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8)
운빨로 탑스타-18화(18/200)
제18화
행운은 말없이 찾아온다.
예고 없이, 뜻하지 않게 찾아오기에 행운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아니, 이걸 행운이라고 말해야 하나.’
이민기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한숨을 푹푹 내쉬는데, 그 액정 화면에 어느 커뮤니티의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제목: 녹데 요툰스 응원남]그 안에 수많은 움짤이 구워진 채 함께 올라와 있었다.
한 남자가 춤을 추는 짤.
존재감을 과시하는 포즈를 지은 짤.
함성을 지르는 짤.
댓글에는 그 짤을 두고 열렬한 반응이 폭발하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10000% 진심으로 즐기네] [응원에는 진심인 편] [그런데 이 사람 진짜 누구야? 잘생겼다] [잘생겼는데 웃김 ㅋㅋㅋㅋㅋㅋㅋ] [누구임? 연예인? 일반인은 아닌 것 같은데?] [아이돌 연습생 아니야?] [어디 연습생이지?] [사진 더 없나? SNS도 안 해?] [나 나 나 나 저 사람이 사진 찍은 쇼핑몰 찾았음] [ㄴ헐 핏 대박]조회수만 2만에 댓글은 100개가 넘게 달렸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들고 있는 화제의 주인공이 누군지는 멀리 찾아볼 것도 없었다.
지금, 핸드폰을 쥐고 쪽팔림에 몸부림치고 있는 남자.
이민기야말로 바로 그 장본인이었으니까.
‘그래! 어떤 관심이든 무관심보다는 낫다고 했지. 지만 설마 데뷔하기도 전에 이런 이미지로 먼저 알려지게 되는 건 조금……!’
남 탓을 할 것도 없었다.
김아성은 존재감만 느끼고 오라 주문했는데, 거기에서 괜히 오바한 건 그가 맞으니까.
그래도 배운 건 있었다.
존재감이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확실히 온몸으로 느꼈다.
원래 희미하게만 여겨졌던 그 ‘존재감’이라는 게 이제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어떤 식으로 행동하면 주목을 받을 수 있을지 알 것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으아아아악――!”
쪽팔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민기가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바닥이 서늘하다.
‘이럴 때면 연습실 바닥이 부드러운 나무 재질이라서 다행……이게 아니지! 으아아아아악!’
그렇게 이민기가 어제의 자기 자신과 싸우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와중이었다.
끼익.
문이 대뜸 열리더니,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뭐라 반응할 틈도 없이 말했다.
“헐, 대박, 이제 비보이도 연습하세요?”
김탁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키야. 역시 데뷔하기도 전부터 이런 걸 다 준비해 둬야 나중에 만능 엔터테이너가 될 수 있다니까.”
아주 손뼉까지 치는데, 반박할 기분조차도 안 들었다.
이민기의 눈에 비친 김탁은 말한다고 제대로 들어먹을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 한 마디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전번에 그 야구장.”
“……보셨습니까?”
“물론이죠. 춤 잘 추시던데요?”
울컥.
이민기도 알았다.
저 철부지에게는 아무런 악의도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더더욱 날카로운 법이었다.
어떠한 악감정도 없이 놀이터 모래사장의 개미를 태워죽이는 어린아이처럼, 김탁의 순수한 호의는 지금 이민기에게 있어서 일류 복서의 펀치와도 같았다.
“커피 뭐 마실래요?”
“……자바칩 프로스티드 벤티에 샷 추가. 드레즐 추가. 자바칩 추가요.”
“비싼 거 시키시네. 근데 칼로리 괜찮아요? 평소에 식단 관리 빡세게 하신다고 아메리카노만 드시더니.”
“오늘은 마셔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거든요.”
“그럼 저녁에 한잔?”
“아무리 그래도 그럴 기분까지는 아니라서요.”
“까탈스럽네. 하지만 그런 형씨도 배려해 주는 나, 제법 대견해요.”
김탁은 그렇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연습실을 나갔다.
연습실에 홀로 남은 이민기가 잠시 멍하니 빈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가.
‘……나 지금 김탁한테 동정을 산 건가?’
울컥해서 마저 발작을 이어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드륵.
다시 문이 열리더니 이번에 나타난 사람은.
“여.”
김아성이었다.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녹데 응원남, 좋은 아침.”
“으아아아악!”
이것만큼은 못 참았다.
* * *
평소와는 달리 연습실이 아닌 카페.
김아성 트레이너가 평소처럼 건들건들하게 다리를 꼰 자세로 의자에 앉아서는 말했다.
“이번 미션에서 각자 느낀 게 있었으리라고 본다. 민기 씨, 그랬지?”
“……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 느끼기는 느꼈다.
존재감이라는 게 뭔지, 무의식적으로 못 끄집어내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그 과정이 부끄러울 뿐.
김아성은 낄낄 웃더니 말했다.
“선아 씨는 어땠어?”
“…….”
“선아 씨?”
“할만했어요.”
유선아는 이민기를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끄덕였다.
“처음에는 왜 휴대폰을 두고 쭉 걸어보라고 했나 몰랐는데, 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제가 놓친 디테일이 꽤 많다는 걸.”
유선아, 그녀가 받은 미션은 단순히 걷는 것이었다.
특히 핸드폰을 손에서 놓고 커다란 호수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걷는 것.
그걸 10바퀴.
처음에는 마냥 지루했지만, 점차 마음에 여유가 찾아왔고 손에 핸드폰이 없으니 더 깊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응, 맞아. 선아 씨 연기에서는 어딘가 초조함이 느껴졌지. 지금도 나무랄 거 없지만, 몸에서 자연스럽게 힘을 빼는 법을 알면 그게 연기의 개선으로 이어질 거야.”
김아성 트레이너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행동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거든. 어깨는 어느 정도 올려야 하는지, 손은 어디에 둬야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이걸 아는가 모르는가로 일류 연기자와 그 외가 갈라지기도 해.”
현업에서는 꽤 유명한 이론이었다.
감독이 자연스럽게 가만히 서 있기를 요구할 때, 그걸 단번에 소화할 수 있으면 일류 연기자라는 이야기.
특히 손을 두는 위치가 자연스러우면 더 윗급으로 쳤다.
“이거 특수요원들도 똑같다? 자연스럽게 행동하기가 걔들한테는 평생 갈고닦는 기술이야.”
김아성 트레이너는 잡담을 떨다가 시계를 슬쩍 보더니, 슬슬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했는지 말했다.
“그리고 너희들 오디션 볼 심사위원이 결정됐다.”
“갑자기요?”
“응, 저녁에 회의가 있었어.”
이민기가 움찔했는데 김아성 트레이너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일단 나 외에는 딱 한 명만 더 오기로 했다.”
“그게 누구랍니까요?”
김탁이 입을 열었다.
“JC 대표님? 아니면 유명한 작곡가? 현역으로 뛰는 배우?”
“안타깝지만 다 틀렸어. 그보다는 영업 쪽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지.”
“영업이요?”
“외부 업체 전반을 돌면서 영업을 뛰는 사람이다. JC의 실권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김아성 트레이너가 마침내 그 정체를 말했다.
“서정우 이사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이민기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공성의 서정우요?”
“어? 알아?”
의외라는 듯한 김아성 트레이너의 반응에 이민기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네, 이름 정도는 들어 봤는데요. 연예인 캐스팅의 신이라고.”
그렇다.
예로부터 지금의 JC가 커지는 데 각별하게 큰 공을 세운 인재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두 사람이 있었다.
현 JC의 대표, 구인모 대표와 서정우 이사였다.
일명 수성의 구인모와 공성의 서정우.
‘구인모 대표는 일단 들어온 연예인이 안 나가게끔 막는 걸, 서정우 이사는 연예인 데려오는 데 달인이라고 했지.’
일개 업계인한테 칭호 두 글자가 따라붙었다.
유치하지만 그만큼 이 둘의 위상이 업계 전체에서 드높다는 말이기도 하였다.
더욱이 서정우 이사의 캐스팅.
이거야말로 JC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데려오면 뜨는 걸로 유명했지.’
서정우 이사는 캐스팅 하나만으로도 가히 전설이라 불려 마땅한 사람이었다.
[뚱뚱하고 못 꾸미는 사람을 왜 뽑나 했더니, 살을 빼니까 로또였다.] [목소리만 들어도 콧소리가 답답했는데 트레이닝을 받으니까 한국 힙합 1티어 래퍼가 나왔다.] [그냥 길 가던 사람 데려왔는데 예능에 보내놓으니 아주 미친 말처럼 날뛴다.]이런 설화를 무수하게 가진 서정우 이사의 특징은 바로 미쳐 버린 선구안이었는데, 오죽하면 눈에 포토샵 기능을 장착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
미래를 보는 매니저라고도 부른다.
인생 2회차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죽하면 서정우 이사의 본업이 신내림 받은 무당이라고 말할 정도였지.’
상대적으로 정보에 어두운 이민기가 이야기를 들어봤을 정도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막상 그가 접근하기에는 너무 먼 사람이었다 보니, 이야기만 알 뿐 얼굴조차 본 적 없지만 말이다.
이민기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김아성 트레이너가 심히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민기 씨, 생각보다 귀가 밝네?”
“네?”
“서정우 이사님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은데.”
아.
서정우 이사가 이 시대에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나 보다.
“그냥 이름만 들어봤어요.”
“겸손하기는.”
이민기가 시대의 갭을 느끼고 있는데 김아성 트레이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두 사람도 민기 씨를 본받아. 이 바닥은 연기도 실력이지만, 정보력도 실력이야. 좋은 투자자를 알아보는 안목, 스튜디오와 감독을 고르는 것도 다 실력이지. 명심해.”
그 말에 이민기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김탁과 유선아가 감탄을 터뜨렸다.
“형씨, 이런 정보는 좀 같이 공유 좀 하고 삽시다! 맨날 혼자만 알지 말고!”
“민기 씨는 정말 모르는 게 없네요.”
아니다.
진짜 몰라서 그랬을 뿐.
“뭐, 민기 씨가 말한 대로야. 유명한 사람이고, 사람을 보는 안목이 꽤 대단해. 그런데 다만 주의해둘 사항이 하나 있는데.”
김아성 트레이너는 말을 늘어놓다가도, 걸리는 게 있는지 고개를 꺾더니 말했다.
“그 사람, 잣대가 좀 이상하다.”
“이상하다면?”
“자기 나름대로 잣대가 확실하다고 해야 하나? 매번 캐스팅할 때마다 어떤 테마를 정해두고 뽑는데, 그게 이번에는 패션이 될 것 같은 정도?”
“패션…… 패션…… 배우 오디션에 패션이라니…….”
생각보다 난해한 선정에 유선아가 눈을 감고 짧은 신음을 뱉었다.
“차라리 연기라면 편할 것 같은데요.”
“그냥 받아들여야지.”
김아성 트레이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뽑는 사람들이 잘된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잘될 사람들만 뽑는다는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거든. 아니지, 잘 될 사람이면 뽑힌다고 하는 게 맞겠다.”
잘될 사람이면 뽑힌다.
결과론적인 말이고, 또한 운명론에 가까운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그 운명론에 지독하리만치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잘될 사람만 뽑는다니.’
그렇다면 나한테는 불리한데.
이민기가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원래 나는 실패할 운명 아니었나.’
한 차례 거나하게 인생을 망쳐 본 그이기에 품은 불안감이 있었다.
비록 전생보다 훨씬 더 운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스스로 성공할 사람인지 아닌지 확신이 아직은 안 생겼다.
하지만.
몇몇 고민 끝에 이민기의 머릿속에 떠오른 또 다른 생각이 있었다.
‘나도 달라졌다.’
그는 옛날의 그와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불과 몇 달 사이 그의 삶은 180도는 아닐지라도 20도 정도는 달라졌다.
위아래로 출렁거릴지언정 점진적인 우상향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비집고 기대감이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이번 야구장에서도 그랬잖아. 해 보면 의외로 할만할지도 몰라.’
성공하는 사람들이 공통되게 가지는 마음가짐.
까짓거 한번 해 보자.
그 마음가짐이 이민기의 가슴속 어딘가에도 자그맣게 싹이 텄다. 야구장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준 힘이었다.
김아성 트레이너가 말을 이었다.
“또 현장에서 직감으로 뽑겠다면서 미리 프로필을 안 보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네.”
그는 목이 마른 듯 커피를 쪽 빨더니 말했다.
“근데 일단 뭐, 까놓고 이건 그냥 가십거리지. 오디션의 대전제는 잘하는 사람이 뽑힌다는 거니까 딴생각은 하지 말자고. 오디션까지 당장 사흘 남았는데 별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마지막으로 남의 바둑에 훈수를 놓듯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날 패션을 좀 신경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말밖에 없을 것 같네. 참, 연기는 자유 연기다. 대본은 JC 소속 배우가 참여한 작품이면 그 안에서 고르고.”
패션.
일단은 패션이다.
이 정도만 해도 큰 수확이지 않나.
‘사장님한테 오디션 복장 좀 봐달라고 해야지.’
이민기는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히 머릿속에 박아 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준비를 다 해 두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정정당당하게 겨룰 뿐.
서정우 이사의 선구안이 어떻다고 해서 무작정 운에 바라는 건 요행이다.
그건 포기한 사람의 행동이었다.
이민기에게는 그보다 더 믿을 수 있는 게 있었다.
“얼른 연습하러 가죠.”
그가 보내온 지난 시간이었다.
그에게 운이란.
기대는 것이 아닌, 기대하는 것이었다.
이민기는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믿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