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93)

운빨로 탑스타-193화(193/200)

제193화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지금이요?!”

주하나의 경악에 물든 목소리에 심성보 감독이 다급히 그녀를 만류했다.

“쉿, 쉿. 목소리 낮추세요.”

“여기 미국이잖아요. 어차피 한국어라서 못 알아들어요.”

“요새는 알아듣습니다.”

주위에 보는 눈이 많았다.

안 그래도 마이야르 픽쳐스 일동은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 아닌가.

뜨거운 감자 중에서도 그냥 감자가 아니다. 고소한 땅콩기름에 갓 튀긴 특급 감자튀김 정도.

기자들로 득실거리는 이 바닥에서 말 한마디라도 잘못했다가는 언제 아침 기사의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모르니까 진정하시죠. 소리를 지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여보가 먼저 진정해. 공식 선상이니까 체통 차려야지?”

“……내 체면 좀.”

진주연 감독의 태클에 심성보 감독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배우님, 언제 오시려고.’

시상식까지 정말로 얼마 안 남았다. 상황이 급하다.

아카데미 상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 없이 시상식을 진행하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코미디 아닌가.

‘당장도 부담감에 배우 생활 접고 은퇴한 거 아니냐며 루머가 퍼지는데, 시상식장에도 안 나온다?’

무슨 말이 떠돌지 모른다.

마이야르 픽쳐스에 불화설이 터질지도 모르지. 어쩌면 회사의 투자 가치 그 자체에도 파급력이 미칠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 이런 상황에 회사 가치 걱정하는 게 다분히 돈미새 같기도 하지만, 이제 수많은 입을 먹여 살려야 할 경영자로서는 외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발!’

그렇게 심성보 감독이 그나마 보는 눈이 많다고 은밀하게 가슴을 졸이는 참이었다.

“아, 감독님, 여기에 계셨군요. 한참을 찾았네.”

한 남자가 그들의 옆으로 다가왔다.

순간, 회장의 시선이 온통 그 남자 한 명에게 쏠렸다. 마이야르 픽쳐스와는 별개로 이미 유명한 사람이니까.

아니, 유명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적어도 미국 땅에서라면 그를 모르는 게 더 이상할 정도이니까.

일거수일투족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 이건 심성보 감독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이라면.’

아직 모른다.

“음? 왜 저를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이야기 좀 나누시죠.”

* * *

‘와, 망했네.’

이민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할 수가 있냐.’

공항에 도착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맞춰서 일정을 조율했고, 여기까지는 다 좋았다.

오래간만의 해외여행이지만 JC를 통해 만에 하나 스케쥴 문제가 없도록 정밀하게 시차를 계산했다.

정상적으로라면 문제가 없었을 터.

그래, 하필 예상한 날에 갑작스러운 태풍이 일어나 만나 비행기의 이륙이 통째로 터져버렸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최소 반나절은 일찍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자연재해 탓에 일정이 밀리고 밀리고 계속 밀렸다. 다른 비행기라도 급하게 잡고 가려고 했더니, 그것마저도 터져버렸다.

결항, 결항, 결항.

또 결항의 반복.

결국, 이민기가 비행기에 오른 건 무려 10시간이나 더 흐른 뒤였다.

시계를 다시 한번 살핀 이민기가 눈물을 삼켰다.

‘세상이 날 억까하는 건가?’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더니, 오르막길 다음에 내리막길이 온 건가.

[알고 보니 음악천재]가 너무 히트를 터뜨려서 그 반동이 온 건가. 행운을 너무 몰아 써서 이제 불행 길만 남은 건가.

말이 되나.

아무리 그래도 하루 치 비행기 스케쥴이 모조리 그 꼴이 난다는 게 말이 되나.

‘날씨 좋았잖아.’

대체 뭔데.

모처럼 느낀 불행이란 가히 하소연할 곳도 없이 억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을 보자면 이미 끝난 것과도 다름이 없었다.

왜냐.

‘1시간 안에 시상식장까지 어떻게 가.’

그렇다.

너무 멀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장, 코닥 극장이 위치한 LA 시내 공항에서 내릴 수 있었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해 탓에 꼬였다.

공항 스케쥴이 터진 탓에 거의 2시간은 떨어진 옆 도시 리버사이드로 와야만 했다.

‘시상식장까지 멀어도 너무 멀어.’

걸어서 약 20시간, 자전거로는 6시간, 차로 달려도 1시간 반은 족히 걸릴 위치.

마침 저녁 시간대라서 자동찻길이 막힐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3시간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겠지.

무슨 짓을 해도 때에 맞추기란 무리다.

“에휴.”

이민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안다.

이건 무조건 조졌다.

상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이번 시상식장에서 그의 기회는 물 건너갔다.

무리하게 지각해서 욕을 먹느니, 아예 참석조차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그럼 적어도 자연재해 탓에 결석했다며 관대하게 봐 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원래, 기다리게 하는 사람보다는 기다리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이야르 픽쳐스는 함께 동고동락한 가족들 아닌가.

가족을 기다리게 하는 게 사람인가.

설령 미국 언론들에게 조롱당하더라도 참석만큼은 하겠다. 사람들 다 떠난 자리에 참석해서 뒷북을 치더라도 그 자리에 참석해서, 제작진들에게 사과는 해야겠다.

‘그래, 지금이라도 출발하자.’

이민기가 지나가는 택시 한 대를 붙잡으려는 와중이었다.

삐리리.

핸드폰에 갑작스러운 전화가 걸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발신인 이름을 보아하니 썩 익숙하면서도 거북한 사람이었다.

“……감독님.”

심성보 감독이 그 당사자였다.

‘으, 무슨 말을 하든 변명하는 꼴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피하지는 말자.

이미 결심했으면 할 말이라도 확실하게 전하자. 이민기가 그런 결심을 굳히며, 내두를 변명 목록을 정리하고 전화를 받아든 찰나였다.

“네, 감독님, 죄송하지만 비행기 문제 때문에 늦어졌습니다. 지금이라도 택시 잡아서 빨리……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예상 밖의 말에 이민기가 눈을 크게 떴다.

“출발하지 말고, 기다리라고요? 여기서?”

* * *

잠시 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릴 LA 시내의 극장, 코닥 극장, 오늘 하루라면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인 단연 실시간으로 화제로 부상한 이름이 있었다.

“이민기는 결국 결석한 건가?”

이민기였다.

“마이야르 픽쳐스 사람들은 저기에 다 있는데.”

“안 오는군.”

조용하다.

아무리 그래도 늦게나마 도착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끝내 이 지경이다. 시상식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금조차도 이민기의 모습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각색상, 리키 더 영보이!”

진행자가 크나큰 고함과 함께 수상자를 발표했다.

곧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곳 회장 사람들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이민기는?”

손으로는 갈채를 보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다른 곳에 이목이 쏠려 있는 듯했다.

영혼 없이 손뼉을 치던 이 중 하나가 슬쩍 그럴듯한 가설을 내놓았다.

“주최 측에서 미리 언질을 받은 것 아닌가? 노미네이트까지는 갔어도 수상은 못 받는다고.”

이민기가 정말로 망신이 두려워서 불참했다는 것이었다.

아카데미상은 원칙적으로 수상 직전까지 비공개라고 알려져 있다만, 언제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참석이 확실하지 않은 해외 스타의 경우에는 사전에 고지할 때도 잦았다.

“결국, 알고 보니 음악천재는 아카데미 수상에 실패한 셈이로군.”

“음악상은 받을 수 있겠지.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같은 걸 못 받을 뿐.”

“후후, 그런 이유라면 부끄러워서 안 왔다고 할 수도 있겠군.”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해도 참석은 해야지. 한국 배우들은 다 그런가?”

그들의 얼굴에는 조소를 넘어 일말의 불쾌함마저도 묻어 있었다.

그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가 되고도 불참이라니. 이건 개인의 사정을 넘어서 미국 영화계 그 자체를 모욕하는 일 아니겠나.

“내일 잡지에 실릴 카피는 정해졌군. 아시아의 스타 배우가 할리우드의 자존심을 짓밟는다.”

“쯔쯔쯔, 이래서 비미국계들은.”

“쉿.”

“그러고 보니까 윌리엄 록하트도 안 보이는데, 음악상도 못 받는 거 아닌가?”

“그 사람은 애당초 영화 업계 사람도 아닌데, 자기 유명세를 이용해서 한 발 걸치려고 했던 것 아닌가?”

“한물갔군.”

하지만 아직 시간은 남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여느 시상식이 그렇듯, 주목도에 따라 역순으로 시상 순서를 나열하는 게 관례였으니.

조연상, 미술 분장상, 애니메이션상 등이 먼저.

그렇게 20개에 가까운 상을 차례대로 준 뒤에야 오는 게 음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 등의 메인 상이었다.

이런 이유일까.

‘알고 보니 음악천재는 상을 하나도 못 받는군?’

마이야르 픽쳐스 일동은 한참 전부터 요지부동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앞서 그들이 노미네이트 될 만한 상도 몇 개는 거론되었다. 예를 들자면 음향상, 시각효과상, 미술상 같은 것들.

하지만 [알고 보니 음악천재]는, 수상하지 못했다.

“축하드립니다. 오딘 유니버스의 신작, 풀코트! 오늘로 벌써 세 번째 수상이군요. 자랑스러우시겠습니다.”

“제가 고생해준 우리 제작진을 대표해서 받을 수 있어 영광입니다.”

늘 그렇듯 AST로 돌아갔다.

전형적으로 돈을 퍼부은 만큼 때깔이 나오는 분야라서 그럴까. 상대적으로 저예산인 마이야르 픽쳐스로서는 한계가 있었던 것.

애초에 아카데미 주최 측과 AST의 돈독한 사이는 아주 먼 옛날부터 유명하기도 했고.

촬영상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호텔 도쿄! 이노우에 타카히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촬영상은 전통적으로 예술 성향이 짙은 거장들이 받아 가는 경향이 있었다.

예술 그 자체보다는 상업성을 더 앞서 생각하는 마이야르 픽쳐스에게는 불리한 부문.

불리하다.

불리해서 못 받은 것이다.

“마이야르는 수상 운이 나쁘군.”

“그러고 보면 만만투도 상을 못 탔던가?”

“쯔쯔, 제작진이 뒤에서 크게 미움받는 모양이지.”

그렇게 추측도 해 봤지만, 전부 변명일 뿐이었다.

결국, 모자라기 때문이니까.

“각본상! 새벽집!”

어느새 메인으로 주목받는 상까지도 슬슬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불과 몇 분 뒤부터는 남우주연상과도 같은 메인 부분이 진행될 예정.

그들이 보기에는 심성보 감독마저도 살짝 체념한 눈빛으로 보였다. 사실, 평소에도 저런 눈매였지만 원래 표정은 읽기 마련 아니겠나.

‘끝났군.’

그렇게 속으로 결론을 내린 찰나였다.

“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 이상한 소리 들리지 않나?”

말 그대로였다.

이상한 소리였다.

아니, 소리 이상으로 신경 쓰이는 무언가였다.

“진동 같은 게.”

진동이었다.

건물, 특히나 창문을 통해 작게 울릴 만큼이나 미세한 진동 같은 것이 시상식장을 습격했다.

“신경 쓰이네.”

“대체 무슨.”

관중석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방음 시설이 잘 갖추어진 코닥 극장, 하물며 지금처럼 엄숙해야 할 시간에 미세한 잡음이 들려왔기 때문.

“어느 염치 없는 사람이.”

“건물이 낡았나?”

하물며 진행자마저도 심상치 않은 기세를 감지한 걸까. 한참이나 거침없이 떠들던 입을 멈춰 세웠다. 이상 사태 속, 시상식장의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주위를 살피는 와중이었다.

뚜벅, 뚜벅.

시상식대로 연미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올라오더니, 진행자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는 언질을 전했다.

“무슨 일이지?”

“사고라도 터졌나?”

하필 제일 궁금한 메인 부문 직전에?

시상식을 멈추고 개입해야 할 만큼 급한 일인가?

주위에서 건물이라도 무너졌나?

모두의 의문이 쏠린 찰나.

“기다리셨습니다.”

진행자가 고개를 돌리고는, 치열이 다 드러날 정도로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막, 배우 한 명이 이곳 코닥 극장에 도착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