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76)
운빨로 탑스타-176화(176/200)
제176화
마이야르 픽쳐스 새 사무실에 갖추어진 응접실.
사람 1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을 방음 회의실에 세 사람이 앉았다. 이민기와 심성보 감독, 그리고 이민기였다.
난데없는 타이밍에 찾아온 손님의 모습에 회의실 분위기는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왜 말씀이 없으시지?’
심성보 감독이 조심스럽게 손희정의 눈치를 살폈다.
‘사무실까지 직접 찾아온다고 하니까 뭔가 할 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원래 과묵하신가?’
예능에서는 꽤 요란스러운 성격이었는데.
‘손희정 실물이다.’
이민기는 그런 손희정이 눈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탄하고 있었고.
아무튼, 그 당사자인 손희정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바로.
‘프로의 철학이라.’
작업에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가 하는,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고차원적인 논제였다.
손희정. 한국 최고 속도 작곡가라고 불리는 그에게는 별명 하나가 있었다.
소닉 정(Sonic jung).
작업 속도가 게임 속 캐릭터 소닉 만큼이나 빠르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는데, 그는 한때 이 별명을 몹시도 자랑스러워했다.
[프로의 덕목이 뭔데? 일감을 시일 내에 똑바로 소화하는 거지. 퀄리티만 붙잡고 있어서야, 제대로 된 프로가 될 수는 없어.]프로라면 마감을 지켜야 한다.
프로라면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
프로라면 시장이 요구하는 상품을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교육을 받으며 업계에 입문했던 손희정이다. 속도전을 중시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작곡가로서 쌓아온 커리어가 저랬던 탓일까, 자연히 그의 명성도 이쪽으로 자라났다.
[손희정한테는 믿고 맡길 수 있지.] [아주 확 대박이라고 느끼는 작업물은 드물어도 최소 실패는 안 하잖아. 믿을 수 있어.] [최고의 작곡가 아니야?]그렇게 쌓아온 명성이었다.
빠르고 안정적인 작업물. 이게 한국 최고의 작곡가의 뒤에 따라오는 수식어였고.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난 대체 뭘 만들고 싶었던 거지?’
손희정은 ‘나’를 잃어버렸다.
그의 곡 안에서 손희정은 사라졌다.
작곡가 본인이 빠진 노래 속, 그 자리를 안정적인 성적을 내기 위한 공식과 장치들이 대체했다.
[개성이 조금 모자라지 않나요?] [성적을 내려면 이 공식대로 만드는 게 맞지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시나 본데, 대중은 익숙한 음악을 좋아합니다.]그렇게 합리화로 시작된 작곡 스타일은 어느새 트렌드를 캐치하고 시장에 먹히는 음악을 만든다는 좋은 타이틀로 그의 정체성이 되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 어째서일까.
‘저렇게 모두가 인정할 만큼 안정적으로 좋은 연기를 선보였으면서, 캐릭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예 버리겠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눈앞의 배우를 인정하기 어려웠다.
이민기.
그의 연기를 본 손희정의 눈이 지진이라도 맞이한 맨틀처럼 흔들렸다.
“저, 작곡가님?”
그런 손희정을 이민기가 머뭇거리다가 불렀다. 멀뚱멀뚱 서 있으니,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서.
‘뭐지? 기싸움인가?’
은은했던 존경심이 회의실에서 보낸 몇 분 사이에 희미해졌다.
‘상식적으로 남의 사무실에 찾아왔으면 할 말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짜 대접받으려고 그냥 온 건가?’
그냥 말도 없이 들이민 건가.
아니면 일단 오기는 온 건데, 우연히 본 내 연기가 시원찮아서? 아, 누가 볼 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더 집중해서 좋은 연기 보이는 건데.
‘너무 힘 빼고 연기했나.’
내 연기 막상 보고 실망이라도 한 건가.
이민기가 예상치 못한 방문객의 시선에 연기를 돌아보는 사이에도.
“…….”
손희정은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아니, 이건 침묵이 아니다. 그와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음미.
그래, 손희정은 이민기라는 사람의 연기와 태도를 음미하고 있었다.
‘아무리 결과물이 좋다고 해도, 그 안에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건가.’
연기와 음악이 같을 수는 없다. 예술이라는 한 카테고리 안에 묶여 있지만, 둘은 완벽하게 다르다.
방법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르고 지향점도 다르다.
하지만 이민기의 태도에서는 분명 같은 예술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만.”
손희정이 입을 열었다.
어린 후배 이민기가 아닌, 배우 이민기를 바라보면서.
“조금 전 연기가 아깝지 않습니까? 버리기에는.”
“그런 걸 물으신다면…….”
갑자기 뭘 말하자는 거지. 뭘 떠보려고 하는 건가. 아, 대답 잘해야 할 것 같은데.
이민기가 영 복잡한 심정에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저도 배우 입장에서 아쉽지 않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습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하고 싶어서……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나중에 좀 제 작품이 아닐 것 같아서요.”
“설령 그 과정에서 결과물에 흠집이 생긴다고 해도?”
“흠집이 생긴다는 건,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의도하는 바가 있는 질문일까.
이미 궤도에 오른 결과물인데, 흠집이 생길 리스크를 각오하고서라도 꼭 고쳐야만 하겠느냐.
꽤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예술에 완벽한 건 없다잖아요?”
적어도 이민기에게는 그러했다.
“흠집이 생긴다는 건 우선 뭐가 되었든 완벽한 청사진이 있다는 걸 가정한 말인데,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완벽하다는 건 개념에 불과하다.
완벽한 구, 완벽한 직선, 완벽한 네모, 이런 건 개념으로만 존재할 뿐.
플라톤의 이데아 안에서나 볼 수 있을까. 현실 세계에서 저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이민기의 생각이었다.
하물며 100명에게 보여줘도 100명의 감상이 다른 예술이라면 더더욱.
“그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이민기가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연기에서 흡집을 낸다면 낸다 치더라도, 그보다는 조각에 가깝죠.”
“조각?”
“계속 다듬어 가면서 제가 만들고 싶은 형태를 찾아 나가는 거예요.”
그렇다.
온갖 방법을 시도하며,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점을 찾아 나간다. 이게 이민기가 생각하는 수정과 개선이었다.
‘아, 나 왜 진지한 이야기 하고 있지.’
그것도 배우가 아니라 작곡가랑 말이다.
이런 고차원적인 이야기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적임자일 것 같은데. 예를 들자면 황의성 감독 같은.
‘아니지, 그쪽은 멱살 잡을 수도 있겠다.’
자기도 모르게 그의 사회성을 고평가했다는 걸 깨달은 이민기가 황급히 생각을 수정했다.
역시, 인간관계에도 정답이 없다.
“그냥 제 생각이니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하하…….”
그 순간이었다.
“아니요.”
이민기의 말을 긍정하는 사람이 있었다.
“저도 배우님의 의견에 적극 동의합니다.”
심성보 감독이었다.
그가 이민기의 말에 난입하더니 거들었다.
“안정적인 물건만 만들려고 하면 [스피어] 꼴 나는 거죠.”
“아, [만만투]랑 겨뤘던 작품 말씀하시는 거죠?”
“히어로물, 네.”
“그건 좀 너무하긴 했어요. 처음 장면 보면 후반까지 다 내용이 짐작이 가서.”
“몇 년 전이었다면 먹혔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 관객들은 눈이 높아졌거든요. AST가 게을렀던 거죠. 늘 하던 방식 그대로 해서 성공하려고 했으니까요.”
적막하던 찰나에 물꼬가 트였다.
한창 분위기만 살피던 심성보 감독이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는 듯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주인공도 어디서 본 것 같은 주인공, 조크도 어디서 본 것 같고, 플롯도 그렇고, 빌런도 그렇고.”
“그래도 완성도는 좋지 않았어요?”
“굉장했죠. 저희 같이 영세한 스튜디오에서는 아예 따라갈 수도 없을 정도로. 화면 때깔만 봐도 돈 바른 티가 나던데요.”
“하하.”
남이 저런 말 꺼내면 실례인데, 감독이 저렇게 말하니까 괜찮다.
다음 순간, 심성보 감독이 눈빛을 빛내더니 말했다.
“하지만요. 스피어 그거, 솔직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품이었잖아요?”
“음.”
노골적인 평가를 내려야 할 순간이 와 버렸는가.
손님 앞이라서 말을 조금 삼가려고 했더니마는. 아니다, 그냥 진심을 꺼내자.
이민기가 잠시 신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비슷한 작품만 올해 한 5개는 봤죠. 굳이 이 작품을 봐야만 할 이유가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렇다.
스피어라는 작품의 패인이 그러했다.
성공 공식에 너무 집착해서, 그만 안주해 버린 것. 안주하자 루즈해졌고, 결과적으로 [만만투]라는 경쟁자에게 모든 걸 빼앗겼고.
“그래도 흥행은 했다니까 성공이네요?”
“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성보 감독이 턱을 긁적이더니 말했다.
“아마, 당장 그렇게 보일 뿐일 겁니다.”
“당장만요?”
“스피어라는 건 단독으로 나온 작품이 아니잖아요? 오딘 유니버스의 수많은 작품들의 뒤를 이어서 나온 후속작에 가깝죠. 그러니까 그 기대감과 그 기대감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의 힘으로 그 정도라도 팔렸던 거죠.”
요컨대, 추락해 가는 주식이라는 것.
갓 상장한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한들 배경이 빵빵하면 초기 가액이 높은 건 정상이다. 하지만 그건 기대감으로 채운 주가에 지나지 않는다.
끝내 본인의 힘으로 버텨야만 할 순간이 온다.
“감독님 말씀대로면, 오딘 유니버스에는 살짝 망조가 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네.”
심성보 감독이 단언하듯 답했다. 그리고는 바로 다음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오딘 유니버스도 바보는 아닙니다. 엠마 스펙터를 쫓아냈다는 말도 있고, 아마 재정비 기간을 갖춘 뒤에는 변화의 기회를 몰색 할 겁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간다는데, 영화사도 비슷하니 세 작품 안에 뭔가를 할 겁니다.”
“앞으로 부활 코인이 두 개 남은 거네요.”
“백 원만 넣으면 부활한다~.”
“음?”
“이거 모르십니까?”
심성보 감독이 너무 낡은 농담을 던졌나 싶어 민망한 마음에 헛기침을 터뜨렸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이크, 이야기가 너무 딴 길로 샜다.’
잡담을 하다 보니까 그만 푹 빠져버렸다.
손님이 코앞에 있는데, [스피어]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그만. 아무리 그래도 손님 있는 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우리 회사를 보고, 남들 실패를 비웃는 회사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첫인상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건데, 너무 실례한 거 아닌가. 작곡을 잘 몰라도 비슷한 이야기라도 하려고 노력이나 해 볼걸.
아, 이래서 손님 접대는 그냥 주연이한테 맡기는 건데.
심성보 감독이 오늘 저녁에 뻥뻥 찰 이불 베개 세트를 고르는 와중이었다.
“재밌군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손희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번 작품에, 제 남은 작곡가의 생명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네?”
“음?”
남은 두 사람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가를 씰룩거렸다.
손희정이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편해진 호흡을 털어놓았다.
‘그동안의 난 오딘 유니버스였군.’
문제를 인식했고, 해답 또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