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83)
운빨로 탑스타-183화(183/200)
제183화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그러니까, 이민기가 마주한 문제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어디서부터 원론에서 벗어나 버린 걸까.
‘돌겠네.’
거제도에서의 첫날을 마친 뒤 기절하듯 잠든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깨어나 식사를 하러 1층 카페테리아로 온 뒤, 습관처럼 아침 뉴스를 체크한 이민기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민기, 수난을 겪어가며 일정 강행한 이유가 ‘있었네.]다름 아닌 그의 어제 하루를 정리한 기사가 그러했다.
[이민기의 팬미팅은 특별했다. 그간 팬미팅 없이 팬 활동을 지속해야 했던 팬들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함이었을까. 그는 배우 이전에 엔터테이너로서 또 다른 일면을 보여 주었는데.]그의 어제 무대 이야기이기도 했고.
[손희정과의 환상적인 콜라보 무대를 보여 주었다. 그의 명곡 여우비를 자기만의 감성으로 살려내었으며, 가을비가 적시듯 팬들의 마음도 촉촉하게 적셔 주었다. 여기에 주하나와의 듀엣은 그날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는데.]그래, 팬미팅이었지.
나 거기 가서 팬미팅 했고, 노래도 불렀는데 반응 꽤 좋았지.
노래까지 부르게 될 줄은 몰랐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지. 사인만 하다가는 1만 명은 무슨, 3천 명도 소화하기 버거울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다 같이 즐기려고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이민기 저거 가수 진출하려고 떡밥 흘리는 거 아님?]이야기가 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 것 같았다.
그렇다.
이민기는 지금, 배우를 떠나 가수로도 데뷔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갑자기 음악 영화 낸다고 했을 때 알아봤다.]나도 몰랐다.
윌리엄 록하트가 갑자기 와서 영화 내자고 할 줄 누가 알았겠냐.
[미국 간 이유가 저거 아님? 가서 빌보드급 가수랑 같이 콜라보해서 화제성 차지하려고.]그러니까 미국에서 윌리엄 록하트가 한국까지 찾아왔대도.
[ㅋㅋㅋㅋ 하긴 배우로 저만큼 성공했으면 다른 영역에 욕심 생길 만도 하지.]욕심 때문이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배우 활동의 연장선으로서 이쪽을 바라봤을 뿐이다.
그 외에도 의혹이 무수했다.
[원래 인지도 올려놓으면 음반 적당히 내도 차트 순위권 먹기 쉽잖음. 이민기도 그런 거 노렸겠지. 꾸짖을 갈(渴)! 나는 못 속인다! 이민기 이노오오오오옴!!!!]아니, 왜 호통을 치고 저러나. 저 사람은.
그래도 차라리 저런 쪽으로 의심하는 건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보다 한층 더 억울한 건.
[영상 봤음? 노래 부르는 거 보셈. 저건 하루 이틀 준비한 프로젝트가 아님. 딱 봐도 몇 년은 준비한 거임 ㅇㅇ; 어쩌면 원래 가수 준비하다가 배우로 데뷔했을 가능성도 있음.]그의 이번 커리어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는 것이 그러했다.
이쪽이 주류였다. 그가 원래 음악 쪽 지망생이었는데, 배우로 노선을 튼 게 아니냐는 것.
이민기가 참담한 심정에 맨손으로 얼굴을 씻어 내렸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은 시스템 창호 바깥에 묻은 물때와도 같아, 감히 지워질 줄을 몰랐다.
[손희정이 붙었잖아. 손희정이 자기 일정 다 비우고 달라붙었는데 이게 무슨 말이겠냐고. 몇 년 전부터 다 계획을 짜 놨다는 거지.] [어쩌면 만만투보다 이번 작품이 더 먼저일 수도 있지.] [배우 하다가 나중에 음악 하는 꼴을 한두 번 봤나 ㅋㅋ 뻔히 보인다 뻔히 보여~] [그래도 들을 만했으니까 한번 봐 줄게~~?]어휴, 이 창의력 대장들.
그들은 이민기가 빌드업 장인이라고 기정사실 도장 찍어놓고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세상 사람들이 신뢰가 없네.”
“왜 그러십니까.”
“아니, 매니저님, 이 기사 좀 보세요. 글쎄, 지금 뭐라고 하냐면.”
“이미 봤습니다.”
아, 역시 우리 매니저님, 준비성이 철저하시구나. 자기 담당 연예인 시장 조사는 기본이지.
이민기가 작게 감탄하면서도 한숨을 동시에 내쉬는 기예를 보이며 말했다.
“왜 사람을 안 믿는데요. 이번 영화 때문에 노래 연습 시작한 거 맞다니까요. 전번에 인터뷰에서 다 말했잖아요.”
“예, 전번 홍보 기사에서도 보컬 트레이닝도 받기 시작했다고 넌지시 흘렸지요.”
“믿어주는 게 예의 아닌가요?”
“그게 말입니다만.”
박한모 매니저가 잠시 고민했다.
걸리는 바가 있기는 한데, 이걸 당사자에게 말해줘도 되는 건가 고민했기 때문.
하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일이다. 더욱이 이민기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에, 박한모 매니저가 모르는 척 슬쩍 말했다.
“마침 그 인터뷰들 때문에 기만자라 부르기도 하더군요.”
“네?”
이민기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되물었다.
“기만자? 제가요? 왜요?”
기만자.
기만이 뭔 말인지는 안다만, 내가 기만자라고 불릴 이유가 있었나.
이민기가 고개를 갸우뚱한 순간이었다.
박한모 매니저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창공을 부유하는 한 마리 솔개처럼 침착하게 말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타인에게 자신의 뛰어남을 과시함으로써 부러움과 칭찬을 받아내려 하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
모르겠으면서도 단박에 알 것 같은 사유가 흘러나왔다.
아, 내가 그런 부류의 기만충이라는 건가.
은근히 기만하면서도 자기는 모르는 척하는 그런 거.
[연봉 7천이 많이 버는 건가요? 자식 기르려면 어림도 없는데 ㅜㅜ] [주위에서는 다 그 정도 받죠. 저도 연봉 1억 정도 간신히 받는데 낼 거 내면 뭐…… 남들처럼 사네요.] [1억도 실수령인지 아닌지 유무가 크거든요. 실수령이래도 막상 찍어보고 나면 그렇게 대단한 액수는 아니라서 허탈하지만요.] [하긴, 저도 1.5억 정도 버는데 집값 바라보면 한숨만 푹푹 나오네요. 5천 정도 벌면 다 비슷하게 행복하다던데.] [요즘은 초봉으로도 5천 넘게 받는데 어림도 없죠 ^^;;] [기만질 좀 작작 해 XXX들아.] [역해 뒤져버리겠네]그렇다.
자랑은 하고 싶지만 대놓고 자랑하면 조롱만 당할 게 뻔하니, 겸손한 척 행동하며 남의 부러움을 사려 하는 자들을 기만자라, 호감 고닉이라며 자랑스레 추대하고는 했다.
연봉 자랑만 저러할까. 기만은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었다.
[나 남치니랑 워터파크 갈 때 입을 비키니인데 ㅠㅠ 살이 너무 쪘?나? 옷이 껴서 흉해 보여…….] [응! 쓰니는 살 좀 빼는 게 좋겠다!] [튼살 다 보인다. 피부과 가서 셀룰로오스 시술이라도 받는 거 어때? 쓰니 걱정돼서 그래.] [이거 남초 사이트에서 퍼가는 거 아냐? ㅋㅋ] [애들아 안녕! 나도 같이 캡쳐해 줘!] [찰칵 찰칵!]이것 또한 기만.
[무료 가챠 이벤트에서 이렇게 나왔는데 좋은 건가요? 이 게임 처음이라. 별이 다섯 개면 괜찮은 거 맞죠?] [병먹금] [자랑하려고 용쓰네 ㅋ] [질문 하나 못 하네] [ㄴ 초면에 죄송하지만 전 한 번에 나왔어요]이것 또한 기만.
[후우,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그만큼 세금도 많이 올라서 기분이 안 좋네요. 어차피 쭉 살 집이라서 상관없는데.] [그렇죠. 이사 안 갈 거면 그냥 세금만 오른 건데.]저것 또한 일종의 기만.
바야흐로 기만의, 기만을 위한, 기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연령대, 성별에 무관하게 기만을 무기 삼아 기만을 겨루는 그러한 약육강식의 세상이.
마치 기만 파라다이스.
한편, 다양한 종류의 기만이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예체능에 유독 풍부하게 분포하는 기만 공식이 존재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노래? 따로 연습한 적은 없어요. 이번 작품이 처음이에요.]재능 기만이었다.
재능 넘치는 무언가를 보여 놓고는, 자기가 재능러인 줄 모르겠다는 그런 기만.
이번에는 이민기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세상…….”
“억울해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영화 촬영을 위해 급하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하고 두세 달 차에 라이브를 저만큼 소화할 정도라. 흠, 이건 좀.”
이민기가 멍하니 중얼거리려니, 박한모 매니저가 침착하게 읊조렸다.
“저 같아도 안 믿긴 하겠군요. 살짝 역겨울 것 같습니다.”
“…….”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인가.
억울해서 눈을 빼꼼 내미는데, 박한모 매니저가 작게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배우님이 역겹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남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그런 뜻이지요.”
“진짜요?”
“예, 100퍼센트 진심입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배우님은 역겹지 않습니다.”
“그 역겹다는 단어 좀 안 쓰셨으면 좋겠는데.”
“사전적인 의미로 활용했을 뿐입니다.”
“확실하죠?”
“전 배우님에게 언제나 진심입니다.”
“아니, 말 돌리시는데.”
“절 못 믿으시겠습니까?”
그 말에 이민기가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박한모 매니저의 눈을 바라보았다.
흔들림이 없다.
그 흔들림 없는 시선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민기는 그가 평소부터 심심하면 독설을 뱉던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믿어주기로 했다.
‘이래서 평소 행실이 중요하군.’
이민기가 의심의 눈초리를 치우길 무섭게 박한모 매니저가 뻔뻔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예술 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짧은 연습 기간을 강조하며 자기 재능이 이만큼 뛰어나다고 은연중에 강조하는 거지요.”
“전 그런 게 아닌데.”
“예, 저는 옆에서 다 봐서 압니다. 하지만 그걸 굳이 입 밖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기만입니다. 물론, 기만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기만, 기만자, 기만전술.”
아니, 자꾸 나오네. 그놈의 기만.
이민기가 울컥하려는 참인데 박한모 매니저가 타이밍을 빼앗듯 한발 앞서 차분하게 물었다.
“딱 봐도 그림을 한 10년은 그려온 게 뻔한 사람이 미술 학원에 와서는, 끝장나는 그림을 그려 놓고 뒷머리를 긁으며 자기는 그림을 2달밖에 안 그렸다고 말합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기만질 하네.”
“예, 작금의 배우님이 그러합…… 진 않습니다만, 그렇게 보이고 있을 겁니다.”
더 건드리면 끝이 좋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한 박한모 매니저가 변화구를 꺾었다.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
이민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컨대, 뭐라고 해명한들 안 통할 지경이라는 말이었다. 오히려 역효과나 안 생기면 다행일까.
하지만.
이게 꼭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드륵.
이민기와 박한모 매니저가 앉은 자리, 그 위로 빵을 산처럼 수북하게 담은 트레이 하나가 대뜸 올려졌다.
“하나 씨.”
주하나가 그러했다.
“생각보다 되게 많이 드시…….”
“다 같이 먹으려고 가져온 거예요. 다 같이 먹으려고.”
“아, 네.”
그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그만큼 배우님의 노래 솜씨가 좋았다는 말 아니에요? 기만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엄청나게.”
그렇다.
기만이라는 건 결국 타인에게 부러움을 살 만큼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부릴 수 있는 것.
어설픈 기만이 기만이 못 된다는 건, 기만질을 하는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이 말인즉슨, 이민기의 겸손이 기만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남들 귀에도 충분히 프로의 솜씨로 보였다는 말이죠.”
그의 실력이 짧은 기간에 어느 지점에 도달했다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하나 배우님의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박한모 매니저도 그녀의 말에 동의를 보태듯 말을 추가했다.
“인터넷의 반응만 봐도 알지 않습니까? 배우님의 노래에 대한 평가는 분명 좋습니다. 이미 음원으로 내 달라는 요청도 쏟아지고 있고.”
“그 정도까지는 아닌.”
“미튜브 조회 수가 이미 100만을 훨씬 돌파했더군요.”
“네?”
“아, 모르셨군요. 어쩐지.”
이민기가 황급히 미튜브를 키고는 자기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그곳, 불과 11시간 전에 업로드된 영상이 하나 있었으니.
[이민기가 부르는 {여우비} ★ 이민기x손희정 거제도 라이브 콘서트!] [조회수: 121만]어제의 공연이 그러했다.
영상은 부끄러워서 나중에 듣기로 하고 우선 댓글을 먼저 확인했는데, 그곳의 반응을 본 이민기는 뭐라고 해야 할까.
“후우우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한숨이지만, 조금 전까지 흘렸던 한숨들과는 명백히 다른 한숨이었다. 허탈함이 담기지 않은 한숨. 그 대신, 안도감이 가득 담긴 한숨이 바로 그 정체였다.
[감정 표현이 진짜 완벽하다] [벌써 20번째 반복해서 듣고 있어요. 친구들에게도 전해준다. 세계인의 빛이 되길. love from thailand] [왜 안 하던 음악에 도전한다고 하나 했는데, 이만큼 하면 할 만하네] [아 ㅋㅋㅋㅋㅋ 그래서 앨범은 언제 나오냐고 ㅋㅋㅋㅋㅋ] [이거 이번 신작 영화 수록곡 맞지?] [민기야♥♥♥♥♥♥♥] [어쩜 이렇게 다재다능하지.]흔히 나데나데라고 부르는 그것이었다.
본의 아닌 기만으로 시무룩해진 이민기의 마음에 나데나데가 연고처럼 산뜻하게 다가왔다.
‘그래, 날 좋게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됐지.’
이민기가 피식 웃었다.
결과적으로 실력으로 증명하면 될 일 아닌가.
아니지, 실력으로 증명해 버려서 생긴 문제인가. 그냥 앞으로는 말을 좀 아껴야겠다. 어디 가서 기만이라고 불릴 여지 자체를 안 줘야지.
그렇게 결심한 찰나였다.
“아, 여기 다 계셨군요.”
“감독님.”
심성보 감독이 다급히 다가오더니 말했다.
“감이 왔습니다. 주인공 캐릭터를 아예 이쪽 방향으로 잡아봅시다.”
“네?”
이쪽 방향?
그게 뭔데.
이민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찰나, 심성보 감독이 쐐기를 던지듯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버렸다.
“기만이라고 하나요? 이걸?”
“…….”
“음악 천재 주인공 좋은데, 기만질 하는 천재 주인공으로 갑시다. 음 그래, 왜 이게 안 돼? 같은 느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