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92)
운빨로 탑스타-192화(192/200)
제192화
역주행.
이미 떨어진 것, 앞으로도 떨어져야 마땅할 것이 다시 상승하는 것.
빗방울이 중력을 거슬러 올라 구름으로 향하는 것. 폭포수가 땅에서 하늘로 흐른다는 것. 죽어가는 시체의 몸에 돌연 생기가 감도는 것.
알고 보니 음악천재.
OTT 개봉과 함께 추락했어야 했을 그 작품의 성적이, 역으로 거꾸로 치솟기 시작했다.
[매출이 3배 상승했다고 합니다.]역주행의 시작이었다.
[……보통 그런가요?] [보통이라는 게 어떤 의미에서 보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굳이 말하자면 3배 추락하는 게 보통이라고 합니다만.]그렇다.
떨어지는 게 정상이었다.
극장계 가서 보면 한 편에 만 원이라도, OTT에서 보면 한 달에 만 원이다.
저렴한 값에 자유롭게 볼 수 있는 OTT에 작품이 풀렸다면, 극장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하락해야 정상이겠지.
하지만 [알고 보니 음악천재]는 그렇지 않았다.
[미쳤냐? 그걸 TV로 보게]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제발 극장 가서 봐라. 내가 사정사정한다.] [나중에 자식들 얼굴을 어떻게 볼래? OTT로 봤다고 말할 수나 있겠냐.]팬들이 자발적으로 극장에 달려갔다.
OTT로 본 사람들이 2회차를 보겠다며 더 좋은 경험을 추구해 극장으로 간 것.
그 덕에 작품의 극장 수명이 거의 죽어가고, 넷플레이에서는 작품이 풀린 2달 뒤로도 성적은 되려 역주행을 그려 나갔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참 뭐라고 해야 할까.
[극장가에서도 생각이 많이 바뀐 듯합니다.]시장 그 자체에도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온 듯했다.
[사실, OTT와 극장은 경쟁자가 아니라 공생 관계였던 거 아닐까요?]물론, [알고 보니 음악천재]가 독특한 케이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보통은 안 그렇겠지. 하지만 선례가 쌓이면 쌓일수록 증명되는 법이다.
대중은 좋은 영화를 더 좋은 환경에서 보고 싶어 한다. 이 당연하기 짝이 없는 진리가 그동안 경쟁 앞에서 흐려지고는 했다.
“……대단하네.”
이민기가 천천히 중얼거렸다.
뭐가 그리 대단한 걸까.
그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걸까. 아니면 마이야르 픽쳐스의 제작 능력에 감탄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내 작품을 좋아해 줄 줄이야.”
관객들에게 대단히 감사하는 걸까.
아마 이것이 맞겠지. 이민기의 입가에서는 도저히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다른 무엇보다도 대중이 영화 속에서 티켓 값 이상의 가치를 발견해 주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
터진 포대 자루처럼 입가에서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온다.
흔히 세기의 명작들의 뒤에 꼭 따라붙는 수식어였다. 아마, 이민기의 이번 작품 또한 그 반열에 합류했다는 증거겠지.
기쁘다.
하지만 산에서 마냥 유유자적하게 노가리만 깔 수는 없는 타이밍이 되었다.
‘슬슬 내려가 봐야겠네.’
이민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엉덩이에 달라붙은 먼지를 털어냈다.
너무 빠르지 않나 싶지만, 일정이 생겼다. 아무리 더 쉬고 싶더라도 꼭 참여만 해야 할 일정이었다.
이민기가 호흡을 길게 들이마시고는, 시원하게 내쉬며 말했다.
“상 받으러 가야지.”
이 영화를 왜 만들기로 했었나. 왜 잘 만들기로 다짐했었나.
소정의 목적이 있지 않았나.
달성할 때가 왔다.
* * *
화려하기 짝이 없는 어느 회장.
목에 카메라 스트랩을 맨 한 남자가 영화 속 스파이처럼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는 넌지시 말했다.
“그 이야기 들었습니까?”
“뭡니까?”
“소식이 느리시네. 그 이민기가 오늘 시상식에 출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음?”
그 말에 건너편의 콧수염이 풍성한 중년 남자의 얼굴에도 놀라움의 물결이 번졌다.
“그 이민기가 말입니까?”
“예. 우리가 아는 이민기 중에 또 다른 이민기가 있겠습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군요.”
무엇이 말이 안 된다는 걸까.
이민기가 이번 시상식에 참가하는 게 뭐 그리도 이상하단 말인가. 중년 남자의 입에서 곧 그 정답이 흘러나왔다.
“이민기는 영화의 성공으로 부담감을 못 이기고, 아예 잠적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현재, 이민기라는 배우의 대외적인 인식이 그러했다.
실력을 한참 넘어선 성공에 스스로도 경악해버린 나머지, 겁을 먹고 일체의 관심을 거부한 채 어딘가에 숨어들었다고.
대중이 듣는다면 비웃겠지만,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론이었다.
하지만 중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다음 말은 훨씬 더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상을 못 탈 가능성이 없지 않은 만큼, 망신을 살 바에야 하던 대로 쭉 숨어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알고 보니 음악천재]가 이번 시상식에서 수상하지 못하리라는 말이었다.“쉿, 누가 듣습니다.”
“딱히 숨길 필요도 없는 말 아닙니까. 누가 모른다고.”
중년이 당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는 하나, 영화 자체로 보면 경쟁자가 많지 않습니까?”
이번 작품의 고질적인 병이 있었다.
상업적인 재미에 치중한 나머지, 좀처럼 참신한 맛은 없다는 것.
대중에게 아무리 사랑을 받은들, 시상식에서 그들의 작품을 평가하는 건 대중이 아니다. 이 바닥에서 수십 년을 도사려 온 노괴들이다.
결국, 그들의 눈에 들지 못하면 시상은 요원한 일이겠지.
‘미안하지만, 그게 객관적인 현실이다.’
카메라를 맨 남자가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는 말했다.
“하긴, 저도 이번에는 인 어 시리즈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만.”
“예, 이민기의 연기도 좋긴 하지만 황홀한 수준은 아니었고.”
“흥행이 작품성의 척도였다면, 오딘 유니버스는 이미 오스카를 서른 번도 넘게 타갔겠지요.”
흥행과 평가가 일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점을 고려해도 이들의 [알고 보니 음악천재]에 대한 평가에는 유독 짠맛이 짙었다.
“주최 측에서 흥행보다는 작품을 중시한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라도 상을 주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모처럼 의견이 일치하는군요. 이민기도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울림이 작습니다. 조금 더 배워야 할 배우이지요.”
“아, 동의합니다. 대배우들과 동렬에 서고 싶다면 더욱 깊어져야 합니다.”
이제 본심도 숨기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서는 주위 시선조차 잊으려는 찰나였다.
“와, 정말요?”
목소리 하나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움찔.
놀란 두 기자가 약속했다는 듯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상상조차 못 한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주하나?”
주하나.
[알고 보니 음악천재]의 여성 주연이 바로 그녀였다.원래 국민 여동생이었던 것이, 요새 들어서는 지구 여동생에 가까운 존재로 부상한 그녀.
어쩌면, 현시점에서 가장 유명한 아시아인 여자 배우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주하나가 세상 해맑다 못해 얼룩 한 점 느껴지지 않는 미소와 함께 되물었다.
“왜 그러세요? 나누시던 말씀 계속 나누세요. 재밌는데.”
“…….”
“제 눈치 보지 마시고요.”
눈치를 보지 말라기에는, 표정과 달리 살짝 화가 난 목소리였다.
“…….”
“…….”
두 기자가 마치 사자를 마주한 초식 동물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이크.’
엄밀히 말해서, 그들이 못 나눌 대화를 공공연히 떠든 것은 아니었다. 영화 전문 기자들끼리 영화 평론을 못 나눌 게 무엇이 있겠는가.
그 정도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의 성격이었다.
‘주하나 배우, 이민기를 배우로서 존중하다 못해서 존경하다시피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
주하나의 성격이었다.
평상시에는 봄 날씨처럼 싱그럽다가도, 유독 이민기에 관해서 말을 잘못하면 겨울 칼바람처럼 날카로워진다지.
그 성격이 처음 드러난 건 [알고 보니 음악천재]가 개봉 후 2달이 지났을 무렵, 어느 라이브쇼에 그녀가 등장했을 때였다.
[한국에서는 암암리에 성형 수술이 유행한다고 하지 않습니까?]진행자가 화제 욕심을 참지 못하고 무례한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아, 어쩌면 이민기도 그럴지 모르겠군요. 피지컬이 동양인의 것이 아니잖습니까? 어깨부터 특별한데, 그 정도로 핫한 배우라면 혹시 모를 주사위 바늘이.] [무례하시네요.]주하나의 얼굴에서 웃음의 빛깔이 바뀐 찰나였다.
[그쪽, 이민기 배우님과 대화 한마디라도 나눠 보셨나요?]보통이라면 웃음거리로 넘기고 말 일인 상황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약쟁이는 워낙 흔하고, 이민기의 몸이 그 정도로 좋다는 농담으로 넘길 수도 있었을 테니.
하지만 주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조롱이라면 몰라도, 이민기에 대한 농담만큼은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말이다.
“이민기 배우님이 커리어에 비해서 빨리 성장하기는 했죠.”
아직 배우로서 멀었다는 말을 짚고 넘어가려는 걸까.
주하나가 차갑기 짝이 없는 눈웃음과 함께 쏘아붙였다.
“저희는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라.”
“그런가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아카데미상 최연소 수상 배우는 12살짜리 어린아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
“그러고 보니까 대중의 시선을 걱정하는 배우님이 계시기는 해요. 저도 그렇고. 하지만 그건 걱정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
아뿔싸, 처음부터 쭉 들었구나.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대화는 주하나의 일방적인 압박이 반복되는 모양새였다.
‘제발, 놔 주라.’
‘앞으로 이민기에 관해서는 말조심할 테니까.’
속에서 눈물이 흐른다.
주하나의 말에 작정하고 반박하려면 반박할 수 있겠지.
향후 기자로서 활동하는 이상, 무슨 발언을 하든 수만 수십만의 반박에 부닥뜨릴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아, 익스트림 필름 소속 기자님이셨네요?”
신분까지 캐는 건가.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머리에서 혼이 빠져나가는 느낌마저 받는 찰나였다.
“아이고, 하나 씨, 어디 가셨나 했더니 여기에 계셨네.”
멀리서 수염을 잔뜩 기른 남자, 심성보 감독이 다급하게 달려오더니 말했다.
“오늘은 중요한 일정이 쭉 있으니까, 개인행동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드렸지 않습니까.”
“감독님,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사정?”
“글쎄, 이쪽 기자님들이요.”
주하나는 자세히 설명하는 대신, 눈빛을 슬쩍 흘기며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시선 하나만으로도 심성보 감독은 이들 사이에서 오간 이야기를 대강 눈치챘다.
‘이민기 배우님을 나쁘게 말했군.’
감독이니만큼 대충 알고 있다.
그들과 그들의 영화를 별 트집을 잡아가며 깔보는 자칭 평론가, 기자들이 암암리에 존재한다는 사실 정도는 말이다.
더욱이 그가 아는 주하나는 어디 가서 함부로 화낼 사람이 아니지. 이민기에 관해서만 분노 조절 기능이 서투른 사람일 뿐이었다.
“후우.”
심성보 감독이 한숨을 내쉬고는 주하나와 기자 둘을 번갈아 보던 중 말했다.
“익스트림 필름 소속 기자님이셨군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
이쪽도 기억하시겠단다.
기시감마저 느껴지는 말에 기자들이 못 흘렸던 눈물을 마저 한 바가지 쏟아냈다.
‘점잖기에 구세주인 줄 알았더니, 도긴개긴이잖아.’
마이야르 픽쳐스 사람들은 다 이런가. 앞으로 두 번 다시 엮이지 않겠다.
그들이 그런 결심을 하는 사이, 심성보 감독이 슬쩍 고개를 기울이더니 주하나의 귓가에 귓속말하듯 중얼거렸다.
“이민기 배우님, 방금 막 공항에 도착하셨답니다.”
“……!”
그 한마디에 주하나의 얼굴에 순간 웃음이 되돌아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황당함에 물들었다.
‘본 시상식까지 1시간도 안 남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