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89)
운빨로 탑스타-189화(189/200)
제189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평화로운 마이야르 픽쳐스 사무실 소파.
‘이럴 때는 대략 정신이 혼미해진다.’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을 마주한 이민기가 떨리는 눈동자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민기보다 한층 더 덜덜 떨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감독님, 너무 떠시는 거 아니에요?”
바로 심성보 감독이 그러했다.
그가 사시나무 떨듯 감정을 못 숨기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디켄팅입니다.”
“요즘은 커피도 디켄팅해서 마시나요?”
“유럽에서는 최신 유행.”
“……굳이 더 말씀 안 하셔도 괜찮아요.”
이민기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저희 상황이라면 그 어느 초인이라도 긴장하는 게 정상일 테니까.”
그렇다.
마이야르 픽쳐스가 마주한 상황의 정체, 그건 바로.
“설마 초기 개봉관 17개국 전역에서 예매율 80%를 돌파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압도적인 흥행 돌풍이었다.
트라우트 대통령의 SNS 소동 이후, [알고 보니 음악천재]가 ‘지구 대통령도 못 보는 영화’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고 또 얼마나 지났을까.
제대로 개봉하기는커녕 시사회조차 안 열린 상황에서, [알고 보니 음악천재]는 가히 지구적인 열풍을 일으켜 버렸다.
[밥은 대통령처럼 못 먹더라도, 영화는 대통령처럼 보자.] [모두에게 평등한 한 작품]여기에 넷플레이의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까지.
구두 약속 당시 자신만만하게 약속했던 40여 개 관 동시 개봉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무려 17개국 동시 상영을 확보했다.
그 모든 국가에서 회사의 사운이라도 걸었다는 듯 돈을 퍼부은 결과가 바로 이것.
[영화 하나 보려고 독일 여행 준비 중인 나] [문화생활은 트라우트처럼 즐겨야지]처음부터 심상치 않았다.
시놉시스랑 트레일러만 달랑 공개한 영화가 이렇게까지 화제를 탔다는 점에서 이미 폭풍전야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시사회가 진행된 뒤 엠바고가 풀리기 전, 전문가들의 영화평이 공개되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라이브를 단돈 20달러에 즐길 기회]압도적인 극찬이 그것이었다.
[이민기의 연기력에는 단맛이 있다. 언어의 벽과 문화의 벽을 허무는 단맛이다.] [각본은 평범하다. 하지만 평범하기에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심성보 감독은 지난 100년간 오랜 선배들이 쌓아온 유산을 계승하는 데 성공했다.] [윌리엄 록하트는 다시 한번 그가 세계 최정상의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증명해냈다. 그것도 타인의 목소리로.] [지금까지 나온 음악 영화 중 최고.] [한가지 예언하겠다. 극이 막을 내린 뒤 앵콜을 외치게 될 것.]극찬 그 자체.
엠바고 탓에 자세한 내용은 차마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더 칭찬할 구석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기세 만큼은 확실했다.
[등장하는 모든 음악에는 의미가 있다.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이 아니다. 무엇 하나가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그 색채가 뮤지컬과도 맞닿아 있다.] [가장 훌륭한 배우에게 가장 훌륭한 감독의 자질도 있었다니.] [수십 년을 숙성시킨 보르고뉴 와인처럼 한국 영화가 오랜 세월을 거쳐 마침내 빚어낸 진수.]후하다.
설마 이렇게까지 후하게만 평가해도 좋을까 싶을 정도로 극찬만이 쏟아졌는데, 현실인가 싶은 와중.
오죽하면 비판이랍시고 비판을 한 평론가의 멘트가 이것밖에 안 되었다.
[언어가 한국어라서 곡에 집중이 안 된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였다면 훨씬 훌륭했을 텐데.]도저히 깔 거리가 없으니 언어적인 면을 물고 넘어진 것.
영화로서는 어쩔 수 없는 면을 지적하였으니 그 결과가 어떻겠는가.
그토록 AST가 울부짖던 PC가 이번에는 저쪽 평론가를 덮쳤다.
아무튼, 평가가 더할 나위 없이 어마어마했다는 말이다. 그 깐깐한 평론가들마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정도로.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정도로.
예매율은 어디까지나 그 파급에 불과했고.
‘이 정도로 평가가 좋으니까 좀 무섭기까지 한데.’
세상사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고 했는데, 크게 한 방 먹는 거 아닌가.
역풍이 분다거나.
이민기가 그답지 않게 무의식적으로 설탕 범벅 쿠키 한 점을 집어들려는 찰나였다.
“후, 후후, 맞아요. 걱, 걱정할 필요 하나도 없으세요.”
주하나가 심성보 감독보다도 한층 더 격렬하게 떨며 중얼거렸다.
“여, 영화는 관객들이 평, 평가하는 거죠. 미, 민기 씨도 평소에 자주 말, 말씀하셨잖아요.”
“하나 씨, 지금 하나 씨도 심하게 떨고 계십니다만.”
“바이브레이션이에요. 요새 노래 연습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말할 때도 바이브레, 레이션이, 후후.”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 사람은 틀렸군.
살짝 맛이 가 버렸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심각한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이 그 당사자였다.
“이민기 배우님, 그러고 보니 건주 씨는 어디로?”
“그게 말이죠.”
이민기가 착잡한 마음에 볼을 긁으며 중얼거렸다.
“이대로는 심장이 못 버텨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개봉하고 결과 나올 때까지 치앙마이에 가서 안 돌아오겠대요.”
“예? 치앙마이?”
“태국에 휴양지 있어요. 당분간은 속세와 차단된 채 살고 싶다네요.”
천건주는 유약한 성정을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트라우트가 SNS로 불만을 토해냈다고 했을 때 앞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기는 글렀다며 1차로 멘탈이 터졌다.
이후 평론가들의 극찬이 나왔을 때 다리에 힘이 풀리는 정도로 버티는가 했더니, 예매율을 듣고는 그대로 도를 찾아 떠나버린 것.
‘대체 세상이 어찌 될려고 이러는지.’
솔직히 떨린다.
주목을 받는 건 좋은데, 이렇게까지 높아진 기대치를 못 충족시켜주면 어쩌지. 역대급 물로켓이라고 난리 나는 거 아닌가.
왜, AST에서 만든 [던브레이커 vs 나이트메어]처럼 말이다.
아니면 루키 필름에서 만든 [스타폴: 마지막 전사]나.
“평론가들이 너무 띄워 주니까, 역으로 애매하면 반응이 더 안 좋을 것 같습니다만.”
“감독님, 부정적인 생각 뚝.”
“……그것 또한 운명이겠지요.”
“어허, 플래그 멈추세요. 저희 상황이 영화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거 100% 대박 터질 전개거든요.”
“하지만 배우님, 이건 현실 아닙니까.”
“아니, 글쎄.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하잖아요.”
이민기가 애써 심성보 감독을 다독이려 애쓰는 참이었다.
“배우님, 지금 배우님이 성보한테 하는 말들이 제가 지난 10년 동안 해 왔던 말인데.”
“…….”
“이걸 남이 하는 걸 보니까 재밌네? 내가 옆에서 볼 때는 속 터졌는데. 깔깔.”
진주연 감독이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배우님이 앞으로도 성보 챙겨줘야겠네. 천생연분이네. 앞으로 한 20년만 같이 가는 거 어때요?”
아주 타이밍을 안 놓치시네.
틈만 나면 이민기를 마이야르 픽쳐스 전속 배우로 삼으려 각을 날카롭게 보는 진주연 감독이었다.
‘이제 말 흘리기도 지치네.’
문득, 이민기는 이 두 사람이 왜 결혼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더할 나위 없이 유능한 사람이 자기 없애서는 유약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남들이 내 남자의 진짜 멋진 순간의 모습을 모른다면 어떨까.
“……주연아, 나 지금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 좀.”
“똥쟁이.”
“나 진짜로 속 안 좋아…… 농담 아니야…….”
“나도 농담 아닌데?”
응, 생각해 보니까 그냥 놀리는 게 재밌어서 만나시는 것 같다.
그래도 나름 동업자 앞인데 체면 세워줄 생각이라고는 쥐뿔도 없으시구나.
‘아니야, 생각해 보면 진주연 감독님이 응원해 주는 게 더 상상이 안 가.’
눈 뜨고 보기 어려운 광경 속에서 이민기가 현기증을 느끼기를 잠시, 더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씨, 이제 개봉까지 하루밖에 안 남았겠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겠네요.”
“어떤 거요?”
호기심이 어린 주하나의 얼굴을 향해, 이민기가 세상 진지한 한마디를 토해냈다.
“우주에 간절하게 바라는 거요.”
“……? 우주요?”
갑자기 무슨 우주?
농담하는 건가?
얼이 빠진 주하나를 향해 이민기가 심각하리만치 진지한 목소리로 수긍했다.
“네, 간절하게 빌면 우주의 코스믹 파워가 몰려들어서 소원을 들어준대요.”
“그게 돼요?”
“베스트셀러에서 그러는데, 하면 된대요.”
운에 기댈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기울인 뒤라면, 정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을 정도로 모든 수단을 다한 뒤라면 어떨까.
“기도하죠.”
운은 강력한 친구가 된다.
이민기가 그렇게 이번 생 들어서 처음으로 운에게 간절히 부탁하려는 찰나였다.
손을 덧대고 눈을 감기를 자그마치 3초.
“가 아니지!”
이민기가 불과 5초 전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왁, 갑자기 왜 그러세요?”
“하나 씨! 저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뭐라는 건가.
자기가 기도하자고 해놓고 갑자기 사람이 왜 이러나.
갈피를 못 잡는 주하나를 향해 이민기가 전국의 누나 여동생들을 홀린 그 눈빛을 선보이며 말했다.
“우주에 빌기는 뭘 빌어요.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먼지 한 톨만도 못한 존재일 텐데. 이래서 자기개발서는 베스트셀러여도 믿을 게 못 된다니까.”
“네, 네? 그렇긴 하죠? 그럼 안 빌어요? 빌지 말까요?”
“아뇨, 안 빌자는 건 아니고.”
“…….”
“예로부터 그 뭐야, 소원이라는 게 빌더라도 좀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제대로 빌어야 뭐라도 된다고 했잖아요? 손만 비비는 거 말고.”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이민기는 아예 온몸을 비틀어가며 스트레칭을 쭉쭉 켜더니 말했다.
“어디 보자, 고대에는 가뭄이 이어지면 왕이 부덕해서 그런 거라며 단식하면서 제사 줄창 지었다고 하죠? 그게 다 그거잖아요. 아무것도 안 하면 민심 잃을까 봐 쇼라도 한 거죠.”
“그렇다고 치……죠?”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솔직히 반박하고 싶은데, 이 근본 없는 주장이 대체 어디까지 갈려나 궁금하다. 이민기라는 사람이 정말 쓸모없는 말은 안 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래도 이민기 배우님이라면 혹시.’
뭔가 뾰족한 한 수를 갖춘 게 아닐까.
이민기라면 모른다. 끝에 가서 뒤집을 한 수가 있지 않을까.
어쩐지 자신감에 찬 이민기의 말투에 주하나의 눈빛에 외마디 기대감마저 떠오른 찰나, 이민기가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기왕 비빈다면 우주에 비비기보다는 소비자님들한테 비비는 게 낫죠.”
순간, 그의 눈빛에 총기, 아니, 광기가 맴돌았다.
“해 보죠, 인디언 기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