 둘, 셋.
적당한 시간이 흘렀다. 계획보다는 구상을 마친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내가 살면서 느낀 건데, 구린 놈들일수록 청결한 척한단 말이야.”
이민기의 진심.
다음 스테이지의 시작이었다.
“네?”
“꼭 켕기는 구석이 있는 사람일수록 정의롭게 행동하려는 버릇이 있어요. 어? 남한테 엄격하게 도덕을 들이미는 인간들은 이미 도덕이 결여되어 있단 말이야. 불신이 가득한 거지. 지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
“사기꾼 욕하는 사람 중에서 사기꾼이 자주 나오는 이유가 뭐겠냐? 지가 그 짝이니까 켕겨서 지레 겁먹고 앞장 선 거야. 아군인 척하려고.”
비단 드라마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이민기의 진심이 담긴 말이기도 했다. 다름 아닌 이민기, 그야말로 살면서 늘 고개를 숙여왔던 사람이었으니까.
“정말로 당당하게 산다는 건 말이야. 적당히 막 나가면서 산다는 말이랑도 일맥상통하거든. 날 믿고,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굳이 애매한 구석에서 불신을 품지도 않아.”
선한 사람들이 유독 사기에 노출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남들 또한 자기처럼 선하리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이민기는 그런 행동이 얼핏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믿었다.
내가 나를 설득해야 남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즉, 선의로 살아온 사람이기에 타인에게 바랄 수 있는 선의 또한 있다는 것을.
“네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없는 거야.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내가 바르게 서면 세상 또한 바르게 세울 수 있다.
‘아차.’
그렇게 몇십 초를 혼잣말로 떠들고서야 얼떨결에 일장연설하는 재미에 빠져 되도 않는 인생 훈계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찰나였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천건주가 아득히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깜빡거렸다.
‘선배님이 지금 하신 말씀들, 뭔가 나한테도 맞는 말 같은데.’
설득당해버렸다.
이민기의 연기 아닌 연기 속에서 무심코 그 말을 듣고 있노라니 받아 들여버린 것.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민기가 즉흥으로 짜낸 조언 속에는 정말 우연히도 천건주의 현재 상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맥락이 있었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굳이 애매한 구석에서 불신을 품지도 않아.]나라는 사람 자체에 의심이 가득해서 남들마저 의심했던 게 아닐까. 나 자신부터 내 연기를 못 믿으니까, 그 연기를 남들이 받아주리라고 못 믿었던 거 아닐까.
찰나의 순간, 수없이 이어지는 고민 속에서 그의 머리가 우연히 다다른 생각은 이러했다.
‘그 말이 맞다면?’
적당히 막나가는 게 오히려 맞다면?
남의 눈치를 살필수록 결과물이 박살 나는 거라면?
당장 이민기 배우님을 봐라. 얼마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질러버리냐. 저렇게까지 대본 무시하고 막 나가는 연기조차도, 당당하니까 그럴듯해 버리지 않나. 당장 감독님도 안 말리고.
‘……저건 배우님 체급 때문인가?’
잠시 긴가민가했지만, 천건주는 이내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의심하지 않아야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 버렸으니까.
“……형.”
천건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저희 아버지한테 나 말고도 다른 자식들 많다고 했죠?”
* * *
짧은 까메오 연기가 끝나버렸을 무렵, 이민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와, 선 제대로 넘었네.’
까메오에 너무 심취한 끝에 좀 막 나가 버렸다. 입 밖으로 뱉었던 말들이 뒤늦게 쪽팔림의 파도가 되어 이민기의 뇌를 덮쳤다.
‘이쯤 되면 감독님이 재촬영하자고 할 것 같은데.’
화를 낼 수도 있고. 아무리 까메오로 데려다 놨다고는 하지만, 너무 선을 넘었다면서 말이다.
이민기는 그렇게 예상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눈앞의 결과는 그의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 많이 달랐다.
“이대로 써도 될 것 같습니다?”
문효성 감독이 희희낙락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아주 명연기였습니다.”
놀란 표정의 이민기에게 문효성 감독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는 이민기의 일장 연설을 외려 고평가한 듯했다.
“잠시만요,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
“캬, 역시 세계적인 대배우는 다르군요? 이렇게 즉흥적으로 연기해도 장면이 살고. 어우, 원래 대본보다 한 열 배는 나은 것 같아.”
원래 대본이 어땠더라.
‘아, 기억났다.’
주인공한테 시소 이야기를 하면서 의자의 개념 하나조차도 그들의 행성과 지구에서는 이만큼이나 다른데, 뭐하러 원래 규율에 사로잡히냐는 이야기였지.
이제는 없는 대사가 될 것 같다만 아무튼.
“감독님, 정말 괜찮겠어요?”
“예, 좋기만 하던데요?”
“나중에 각본들 다 흔들릴 수도 있는데.”
이민기가 혹시 모를 책임 소재를 피하기 위해 만류하려 든 찰나였다.
“아 괜찮아요. 어차피 이거 다 실시간으로 쪽대본이거든.”
“네?”
깜짝 발언이 튀어나왔다.
“배우님한테만 특별히 말씀드리는 건데, 우리 6시간 뒤에 촬영할 각본도 아직 못 받았어요. 지금 하루하루가 즉흥 연기랑 다를 바가 없는데, 장면 하나 즉흥으로 하면 뭐 어떻습니까.”
“…….”
충격적이다 못해 황당한 현장 앞에 이민기가 할 말을 잊고 입만 뻐끔거렸다.
‘아직 중반부밖에 안 됐는데 이대로 끝까지 쪽대본으로 찍었어?’
아무리 그래도 쪽대본은 후반부 가서 나오는 일 아닌가. 월드클래스로 히트 친 드라마의 실체가 이랬다고?
‘계획된 병맛이 아니라, 그냥 촬영환경 자체가 병맛이었다고?’
이건 쉽지 않다.
팬으로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에 이민기가 눈가를 꿈틀거리려는데, 문효성 감독이 키득키득 웃더니 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게다가 말입니다. 원래 천건주 배우님도 연기 별로였다는 거 아십니까?”
“잘하던데요?”
어느새 제정신을 되찾은 이민기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제 애드립에도 잘 맞춰주고. 감정표현도 좋고 손짓발짓도 자연스럽고. 문제 될 게 없던데.”
“푸하하, 그랬죠?”
문효성 감독이 배를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배우님 앞에서만 그랬던 겁니다.”
“제 앞에서만요?”
“원래는 기죽을 때가 많았거든요. 다른 배우들이랑 합만 맞춰주면 자꾸 져 주려고 한다고 해야 하나? 눈치를 살금살금 살피는데, 그게 아주 불안했어.”
정반대였는데.
자기 할 말을 아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뱉던데. 얼굴까지 시뻘개져서.
이민기는 여전히 그의 말이 이해가 안 갔지만, 감독이 그렇다고 하니 그냥 수긍하기로 했다. 자못 현장에서는 감독의 눈으로만 보이는 것 또한 있기 마련이니.
“뭐, 다시 찍어 보면 도루묵일 것 같지만.”
문효성 감독이 깊게 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아, 배우님께 부탁드릴 건 대강 마무리된 것 같은데, 이대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음, 아니요.”
이민기가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우리 후배님 연기하는 모습 좀 보고 싶네요.”
“그렇죠? 궁금하셨죠? 여기 배우님 전용 의자 마련해 뒀으니까 여기 앉아서 편히 보시다 가십시오.”
문효성 감독이 곧 의자 하나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그 의자 등판에 붙은 종이딱지 위로 마카펜으로 거대한 글씨가 적혀 있었으니.
[글로벌 스타 이민기 배우님 지정 VIP석]“…….”
기뻐해야 할지 꺼려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의자였다.
‘얼른 앉아서 가려야겠다.’
이민기가 황급히 그 위에 앉았다.
‘잠깐 현장 구경이나 하다 가야지.’
어차피 [우주에서 온 남사친]은 그가 유독 좋아하는 작품이지 않았나. 현장 분위기를 특등석에 앉아서 보는 것이야말로 팬으로서 가장 큰 사치 아닐까.
이민기가 그런 심정으로 몸을 반쯤 기울이고 양손을 포갠 채 카메라 너머를 바라보기를 잠시.
‘오.’
이내 감탄했다.
‘연기 되게 잘하는데?’
천건주의 연기가 그러했다.
“나, 너만 있으면 나머지는 없어도 돼.”
히로인에게 고백하는 상황, 당당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서는 얼핏 기백마저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자신감이 결여된 연기를 선보였던 덕일까, 당당해지자 역으로 반전 효과가 얼핏 강렬해지기까지.
천건주가 원래부터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던가.
TV에서는 그냥저냥 괜찮은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그거 다 연출로 뭉갠 거였나.
“감독님, 우리 후배님 연기 되게 잘하는데요?”
이민기가 헛웃음을 터뜨리면서까지 말한 순간이었다.
“……그러게요?”
문효성 감독이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입가를 경련하듯 떨며 말했다.
“왜 잘하지? 허어, 원래 저런 배우가 아닌데? 뭐지?”
“감독님?”
“아니지, 만약 그게 다 연기였다면? 내가 배우 보는 눈이 없었던 거라면?”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지금까지는 잘하면서 못하는 척했던 건가? 아니면 그것도 다 연기였나? 사람이 너무 바뀌었는데? 뭐지? 내가 헛것을 보는 건가?’
그가 촬영 초기부터 천건주에게 줄기차게 주려고 했던 게 뭔가.
바로 자신감이다.
자신감을 주려고 열심히 칭찬하고, 다른 배우들 앞에서 기 세워주고 그랬던 건데 전혀 안 먹혔지. 그런데 저게 갑자기 해결된다고?
딱 자신감이 필요한 타이밍이 되자 마자? 사람이 확 바뀌어?
‘뭐야, 저거 무서워.’
문효성 감독이 천건주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보려고 오만 인상을 찌푸리는 사이, 이민기는 긴장이 풀리는 걸 느끼며 말했다.
“전 이만 가 볼게요.”
“예? 더 안 보시고.”
“계속 여기에 있으면 방해도 될 것 같고요.”
이민기가 저 멀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는 거 보니까 어련히 잘할 것 같아서요.”
이만하면 알아서 잘하겠지.
안 따라잡히려면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아니다, 그냥 쉬지 말고 연습이나 더 하러 가야겠네.’
이민기가 쉬러 온 참에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할 원동력을 얻어버린 순간이었다.
핏콩!
핸드폰의 알림음이 울렸다.
그곳에 있는 메시지는, 이민기가 여태껏 기다려 마지않았던 것이기도 했다.
[슬슬 캐스팅 단계에 들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