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73)
운빨로 탑스타-173화(173/200)
제173화
보컬 트레이닝.
말 그대로 노래를 배우는 것.
이건 불과 2000년대에만 해도 배우는 사람이나 배우는, 배우러 가기도 어려운 전공자 한정 수업에 가까웠다. 일반인들은 어지간히 음악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서야 발을 들일 일도 없는.
하지만 어째서일까.
[코리안 보이스 시즌2 시청률 18% 돌파!]2010년대 한국.
동네마다 보컬학원이 복수로 깔리는 시대가 찾아왔다.
[보컬 트레이닝 발성 잡기 3개월 과정, 너도 내일의 국민 스타가 될 수 있다.] [1달 안에 3옥타브 못 뚫으면 환불해 드립니다.]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노래는 일종의 사회생활이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모임에서 잘 놀기 위해서.
대학교에서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직장 회식 자리에서 점수를 따기 위해서.
혹은 적어도 다 같이 노래방에 놀러 갔을 때 꿀리지라도 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가슴속에 품고 보컬 학원의 문을 똑똑 두드렸고.
그중 대부분은.
[연습을 안 해오셔서 실력이 안 느신 거라서요. 환불은 어렵겠습니다.]별다른 성과도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기 십상이었다.
[아니, 1달 안에 3옥타브 뚫어 준다면서요.] [네, 뚫으셨잖아요. 소리 내 보세요.] [이게 무슨 3옥타브예요. 노래에 쓰지도 못할 가성이구만.] [학생분이 연습을 제대로 안 해오셔서 못 살린 거지, 그게 소리 나오는 길은 맞습니다.] [이거 완전 사기꾼이네, 인터넷에 공론화합니다.] [법적으로 한번 가시죠.]돈과 시간을 투자한 만큼 빠른 성취를 얻고 싶어 하는 학생들. 그런 환상을 이용해 돈을 벌려 하는 트레이너들.
[당신이 고음이 안 뚫리는 이유] [배로 호흡하라고 시킨다고요? 사기꾼들 단골 멘트입니다.] [소리는 머리가 아니라 목으로 내는 겁니다.] [사짜 트레이너 XXX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8가지 사실]서로가 서로를 저격하는 아수라장 속에서 슬슬 불신이 피어나는 것도 당연한 법.
사실, 굳이 따지자면 트레이너들에게도 억울한 구석은 있었다.
노래라는 게 원체 감각적인 영역이 크고, 자연히 같은 교육을 주더라도 재능에 따라 얻어갈 수 있는 것이 하늘과 땅 차이인 법이니까.
재능이 있다고 전부는 아니다.
좋은 트레이너를 만나는 것, 그리고 자기에게 맞는 교육법을 선택받는 것, 무엇 하나 운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그런 이 바닥.
오늘, 한 초일류 트레이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내가 지금 뭘 잘못 듣고 있나?’
바로, 눈앞의 학생 때문이었다.
“아, 아, 아, 아, 아.”
스타카토(발음 하나하나를 강하게)로 피아노 스케일을 탁탁 찍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나이는 20대 중후반 정도일까. 하지만 인상이 부드러워서 그런지 교복을 입혀 놓으면 고등학생 연기를 시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동안.
반면 잘 단련된 육체는 헐렁한 오버핏 티셔츠 위로도 그 가치를 과시했다.
길거리를 걸으면 10명 중 8명이 뒤돌아보겠지. 2명은 슬쩍 곁눈질로 안 보는 척 볼 테고.
하지만 오늘 집중할 건 그깐 비주얼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른 쪽.
“아, 아, 아, 아.”
목소리 그 자체에 있었다.
“아, 아, 아, 아, 아.”
이민기가 목소리를 낼 때마다 담당한 보컬 트레이너, 한 트레이너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피아노 위에 얹은 손가락을 연신 까딱였다.
딩, 딩, 딩, 딩.
그럴 때마다 이민기의 목에서 반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는데.
‘허어, 저 소리가 원래 3주밖에 안 배운 사람 목에서 나올 소리가 아닌데.’
그 소리의 퀄리티가 너무나도 우수했다.
틱.
트레이너의 손가락이 멈춘 걸 느낀 이민기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혹시, 저 어디 실수했나요?”
“아, 아뇨. 잘했어요. 잠깐 쉽시다.”
“안 쉬고 계속해도 괜찮아요.”
“쉬는 것도 포함해서 수업입니다. 목도 탈 텐데. 피로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쌓입니다.”
“그럼 저 잠깐 물 떠올게요. 참, 선생님 것도 떠 올까요?”
“전 텀블러 따로 가져와서.”
“금방 다녀올게요.”
이민기가 예의 바르게 웃으며 레슨실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몇 초, 훌쩍 떠난 그의 빈자리를 바라보는 한 트레이너의 눈가에는 공허한 눈빛만이 가득했다.
‘발성이라는 게 이렇게 단기간에 배워서 될 게 아닌데.’
흡수력이 너무 다르지 않나.
누군가는 노래가 재능 하나로 결정된다고 주장하고는 하지만, 그건 사실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자고로 5를 줬을 때 1을 배우는 사람이든 10을 배우는 사람이든, 결국 10000을 채워야 뭐라도 하는 법.
한 트레이너가 지금까지 가르친 수강생만 1,000명이 가뿐히 넘어섰다. 그중 태반이 프로 지망생이거나 프로였고.
그런데 그중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게 이민기라니,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배우라서 그런가? 따로 연기용 발성을 배웠나? 아니지, 연기 톤이랑은 달라도 너무 달라. 분명 발성 수업 어디서 받은 적 없다고 했는데.’
혼란스러울 정도로 발전이 빨랐다. 방향성만 골라주면 알아서 다 소화할 정도로. 남들이 몇 달 동안 죽을 둥 살 둥 습득하는 감각을 매 수업마다 복수로 얻어갈 정도로.
‘세계적인 배우면서 저 정도로 노래에도 재능이 있다고? 말도 안 돼.’
믿기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실용음악과 전공생이 몰래카메라를 찍는 것 같다.
왜, 요즘 유행하지 않나.
노래 처음 배우는 사람인 것처럼 수업 들으러 가서는, 재능충인 척 본색을 드러내는 그런 영상.
하지만 한 트레이너는 지난 오랜 트레이너 경험으로 알았다.
‘하나씩 고쳐가고 있는 게 맞아.’
이민기는 숨겨진 실력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바닥부터 차차 쌓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실, 이는 전적으로 운에서 기인한 일이었다.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그런가? 수업할 때마다 쑥쑥 느네.’
이민기.
그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에게 가장 걸맞은 선생을 찾아버린 것이었다.
철저하게 감각 위주로 가르치는, 다소 옛 방식이라며 비웃음을 사기도 하는 그런 강사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는 선호 받는 그런 강사를.
‘소리를 코 뒤로 빼서 한 바퀴 돌리고 정수리로 쏘아내라고 했지.’
근래 급속도로 보급된 과학적인 발성법과는 거리감이 있다.
그쪽은 바닥부터 차근차근 나아가는 걸 중시하니까. 물론, 그만큼 누구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크고.
반면, 보컬 트레이닝에서 감각적인 교습법은 수강생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인 경우가 컸다.
그 탓에 트레이너가 사기꾼 취급을 받을 때도 잦았고.
하지만 어째서일까.
‘괜히 유명한 트레이너분이 아니시네.’
이게 아이러니하게도 이민기에게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전적으로 운빨 덕분이었다.
목소리 한 번을 내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열 가지 소리길 중 무조건 올바른 길 한 가지만 골라낼 수 있는 운빨.
남들은 1달 내내 연습해서 시간을 박고 나서야 아 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돌아가기를 반복하며 올바른 발성으로 나아갈 때, 이민기는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
무조건 옳은 감각만 골라낸다.
가히 하늘이 내렸다고 봐도 좋을, 아니, 실제로 하늘이 내린 운빨이 그에게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쉬었으면 다시 시작하죠.”
“네.”
“그럼 이번에는 좀 어려운 거 하나 연습하겠습니다.”
어느새 다시 시작된 수업.
트레이너는 한가지 욕구에 차 있었다.
눈앞의 학생이 실수하는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욕구.
다소 뒤틀렸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학생이 가르치는 대로 성공하는 모습만 보고 있자니 선생의 존재 의의가 희미해지는 기분이다.
이번에만큼은 1시간, 아니, 단 10분이라도 이민기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밉지만, 그래도.’
한 트레이너가 그런 마음을 담아 이민기에게 말했다.
“휘슬 레지스터입니다.”
휘슬 레지스터.
흔히 돌고래 소리라고 말하는 초고음 발성법이 그러했다.
한 트레이너는 연습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민기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못 내도 상관없습니다. 휘슬 레지스터는 어차피 가창에 사용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용할 곡도 거의 없으니. 기교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전 이걸 연습 방법으로 쓰고는 합니다.”
“연습 방법이라면?”
“휘슬 레지스터라는 게 못 내더라도 일단 연습하다 보면 목에서 힘을 뺄 감각을 얻기 수월하거든요.”
휘슬 레지스터는 발성법 중에서도 특별했다.
반복 연습으로 얻어질 게 아니다. 순전히 감각에 의존하는 발성법. 되는 사람은 되고, 안 되는 사람은 계속 안 된다. 하지만 일단 한번 되고 나면 계속되기도 하는 게 휘슬 레지스터였다.
더욱이 실제로 발성 연습에 도움이 되기도 했고.
‘필요 없는 걸 가르치지는 않는다.’
한 트레이너가 신념을 되새겼다.
일단 되면 크나큰 진보가 있을 터. 실패하더라도 아쉬울 건 없다.
“자, 이렇게 해 보는 겁니다. 휘-”
한 트레이너가 시범을 보이듯 고운 목소리를 쭉 뽑아냈다.
린넨처럼 부드럽게 흘러나온 휘파람 소리가 공중제비를 돌 듯 말려 올라가더니, 어느새 돌고래의 그것과 같은 소리로 올라갔다.
“자, 따라 해 보세요.”
이민기의 차례가 왔다.
실패하더라도 이상하지는 않다. 오히려 실패하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윅.”
이민기는 실제로 실수를 저질렀다.
“윽.”
목에서 턱 막히는 걸 감지한 이민기가 인상을 찡그리며 목을 붙잡았다.
지금까지 술술 풀렸던 것과는 달리, 휘슬 레지스터만큼은 아무리 운빨이 강한 그라도 단번에 안 됐던 것.
‘배우님도 역시 사람이구나.’
실패했다.
마침내 실패를 목격한 한 트레이너가 오히려 안도감마저 느끼며 말했다.
“아마 안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하지는 마세요. 원래 안 되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위로였다.
누굴 위로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민기를 위로함으로써 마침내 선생 노릇을 한다고 느꼈다.
역시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차근차근 실수를 반복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거지.
그 정도의 명언을 차례차례 던질 준비도 한 찰나였다.
“아, 다시 해 보면 될 것 같은데.”
이민기가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휘-.”
두 번째로 시도를 했을 때.
“…….”
한 트레이너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실패했다.
두 번째 휘슬 레지스터 시도도 실패했다.
하지만 명백하게 첫 번째 시도 때보다는 반걸음 더 나아간 소리였다.
‘뭐지?’
한 트레이너가 초조하게 눈을 깜빡거리는 찰나, 이민기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몸을 가지런히 일자로 폈다.
오랜 기간 바른 자세로 피아노를 쳐 온 피아니스트처럼 곧게 선 척추. 폐와 목, 입이 일직선으로 한데 연결된 체인처럼 번듯하게 나열된 순간.
“휘-.”
이민기의 입에서 세 번째 시도가 흘러나왔고.
“읍, 이거 아닌 것 같은데요.”
소리를 마친 이민기가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을 때, 한 트레이너는 마침내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재능 X망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