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74)
운빨로 탑스타-174화(174/200)
제174화
조용하게 달리는 최고급 자동차.
그곳의 조수석에 앉은 한 남자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상황이 쉽지 않게 됐군.”
짧은 푸념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발성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듣는 순간 돌아볼 것만 같은 목소리.
하지만 그보다도 유명한 건 그의 소리. 정확히는 그가 지난 수십 년간 만들어온 소리들이었다.
과연 한국인 중에서 이 사람의 소리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처마 위 빗방울에 맺힌 한소리가 목 끝까지 차오르고, 돌아볼 일 않는 마음에 버들가지 흐노니.]TV에서.
[조여드는 긴장감이 모서리에서 널 향해 점이 되어 가. Like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거리에서.
[부릉, 부릉, 부르릉, 부르르르릉. 내 심장 소리, 부릉, 부릉, 부르르릉.]카페에서, 식당에서, 당장 이 자동차에서도 이 남자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왕년에는 대박 난 싱어송라이터였지만, 전업 작곡가로 진로를 변경하며 더욱더 큰 성공을 거머쥔 남자.
“후우우.”
자타공인 한국 최고 저작권료를 자랑하는 작곡가, 손희정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라고도 불리는 그런 사람. 스타의 그림자에 있는 스타라고 불리는 이의 기운 없는 모습에 운전대를 잡은 매니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희정 씨가 앓는 소리를 다 하는 모습을 다 보네요.”
“저도 사람입니다. 딱히 대단할 것도 없는 사람.”
“농담도 과하시네요. 희정 씨가 대단하지 않으면, 한국에 대단한 사람이 얼마나 있답니까?”
그래, 대단하기는 하지.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한국이 아니라 하필 미국이라.’
음악계에서 잘났다는 놈은 다 모여 있다는 미국, 그중에서도 빌보드, 그중에서도 정상에 선 사람이 있다.
윌리엄 록하트.
미국 음악을 넘어, 지구의 상업 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걸어놨다고 말한들 전혀 과언이 아닐 남자였다.
‘윌리엄 록하트라.’
그의 신곡들을 받아서는 영화 속 장면들과 어울리게끔 적절히 매만지는 게 이번 그의 일이 되어버렸다.
“끄응.”
일이 쉽지 않게 풀리리라는 직감에 손희정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일단 받아들이기는 했는데,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편곡은 희정 씨가 제일 잘하는 일 아니던가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손희정이 누구인가. 여태껏 수백 수천 곡을 편곡해 본 그다. 음상 하나를 들어도 그럴듯한 편곡 방법이 셀 수 없이 떠오르는 그니까.
윌리엄 록하트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받아들였다.
“잘하는 일이라고 언제나 잘할 수는 없는 법이야.”
그래, 그 곡이 어디에 쓰이는 줄 알았더라면 잠깐이라도 고민은 해 봤을 것이다.
“차라리 이름 모를 신인 가수라면 모를까, 배우 이민기한테 맞춰서 편곡을 해 달라니, 이건 미친 짓이야!”
상대가 이민기였다는 게 문제였다.
손희정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가라앉히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여태껏 노래라고는 부른 적도 없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영화 속 OST의 실연자로 써먹는 것도 웃긴 일이야. 그런데 그걸 나한테 편곡하라고?”
마치 스핑크스의 난제를 직면한 듯한 손희정의 앓는 소리에 매니저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지금까지 비슷한 일을 몇 번이고 맡지 않으셨나요?”
“있었지.”
“음치한테도 곡을 주신 적이 있잖아요. 결국 예능에 나가서 잘 팔렸고.”
“잘 팔렸지.”
“그것 봐요. 이민기라고 안 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매니저의 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편곡 자체는 못 할 거 없지. 굳이 말하자면 쉽다.
하지만 이번에는 재료가 빈약한 데 반해, 그 결과물의 요구치가 남달랐다.
“범지구적인 히트작을 만들어야 하니 하는 말이야.”
전 세계인이 듣게 생겼으니 부담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초짜가 부르는 노래를 지구의 그 누가 들어도 그럴듯한 수준으로 다듬으라니. 이건 미친 짓이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붙잡고 손희정이 중얼거렸다.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는 게 날 두고 하는 말이었군. 아니, 독이 든 사과를 베어물었다고 하는 게 맞겠어.”
벌써 몇 시간이나 이어진 푸념에 슬슬 지친 매니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또 모르잖습니까. 사실 어지간한 전공자보다 더 나을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노래를 따로 배운 경력이 없어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한 게 1달을 조금 넘긴 정도밖에 안 됐다는군.”
“가끔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잠깐 배우고도 잘하는 사람들.”
“그런 건 보통 대가리에 똥이 들어찬 뮤지션의 허세지. 천재처럼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들이 자기 몸값을 부풀리려고 내뱉는 말.”
“하하…….”
매니저의 질린 웃음소리 뒤로도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꼭 그렇지, 배웠으면서 안 배운 척. 10년 넘게 취미로 해 놓고 처음 하는 척. 몇백 시간을 들여놓고 몇십 분 만에 마친 작업인 척. 이 업계에는 천재 소리를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난 놈들이 너무 많아.”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런 놈들이 나을지도 모른다.
말도 섞기 싫을 정도로 재수 없지만, 적어도 실력은 있을 테니까. 이민기처럼 진짜 바닥에서 시작하는 부류와는 다르게 말이다.
“조만간 반고리관에 문제가 생겨서 피치 못한 이유로 한 달 정도 쉬어야 하게 될 수도 있겠군.”
슬슬 푸념도 지겹다 싶은 참이었다.
말없이 듣고만 있던 매니저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더니, 손희정이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슬럼프, 아직 안 끝나셨군요.”
“…….”
슬럼프.
그 단어가 나오자마자 한순간에 입을 다문 손희정이 잠시 눈을 껌뻑이더니 말했다.
“악상이 끊기는 정도쯤이야. 지금까지 밥 빌어먹으면서 몇 번이고 있었어. 잠깐 있으면 지나갈 일이야.”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안 해본 일을 하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도전이 모자란 세상이니까.”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손희정이 작곡을 그 손에서 놓은 게 벌써 100일째니까.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서, 영감도 결과물에 대한 확신도 잃어버린 채 방법론만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니까.
“어제도 안 주무셨죠? 잠깐이라도 눈 붙이세요.”
“음.”
그렇게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와중, 고급 리무진이 도로 위를 매끄럽게 달려 나갔다.
한국 몸값 넘버원이 되어가고 있는 배우, 이민기를 향해서.
* * *
‘미쳤다.’
이민기가 울부짖었다.
스튜디오에서, 사람들이 그에게 이목을 집중하고 있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울부짖었다.
“손희정이잖아요! 손희정!”
“배우님, 진정하십시오.”
“아니, 이 상황에 어떻게 진정을 해요. 감독님, 손희정이 제 노래를 같이 만들어 준다고 했다니까요?!”
이민기가 흥분한 목소리로 실버백 고릴라처럼 울부짖었다.
“가문의 영광 아니에요? 저 같은 사람한테 이런 행운이.”
“……굳이 따지자면, 배우님보다는 오히려 손희정한테 더 큰 행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허, 불손한 말씀.”
감독한테 불손한 말을 하고 있다는 건 깨닫지 못하는 이민기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어쩔 수 없다.
왜냐.
‘손희정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연기를 몇 번은 접었을 거야.’
하꼬 배우로 살아왔던 지난 삶, 이민기의 정신을 지탱해 주었던 게 손희정의 음악이었기 때문이었다.
‘힘들 때마다 손희정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을 붙잡았지.’
손희정의 노래에는 희망이 있다. 긍정이 있다. 인간 찬가가 있다. 소나기 뒤에 떠오르는 무지개가 있다.
이민기는 그런 손희정의 음악을 사랑했고, 더욱이 손희정을 존경했다.
그런 사람이 이번 작업에서 기꺼이 힘이 되어주겠다고 한다. 이럴 때 기뻐하지 않으면 언제 기뻐하겠는가.
“후후, 손희정 곡을 차트에서 들으면 들었지, 제가 직접 받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요.”
차마 감추지 못할 정도로 순수한 기쁨이 흘러나오는 이민기의 목소리에 주하나가 나긋나긋 웃으며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윌리엄 록하트의 곡을 손희정이 배우님의 노래에 맞게 다듬는 형태가 되겠지만요.”
그렇다.
이번 작곡 형태는 철저하게 협업 형태로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윌리엄 록하트의 곡을 최소한으로 만지고 그대로 부를 예정이었지만, 계획이 조금 바뀌었다.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발성 정도쯤이야 단기간에 해결하는 건 가능합니다. 하지만 노래는 발성만으로 될 게 아니지요. 이건 완전히 다른 이야깁니다.]이민기가 발성이 아닌 노래를 익히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생긴 것.
발성에는 일정 부분 운으로 더듬어서 찾아갈 수 있는 답이 존재했다. 하지만 노래는 달랐다.
[그림으로 예시를 들어 보자면, 발성은 물감이고 노래는 그림입니다. 물감을 배합하는 법에는 정답이 있겠지만, 그 표현법에는 정답이 없습니다.]노래만큼은 시간을 꼭 들여야만 하는 부분이 존재했다.
애초에 아마추어 가수들조차 최소 십수 년을 고생해서 쌓아 올리는 게 표현력이다. 현직 배우가 한두 달 배워서 따라잡을 수 있겠나.
그래서 마이야르 픽쳐스가 찾아낸 방법이 이것이었다.
[아예, 가수에 맞춰 표현까지 전부 코칭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편곡까지 함께 맡겨버리면 될 것도 같은데.]이민기를 곡에 맞추는 게 아닌, 곡을 이민기에게 맞추자는 것.
사실상 맞춤 정장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여기에서 소개를 받은 게 손희정. 한국에서 작곡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장 잘 꿰고 있다는 작곡가였고.
“손희정이라.”
마침 이민기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이기도 하였다.
“하나 씨, 제가 작곡 같은 건 잘 몰랐는데, 원래 아이돌들 곡 낼 때 손희정 씨? 가수님? 작곡가님? 그분이 처음부터 다 코치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흔히 프로듀싱이라고 말하는 그것이었다.
손희정이 이번 작품에 한해서 이민기 전용 프로듀서 일을 받아들인 것.
“민기 씨는 운도 좋으시네요. 그 정도 되는 사람이 단번에 받아들일 줄이야.”
“그러니까요. 바빠서 거절하면 어쩌지 했는데.”
운이 좋았다.
마침 휴식 기간이었다나. 윌리엄 록하트의 곡을 편곡하는 일이라고 말하자, 대뜸 받아들였다고 했다.
서정우 이사의 말에 의하자면 그러했다.
중간에 많은 게 생략된 것 같지만, 원래 영업직들은 과정 설명을 생략하기를 즐긴다.
본인이 받아들였다니 만사형통 아닐까. 원래 낙장불입이라고도 하고.
“배우님, 기뻐하는 것도 기뻐하는 겁니다만.”
심성보 감독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배우님이 배우님이신 이상, 우선은 연기가 먼저인 거 아시죠?”
“그야 물론이죠.”
“좋습니다, 그럼 노래는 둘째치고, 작곡가님이 오시기 전까지라도 간단하게 리허설이나 한번 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