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75)
운빨로 탑스타-175화(175/200)
제175화
‘리허설이라.’
이번 작품 촬영 방식은 다소 기묘하게 결정되었다.
영화도 영화지만, 음악의 비중 또한 그 못지않게 거대하기 때문일까. 촬영에 들어서기 전 단계에서 음악을 함께 병렬로 제작하며 진행하기로 한 것.
10번째로 촬영할 장면에 들어가기도 전에 20번째 장면을 약식으로 만들고, 그 장면에 맞는 음악을 먼저 구상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촬영 과정이라면 음악은 영상을 선 제작한 후 뒤에야 입히는 게 보통입니다만…….]업계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었다.
제아무리 음악의 힘을 강조하는 작품이라고 한들, 음악이 영상의 옆자리까지라도 치고 올라오는 일은 드무니까.
촬영이 끝난 뒤에나 고려하는 게 정상이었지.
하지만.
[그런 데 얽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달라졌다.
이 뒤에는 심성보 감독의 결단이 있었다.
[저희는 음악과 영상의 비중을 정확하게 5대 5로 나눌 겁니다. 눈으로 보는 음악, 귀로 즐기는 영상. 그런 걸 추구할 겁니다.]그 탓에 촬영 과정도 큼지막하게 달라졌고, 이번에 이민기가 연기할 장면도 그중 하나였다.
“순서로 따지자면 아직 영화 극초반부를 연습할 시기인데, 리허설은 중반부부터 먼저 시작하다니.”
이민기가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중요한 장면이라 연습 시간 좀 충분히 가지고 하려 했는데, 부끄럽네요.”
이번 작품, 록하트(가제)에서 유독 큰 비중을 가진 장면이 있었다.
음악을 혐오하다시피 하는 어머님의 반대를 넘어서기 위해, 음악으로 위로를 드리는 것.
[가족사진을 보면서 늘 생각했어요. 저렇게 행복하게도 살 수 있구나. 부럽다. 그래서 저도 생각했어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어머니도 그런 아버지를 사랑하셨을 거라고 믿어요.]주인공의 어머니는 일찍이 남편과 사별했는데, 이 과정이 문제였다.
음악에만 몰두하는 남편이 생활고로 비관에 빠져 이 세상을 떠났으니, 자식이 음악에 관심을 들이는 걸 차마 좋게 볼 수 없는 것.
차갑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얼음을 녹이고 싶다면 정과 망치보다는 온기로 녹이는 게 맞다.
음악으로 극복한다.
흔히 말하는 K-신파 전개였다.
[한국에서 이런 전개가 나온다면 지루하게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지루하다는 건 많이 나왔다는 말입니다. 많이 나왔다는 건 잘 팔렸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또 서양에서는 아직 신선할 겁니다.]이민기가 눈앞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 앉아 있는 건.
“…….”
주하나였다.
그녀가 더미처럼 앉아서는 피아니스트처럼 허리를 쭉 펴고는 잔뜩 기장한 표정으로 이민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연습에 한해서 주인공의 어머니 역을 맡아준 것이었다.
“아들.”
“풉.”
주하나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이민기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좀 젊으시네요.”
“우리 아들이 말 잘 들어서 그래.”
“크흐흐흐흐.”
이민기가 재차 헛웃음을 터뜨렸다.
제아무리 캐스팅이 느려지고 있는 탓이라고는 하나, 현 국민 첫사랑을 어머니라고 부르며 함께 연기해야 한다니.
주하나 팬들이 들으면 포복절도하겠다.
물론, 연기하려면 할 수 있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불만은 없다. 그냥 어색해서 웃길 뿐이었다.
“시작할게요.”
“네, 네네, 네!”
주하나는 또 잔뜩 긴장해서는 얼굴 근육이 돌덩이 같았고.
하지만 이런 상황 따위, 연기학원에서 몇 번이고 겪어 보았다. 세상에 어느 연기학원에서 필요한 배역별 배우들을 다 구비해 두겠나.
‘할머니가 필요하면 할머니를 연기하고, 외국인이 필요하면 외국인 연기하고 그러는 거지.’
모처럼 재밌는 연기를 하는 감각에 이민기가 거듭 웃었다.
그러기를 몇 초.
스튜디오의 기류가 바뀌었다.
“……!”
주하나가 눈을 크게 떴다.
‘배우님, 사람이 바뀌었어.’
불과 몇 초였다.
그 사이 이민기라는 사람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렸다. 이 세상에 없었던 사람이 눈앞에 한순간 나타난 것만 같다.
마치 양의 탈을 쓰고 있던 늑대가 털가죽을 벗어던진 것 같다.
한순간에 이마가 내려오며 눈매가 고집스럽게 변하고, 콧망울이 아래로 당겨지고, 입가의 각도가 변했다.
한없이 선했던 이민기의 얼굴에 고뇌가 흘러들어왔다.
‘얼굴 근육을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시는 거지.’
역시, 차원이 다르다.
겸손하기 짝이 없어서 평소 티가 나지 않을 뿐, 이민기라는 사람은 어느 궤도에 올라 버렸다.
배우려고 해도 너무 멀어서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하나가 그런 생각을 머금은 사이 이민기가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거 아세요? 지구 인구수가 77억 명을 돌파했대요.”
시작은 대사였다.
“내가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고민했어요. 나 말고도 사람이 77억 명이나 있는데, 그중에서 나 하나라고 가만히 있으면 너무 초라하잖아요. 조금이라도 나답게 살려면 뭘 해야 할지, 매일 고민했어요.”
록하트의 주인공, 임유성은 인생에 권태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사는 게 지루하다. 뭘 해야 심장이 뛸 수 있을지 알고 싶다. 나도 나다운 일을 하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런 욕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 바로 임유성이었다.
“최근에서야 알았어요.”
그런 임유성이 된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미국에 윌리엄 록하트라는 가수가 있어요.”
록하트, 빌보드의 황제야말로 임유성이 바라왔던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 인터뷰를 봤는데, 곡을 열심히 만들었대요. 반년 동안 작업실에 박혀서 열심히. 정말 최고의 곡 하나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혼신의 힘을 짜내서 꽤 어두운 곡을 만들었다나 봐요. 방구석에서 혼자 사람도 안 만나고 작업만 해서 그런지.”
“유성아.”
“그런데 그렇게까지 열심히 만든 곡을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잠시 뒤.
이민기가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농담을 떠올렸다는 듯 피식 웃고는 말했다.
“버렸어요.”
“…….”
주하나가 눈을 크게 떴다.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세상이 너무 어두웠대요. 다들 고개 숙이고 바닥 내려다보면서 걷는 세상인데, 자기라도 밝은 힘을 줘야 할 것 같았다나 봐요. 그게 자기가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가. 일개 예능용 에피소드에 불과한 이 이야기가 무엇이 특별해서 임유성이라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었는가.
윌리엄 록하트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건 무엇인가.
이민기는 그 뒤에 깔린 진실을 알았다.
“윌리엄 록하트는요. 나를 넘어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너무 당연하게도.”
영향이었다.
77억 인구 중 한 명에 불과한 개인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며 파급력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흔적을 남기는 것.
나를 바꾸고, 나아가 타인마저 바꾸는 것.
이게 임유성이 찾아낸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이었다.
“저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독백에 가까운 연기였다.
임유성의 어머니는 그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럴 연기였다.
주하나에게 주어진 대사는 없었다. 그저 자식의 말에 귀 기울여 들으며 표정으로 감정을 연기할 뿐.
하지만 원래 이런 연기에서 최고의 관객은 상대역이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미쳤지, 홀렸어.’
뒤늦게 이민기의 연기에 빨려들어 갔다는 걸 깨달은 주하나가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다.
연기를 감상하다가 너무 빠져버렸다.
마치 연기가 아닌, 나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하는 말을 듣는 듯했다.
‘몰입력이 차원이 달라.’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옛날에도 한 작품 같이 찍었지. 하지만 그때는 적당히 연기를 잘하는 신인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이민기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부끄럽네.’
타인이 발전하는 사이 나는 제자리에 안주한 게 아닐까.
주하나가 민망함마저 느끼는 사이 이 광경을 희미하게 웃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저거, 나도 당해봤지.’
천건주였다.
이민기의 연기를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래, 대사들이 단순히 문장의 나열을 넘어 자기한테 하는 말처럼 들리고는 한다.
그래서 홀려버린다.
이민기의 대사는 평범한 대사가 아니었다. 무엇 하나가 전부 설득력을 갖춘 고백이었다.
그렇게 주연 삼인방 중 둘이 은근히 감정을 공유하는 와중이었다.
“좋군요.”
심성보 감독이 작게 박수를 쳤다.
늘 딴지만 잡기 바빴던 그가, 이민기의 연기에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리허설을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마음만 같아서는 이대로 카메라에 담고 싶은 느낌입니다. 특히 배우님이 직접 고안한 저 지구 77억 명이라는 대사는…….”
그 찰나였다.
“으음.”
이민기가 그의 칭찬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못마땅하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진 것 같아요.”
“예?”
“중간에 감정선이 끊겨버려서…….”
그게?
감정선이 끊긴 거라고?
난데없는 이민기의 발언에 나머지 세 사람이 한순간에 같은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몰입하느라 연기라는 것도 까먹을 정도였는데, 끊겨? 감정선이?’
‘저게 감정선이 끊긴 거면 세상 사람들은 다 감수성이 메마른 거겠다.’
겸손한 것도 적당히 해야 할 것 아닌가.
표정만 보면 정말 불만족스러운 듯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은 저 표정마저 연기로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민기는 나름대로 진심이었다.
‘나다운 연기가 아닌 것 같아.’
단순히 잘하는 데만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나라는 배우가 보여 줄 수 있는 연기가 무엇인지 놓쳐 버렸다.
“배우로서의 색채를 조금 더 드러내고 싶은데, 안정적인 연기에 만족해서 너무 사린 것 같아요.”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실제로 주하나의 눈빛이 씨알도 안 먹힌 사람의 그것으로 물들었다.
“에이, 충분히 잘하신 것 같은데요. 듣다가 제가 저도 모르게 배우님 엄마 된 줄 알았.”
그래도 일단 분위기 풀 겸 농담이나 하나 던지려는 순간이었다.
이민기가 차마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이 정도로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못 받을 것 같아서요…….”
아.
그런 이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 목표였다니, 목표가 천상계를 넘어서 우주에 있었구나.
그렇다면 저 정도 연기에 불만을 가질 만하지. 아니지, 가질 만한가? 모르겠다. 본인이 그렇다니까 그런 셈 치자.
‘목표가 저 정도니까 연기가 저러지.’
주하나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감독님.”
“네, 민기 씨.”
“죄송하지만 잠시만 있다가 다시 해 볼게요. 고민 좀 더 해보면 제가 연기하는 임유성에 다른 캐릭터성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만 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성으로요.”
“배우님의 의사가 그렇다면야, 제가 말릴 건 없습니다만.”
“감사합니다.”
이민기의 말에 심성보 감독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지금은 시간도 넘쳐나겠다, 배우가 알아서 더 잘해 보겠다는데 그걸 말릴 이유가 있겠는가.
‘각본 상의 임유성이 아닌, 이민기 배우님의 임유성이라.’
어떤 형태가 될까.
결과물을 슬쩍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기는 한다.
어쩌면 이민기 본인과 똑같은 성격을 갖춘 캐릭터가 되는 건 아닐까.
‘기대되는군.’
그렇게 기대를 품은 순간이었다.
스튜디오에는 이 세 사람, 주하나와 심성보 감독, 천건주 외에도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충격을 받은 표정이 되어서.
마치 길거리에서 돌연 황금 덩어리를 주운 얼굴이 된 채 이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 나다운 캐릭터라고 했나?’
손희정.
한국에서 저작권 수입 최고액을 자랑하는 작곡가이자, 근래 슬럼프에 빠진 예술가가 그러했다.
‘나다운?’
잔잔했던 수면 위로 파문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