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94)
운빨로 탑스타-194화(194/200)
제194화
아카데미상 시상식.
그 위대한 행사가 진행되는 장소, 할리우드 코닥 극장.
잠깐의 소란으로 조용해진 극장의 관객석에서, 한 노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배우가 도착했다고?”
배우가 도착했다.
진행자의 짧은 한마디가 이들 사이로 파문을 일으켰다.
“배우? 누구?”
“그게 누가 됐든 행사 도중에 굳이 소개하기까지 할 일인가?”
“잠깐만, 그보다 아까 그 소리는 뭐야?”
시상식장이 엄숙할 필요는 없다. 도리어 유쾌하면 좋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외적인 긴장이 감돌았다.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이.
그 안에서 유독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가 있었으니.
‘음, 이 순간을 기다렸지.’
진행자가 그러했다.
평소 찌뿌둥한 표정으로 유명한 그가 한없이 상쾌한 표정을 지으며, 쐐기를 박듯 입을 열었다.
“마이야르 픽쳐스의 이민기입니다.”
이민기.
그 이름 세 글자가 마침내 코닥 극장에 강림하고야 말았다. 아니, 강타했다.
“이민기?”
“이민기가 여기에 왔다고?”
한순간에 경악한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그게 대수로운 일이야? 이민…….”
누군가가 쿨한 척 웃어넘기려는 와중이었다.
“세상에!”
그의 한마디는 차마 끝마칠 수조차도 없었다. 주인공이 빠져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시상식에 권태감을 느끼던 군중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결석한 게 아니었군.”
“그럼 마이야르 픽쳐스에게도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 건가?”
“실종된 거 아니었어?”
이민기다.
새삼스럽지만, 한국의 어느 슈퍼스타가 한 말이 있었다.
[팬만 있는 사람은 스타다. 안티를 가진 사람도 스타다. 하지만 슈퍼스타는 다르다. 팬과 안티, 슈퍼스타라면 양쪽을 다 미치게 만들어야 한다.]이민기에게는 안티가 많았다. 이번 회장에는 유독 많았다. 그를 깎아내리듯 한 마디를 못 쌓아 안달인 사람이 많았다.
그 말인즉슨.
“하하! 올 줄 알았다니까! 내가 말했잖아!”
그의 팬 또한 안티와 동률로, 아니, 그 이상으로 흘러넘친다는 말이었다.
“이민기!”
“후흐흐흐! 아직 상이 몇 개 남았지?”
“아까 그 소리가 이민기가 등장하려는 소리였군. 참, 사람이 화려해. 허세가 잔뜩 들어서는.”
“멋지네!”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게 클리셰라고는 하지만, 설마 시상식 후반부가 되어서야 도착하다니. 사람 간 떨어지게 만들고 있어.”
활기가 감돈다.
사람들은 이제야 깨달았다. 오늘의 시상식이 재미없었던 이유. 어딘가 심심했던 이유. 그 이유는 바로.
이민기가 이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보안 업체의 요청에 따라, 혹시 모를 사태를 점검하기 위해 10분 뒤부터 시상식을 재개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말과 함께 잠시 식이 소강 되었다.
새삼스럽지만, 그 또한 이번 행사에서 숨겨진 이민기의 팬 중 한 명이었다.
‘꼴 좋다.’
안티들이 꼴 보기 싫은, 그런 팬.
* * *
‘…… 와아, 눈치 보여.’
이민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뒤늦게 도착한 시상식장은 뭐라고 해야 할까. 참으로 눈치가 보여서 고개를 들기도 벅찰 정도였다.
슬쩍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자, 적어도 수십 쌍의 눈동자가 숨길 생각도 없다는 듯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차마 버티지 못한 이민기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나 때문에 시상식이 잠깐 멈췄다고 했나?’
한창 행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그랬으니 눈치를 사는 것도 어쩔 수 없지.
하물며 감독상이나 남우주연상 같은 메인 부문만 남기고 있었으니.
보안 사태 때문에 쉬었다고 했나. 말이 좋아서 보안이지, 그거, 자칫하면 테러로 의심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후후, 역시 쥐새끼처럼 이쪽을 흘끔흘끔 바라보는 사람이 많네. 안 그렇습니까? 이걸 스타 중의 스타라고 하는 거지.”
옆자리에서 뭐가 그리도 뿌듯한지 팔짱을 낀 채 헛소리를 연발하고 있는 이 남자, 윌리엄 록하트가 그 범인이었다.
이민기가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꼭 그랬어야만 했어요?”
“뭐가?”
“아니, 좀 조용하게 올 방법도 있었잖아요.”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 미사일을 맞아서 낙하산 타고 탈출하는 한이 있어도 이 방법밖에 없었지.”
윌리엄 록하트가 씨익 웃으며 이민기의 항변에 종지부를 찍었다.
“헬리콥터!”
그렇다.
이민기는 조금 전, 리버사이드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이곳 코닥 극장까지 한 번에 날아왔다.
공항에서 시상식장까지 걸어서 약 20시간, 자전거로는 6시간, 차로 달려도 1시간 반.
그 말인즉슨.
“덕분에 때에 맞춰 오긴 했는데요.”
헬리콥터라면 편도 30분 컷이라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위험했어요.”
“하지만 빨랐지.”
그래, 개 빠르더라.
헬리콥터가 그렇게 빠른 줄은 몰랐네. 모처럼 옛날 시내버스 타고 다니기도 무섭던 시절이 떠올랐다.
아무튼, 이민기가 이곳까지 도착한 건 전적으로 윌리엄 록하트 덕이었다.
[윌리엄 록하트, 당신, 스타지요?]시상식이 시작되기 1시간 전, 심성보 감독은 윌리엄 록하트에게 한 가지 부탁을 건넸다.
[그야 물론? 내가 스타가 아니면 이 자리에 있는 어중이떠중이의 98% 정도는 서민이라고 보아야.] [급하니 생략하고, 혹시 비행기나 헬리콥터 같은 거 한 대 없습니까? 개인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거로.] [아하, 자가용 헬리콥터. 물론, 오늘도 타고 왔지!]할리우드에서 스타들이 개인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다니는 일 정도는 그리 드물지도 않다.
그중에서도 윌리엄 록하트는 특별한 축이었다.
비행기든 헬리콥터든 자격증까지 취득하다 못해, 자기 손으로 몰고 다닐 정도로 애정을 품고 있었으니.
[리버사이드 공항에 가서 이민기 배우님을 데려올 수 있겠습니까?] [오, 언제까지?] [시상식 도중이라도 상관없습니다.]마침, 코닥 극장 옆에는 헬리콥터가 착륙할 만한 장소(Helipad) 또한 존재했다.
코닥 극장으로부터 불과 열 걸음 옆에 붙어 있는 건물, 로우스 할리우드 호텔이 바로 그 정체였다.
[호텔에 도움을 요청하려면 서둘러야겠군.]해서, 착륙장 이용 요청을 거절하는 호텔 측을 돈으로 후려치기까지가 10분. 도착해서 출발해 이민기를 데려오기까지가 왕복 1시간 10분.
그렇게 해서 시상식 도중에 긴급 난입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영화 한 편 찍은 기분이군.’
관심을 즐기는 윌리엄 록하트로서는 더없이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분간은 음악을 접고 영화배우로 새로이 도전해 볼까 고민될 정도로.
물론.
‘우와아…… 평생 먹을 눈칫밥을 여기서 다 먹네…….’
관심으로 먹고살면서도 관심이 부담스러운 이민기는 1분 1초가 죽을 맛이었고.
하지만 어찌 됐든, 너무 늦지는 않게 도착한 듯했다.
“감독님, 저희 지금까지 상 하나도 못 받았다고 했죠?”
“앞으로 받을 겁니다.”
“네.”
어딘가 영화를 찍을 때처럼 자신감이 차오른 심성보 감독의 반응에 이민기가 입을 다문 찰나, 주하나가 난입했다.
“배우님이 왔으니 걱정할 거 없어요. 우리들의 시상식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
저거 좀 패배 플러그 같은데.
그렇게 이민기가 착석하고 앉아 다소곳이 대기하기를 불과 3분이 흘렀을 때였다.
“시상식을 재개하겠습니다.”
진행자가 복귀하며 기다리고 기다렸던, 진짜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상은 고작해야 6개가 안 되었다.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촬영상 정도일까.
‘딱 하나, 하나만이라도 챙기자.’
심성보 감독이 긴장되는 가슴을 애써 다스렸다.
애초에 몇 년 전만 해도 아카데미상을 진지하게 노리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지 않았었나. 지금부터라도 상 하나 챙기면 된다.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하나만 챙기자.’
하나만이라고 말하니 아카데미상 하나를 우습게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심성보 감독은 명색이 10억 달러를 넘긴 대박 작품의 주인공이었다.
이 정도는 기대해도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고.
“남우주연상입니다.”
그의 하나만 메타는 오래가지 못했다.
진행자의 입에서 나온 다음 한마디 때문이었다.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 제때 와서 다행이군요.”
설마.
시간이 멈추는 것처럼 느리게 흐르는 찰나.
“대리 수상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진행자가 갓 도정한 쌀과도 같이 흰 치열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웃으며 말했다.
“이민기입니다.”
그나마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온전히 멈추었다.
“…….”
“…….”
심성보 감독도, 이민기도, 이 시상식장에 앉은 그의 수많은 팬들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시간이 멈추었다.
1초의 시간조차도 1분처럼 흐를 정도의 충격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망치처럼 내려친 이 찰나.
진행자가 다시금 웃으며 말했다.
“또 지각할 겁니까?”
“아.”
그제야 제 호흡을 되찾은 이민기가 떨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부둥켜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이 현실로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인식되지 않았다.
진행자와 눈이 마주친 시각이.
이 넓은 시상식장에서 그의 발걸음 소리만이 오롯이 울리는 이 청각이.
살짝 서늘하게끔 조절한 실내 온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불빛 탓에 피부가 가볍게 달아오르는 촉각이.
전부 다 현실로 느껴지질 않았다.
‘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자 이민기는 무대 위에 두 다리로 서 있었다.
옆에는 환하게 웃는 진행자가, 정면에는 수백 명의 인파가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시샘으로, 누군가는 동경으로, 누군가는 기쁨으로.
“축하…… 마침 오…… 마이야…… 저 또한…… 핸드폰…… SNS를 …….”
진행자의 말이 끊기듯 들린다.
이 상황이 오감을 압도해, 청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민기가 마침내 정신을 찾았을 때는, 진행자가 그의 눈앞까지 마이크가 들이닥쳤을 때였다.
“소감 말씀하시죠.”
“아.”
그렇지.
말해야지.
“기왕이면 헬리콥터로 여기까지 온 소감까지 같이.”
“저.”
이민기는 관객석의 웃음소리를 헤집고 입을 열기를 잠시, 다시 닫아 두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라도 수상대에 서게 되거든 어떤 말을 할지 머릿속으로 천 마디가 넘어서게 정리해 두었다.
그럼에도 막상, 정리해 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야 할 순간이 코앞까지 찾아오자 입이 열리질 않았다.
머릿속이 텅 빈 이 상황에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음.”
이민기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았다는 말이었다.
운. 끝에 와서는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겸손하다 못해 타인을 바보로 만드는 듯한 한마디에 관객석으로 황당함이 번져나갔다.
“운? 진심입니까?”
진행자가 그들을 대변해, 이 상황을 무마하듯 농담조로 되물었다.
“설마, 남우주연상을 운으로 땄다고 말하려는 겁니까?”
“네.”
이민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아니, 말하려다가 잠시 참았다.
머릿속으로 정리할 정도의 여유가 조금이나마 생겼기에, 5초 정도 머금었다가 뱉었다.
“절 이 자리까지 데려와 준 마이야르 픽쳐스 식구들. 제게 배우가 될 기회와 성장의 기회를 준 JC 엔터의 사람들. 또, 제 작품을 사랑해 주신 관객분들을 만난 게 제 운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머금은 생각이었다.
그간 운이 좋아졌다는 게 어떤 의미에서의 운일지 많이도 고민해 왔다.
단순히 광의에서의 운일까.
아니면, 기회의 운일까. 사람을 만나는 운일까.
하루하루가 숨 돌리기도 벅찰 만큼 바빴음에도 매일같이 고민했다. 하지만 끝내 정답을 찾기란 어려웠다.
딱 떨어지는 정답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
마지막 작품을 촬영하고 휴식을 위해 산속에 틀어박혔을 때.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산에서 혼자가 되어서야 이민기는 마침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이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게 절 이 자리까지 데려다준 운이었습니다.”
사람이야말로 그의 운이었다.
사람 그 자체를 멀리했을 무렵, 이민기는 비로소 운이 사람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제가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끔 영감과 배움의 원천이 되어 준 수많은 감독님들, 배우님들, 또 영화 외에도 드라마, 소설부터 만화, 신화, 코미디 프로그램까지도 모든 종사자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제게는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이민기에게 운이란 그런 것이었다.
예전에는 운이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창작자들과 밀접하게 살아가는 삶도 그에게는 썩 괜찮은 삶이었다.
적어도 배움은 있지 않았나.
불운을 못 이겨 고통스러웠던 삶 또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열심히 살 원동력이 되었다.
적어도 이민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이 자리에 와 주신 모든 분께도 행운이 함께하길 바라겠습니다.”
이민기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3초보다 짧고 4초보다 짧은 시간이 흐른 뒤.
짝.
손뼉 소리가 시상식장의 정적을 부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