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88)
운빨로 탑스타-188화(188/200)
제188화
‘백악관?’
이럴 때는 대략 정신이 혼미해진다.
백악관.
세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다. 세 글자의 발음이 전부 똑똑 끊겨서 어감이 좋기도 하다.
영어로는 화이트 하우스.
국가를 막론하고, 산속이 아닌 현대 문명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몇 번이고 들을 단어이기도 하였다.
모르면 상식조차 없는 모지리 취급을 받을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단어, 백악관.
하지만 이민기는 애써 그 존재감을 부인하며 물어보았다.
“혹시, 클럽 이름이 백악관인가요?”
“아닙니다.”
서정우 이사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음, 그럼 아파트 이름?”
“그것도 아닙니다.”
“아하, 어디 영화사 이름인가 보네요. 저희한테 영화 좀 샘플로 참고하게 보여달라고. 이건 거절해야…….”
“배우님.”
다음 순간이었다.
현실을 애써 부정하려는 이민기의 몸부림을 가차 없이 차단한 서정우 이사가, 마치 바이칼호의 수질처럼 투명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미국 백악관 맞습니다. 지구 대통령이 일하는 곳.”
“…….”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진실의 장막을 걷고 장엄하면서도 냉혹한 진실을 맞이한 이민기가 눈을 깜빡거리더니 말했다.
“아, 그럼 혹시 개봉하기 전에 심의를 거쳐야겠다. 그거죠?”
이거라면 가능성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만만투]가 워낙 화제가 된 작품이었잖나. 자극적인 전개와 선정성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고.
이거 실제로 따라 해 보겠다고 섬을 빌린 러시아 부호도 있었다지. 참가자까지 모아놓고 실행 직전에 특수부대가 제압해서 잡아갔다지만.
‘너무 흥행작이니까, 사회적인 논란을 피하기 위해 심의기관과는 별개로 차기작을 직접 검토하겠다. 그런 의도라면 또 몰라.’
끝까지 현실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한 이민기가 중얼거린 찰나였다.
“현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배우님의 영화를 미리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서정우 이사의 입에서 한층 더 비현실적인 단어가 흘러나왔고, 어째서일까. 그 단어를 들은 순간.
“아, 그래요?”
이민기는 이 현실을 놀랍도록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대통령이라면 말이 되지.’
받아들이고 말았다.
대통령이 영화 하나 보여달라고 직접 컨택을 한다. 우스운 일이다.
어느 재벌 2세 3세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비밀리에 상영회를 요청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는 하나,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건 어중이떠중이들이기에 가능한 일.’
진정한 권력자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반면, 대통령이 직접 그런 요청을 한다면, 이건 그저 권력 남용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그건 어디까지나 ‘현 미국 대통령’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왜냐.
“도널드 트라우트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긴 하네요.”
“예, 도널드 트라우트라면 가능합니다.”
현 미국 대통령이 도널드 트라우트이기 때문이었다.
도널드 트라우트.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사업가. 사업가 중에서도 특별히 방탕한 축에 드는 부류였다.
“남 눈치 더럽게 안 보죠. 그 사람.”
그 방탕함은 사망한 아내의 무덤마저도 일개 탈세용 제물로 사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을 정도.
이민기가 아는 미래에 의하면 조만간 재선거에서 실각하고 바바라에게 자리를 빼앗길 예정이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래의 이야기.
어쨌거나 현 백악관의 임자는 도널드 트라우트였다.
그 이름 몇 글자로 작금의 모든 게 설명이 됐다.
‘어디 트X터 같은 데다가 안 올리고 회사를 통해서 컨캑한 것만 해도 그 양반 기준으로는 신사적인 행동일 거야.’
왜 영화사로 연락 안 하고 에이전시로 바로 연락했는가. 이것 또한 어떻게 보면 해석이 가능한 일이었다.
도널드 트라우트니까.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 도널드 트라우트니까.
[Q. 대통령이 인종차별 발언을 뱉는데 왜 그러죠?] [A. 도널드 트라우트니까.] [Q. 타국 정상이랑 미팅하는데 1시간 늦었어요. 왜 그랬죠?] [A. 도널드 트라우트니까.] [Q. 대통령이 트X터로 주가 조작해요.] [A. 도널드 트라우트니까.] [Q. 민주주의 국가 대통령이 왜 독재자를 칭찬하죠?] [A. 도널드 트라우트니까.]도널드 트라우트니까.
현 미국에서 이 문장 하나면 설명 못 할 일이 드물었다.
‘그 양반이라면 그럴 수 있어.’
하물며 이민기 그 자신조차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진정한 참인데, 그보다 한층 일찍이 합리화를 마친 서정우 이사가 차분하게 읊조렸다.
“JC에 연락이 왔을 때는 긴가민가했습니다. 보이스피싱인가 의심했습니다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군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이런 일 하라고 회사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서정우 이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 또한 아닌 척하지만 마음고생이 꽤 심했던 모양새.
“그래서, 어떻게 하십니까.”
“일단 도널드 트라우트가 영화 좀 미리 보여달라고 연락했다는 게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진실이라는 걸 깨닫자, 고민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그냥 제안을 받아들이고 허락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리라.
상대가 그 도널드 트라우트 아닌가. 만에 하나 기분을 수틀리게 했다가는, 인터넷에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도 존재했다.
‘설령 허락했다가는?’
도널드 트라우트에게 영상이 흘러간다고 치자. 그가 그걸 어떻게 써먹겠는가.
‘동네방네 자랑하겠지.’
자기가 이 영화를 봤다고, 내용을 스포일러를 하고 다닐지도 모른다.
정말 운이 나쁘다면 영상 파일이 통째로 미국의 부호 사이에서 떠돌지도 모르겠지.
가정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또 모를 일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권력 좀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극장까지 찾아가 준 내 관객들보다 먼저 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제작자로서의 신의가 있었다.
대통령이든 왕이든 재벌이든 연예인이든 판사든, 영화 앞에서는 평등하게 그의 관객이어야만 한다.
누군가에게 특혜를 제공한다는 건 이민기에게 있어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 작품을 일개 허세 짙은 이의 장신구로 만들 수는 없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예의다.’
관객들에 대한 예의.
여기에 생각이 닿은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요.”
………
……
…
몇 시간 뒤.
백악관의 한 덩치 큰 금발 남자가 보고를 전해 들었다.
쩔쩔매는 비서와 말이 몇 마디 오가리를 잠시, 남자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쉿!”
쉿, 조용히 하라는 게 아니다.
Shit, 욕이었다.
한 국가를 넘어, 지구의 정세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대통령의 입에서 튀어나왔다기에는 지극히 천박한 단어.
“각하?”
그를 지켜보는 비서와 보디가드들의 한심하다는 듯한 눈길에도 불구하고, 금발 남자는 좀처럼 분노한 기색을 감출 줄을 몰랐으니.
“■■◇■■! ◇■☆■! □□☆□□! ☆!”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리도 분뇨하는, 아니, 분노하는 걸까.
중요하지 않다. 이 남자의 발작은 어차피 평소에도 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저게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권력자라니.’
그의 뒤에서 뒷짐을 진 채 선 비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는 도널드 트라우트의 우스꽝스러운 행보를 두고 그것이 전부 계산된 행동이라며 분석하고는 했지만, 현실은 저러하다.
“내가 자기 영화를 보고 싶어서 보여달라고 한 줄 알았던 건가? 윌리엄 록하트의 노래를 내놓으라고! 우리 딸아이가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
운 좋은 초등학생, 그게 그의 눈에 비친 도널드 트라우트였다.
‘하지만 또 모르지, 어쩌면 이것도 연기하는 것일지도.’
그보다 정말로 중요한 건, 그로부터 불과 몇 분 뒤에 트X터에 올라온 문장 몇 줄이었으니.
[만만투를 제작한 스튜디오에 신작 영화를 사전에 검토하게 보여달라 공식적으로 요청했는데, 깔끔하게 거절당했다.나 같은 사람도 못 보는 영화라니.
영화에 무슨 금테를 칠한 게 틀림없다.] [게시 시각: 3시간 전] [리트윗 수: 11.2만]
운.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뉴욕의 한 골목, 음반 가게.
“미쳤나?”
청자켓을 걸친 남자 하나가 미간을 강하게 찌푸렸다. 그 목소리에 옆에 선 여성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누가?”
“마이야르 픽쳐스.”
“그게 누군데?”
“만만투 만든 영화사 있잖아. 이번에 음악 영화 하나 낸다고 홍보 때렸던 거기. 이민기가 차렸다는 곳.”
“아, 그 회사?”
모를 수가 있을까.
마이야르 픽쳐스를 모를 수는 있어도, 이민기라는 이름을 모를 수는 없다.
그는 오딘 유니버스를 꺾은 시점에서 이미 인지도로 월드스타에 준하는 연예인이 되었으니.
하물며 신작은 윌리엄 록하트가 직접 음악을 맡았다지.
문외한이라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 보았을 텐데, 특히나 이들처럼 음악에 미쳐 사는 사람들이라면 감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 이들의 입에서 이민기가 미쳤다는 말이 나온 이유는 이러했다.
“트라우트가 직접 신작 영화를 보여달라고 사정사정했는데, 그걸 거절했다는데?”
“뭐?”
“여기 기사 봐. 백악관의 요청을 일언반구에 거절.”
“내놔.”
여성이 거칠게 기사를 가로챘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읽기를 잠시, 거센 숨을 토해냈다.
“…… 하, 당돌하네.”
실제로 사내의 손에 잡힌 가십지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부자에 의하면, 이민기 측이 백악관의 요청을 거절한 사유는 이러하다. 영화의 내용은 온전히 관객의 것이어야 한다. 관객은 모두 평등하다. 대통령이든 길거리의 사람 아무개든 스크린 앞에서는 같아야 한다. 그들이 같은 기대감을 품고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문화를 사랑하는 도널드 트라우트 대통령이라면 관대히 이해해 주리라는 것을 안다.그렇게 밝힌 한편, 이민기 측은 이번 영화의 목표가 아카데미라고 사전에 밝힌 바가 있어………….]
그야말로 감성에 호소하는 문장으로 가득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단순히 대통령도 같은 관객이라는 이유로 우선 상영을 거절했다니.
“이게 왜 밖에 퍼진 거야? 뒤에서 은밀하게 이야기가 오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루머 아니야?”
“기사 뒤에 잘 봐. 그 잘난 트라우트가 직접 SNS에 다 이야기했다잖아.”
“맞네, 트라우트라면 그럴 수 있지.”
트라우트라면 그럴 수 있지.
세상의 그 어느 기현상이라도 트라우트 발이라면 믿을 수 있다.
당연한 법칙 하나로 이들이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를 잠시, 이내 그들의 마음속으로 어느 호기심 하나가 강렬하게 끓어올랐다.
“대체 얼마나 재밌는 영화길래 트라우트가 보려고 했대?”
영화였다.
“거절할 정도면 콧대가 정말 높은 건데.”
“흠, 궁금하네. 그 대통령이 권력을 동원해서도 못 보는 영화라니.”
궁금해졌다.
이 영화, 과연 어떤 내용일지 정말로 궁금해졌다. 얼마나 잘난 영화이기에 이렇게까지 꽁꽁 숨기려고 하나.
원래대로였다면 볼 생각조차 안 들었을 작품에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묻었다.
그야말로 마케팅의 한계를 뛰어넘은 떡밥이었다.
“도널드 트라우트가 한 방 먹었네.”
“꼴 좋다.”
이곳 작은 골목 음반샵만이 아니다.
도널드 트라우트라는 이름이 가진 어그로는 미국 전역, 나아가 지구 전역으로 미쳤다.
그 말인즉슨.
[미국의 대통령, 남쪽 한국 영화사 앞에 무릎을 꿇어]가십은 빠르게 퍼진다.
지구 반대편, 이집트의 지방까지도 사건 당일에 퍼지는 게 오늘날의 미디어.
이민기.
그의 운은 지금, 어느 경계선을 맞이했다.
“그 영화 제목이 ‘알고 보니 음악천재’라고 합니다.”
“음악천재? 이름이 단순해서 좋네요.”
“그게 아니라 알고 보니 음악천재라니까요.”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제목이 알고 보니 음악천재라는 말입니다.”
“그건 나도 압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겁니까?”
미디어의 가장 세밀한 모세혈관을 타고, 이민기의 신작 소식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