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86)
운빨로 탑스타-186화(186/200)
제186화
며칠 뒤.
커피 향이 물씬 풍기는 카페테라스.
이 자리에 이민기를 비롯해, 마이야르 픽쳐스 일동이 예기치 못하게 마주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이렇게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민기의 반가움과 당혹스러움이 함께 버무려진 목소리에, 테이블 건너편의 남자가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며 답했다.
“전 나름대로 기대했습니다만.”
중년의 남자였다.
흰머리가 날락 말락 한 중년인데, 한국어를 평소에 많이 쓰지 않았는지 알게 모르게 영어 발음이 느껴지는 게 특징인 남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생명의 은인을 언제 한번 뵙고, 크게 대접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렇다.
눈앞 남자의 정체는 바로 배정문.
“이번에는 지상에서 뵙는군요.”
지난 미국 여행에서 이민기가 비행기에서 만났던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살려냈던 사람이었다.
[이건 우리 연예인이야. 사람을 살려.]이민기 미국 흥행의 신호탄을 쏠 계기가 된 사람이기도 했고.
사람 살린 연예인으로 말이다.
그런 배정문은 AST의 이사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사뭇 다른 신분으로 이민기의 앞에 선 듯했다.
“설마 넷플레이로 이직을 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바로, AST의 고위 임원에서 넷플레이의 부사장으로.
아무리 그래도 좁은 업계 안에서 경쟁사로 이렇게 쉽게 옮겨도 되는 건가. 이게 가능한 건가.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는 이민기에게 배정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경쟁사로 이직한 게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네? 아뇨, 딱히 그렇다기보다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미국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상대 회사의 임원을 데려오는 정도쯤이야. 경쟁사의 성장동력을 죽이는 일로도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하긴…….”
당장 CPU 회사로 유명한 인텔도 AMD의 임원을 데려와서는 부사장 자리에 앉혔다던가.
“넷플레이 측 임원도 몇몇 AST로 이직한 일이 있었으니, 서로 교환했다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그렇게 쉬운 일인가.
뭔가 가볍게 말하고는 있다만, 뒤에서 굉장한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이민기는 조금 더 캐묻고 싶은 마음을 애써 삼켰다. 여기는 비즈니스 미팅 자리니까. 조금 민감한 사정 같은 건 나중에 들어도 늦지 않겠지.
물론, 배정문이 AST를 떠난 이유의 태반은 이민기에게 있었지만 말이다.
‘AST는 너무 자만했지.’
이민기 사건을 통해서 확실하게 느꼈다.
‘자만하고 안주한 회사에 그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AST는 성장동력을 잃어버렸다.
엠마 스펙터라는 인물로 인해 큰 성공을 거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AST는 그녀가 만들어낸 성공 공식을 너무 신봉해 버렸다.
AST가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성공만을 추구했던 것.
하물며 문제가 생긴 뒤에는 무엇을 했는가.
‘엠마 스펙터에게 OTT를 맡기다니.’
좌천을 빌미 삼아 엠마 스펙터에게 OTT 사업 전반을 위임했다.
실로 우스운 일이었다.
미래 먹거리라고 불러도 모자랄 OTT다.
기업에서 가장 실력 있는 사람을 앉혀도 모자랄 그런 자리를 고작 유배지 취급한 것 아닌가. 눈이 멀었다고밖에 볼 수 없을 판단이었다.
해서, 배정문은 결정했다.
‘더 위로 간다.’
차라리 OTT 산업의 최전방으로 가기로.
다행히 넷플레이는 배정문을 반겨 주었다. 극장가 관련해서 노하우가 부족했던 만큼, 크게 힘을 비축할 기회라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불과 1년 사이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 시간을 회상하던 배정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배우님은 모르시겠지만,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배우님 덕분입니다.”
“그렇게 말씀하니까 조금 쑥스러운데요.”
살려준 게 크긴 했지.
문맥에서 조금 어긋난 이민기가 머쓱해하는 한편, 배정문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준비해 온 조건은 이렇습니다.”
본론이다.
사적인 잡담이 끝났다는 걸 느낀 이민기와 심성보 감독, 진주연 감독이 귀를 쫑긋 세웠다.
‘시작이다.’
대충 어떤 조건이 될지는 사전에 전해 들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조율은 지금부터 할 터.
넷플레이 측이 어떤 조건을 건네느냐.
이게 관건이 될 것이다.
‘일단, 극장 상영만큼은 무조건 사수한다.’
심성보 감독의 바라는 바는 극장에 있었다.
[알고 보니 음악천재]는 사운드를 극도로 강조한 작품이다. 당연히 극장에서 빵빵한 사운드로 즐겨야 본연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터.넷플레이가 아무리 OTT 독점 컨텐츠를 선호한들, 이것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미국에서라도. 아니, 한국이랑 미국에서만큼은 극장 상영을 따내야 해.’
이 둘이 관건이다.
제작비 투자는 아무래도 좋다. 그 정도는 어디서든 받아낼 수 있으니까.
‘극장.’
‘일단은 극장.’
‘OTT는 어차피 벌어둔 패야. 극장부터 선점하고 봐야지.’
꿀꺽.
배정문의 다음 한마디에 세 사람의 이목이 일제히 쏠린 찰나였다.
“전 세계 41개국 극장에서 동시에 상영하겠습니다.”
“역시…….”
다음 순간이었다.
“네?”
이민기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전 세계 41개국 동시 상영이라고 했나? 4개국도 아니고 41개국?
잠시 청각을 의심하는 찰나였다.
“OTT 런칭에 앞서 극장에서 먼저 개봉할 겁니다. 동시 상영은 기본으로, 만화화와 소설화, 드라마화부터 시작해 필요하다면 몇몇 예능 제작까지도 검토하겠습니다. 물론 각국의 언어로 전부 번역은 기본입니다. 프로모션도 최고로만 진행할 것입니다.”
상상.
상상을 가뿐히 넘어서는 압도적인 제안이 터져 나왔다.
일단 작품만 내놔라. 넷플레이가 책임지고 팔 수 있는 모든 방향으로 전부 팔아버리겠다는 그런 제안이.
달콤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의심이 가는 제안이기도 했다. 이 부분에 신경을 기울인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넷플레이는 OTT 업체 아닌가요?”
OTT 업체로서 OTT를 멀리해도 되겠냐는 질문이었다.
어딘가 함정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매절이라도 요구하는 게 아닌가.
살짝 의심이 서린 눈빛으로 바라본 순간이었다.
“예, 물론 넷플레이는 OTT 업체입니다.”
배정문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 작품을 고민하기에 앞서, 전 넷플레이의 시선을 버렸습니다. 즉, 마이야르 픽쳐스의 입장을 먼저 고려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더니 양손을 그물처럼 포갰다.
“지금은 넷플레이의 정체성 따위를 고집할 때가 아니라고.”
“…….”
“OTT 독점 컨텐츠를 중시하는 건 좋습니다. 나날이 질과 양이 늘고 있지요. 가입자 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배정문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무거워졌다.
“OTT는 그래 봐야 결국 OTT입니다. OTT 업계가 극장가에게 비해 절대적으로 훅이 모자란 이유가 무엇입니까?”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OTT의 문제가 무엇이냐니. OTT 사업을 하러 OTT 업계로 간 사람 아니던가.
뭐라고 대답하기를 바라는 거지.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되나?’
배정문이 적어도 말장난을 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잠시나마 눈을 깜빡이던 이민기가 판단을 마치고는 입을 열었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재미가 훨씬 덜한 거요? 화면이 작으니까.”
“틀렸습니다.”
“…….”
틀렸다고 하신다.
아주 단박에 거절당한 이민기의 풀이 죽었다. 배정문이 그 바톤을 이어받아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OTT에서 보는 건 제대로 된 영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영화가 아니다?”
OTT 독점 영화들의 퀄리티가 모자라다는 말인가. 흔히 지적되는 그 말. 그래서 그런 인식을 [알고 보니 음악천재]로 반전시키겠다는 건가.
심성보 감독의 생각이 여기까지 닿은 찰나, 배정문의 맥락은 다른 곳에 있었다.
“예,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입니다. 극장에 걸려야 영화답습니다.”
극장 찬양론이었다.
“OTT는 아무리 잘나가 봐야, 결국 OTT에 지나지 않습니다. 솔직히 싼 맛에 보는 거지, 같은 돈이면 누가 OTT에서 봅니까. 당연히 극장에서 보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가히 광신도의 그것에 가까운 확신이 듬뿍 담겨 있는 발언에 잠시 이민기의 얼이 나갔다.
‘저런 말을 해도 되나?’
설마 세계적인 OTT 업체의 부사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다니. 자해하는 꼴 아닌가.
의심이 자리를 틀었다. 하지만 배정문의 다음 말이 그 의심을 차마 기를 틈도 없이 이어졌다.
“우리가 왜 극장을 사랑합니까?”
실로 장대한 질문과 함께 배정문의 힘 가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환경은 공간을 지배하고, 공간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극장의 시대에서 태어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자란 사람들입니다. 극장은 우리의 얼과 꿈이 담긴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극장입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한다? 아닙니다. 예, 영화라는 건 극장에서 보는 게 맞는 겁니다. 그게 우리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철저하게 로망에 입각한 이야기.
신제품 홍보 프레젠테이션이라면 모를까, 이게 비즈니스 미팅에서 꺼낼 만한 이야기인가 싶은 그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듣고 있노라면 한 사람의 영화 관객으로서 그저 가슴이 한없이 뜨거워지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지.’
‘극장이라.’
‘좋은 영화를 굳이 극장 밖에서 본다는 건 상상도 못 하겠어.’
이들에게 극장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장소이기도 했다. 양보하기 어렵다. 그저, 한없이 애정이 가는 장소다.
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
수익성이고 상징성이고 필요 없다. 극장은 이들의 고향과도 같았다.
“실제 수익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배정문이 마침표를 찍듯 말했다.
“제가 넷플레이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제가 마이야르 픽쳐스라면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극장에 영화를 걸고 싶다고. 무조건.”
“아.”
순간, 이민기는 배정문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깨달았다.
‘넷플레이가 정체성을 포기했다.’
포기했다.
그들은 OTT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더라도 그저 마이야르 픽쳐스의 차기작 한 작품을 가져가는 것 하나만으로도 족한 것이었다.
다른 조건 따위를 걸지 않겠다. 그냥 작품만 내놓아라.
‘노림수는 아마, 작품보다는 타이틀 그 자체겠지.’
그저 넷플레이가 마이야르 픽쳐스의 계약을 따냈다. 이 타이틀 하나면 충분하다는 게 넷플레이의 판단이었으리라.
하지만.
‘로망은 어디까지나 반만 진담이다.’
진심은 따로 있을 테고.
나름대로 분석을 마친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극장 상영이 끝난 뒤, OTT 독점 공급 권한을 가져가는 것 하나만으로도 본전은 남겠다는 판단하에 내린 결론이겠지요?”
그다음 순간이었다.
“예.”
정확했다.
배정문이 여전히 떳떳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예, 어차피 마이야르 픽쳐스의 작품을 가져갈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양보할 수 있습니다.”
인정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아직 부족하다.
이민기는 그의 말속에서 숨겨진 진의 한 줄기를 엿보았다.
‘선심 쓰는 척하지만, 사실 다 잔가지야.’
숨기는 게 좀 있다.
드라마화든 만화화든 소설화든 2차 미디어믹스를 넷플레이가 책임지고 진행하겠다는 것이 그러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OSMU 권한을 미리 위임받겠다는 말과도 같겠지.’
요새 미디어믹스는 기본이다.
하물며 프로모션 이야기도 그 범위에 따라서는 작품을 좋을 대로 어루만지겠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테고.
이건 세부적인 사항을 따로 협상해 봐야 할 터.
하지만 이 협상은 그가 할 일은 아니었다. 마이야르 픽쳐스에는 전문가가 있다.
‘진주연 감독님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진주연 감독이었다.
안주인인 그녀라면 세세한 조항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지.
여기에 더불어, 배정문은 한 가지를 더 고려했다.
‘넷플레이도 얼마든지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기회다.’
이민기의 신작을 통해 홍보하는 것이었다.
넷플레이에 작품을 준다고 해서, 극장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어느 나라로 가든 OTT 작품을 극장에 걸길 꺼리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마이야르 픽쳐스의 작품이라면 어떨까.’
예외적이겠지.
하지만 어디에서든 통상적인 퀄리티를 한참 뛰어넘은 작품에는 예외가 통한다. 마이야르 픽쳐스의 작품이라면 그 예외가 될 수 있을 터.
여기에 더불어, 심성보 감독은 넷플레이에 작은 믿음 하나를 가졌다.
‘설령 망한다고 해도 밀어줄 수밖에 없겠지.’
공수표라고는 해도 어찌 되든 온갖 방면으로 팔아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
‘넷플레이에서는 유명 스튜디오 하나하나가 간절한 상황이다. 일단 오면 이만큼 밀어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기회겠지.’
넷플레이 작품은 극장가 작품들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 그걸 개선하려 할 터.
‘일반 극장가 기준이라면 우리는 평범한 스튜디오 중 하나겠지만, 넷플레이라면 다르겠지.’
어느 쪽이든 손해를 볼 일은 없는 수다.
마이야르 픽쳐스와 배정문, 양쪽이 다른 계산을 끝냈다.
그 계산의 공통분모에는.
“혹시 참치 좋아하십니까?”
“제대로 된 곳이면 좋아합니다.”
“잘됐네요.”
어찌 됐든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유리하다는 판단이 존재했다.
“제가 가본 곳 중에서 제일 잘하는 곳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