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79)
운빨로 탑스타-179화(179/200)
제179화
“역시, 사람이라면.”
손희정이 열띤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상으로 나와야 비로소 영감이 자라나는군요.”
“…….”
“벽을 마주했다고 해서 집안에서 벽만 바라보고 있다 한들 나아지는 건 없습니다. 뭐라도 해야 영감이 생기고, 나아지지.”
“…….”
“민기 씨를 따라온 건 정답이었던 것 같군요. 뭘 얻을 수 있었을지 긴가민가했습니다만, 처음부터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다니.”
“……잘됐네요?”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습니다. 이걸 악상으로 적어 본다면. 가만, 펜, 펜을 어디에 뒀지?”
손희정이 가방에서 메모장을 꺼내더니 분주하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마치 머릿속 흘러넘치는 영감을 조금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어딘가에 기록해 두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아스팔트 위 물방울처럼 증발해 버릴까 겁나는 사람처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민기의 시선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음악하는 사람들은 다 이런가?’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윌리엄 록하트도 그렇고. 손희정도 그렇고.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왜 다 이렇게 오도방정이야? 방금 죽을 뻔했잖아. 그럼 조금은 겁먹고 기죽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PTSD도 조금은 남고.’
손희정은 더욱이 점잖은 사람이니까 그럴 줄 알았다. 대외적으로 진중한 성격으로 알려진 사람이니까. 예능에서 보여줬던 모습이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게 뭔가.
“아, 막혔던 게 드디어 풀리는 것 같군요. 그래, 고막을 푹푹 찌르는 듯한 소리, 바다의 갈매기 소리, 이거였어. 여기에는 스네어랑 킥드럼을 살려서…… 아, 바흐를 인용하는 것도 괜찮겠군.”
자기 혼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바쁘다. 마치 환청을 듣는 사람처럼.
‘손희정이라는 거장은 저런 느낌이었구나.’
살짝 주책이네.
오랜 기간 품어왔던 환상에 살짝 금이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나쁜 감각은 아니고.
‘뮤지션답네.’
자유가 느껴졌다. 너무 진지한 척만 했던 사람이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주니까 한층 친근하기도 하다.
예술 하는 사람이라면 너무 멋만 부리는 것도 좀 그렇지.
‘응, 그런 셈 치자.’
이민기가 나름대로 합리화를 마친 순간이었다.
“배우님을 보는 것 같네요.”
뒤늦게 합류한 주하나가 대뜸 한마디를 끼얹었다. 그 말에 이민기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네? 제가요?”
“배우님도 평소에는 조용조용하다가도, 맘에 드는 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어쩔 줄을 모르시잖아요. 진짜 흥분된 표정으로 계속 해설을…….”
“제가 그랬다고요?”
“어? 몰랐어요?”
의외라는 주하나의 모습에 이민기의 뺨이 살짝 달아올랐다. 주하나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배우님 메모하면서 영화 보시잖아요. 좋아하는 장면은 막 10번 넘게 돌려보기도 하고, 각 장면마다 어떤 식으로 연기를 한 건지 분석을 새로 하고. 빛의 각도는 어떻고 구도는 어떻고 향수는 어떤 걸 쓰는 것 같고, 전 그거 보면서 영화를 이렇게까지 깊게 보니까.”
“……이만하면 충분해요.”
“배우님 실력이 빠르게 느는 거 아닐까 생각했는데요.”
“으으.”
이민기가 쥐구멍에 들어갈 것만 같은 심정이 되었다.
평소 좋아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머리가 살짝 마비되기는 하지만, 내가 저런 스타일이었다니.
살짝 울고 싶은 심정.
하지만 그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게 있었으니.
“해적 씬을 넣어볼까?”
심성보 감독이라고 크게 다른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감독님?”
“주인공이 해적을 마주치는데, 음악으로 해적을 감회시키는 거죠. 고향에서 어린 시절 들었던 음악을 틀어준다거나.”
“저,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죠?”
“네.”
“그럼 역시 음악으로 주의를 뺏는 동안 기타로 머리를 후려쳐서 기절시키는 건 어떨.”
“아니, 좀.”
이민기가 다급히 그를 만류했다.
하지만 구태여 말하자면, 셋 다 똑같은 사람이었다.
* * *
지방 도시의 단점이 무엇일까.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해서 대도시와 비교했을 때 생기는 단점이 뭘까.
그중에서도 서울 같은 곳과 비교하자면 뭐가 있을까.
간단했다.
[제목: 지방 사는 사람으로서 서러운 점] [내용: 왜 전국 투어라면서 우리 동네는 안 오는데 아기 밤비노야. 녹용 꺾어버린다.]문화 행사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뮤지컬은 안 열린다.
가수들 콘서트도 안 열린다.
전국 각지에 열린다는 대학 축제? 안타깝지만 대학이 없다. 대학이 있어도 축제 열 규모가 안 된다.
하다못해 동네 라이브클럽 같은 것도 없다.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면 요즘 사람 발 들일 일도 없는 콜라텍 정도일까.
[아 진짜 개심심함] [서울 놈들 자기들도 별거 없다는데 뚝배기 깨야 됨] [지들은 뮤지컬 같은 거 안 봐서 상관 없다는데 ㅋㅋㅋ 안 보는 거랑 못 보는 건 차이가 크다고 ㅋㅋㅋㅋ] [뮤지컬 보는데 왕복 2시간 걸려서 안 간다고? 우리는 8시간이다] [한국은 땅 좁잖아. 당일치기 되지 않음?] [왕복 8시간에 공연 3시간 보고 나면 자고 와야 되게요? 아니면 그냥 집 올 수 있게요?] [야 ㅋㅋㅋㅋㅋ 너넨 티켓 값 12만 원인데 우린 교통비 숙박비만 12만 원이야 ㅋㅋㅋㅋㅋㅋㅋ] [너넨 퇴근하고 보러가는데 우린 휴가 내고 보러 간다고 ㅋㅋㅋㅋㅋ]뭐가 없다.
옆 동네 부산으로 가면 조금 사정이 나아지겠지만,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 오프라인 행사를 좋아한다면, 서울 외에는 거의 불모지라고 봐도 좋을 지경이다.
이런 와중에 더더욱 거제도 청춘들을 억울하게 만드는 게 있었으니.
[왜 우리는 팬미팅 아무도 안 오냐]연예인들이 하다못해 팬미팅조차 안 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거제도에도 팬미팅을 오는 연예인이 생겼다! 아니, 그 이상이다!
“이민기 온다는데?”
“아까 방송하고 있는 거 봤어.”
이민기가 무려 거제도에 촬영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평범하게 로케지 잡아서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배경으로 학교까지 통째로 빌려 가면서! 오래오래 찍겠다고!
“오다가 해적한테 납치당할 뻔했대.”
“그런 설정인가? 재밌네.”
“아니, 설정이 아니라 진짜로 해적한테 납치당할 뻔.”
“그 만화 어디서 연재하냐?”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거제시라면 한국에서 명색이 도시 치고는 가장 소외된 지역 중 하나 아니었나.
작은 도시라면 그래도 관광하는 사람들이라도 오는데, 거제도에는 그마저도 없었단 말이다.
바로 옆 도시 부산이 관광으로 너무 유명해 버리니까! 부산으로 가면 갔지, 거제도로 올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 서러움도 조금은 걷히게 생겼다.
“팬미팅이다!”
이민기를 비롯해 마이야르 픽쳐스 일동이 무려 사인회를 인원수 무제한으로 열겠다며 선언한 탓이었다.
“이민기가 팬미팅도 할 줄 알아?”
“진짜 신비주의로는 제일 유명하잖아.”
“와, CG로 만든 가상 배우 아니냐는 말까지 있었는데.”
“헬스장 가면 보인다던데.”
평소 얼굴 한번 안 드러내던 이민기가 무려 팬미팅까지 열며 거제도에 등판했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래, 이민기 한 명이 아니었다.
“주하나도 온다잖아.”
“국민 첫사랑 주하나?”
“내일부터 하루 보고 진짜 반했는데.”
“와.”
국민 첫사랑 타이틀을 쥐고 있는 주하나가 온다고 한다.
청순한 얼굴과 귀여운 성격으로 요새 남심을 녹이고 있다는 그 주하나 말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손희정도 온다잖아.”
“와, 나 손희정 팬인데.”
“우리 엄마도 옛날에는 손희정 따라다녔데.”
손희정이 온다.
한국에서 음악으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 중 하나, 손희정이 온다는 말이다.
여기에 심성보, 진주연 감독 부부가 오는 것도 있지만 그쪽은 존재감이 옅으니 우선은 제외.
어쨌든, 거제도에서 난데없이 한국의 각 방면 대표주자 셋이 팬미팅을 하러 온 셈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되겠는가.
“보러 가야겠지?”
“한 5시간 일찍 가면 입장은 할 수 있나?”
“난 새벽부터 줄 설 거지롱.”
“학교는?”
“나 구개편도 안쪽 인두 측면이 부어서 오늘 쉬어야 해.”
“거 발음 존나 또박또박하시네요.”
사람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 거제도에는 한가지 특징이 있었으니.
“부산 살면서 거제도 오긴 처음이네.”
부산 사람들까지 50분 운전해서 입성.
이민기 본인은 별생각도 안 하던 이벤트, 그것이 어느새 지역적인 대형 행사로 자라나고 있었다.
* * *
부르릉-
섬 길을 따라 달리는 차 안.
먼저 도착해 있었던 박한모 매니저가 다소 걱정된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배우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떤 게요?”
“다른 건 아니고, 아시다시피. 예, 오다가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아.”
있었지.
해적이 습격해서는 그의 몸값으로 인질극을 벌이려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 납치극이었던 것 같다만.
“음, 그렇네요.”
이민기가 조그맣게 웃더니 말했다.
“몸 다친 곳 없이 성하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발언에 박한모 매니저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 배우님은 참 멘탈이 튼튼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가요?”
“예, 보통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일정을 취소하고 쉬는 게 보통 아니겠습니까.”
하긴, 감기만 걸려도 안 나오고 쉬는 사람이 한둘이던가. 몸값이 비싼 양반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민기 정도의 몸값에 그처럼 성실하게 돌아다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JC 엔터는 참 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밖에.’
더욱이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하기도 하고.
매번 고맙다. 태워주셔서 감사하다. 고생하셨다. 그런 말을 아낌없이 꺼내는 사람 아니겠나.
‘이런 분을 담당 연예인으로 모시게 된 건 내 행운일 지도 모르겠군.’
연예인들의 화려한 모습만 보고 매니저에 지원했다가, 인성 나쁜 연예인을 담당한 바람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업계를 영영 떠난 사람이 한둘이던가.
이민기 같은 사람만 있었다면 은퇴한 사람도 복귀했을 거다.
‘감사할 따름이야.’
고맙다.
나랑 일해줘서 더더욱.
박한모 매니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고 마음속으로만.
대신 다른 말을 던졌다.
“당분간은 제가 배우님의 모든 일정을 따라다니겠습니다.”
“네?”
“동네 마트를 가더라도, 집 앞에 산책을 나가시더라도 따라갈 겁니다. 어딜 가든 제가 비서로서 함께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네에?!”
마치 감시라도 하겠다는 듯한 말에 이민기가 볼멘소리를 늘어놓은 찰나, 박한모 매니저가 칼로 자르듯 말했다.
“전부 배우님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따로 보디가드라도 고용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할 겁니다.”
“……제가 싫다면요?”
“말씀을 안 드려도 아실 겁니다.”
“윽.”
이민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거제도 있을 때만.”
그 소소한 반항에 박한모 매니저가 또 속으로 웃었다.
그래, 저런 부분이다.
매니저가 저런 식으로 강압적으로 나올 때, 일반적인 연예인이라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매니저를 교체하겠다고 윽박지를 때도 많다.
회사에다가 매니저 때문에 일을 못 하겠다며 직접 협박할 때도 있고.
‘저렇게 져 주는 연예인이라.’
이것도 다 운이겠지.
운이 좋다.
하지만 운은 아무래도 좋으니, 이 사람이 어디까지 갈지나 한번 보고 싶다.
박한모가 그런 생각을 하며 운전대를 잡고 쭉 달리는 참이었다.
“음, 그런데요.”
이민기가 의아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거리에 사람이 좀 너무 없네요?”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원래 저기가 맛집으로 유명해서 사람들 줄 선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