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9)
운빨로 탑스타-19화(19/200)
제19화
오디션 날 아침.
이민기는 이번 생에 이르러 처음으로 아침 연습을 결석했다.
중요한 오디션을 앞두고 겁에 질렸다거나 하루 놀려고 그런 건 아니고.
합격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할 일이 있어서 그러했다.
‘서정우 이사가 패션에 많이 신경 쓴다고 했지.’
그래서 패션을 잘 아는 사람을 찾아왔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이민기가 매주 피팅모델 알바를 뛰고 있는 쇼핑몰의 사장, 유규언이었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평소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떤 일이든 일은 전문가가 잘 하는 법이죠. 그것 아십니까? 캐쥬얼이라는 게 편하게만 입으면 그만이라고 많이들 말합니다만, 그건 모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같은 캐쥬얼이라도 입는 방식에 따라서 와닿는 느낌이 완전히 다른 법이지요.”
“…….”
“학교에 복학생 선배가 입고 온 회색 츄리닝은 추해서 눈을 둘 곳을 찾기 어려운데, TV 속 연예인이 입으면 핏감이 죽이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주름 하나까지 다 은밀한 계산이 들어갑니다.”
평소의 그와는 달리 말이 많았다.
원래 이렇게 주장이 강한 사람이었던가.
‘그러고 보니까 원래 디자이너를 준비했다고 했나?’
이민기의 생각이 맞았다.
유규언 대표는 단순히 돈을 벌려고 의류 쇼핑몰을 차린 게 아니다.
그는 자기 옷을 만들어 팔 수단으로 쇼핑몰을 차렸다.
디자이너로서의 철학을 갖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 철학을 반영할 뮤즈를 앞에 두고 들뜨는 것도 기본소양이었고.
“오늘만큼은 제가 실력 발휘 좀 해 보겠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유규언 대표가 손가락을 뚜둑 꺾었다.
부탁을 들어주는 수준을 넘어 열정마저 느껴지는 모습에 이민기가 헛웃음을 지었다.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봐요?”
반쯤 농담으로 물어본 순간이었다.
“예, 있었죠.”
“역시. 혹시 연애 같은 거라도.”
“민기 씨 때문입니다만?”
“네?”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유규언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이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민기 씨 덕분에 최근 저희 쇼핑몰 매출이 로켓처럼 상승했다고.”
“예?”
그 말에 민기의 눈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나 때문에 매출이 늘었다고? 나한테 그런 재능이 있었나?’
의외로 배우가 아니라 모델이 천직이었던 건가.
재능을 잘못 다루고 있었나.
이민기가 긴가민가한 찰나, 유규언이 거듭 그의 눈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야구장 짤…….”
“악!”
이민기의 입에서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야구장.
근래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리 잡은 단어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유규언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시죠? 혹시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그게, 아닙니다. 예,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속 말씀하세요.”
“흠, 여하튼.”
유규언은 이민기의 반응이 어리둥절한지 눈을 좁게 뜨다가도 말을 이었다.
“민기 씨가 야구장에 등장하신 모습이 나온 뒤로, 매출이 갑자기 평소의 배로 뛰었습니다.”
“…….”
“그전에도 민기 씨가 모델 일을 시작한 뒤 점점 매출이 개선되고 있었습니다만.”
그런 이유였나.
비로소 진상을 깨달은 이민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구장이 이렇게라도 도움이 돼서 다행이네.’
하긴, 여기저기 뜨긴 했지.
그럼에도 이민기가 유규언 대표의 대접이 낯설었던 건, 이런 대우를 받아본 기억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네 덕분에 일이 잘 풀린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최근 몇 년간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너 때문에 회사 망하게 생겼다.’라는 말을 들었지.
그렇기에 이민기가 남의 호의를 받는다는 사실이 낯선 건 당연했다.
“민기 씨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자주 생각했습니다.”
유규언 대표가 행거에 가지런히 걸린 옷가지를 뒤적이며 흐뭇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민기 씨에게 부탁을 받았을 때 바로 이거다! 했죠. 덕분에 며칠 동안 공부 많이 했습니다.”
“하하…… 제가 운이 좋았네요. 이렇게 도움도 받고. 황송할 정도네요.”
“아니죠. 민기 씨가 오디션에 붙어서 지금보다 더 뜨면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으니, 오히려 제가 더 행운 아닌가요?”
받은 게 있으니 돌려주겠다는 말.
이 짧은 논리가 이민기에게는 남다른 감상으로 와닿았다.
지난 그의 삶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남들은 원래 이렇게 살아왔나.’
이민기가 아릿한 감회에 사로잡힌 사이 유규언이 짧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스타일리스트님. 아시죠? 오늘은 민기 씨 중요한 날이니까 실력 한껏 발휘해 주세요.”
“네!”
평소 이민기의 스타일링을 맡았던 직원도 의지에 찬 목소리로 붓을 들었다.
그렇게 지지고 볶는 시간이 두 시간.
“할 수 있는 만큼은 했습니다.”
유규언 대표가 이마에 서린 땀을 닦아냈다.
입힐 수 있는 옷은 전부 입혀 봤다.
그 끝에 이민기의 얼굴과 체형에 맞는 최적의 룩을 완성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는 걸까.
유규언 대표의 노하우를 온전히 받아낸 이민기의 모습은 평소와는 달랐다.
‘당장이라도 화보에 나올 것 같다.’
이민기가 놀란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유규언 대표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꼭 붙으세요. 아니, 붙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뒤.
이민기는 짐을 챙겨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예감이 좋다.
오늘이라면 뭐가 달라도 다를 것 같다.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 학원까지 걸어가는 길, 이민기의 눈에 어느 사람의 모습이 사진처럼 눈에 박혔다.
‘누구지?’
기다란 코트를 입은 사람인데, 그 핏이 엄청났다.
전체적인 상이 잠시나마 이민기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을 정도.
하지만 바쁜 시간이다.
이민기의 머릿속에서 사내의 인상은 사라지고, 대신 오디션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 가득 찼다.
‘얼른 가서 몸이라도 풀어야지.’
그는 언제 발걸음을 멈췄냐는 듯 다시 부지런히 다리를 옮겼다.
한편.
이민기가 사무실을 떠난 뒤.
유규언은 몇 분이 지나서야 비로소 침착한 척을 때려치우고 직원들에게 물었다.
“……민기 씨, 붙겠지?”
“그야 당연하죠!”
조금 전까지 이민기의 전신을 치장하던 스타일리스트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고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지만요. 민기 씨한테는 매번 좋은 에너지를 받거든요. 심사위원이라는 그 사람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라면 바로 뽑을걸요?”
“내 생각에도 그렇기는 한데.”
어딘가 초조하다.
‘일단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는데.’
이렇게까지 남의 일이 자기 일 같았던 게 얼마 만인가.
유규언이 안절부절못하고 사무실 안을 성큼성큼 배회하는 와중이었다.
덜컹.
갑작스럽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썩 익숙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멋들어진 코트를 입은 남자였다.
그 등장에 유규언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왔냐?”
유규언에게 의상 관련해서 일을 맡기며 종종 들리는 남자였다.
나이에 비해 동안 얼굴을 보이는 사람.
“왔냐가 뭐냐. 손님한테. 오셨냐고 정중하게 말해야지.”
“손님이 아니라 진상이지.”
그는 유규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무실을 자기 집 거실이라도 되는 것마냥 팔자걸음으로 돌아다니더니 말했다.
“너도 아침부터 참 바쁜가 보다.”
“뭐가?”
“여기저기 사방에 옷이 널려있잖아. 보니까 누구 스타일링이라도 해줬나 본데. 좀 캐쥬얼하다?”
“아, 이거.”
유규언은 널린 옷가지를 어딘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더니 말했다.
“조금 전까지 여기에 오디션 보러 간다는 사람이 왔다 갔거든.”
“전에 네가 밥 먹으면서 말했던 그 사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어, 그 사람.”
“흐음.”
남자는 그 말이 의외라는 듯 웃더니 말했다.
“이거 우연이네. 나도 마침 오디션 보러 가는 길인데.”
* * *
이민기가 학원에 도착할 무렵.
연습실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먼저 도착해 몸을 풀고 있었다.
그곳에 이민기가 문을 열고 나타난 순간이었다.
‘누구지?’
모두가 눈을 의심했다.
짧은 순간, 이민기의 멋이 그 공간의 평균을 한참 넘어선 탓이었다.
하지만 일단 의식하기 시작하자 어쩔 수 없이 힐끔거리느라 모두의 동작이 어색해지길 잠시.
먼저 입을 연 건 김탁이었다.
“이야, 민기 씨, 중요한 날이라고 힘을 팍 넣으셨네?”
생각이 깊지 않은 그이니만큼, 칭찬도 단박에 나왔다.
“평소에도 좀 이렇게 꾸미고 다니시지. 빈티 나게 다니지 마시고.”
칭찬 아닌 것도 바로 나왔고.
기대한 게 잘못이다.
이민기가 할 말을 잃고 헛웃음을 짓는 사이 유선아가 끼어들었다.
“탁 씨, 본인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거 실례거든요?”
“빈티 나긴 했잖아요.”
“사실이긴 한데! 그래도요. 못 하는 말이 없어.”
유선아가 이민기를 세워 놓고 김탁에게 면박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곁눈으로 이민기의 모습을 살피기 바빴다.
‘대박.’
조마조마하다.
가뜩이나 큰 눈을 한층 더 크게 떴다.
‘원석인 건 알았지만, 작정하고 꾸미니까 이렇게까지 되네.’
이민기의 패션은 굳이 따지자면 청바지에 흰색 셔츠를 얹은 것에 불과했다.
바지에는 자연스러운 워싱이 들어갔고 상의는 움직임에 불편하지 않게끔 살짝 오버핏.
머리는 이마를 살짝 덮으면서 희미한 가르마가 돋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하기만 한 룩.
하지만 그 전체적인 완성도가 너무나도 높았다.
‘왜 이렇게 다르지?’
이들은 몰랐다.
이민기의 스타일이 몇 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는 스타일,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의 정석이라는 사실을.
놀란 건 유선아뿐만이 아니었다.
‘저 사람, 원래 저렇게 멋졌나?’
연습실에 와서 연습 중이던 학원생들도 연습을 멈추고 곁눈질하기 바빴다.
‘연기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민기 씨 은근히 근육이 있었네. 운동하나?’
‘본판이 되니까 살짝만 꾸며도 바로 날개를 다네.’
물론, 이민기의 본판이 좋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완성한 건 패션의 힘이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흔히들 말하곤 하지만, 똑같이 비주얼이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격차를 만드는 것도 패션인 법.
더욱이 이민기는 옷걸이가 좋아 더더욱 옷빨이 잘 먹혔다.
게다가 유규언은 대중복에 집중하느라 티를 안 내서 그렇지, 디자이너로서의 실력 자체가 일류.
그의 섬세한 손길이 닿으니 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으, 왜 이렇게 바라보지.’
이민기는 그런 시선이 어색했다.
분명 꾸미기는 꾸몄는데, 온 사방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뚫어져라 쳐다보니 눈을 둘 곳이 안 보인다.
어딜 봐도 눈이 마주칠 것만 같은 기분에 시달리다가 간신히 말했다.
“트레이너님은요?”
“아.”
그 별것 아닌 질문에 유선아가 당장이라도 잠에서 깬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먼저 일 좀 보고 계신데요. 1시간 있다가 오디션장에서 만나자고, 그동안 몸이라도 풀고 있으라고 하셨어요. 오디션 시작하면 아는 척하지 말라네요.”
“네, 고마워요.”
“저기 그리고.”
이민기가 웃으며 답하는데 유선아가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어드바이스인데, 어디 가서 사람들한테 함부로 고맙다고 하지 마세요.”
“네? 왜요?”
“그냥요.”
* * *
입장까지 불과 몇 분을 앞둔 시각.
오디션 시작을 코앞에 두고도 편안한 사람들이 있었다.
숫자는 다섯.
딱 봐도 외모가 범상치 않은 사람들인데, 전원 잼 액팅스쿨의 장학생들이었다.
“그거 알아? 한국 힙합은 별로 안 멋져.”
“하여간 외모지상주의가 세상을 망치고 있다니까.”
그들은 평소 해 왔듯 대본을 숙지하거나, 잡담을 떠는 둥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긴장감이라고는 크게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데뷔가 그리 급하지 않을뿐더러, 비공개 오디션 한 번에 목을 맬 입장도 아니기 때문.
‘JC 엔터가 대단한 곳이긴 하지만, 굳이 조바심을 낼 것까지는 없지.’
머리카락을 단발까지 길러 예수 머리를 하고 안경을 쓴 남자, 김태양도 그러했다.
그는 오디션 그 자체보다는 다른 게 궁금했다.
‘선생님이 평소에 그 칭찬하던 사람들, 정말 그렇게 잘할까?’
오디션을 함께 볼 사람들의 실력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민기에 대해서 호기심을 품었다.
직접 가서 확인하면 그만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민기의 연습은 이른 오전에 몰려 있다 보니 마주칠 일이 없었기 때문.
오후에 학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알바를 뛰러 갔고.
“그러고 보니까.”
김태양이 입을 열었다.
“그 이민기라는 사람, 잘할까요?”
짧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말이 기폭제가 되었다.
“글쎄요?”
대본을 붙잡고 중얼거리던 여성이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정말 잘했으면 이미 데뷔했거나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니지 않았을까요? 연극과를 나온 것도 아니라던데. 나이도 있으면서 아직 출연 경험도 없고. 오디션은 계속 떨어졌다고 하고.”
그들로서는 이민기를 딱히 고평가할 요인이 없었다.
스물다섯의 늦은 나이까지 데뷔를 못 하고 학원에서 썩고 있으니.
선생님들에게 극찬을 좀 듣는다고는 하나, 실적이 없는 이상 그게 전부였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는 흔한 인사말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 야구장 영상 보면 재밌는 사람 같기는 하더라고요.”
“아 그거, 나도 봤어. 개 웃기던데.”
“보니까 잘생기긴 했는데, 그렇게까지 뜰 정도인가?”
그렇게 이민기의 정체를 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와중이었다.
뚜벅뚜벅.
멀리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무심코 눈을 돌렸을 때.
복도로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민기와 유선아였다.
김태양이 그 모습을 볼 무렵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러했다.
‘카메라빨을 더럽게 못 받나 보네.’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