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81)
운빨로 탑스타-181화(181/200)
제181화
거제시 체육관.
심심하기 짝이 없는 동네에 갑작스럽게 이민기라는 유명인사가 방문하며 전국에서도 손에 꼽게 달아오른 장소.
이례적인 사태에 하루 사이 1.3만 명에 달하는 방문자가 군집했다.
1.3만.
작은 록 페스티벌이라고 봐도 좋을 만한 인원이다. 아이돌이라면 또 모를까, 배우의 첫 팬미팅 현장이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과했다.
“와, 사람이 대체 몇 명이야.”
“딱 시간 맞춰서 온 것 같은데, 뭐 이렇게 사람이 많아?”
“학교 조퇴하고 올걸.”
너무 많다.
언덕이 시작되는 곳부터 언덕 위까지 인파로 가득 찼다.
마땅히 기다릴 장소가 없어 주차장에도 사람들이 늘어서는 건 물론, 맨바닥에 아예 돗자리를 깐 사람들도 많았다.
“저기 치킨 시켰네.”
“우리도 짜장면 같은 거 하나 시킬까.”
어차피 슬슬 저녁으로 저무는 참이라 날씨도 선선하다.
말 그대로 심심해서 찾아온 시민들은 이민기라는 개인과는 상관없이 이 현장을 하나의 소풍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메인 이벤트 시작까지 좀 기약 없는 소풍 말이다.
“언제 시작하지?”
“잠깐 뭐 준비한다고 시간 걸린다던데.”
“흐음, 슬슬 다리 아픈데.”
“공짜잖아. 아무렴 어때. 나는 이민기보다 여보 얼굴이 재밌…….”
“자기, 사람 목에 칼이 들어온대도 하면 안 되는 말이 있는 법이야.”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를 잠시.
어느 순간 가뭄의 단비처럼 스피커폰으로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안내 말씀드립니다.]그 순간이었다.
1만 명이 넘게 군집한 사람들의 귀가 한순간 쭈뼛 섰다.
‘시작이다.’
‘드디어!’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참이다.
슬슬 집에 갈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뭐라도 하기는 하는구나. 잘 됐다. 얼른 사인만 받고 가야지.
그렇게 생각한 찰나, 주최 측에서 전한 안내는 완전히 예상 밖의 것이었다.
[지금부터 배우 이민기 및 마이야르 일동 팬미팅 장소에 변경이 있겠습니다.]팬미팅 장소 변경이었다.
[행사장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체육관 수용 인원의 문제로 잠시 장소 변경이 있겠습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팬미팅 장소에 변경이…….]스피커폰에서 장소를 변경하겠다는 목소리가 더없이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그럴수록 사람들이 일제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미친 거 아니야?”
몇 마디다.
장소를 바꾼다는 안내 몇 마디, 그것만으로도 분개하는 사람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우리가 몇 시간을 줄을 섰는데.”
“아니, 장소를 바꾼다고? 사람을 여기까지 불러 놓고?”
“공짜라고 막 나가네.”
그만큼 사람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이민기에게 아주 큰 애정이 있어 찾아온 사람도 있겠지만, 이곳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단순히 심심하던 참에 동네에 축제 열렸다는 기분으로 찾아온 사람도 있는 법.
그런데 급격히 장소를 변경한다니 말이 되겠는가.
이건 돈까스 맛집 앞에서 줄을 무려 2시간 동안 섰더니, 재료가 소진됐다며 저녁에 와서 다시 줄 서라고 말하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 넘네.”
“부산이라도 가려고 저러나?”
그렇게 원망이 서서히 흘러나오려는 와중이었다.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체육관 정문 인원부터 순서를 맞춰 거제시 공설 운동장으로 이동해 주길 바랍니다.]아, 다행이다.
체육관에서 불과 100미터 정도 떨어진 운동장이었다.
겨우 3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과는 달리, 그 다섯 배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
그 말에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안티 될 뻔.”
“팬이라며.”
“팬티 될 뻔.”
코앞이지 않나. 이 정도라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이다.
“거기 새치기하지 마세요.”
“줄 순서대로.”
하지만.
그들이 아직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게 있었다.
이민기가 왜 굳이 장소를 옮기는가. 왜 팬미팅이라면서 한층 더 쾌적한 실내를 버리고, 야외로 옮기려 하는가.
3천 명씩 차분히 처리할 게 아닌, 1만 명이 넘는 인원에게 한꺼번에 모습을 비출 수 있는 야외로 이동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이곳 인원들은 행사 시작 시간을 어중간하게 미루기까지 했는가.
그 이유는 지극히도 간단했다.
“저기, 무대 위에 누가 있는데?”
아직 불이 들어오지 않은 무대 위,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이민기, 주하나.
오늘 얼굴 하나 보겠다고 마지못해 기다렸던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 명이 더.
“손희정?”
손희정이 그의 상징, 그랜드 피아노 앞에 서 있었다.
* * *
왜 배우들이 팬미팅을 자주 열지 않는가.
왜 열더라도 많이 오지 않는가.
왜 팬미팅이 아이돌들에게 특화되어 있는가.
무엇이 다르기에.
전부 인기로 먹고사는 직종 아닌가.
대체 그들의 차이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배우들은 사실 팬미팅에서는 특별히 할 게 없지요.”
가지고 있는 콘텐츠의 차이였다.
무대 뒤 커튼, 이벤트 개막까지 얼마 남은 시간을 살려 박한모 매니저가 차분하게 설명을 이었다.
“배우가 팬미팅에서 뭘 하겠습니까. 즉석 연기를 보여줄 것도 아니고, 몇 시간씩 작품 비화를 전달할 것도 아닙니다. 고작해야 감사하다 인사 전하고 재롱떠는 정도인데, 그걸로는 팬미팅씩이나 열어서 사람을 불러 모을 의미가 없죠.”
배우라는 직종의 한계였다.
스크린 안에서의 매력은 더할 나위가 없지만, 그 바깥에서는 상대적으로 심심해진다는 것. 이 둘은 근본부터 하늘과 땅으로 다른 영역이니까.
이민기가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배우들이 팬미팅은 열었다는 말은 있어도 거기서 뭘 했다는 기사는 별로 없더라고요.”
“예, 가 본들 심심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애정 하나 때문에 찾아가는 겁니다.”
가수들은 노래 부르고 춤이라도 추면 되지만, 배우들은 뭐가 없다.
물론, 얼굴 자체가 콘텐츠라서 그거 보러 찾아오게 만드는 배우도 존재하지만 우선 예외라고 치자.
하지만 이번 팬미팅에서도 한가지 예외가 있었으니.
“후우, 마침 저희가 촬영하고 있는 게 음악 영화라서 다행이네요.”
마이야르 픽쳐스의 신작이 음악 영화라는 것이었다.
“작곡가님이 함께 와주신 것도 다행이고요.”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좋아서 온 것이니.”
또 이번 작품에는 손희정이라는 걸출한 뮤지션이 이례적으로 로케지 탐방까지 구태여 동참했다는 것.
그리고.
‘세상에 이런 방식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이민기가 손희정의 아주 극심한 팬이라는 것까지.
몇 가지 운과 확률이 겹쳤다.
그 결과.
“이민기다.”
“노래 부르려고 저러나?”
이민기는 1.3만 명에 달하는 관중 앞에서 갑작스럽게 노래를 부르게 생겼다.
그것도 손희정과 함께 합을 맞춰서 말이다.
이민기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이런 공연은 태어나서 처음인데.”
좀처럼 자신감이 없는, 아니, 없는 게 당연한 이민기의 목소리에 손희정이 단언하듯 말했다.
“어려울 겁니다.”
“윽, 그렇겠죠?”
망신 좀 당하겠구나.
라고 생각한 찰나, 손희정이 손가락을 하나하나 똑똑 꺾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건 배우의 팬미팅입니다.”
“오.”
“기대치가 배우이니, 적당한 퍼포먼스에 지극한 정성을 보여주면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기대치 자체가 낮으니, 남들 하는 것만큼 잘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손희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배우님의 노래 실력 자체는 아마추어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한 건 사실입니다만.”
“…….”
“적어도 발성만큼은 프로라고 해도 어느 정도 선이라면 아슬아슬하게 속여넘길 수 있을 수준입니다. 자세히 들으면 들키겠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속여넘길 정도라니까 아쉽네요.”
속여넘길 정도다.
진짜 그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의 벽이 있다. 아무나 몇 달 준비한다고 프로 수준이 될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었겠지.
‘그것만 해도 엄청난 거지만.’
손희정이 애써 말을 감추었다.
이민기라는 배우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자기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는 모양이군.’
이 세상에는 재능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그 재능을 하나씩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흔했다. 발견하고 발굴하는 건 개인의 몫이지만, 그 재능 자체는 흔하다고 봐도 좋았다.
단순히 힘이 센 재능을 가진다던가.
머리가 좋다던가.
운동신경이 좋다던가.
하지만 그런 재능을 복수로 가지는 일은 극히 드물고 또 귀중했다.
‘서로 다른 방면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꽤 많지.’
국가대표 수준의 축구 재능을 타고난 정신과 의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여러 재능을 가지는 것에서 나아가, 서로 엮이는 영역을 복수로 가진다면 어떨까.
뇌지컬의 재능과 피지컬의 재능을 함께 갖춘 축구 선수처럼 말이다.
연예계에는 존재했다. 간혹, 정말 드물게 10년 20년에 한 번씩 양쪽 재능을 함께 가지고 태어나, 업계를 쓸어버리는 사람이 등장하고는 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이런 이름으로 부르고는 했다.
‘멀티 엔터테이너가 될 수도 있겠군.’
멀티 엔터테이너.
연기와 음악, 예능까지 다방면을 아우르는 연예인을 의미했다.
혹시 이민기가 이런 영역에 다다를 수 있다면 어떠할까. 배우로서 이미 정점에 오른 사람이 뒤늦게 음악에서도 윤곽을 드러냈다면 어떠할까.
그 계기가 이 영화라면 어떠할까.
‘차트 1위부터 시작해서 처음에는 마케팅빨이라며 욕도 먹다가, 차근차근 인정받아서 나중에는 음악이 본업이 될 수도 있겠지.’
손희정이 머릿속으로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아직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가능성을 점칠 정도의 자질을 이민기가 갖추고 있으며, 손희정이라는 인물이 꿰뚫어 볼 정도로 빛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한 자리에 둘이나 있을 거라고는.’
한 명이 더 있었다.
“하나 씨는 긴장도 안 되세요?”
주하나가 그러했다.
이민기의 질문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지금 저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그냥 예의상으로요.”
“저는 괜찮아요. 옛날부터 무대 체질이라는 말 들었어요.”
주하나라는 사람이 그러했다.
학창 시절부터 사람들을 이끄는 자리에 서 있기를 좋아했다. 결과적으로 너무 사람을 홀린 탓에 마녀사냥을 당할 뻔하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사람을 홀리는 매력은 부정하기 어려운 재능이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같다. 그녀는 인맥이 아닌 실력으로 기용되었다.
그 말인즉슨.
“중학생 때부터 늘 아카펠라부였고요. 대학교에서는 밴드도 했어요.”
원래부터 노래를 특출나게 잘 부른다는 말이기도 하였다.
“오히려 요즘은 너무 노래 부를 자리가 없어서 찌뿌둥했는걸요? 전 좋은데요?”
“그래도 1만 명이 넘는 앞인데.”
“어깨 펴세요. 저보다는 민기 씨 보러 온 사람들이에요.”
“갑자기 기운이 넘치시네요.”
“티 났나요? 후후.”
활발해진 주하나의 모습에 이민기가 피식 웃었다.
‘그래, 나 보러 온 사람들이지.’
좋은 무대를 보여줄 요소는 갖추었다. 나머지는 결과를 내는 것만 남았다.
저 커튼 너머, 저기에 서 있는 1.3만 명의 사람들에게 말이다. 오랫동안 기다렸을 테니, 그 기대에 보답해 줘야겠지.
“그럼 일단 저 먼저 가볼게요. 작곡가님.”
“예.”
곧 이민기와 손희정이 커튼을 제치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와아아아아아아!!!”
“이민기!!!!”
땅을 뒤엎고 하늘을 찢을 듯한 환호성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이민기의 몸을 덮쳤다.
이민기는 순간적으로 중얼거렸다.
“……나쁘지 않네.”
야구 공연 보러 갔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도, 무대 체질일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