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84)
운빨로 탑스타-184화(184/200)
제184화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하기 바로 직전, 갑작스러운 각본 수정이 일어났다. 그것도 주인공의 캐릭터 그 자체를 건드는 방향으로.
압도적인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겸손했던 천재 캐릭터에서, 대놓고 천재면서 겸손한 척해서 남 열불 터지게 하는 기만자 캐릭터로 말이다.
“어때요? 이제 좀 캐릭터가 좀 살지요?”
심성보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새로이 손본 각본 속에는 세부적으로 주인공 대사의 수정안이 적혀 있었는데.
[그냥…… 되던데 -> 이게 왜 안 돼?]대략 이 정도의 뉘앙스 차이가 느껴졌다.
사소하지만 아주 큰 차이. 캐릭터의 정체성을 갈아엎는 변화라고 해도 좋았다.
비유하자면 흡사 부천과 인천의 차이와도 같을 정도.
“아니, 이미 거의 다 완성하신 거 아니었어요? 가닥 잡히기 전에는 진행 안 하시겠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갑작스러운 선언에 당황하는 이민기에게 심성보 감독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어떻게 오해를 안 해요? 당장 주인공을 바꿔버리면 작품 전체가 바뀔 텐데.”
“전체를 뜯어고치는 게 아닙니다. 각본을 크게 수정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저 주인공의 방송용 멘트를 전반적으로 가다듬을 뿐입니다. 참외에 줄 그으면 수박 되는 정도로만.”
그거 완전히 바뀐 거 아닌가.
아무리 봐도 궤변 같다만, 전문가가 하는 말이니까 따르는 게 맞겠다 싶은 찰나였다.
“민기 씨.”
심성보 감독은 흥분이 가신 듯 한결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가장 좋은 작품이라는 건 최고의 아이디어를 짜낸 다음, 그 아이디어를 깨부쉈을 때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
“만만투도 시작은 단순한 생존기에서 시작했습니다. 로빈슨 크루소나 15소년 표류기를 모방한 생존기. 섬에 조난당한 생존자들끼리 서로 협력해서 탈출하는 내용. 그 안에 살인마가 섞여 있다는 정도의 차별점만 가진 스릴러였습니다.”
“그건 저도 들어본 것 같네요.”
주하나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원래는 그런 작품으로 시작했다고 감독님께서 자주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예, 하지만 거기에 더불어 촬영을 시작하기 직전, 딱 한 가지 아이디어가 더 떠올랐죠.”
그래서 그게 대체 무슨 아이디어인가 싶은 다음 순간.
심성보 감독이 서재 속 비밀 통로로 향하는 문을 열 듯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생존자들끼리 서로를 죽이면 어떨까. 이게 만만투의 진정한 시작점이었습니다.”
“…….”
“전 이런 아이디어가 가미됐을 때야말로 작품의 진정한 생명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확고한 신념에 찬 목소리였다.
물이 물이라는 듯, 술이 술이라는 듯, 마치 종교 속 교리에 대한 확신과도 같았다.
아니, 심성보 감독에게 영화는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순교자로서 기꺼이 삶을 바친 그가 교리에 확신을 가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 떠나서, 솔깃하긴 해.’
이민기가 입술을 물었다.
기만자 캐릭터라.
마침 그가 지난번, 손희정을 만난 날 연기 리허설을 하던 중에도 캐릭터성을 바꿀 필요성을 피로하지 않았나.
‘좀 심심하긴 했어.’
마냥 겸손하고 성격 좋은 천재는 자극이 약하다. 호감상인 사람은 그저 호감에서 그칠 뿐이다.
더한 이야기가 오가려면, 호감을 넘어서서 인간미와 함께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호불호가 갈릴 요소 한 점도 넣어야 하지 않겠나.
영화인의 교과서와도 같은 이론서 [what is scenario?]에서 캐릭터에게는 강점과 함께 약점도 주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말이다.
‘주인공의 약점이 의도치 않은 기만이 될 수 있다면.’
그래야 입체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다면 어떠할까.
설마 생각이 닿은 찰나였다.
“좀 소설에서 착각물이랑도 비슷하지 않아요?”
주하나에게서 돌발 발언이 튀어나왔다.
“착각물이라면?”
“아, 감독님, 이건 그냥 해본 말…….”
“아닙니다. 궁금해서 여쭌 것이니 한번 말씀해 주시지요.”
“……그게요.”
심성보 감독의 요구에 주하나가 일견 망설이는 듯하더니 작게 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왜, 착각물에서 재밌는 점은 그거잖아요. 주인공의 진짜 상황은 독자들만 안다는 거. 그 세계 속 등장인물들은 모르는데요.”
“거기에서 착각이 생긴다?”
“네!”
주하나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 바깥 시청자들은 다 아는 거예요. 주인공이 진짜로 음악 처음 해 봤고, 딱히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라는 걸. 하지만 영화 속 시청자들은.”
“모른다.”
그다음 순간, 이민기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는 말했다.
“시청자들이 주인공을 기만자로 몰아 세워서 주인공은 정말로 억울해하고, 시청자들은 그 억울함을 코미디 요소로 받아들이고. 또 방송 바깥, 진짜 주인공의 사정을 여러모로 알고 있지만…… 방송 시청자들은 모르는 거네요.”
그렇다.
착각물 스토리의 정수, 독자들에게 전능한 시야를 주는 것이었다.
남들은 다 모르지만, 독자들은 안다. 여기에서 쾌감과 웃음이 자라난다. 주하나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여기에 있었다.
“재밌겠는데요?”
재밌을 것 같다.
창작자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가장 달콤한 칭찬이 이민기의 입에서 흘러나왔을 무렵, 주하나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죠?”
수많은 요인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졌다.
심성보 감독은 각본이 완성됐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곳에는 작은 아쉬움이 남았다.
여기에서 이민기가 주인공의 변화를 감지했다.
‘내가 수정안을 내놓았고.’
심성보 감독은 이 상황을 두고 어딘가 운이 좋다고 느꼈다.
참, 그러고 보면 기만이라는 소재를 부각시킨 건 박한모 매니저였기도 했지. 화룡점정으로 예기치 않게 주하나가 확실한 방향성을 한 점 집어넣었고.
그리고 마지막 한 방으로.
“감독님, 이거 먹힐 것 같아요.”
이민기가 결정했다.
“의도치 않게 기만하는 주인공이고 작중의 시청자들이 놀리지만, 작품 바깥의 시청자들은 모든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는 그런 작품으로.”
그의 의견 한마디가 곁들여졌다.
“주인공은 초반부터 조작 논란에 휩싸이고, 작중에서는 별로 인정도 못 받아요. 하지만 시청자들은 알고 있죠. 주인공의 재능과 실력이 진짜라는 걸. 이걸 세상에 보여주는 그 순간에.”
“초반부터 빌드업을 쌓은 카타르시스를 일거에 폭발시킨다.”
“네, 바로 그거예요.”
영화 속에서 인정이 가지는 의미는 여타 창작물보다 진했다.
이론서 [what is scenario?]에서 일컫길 주인공의 성장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타인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는 성장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감독님 말씀대로 이 캐릭터는 팔릴 거예요. 많이 화자될 거고.”
“고통을 줘야겠군요.”
“네, 고통을 주는 만큼 후반부의 카타르시스도 커질 거고요. 중간부터 부담감을 못 이겨서 음악을 때려치우고 싶어 하는 모습도 보여주고요.”
갈등 없는 영화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에게는 외적 갈등과 내적 갈등이 함께 존재할 것이다.
대중의 관심이 외적 갈등이며, 자기 자신에게 음악을 쭉 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가 내적 갈등이 될 것.
“하지만 끝내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마지막 한마디는 주하나가 던졌다.
“윌리엄 록하트와 함께 스타가 된다!”
“정답.”
괜찮지만 그 정도가 한계였던 스토리였다.
여기에서 세 사람, 한 명의 감독과 두 명의 주연이 펀치 한 방을 온전히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캐릭터.
찰흙 한 덩어리를 다듬어 교과서적인 인물상을, 그 뒤로 입체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물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
“아직은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만들어야 할 결과물에서, 만들고 싶은 결과물이 되었다.
심성보 감독이 마지막으로 웃으며 말했다.
“트레일러에서 꼼수를 좀 부려 봐야겠군요.”
* * *
거제도에서 뜬금없이 이민기의 우당탕탕 팬미팅 대사건이 있고 난 뒤, 그는 다소 조용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영화 촬영에만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 뛰어난 음악 솜씨를 어떻게든 활용해서 뮤직비디오라도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뮤지컬에서 유독 잘하는 거 말이다. 메이킹 필름이나 음원을 일부나마 사전 공개하는 거.
[조용하니까 불안한데, 작품이 별로라서 그런 거 아님?] [아카데미 노린다고 호언장담했잖아.]이민기는 그저 조용했다.
마치 결과로 증명하겠다는 듯 폭풍전야의 그것을 연상하게 했다. 이것이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거제도에서의 라이브 영상은 이미 천만 뷰를 넘겼다.
하물며 손희정의 [여우비]는 차트를 역주행하더니 무려 멜로 차트 5위 안에 입성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렇게까지 호조를 보이는데 왜 반응이 없는가.
그만큼 이민기의 신작 소식도 뜸해졌고.
[그런데 이거 제목은 뭐임?] [지난번 인터뷰에서 말하는데 가제가 록하트래.] [윌리엄 록하트의 록하트인가?]생각해 보니까 제목마저 공개 안 했다.
만들고 있기는 한 걸까.
거제도 산속 물 깊은 곳 폐교한 학교 하나 빌려서 찍고 있다고는 하는데, 거기에서 다 같이 뭘 하는 건가.
[슬슬 그의 어그로가 그립다] [어쨌든 우리를 즐겁게 해 주시는 솜씨가 일품이셨지] [천하…… 일미였소]슬슬 기대감이 차올랐을 무렵이었다.
[이민기 신작 특별 트레일러! 미튜브 독점 공개!]미튜브 메인 화면에 배너 하나가 떠올랐다.
그저 흰 배경에 궁서체로 검은색 글씨를 따박따박 박아 넣은 배너 하나. 단순하지만 그 배너 크기만큼은 어마어마해서 단번에 눈에 박히는 듯했다.
못 참는다. 눌러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민기 신작 떴다] [뭔 내용임?] [직접 보셈 이거 말하면 스포임] [트레일러가 스포? ㅋㅋ]대중은 그간의 갈증을 축이겠다는 듯 서둘러 트레일러 재생을 눌렀고.
그 결과물은.
[제목: 알고 보니 음악천재] [업로더: 마이야르 픽쳐스] [37분 전] [조회수: 11.2만]뭐라고 해야 할까.
딱 보는 입장에서 바로 이해가 가는 물건은 아니었다.
마치 하꼬 미튜버의 실시간 방송을 보는 듯한 저화질 영상 속, 그곳 화면 중심에 한 남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이민기다.’
이민기였다.
눈까지 덮는 치렁치렁한 헤어스타일에 헐렁한 옷 탓에 티가 애매했다.
영화 촬영을 위해서였는지 평소 그의 신분증으로 유명했던 근육질도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그 실루엣에서 확실하게 이민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아.]한 손에는 기타를 들고 있었다.
방송이 익숙하지 못한 탓일까, 자세가 몹시 불편해 보였다. 아니, 그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건지 확연히 움츠러들어 있었다.
[위이이이잉-] [탈탈탈탈탈-]불편할 정도로 에어컨 소리와 선풍기 소리가 난무하는 실내, 대체 뭘 하려는 건가 의구심이 들 무렵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정리하고 싶은 건데.]다음 한마디가 가관이었다.
[왜 사람 말을 안 믿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