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82)
운빨로 탑스타-182화(182/200)
제182화
무대 위에 올라간 이민기가 처음으로 한 일은 이러했다.
“안녕하세요.”
인사였다.
오늘이 온 뒤, 관객들을 마주하고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하는 인사. 이 짧은 인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관객들이 얼마나 이번 행사를 기다렸는지 느껴진다.
이민기, 그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눈빛만 봐도 알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선의 이면 뒤에서 보이는 또 다른 감정이 있었으니.
‘지치셨네.’
이들 중 여럿이 지쳐 있었다.
이민기를 보지 못한 채 기약 없이 몇 시간이나 가만히 돌바닥,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시간을 보냈어야 했지.
차마 못 버티고 돌아간 이들도 있을 터.
이민기에 대한 반감을 은근하게 기른 사람도 있을 게 분명하다.
‘여기에서 어쭙잖은 모습을 보여주며 곧바로 안티가 되겠지.’
오프라인 모임이 어려운 이유였다.
일단 관객들을 오게 만들었다면, 반드시 그 발걸음에 상응하는 무언가로 보답해야 한다는 것.
여기에서 이민기가 내린 결정은 빠르지만 분명했다.
‘질질 끌지 말고 빠르게 본론으로 가야겠다.’
딱 봐도 지루해 보이니까, 농담이라도 하나 던지고 보자.
김아성 트레이너에게 들은 조언이 있었다.
[응? 무대? 그런 건 첫 멘트가 절반 먹고 들어가는 거야. 첫 한마디에서 모든 게 결정되거든? 진지 빠는 이야기 할 생각하지 말고, 우선 웃겨.]웃기자.
아이스 브레이킹부터 시작하자.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거울을 보며 수백 번 갈고 닦은 필살 개꿀잼 썰을 지금 꺼내는 거다.
그런 생각으로 이민기가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의 배…… 읍? 배으읍. 큽.”
실수로 혀를 씹었다.
‘아.’
조졌다.
첫 멘트부터 혀를 씹고 보다니, 이건 무조건 첫인상부터 조졌다.
그런 생각에 이민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오르려는 순간이었다.
“푸하하하하하!”
관객석에서 작은 웃음이 번져나갔다.
운이었다.
괜히 어정쩡한 농담을 던지느니, 차라리 가소로운 모습 하나를 보여줘 친근감을 보인 것.
여기에 주하나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와, 저랑 연기할 때는 그렇게 대사 실수 한 번도 없으시면서, 어떻게 여기서는 멘트 하나를. 제가 아는 배우님 맞아요?”
거듭 웃음이 번졌다.
대중을 묘하게 피하는 이민기와는 달리, 평소 예능에 즐겨 출연하는 그녀다운 순발력으로 살린 것.
그 말에 이민기가 부끄러움에 작게 달아오른 얼굴로 용기를 짜내어 말했다.
“그런 저도 노력을 거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배우, 관객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
“하실 수 있는데…….”
싸늘하다.
관객들의 입가에서는 일말의 웃음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좀처럼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민기가 다시 쭈그러든 찰나, 주하나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저, 배우님께서 민망해하시는데 다들 웃음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왜 이렇게 냉정해요?”
“풉.”
뒤늦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폭소하듯 웃는 수준의 그런 웃음이. 이민기가 한층 더 달아오른 얼굴로 중얼거렸다.
“여러분 나빠요…….”
“프흐흐.”
세 번째 멘트.
세 번째 멘트에 와서야 비로소 이민기가 자기 힘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터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마저도 주하나의 어시스트를 받아서.
흡사 고등학교 행사와도 같은 현상에 손희정이 손바닥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절망적인 예능감이군.’
망할 뻔했다.
주하나가 잘 보조해 줘서 어떻게든 살렸지만, 혼자였으면 분명 망했을 터.
‘단발성 게스트로는 그럭저럭 훌륭하지만, 혼자 먹힐 예능인은 아니라는 건가.’
세계적인 배우가 허당이라는 점은 재밌지만, 저것만으로 끌고 가기는 어렵겠지.
탱탱볼처럼 까이는 캐릭터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갈 길이 멀긴 하군.’
괜히 아쉽다.
배우가 노래까지 되면 이미 멀티지만, 예능까지 해 주면 금상첨화,
저건 나중에 극복하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먼 미래의 일이었다. 성장에는 실전이 최고라지만, 지금은 성장하며 보내기에는 1분 1초가 중요하지 않겠나. 사람이 꼭 완벽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다행히 분위기는 풀렸다.
‘이 정도면 비기너즈 럭(초심자에게 따르는 단발성 행운)이라고 볼 수 있겠지.’
못하는 건 치우고, 잘하는 걸 하자.
다행히도 이민기에게는 행사 멘트 같은 것보다 훨씬 더 잘하는 게 있었다.
배우치고 잘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치에서 이미 잘하는 것이.
“실례지만, 지금 비가 살짝 내리려고 하고 있군요.”
손희정이 빠르게 멘트를 가로채며 입을 열었다.
비를 못 맞을 건 없겠지만, 어쭙잖은 멘트나 던지면서 비를 맞게 할 수는 없으니 시간을 아껴야 한다.
급하게 다음으로 진행을 서둘렀다.
“배우님의 존엄성을 위해 바로 첫 곡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제 옛날 노래, 여우비입니다.”
그 뒤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반주를 연주하고, 이민기 배우님이 부릅니다.”
* * *
여우비.
그 이름에 마땅히 반응하는 관중은 없었다. 손희정이라는 히트곡 공장의 곡임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왜냐.
“여우비? 그런 노래가 있었나?”
아는 삶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찍는 영화 OST인가?”
“방금 옛날 자기 노래라고 했잖아.”
“흠, 손희정이니까 더 유명한 노래 부를 줄 알았는데.”
“생각이 있어서 저걸로 골랐겠지.”
“아, 진짜 비 오네.”
손희정은 분명 유능한 작곡가다.
히트곡을 엄청나게 뽑아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실패한 곡들, 묻힌 곡들도 뽑아냈다.
히트곡 1곡을 위해 무명으로 5곡을 뽑아내고는 했는데, 이건 놀랍게도 연예계에서 극도로 높은 타율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부르자고 할 줄은 몰랐는데.’
구태여 저 곡을 선택한 이민기의 타율도 심상치는 않았다.
“흠흠.”
이민기가 헛기침을 뱉었다.
그와 동시에 손희정을 상징하는 악기, 피아노의 소리가 점차 감미롭게 무대 위를 채우기 시작했다.
다라란-
마치 차례차례 봄이 깔리는 듯한 피아노의 멜로디, 그 사이로 한층 하이톤의 소리가 단발적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으니.
‘시작이다.’
여우비의 비였다.
맑은 날에 잠깐 내리다가 그치는 비, 여우비.
그 제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연주 속에서 이민기가 첫 운을 뗐다.
“힘껏 다린 하얀 셔츠가 산뜻한 날, 그대 만나러 한걸음에 달려온 날, 투명한 햇살이 쏟아지는 날.”
불과 몇 마디다.
그 짧은 가사에 관객들 사이에서 작게 놀라움이 번져나갔다.
‘괜찮네?’
생각보다 가창력이 나쁘지 않았다.
첫 음에 사람을 감탄시키는 소리는 아닐지언정, 그렇다고 사람을 실망하게 하는 소리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기본적으로.
‘목소리 되게 좋다.’
누가 배우 아니랄까 봐 목소리 하나만큼은 먹고 들어갔다.
“똑똑 내리는 빗방울에 잠시 처마 밑에 몸을 숨기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속상한 내 기분은 블루지한 블루.”
곡 자체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좀처럼 긍정적인 느낌이 흘러넘치기도 하고.
‘그래도 손희정 노래답네. 딱 거북하지 않게 듣기 좋은 게.’
‘이민기 목소리가 살짝 미성이라 그런가? 노래가 감미롭다.’
‘발성 좋다. 발음도 좋고. 귀에 가사가 딱딱 들어박히네.’
‘비 오는 날에 비를 가사로 들으니까 은근히 감성이 있기도 하고.’
일단 깔끔하다.
걱정했는데 들을 만하다. 아니, 들을 만한 정도를 넘어서 좋다.
관객 저마다의 감상이 오가는 사이 이민기의 노랫소리가 이어지기를 한참.
‘음, 재밌네.’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봄날 여우비처럼 노래 속으로 젖어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그 누구보다도 깊게 헛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한 방 먹었군.’
다름 아닌 손희정이었다.
‘이런 곳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쿡쿡 쑤시는 기분.
옛 말에 창작자가 언제나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아니, 염두라기보다는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난 그거 그런 의도로 만든 거 아니었는데요?]창작자의 의도는 그의 창작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쓴 소설 레포트를 썼는데 B 받았어요. 작품 해석을 잘못했대요. 아빠가 말해준 대로 쓴 건데.] [오.]주관적인 해석은 물론.
[그 이야기 알아? 황순원 작가 작품에서 보라색이 자꾸 나오는 거 있잖아. 그냥 작가가 보라색을 좋아해서 보라색 많이 넣은 거래. 막 우울한 감성 자극하거나 부정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게 아니라.]정설에 가까운 해석도 마찬가지.
창작자의 의도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무수한 방향으로 달라진다. 완전히 엇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결코 부정적인 효과만 자아내는 건 아니었다.
[난 황순원 소설이 그래서 더 좋던데?]가능성이다.
수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자아낸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창작자가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타닥타닥, 내리는 빗소리에 타드는 내 마음도 타닥타닥. 조바심은 말발굽처럼 타닥타닥. 그대 오늘 나와 줄까. 나 헛걸음한 거 아닐까.”
그렇기에 예술은 아름다웠다.
모두의 감상이 같지 않기에.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서 더한 감동을 줄 수도 있기에. 천 명의 독자에게 십만의 감동이 피어나기에.
우연한 폭우에 휩쓸린 씨앗이 세상을 유람해 저 머나먼 곳에서 화사한 꽃밭을 피워내기에.
‘이건 정말, 전혀 예상 못 한 일이군.’
손희정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민기가 가장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그의 노래.
그건 바로.
‘세상에 내놓았다는 게 부끄러운 곡이었는데.’
여우비.
그가 지난 수년간 치부로 여겼던 곡이기 때문이었다.
다란.
손희정의 손끝에서 피아노의 소리가 피어올랐다. 마치 정원의 민들레처럼 소박하면서도 긍정적인 울림이 담긴 소리였다.
‘급한 의뢰여서 급하게 내놓았던 노래였지.’
애정을 주지 않았다.
한창 아티스트로서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던 시기였다. 그저, 앨범 수록곡 중에서는 이런 곡도 하나쯤은 필요할 것 같아 공식을 모아 짜내었다.
어설픈 마음으로 곡을 만든 벌일까, 대중의 반응은 없었다.
손희정이라는 유명한 작곡가의 곡임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세상에 울림을 줄 일은 없었다.
아니.
없을 줄 알았다.
“비가 그친 하늘에 피어오르는 블루.”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더없이 환한 울림이 피어나고 있었다.
“진흙탕에 발을 구르더라도 원, 투, 쓰리, 포. 흙 내음이 코를 간지럽히면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박자에 맞춰 라라라.”
한없이 어두운 먹구름이라도 그 뒤에는 무지개가 떠오른다.
이민기는 그런 마음으로 이 곡을 믿어왔다.
한없이 들었으니, 당연히 이 곡이라면 사람의 말을 하는 것보다도 익숙했다.
수백 수천 번, 그 이상을 들은 만큼 수만 번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소리는 연기가 아닌 진심이 되어 다른 이들의 마음마저 울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발성이 좀 무너진 것 같은데?’
이민기의 목소리에서는 발성의 흔적이 조금씩 지워져 가고 있었다.
그는 가수가 아니다.
배우로서 십수 년에 걸쳐 발성을 배웠을지언정, 그게 가수의 발성은 아니었다.
애초에 노래를 오랜 기간에 거쳐 제대로 배운 사람이 아니다. 한두 곡이라도 감투를 쓸 수 있을 만큼 속성으로 익힌 사람이다.
하물며 라이브다.
긴장감이 한계까지 차오르는 라이브에서 안정적인 발성을 유지할 만큼의 습관화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잘 부르는 건 아닌데,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야.’
그 대신 또 다른 장점이 한 꺼풀 모습을 드러냈다.
‘감정선이 제대로 살아 있다.’
배우였다.
배우로서의 발성과 노래로서의 발성이 다를지언정, 적어도 감정을 표현하는 데 도가 텄다는 것.
이건 가수의 노래와는 다른 범주였다.
배우의 노래.
어찌 보면 이민기의 노래는 뮤지컬 배우의 그것과도 겹쳐 있었다.
‘아, 뭔가 간지럽다.’
와 닿는다.
‘이야기를 해 주는 것 같아.’
‘아 씨,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나려고 하냐.’
‘되게 위로받는 느낌이다.’
이민기는 관객을 설득하고 있었다.
걸출한 가창력은 없다. 하지만 노래라는 게 가창력이 있어야만 사람에게 와 닿는 건 아니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가 제아무리 서투르다고 하여 제 부모에게 감동을 못 주겠는가. 후두암에 죽음을 코앞에 둔 가수가 갈라진 목소리로 부른 노래에 가치가 없겠는가.
“클래식보다 선명한, 재즈보다 감미로운, 락보다 경쾌한, 이 소리가 내 마른 눈가를 적시면.”
이민기는 배우다.
눈앞의 대중을 사랑해 마지 못하는 배우.
그런 그가, 마음속 깊이 눌러 담아두었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목소리로 바꿔 있는 힘껏 전하고 있다.
“와…….”
발성이 서투르다고 하여 대중 하나 감동시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서투르기에 그마저도 표현이 되었다.
마침 내리는 비.
내리는 비마저도 이민기의 표현이 돼 주었다.
그렇게 어느새 끝마무리.
“오늘의 일기예보는 맑음.”
이민기가 희미한 웃음을 남기며 마이크에서 입을 뗐다.
그리고 피아노의 잔향이 퍼져나갈 때까지 조용한 허공을 음미하기를 몇 초.
“감사합니다.”
인사와 함께 그 허리를 숙인 찰나였다.
“이민기――!!!”
“이! 민! 기!”
“최고다!”
그의 목소리를 연호하는 일만의 소리가 소리의 파도가 되어 세상을 덮었다.
환호성이 울리기를 한참.
그 소리가 차차 여우비처럼 잦아들 때쯤, 뒤늦게 긴장이 풀린 이민기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 이제 비가 좀 그쳤네요.”
불과 3, 4분짜리 비였다.
더위를 살짝 식히기에 딱 좋은 정도의 짧은 비. 그 짧은 사이에 하늘은 맑아진 듯했다.
‘운이 좋았다.’
이대로 계속 내리면 어쩌나 했더니만은.
행사 미뤄서 사람들 비 맞히냐고 죽도록 욕만 먹을 뻔했네.
중간에 발성 깨져서 망하는 거 아닌가 긴장했더니, 다행히 어떻게든 살렸다.
“그럼 제가 지금부터 비장의 개꿀잼 썰 하나…….”
이민기가 조마조마한 심장을 가까스로 가라앉히고는 입을 연 찰나였다.
“와, 이거 제 앞 차례에 이러시는 거 너무하지 않아요?”
“…….”
주하나가 스틸했다.
빼앗긴 드립 찬스에 이민기가 쪼그라든 사이, 그가 아직 모르는 일이 하나 있었으니.
“조회 수 천만 각이다.”
이번 팬미팅에 잠입한 수많은 직캠 미튜버들의 번뜩이는 시선이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