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96)
운빨로 탑스타-196화(196/200)
제196화
논란이 될 작품이다.
그 자신만만하기 짝이 없는 이민기의 말에 김아성 트레이너가 작게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민기 씨는 내 데뷔작에 꼭 진흙을 발라야 직성이 풀리겠어?”
“저도 마음만 같아서는 꽃길을 깔아드리고 싶은데.”
“그럼 그냥 꽃길을 깔아.”
“싫은데요.”
이민기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배우잖아요. 기왕 배우 시작했으면, 4대 예술 영화제 중 하나 정도는 찍어 봐야죠.”
그렇다.
이민기가 이번에 촬영하려는 영화의 목적은 예술 영화제 수상.
상업성으로는 매출 15억 달러, 아카데미 4관왕을 달성한 시점에서 끝판왕을 찍었으니 미련이 없다.
그러니 예술 쪽으로도 한번 끝을 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패션 앤 패션이 의외로 상을 못 탔었지.’
노미네이트까지 가고 그쳤다. 이게 이민기의 마음속으로는 의외로 큰 미련으로 남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아예 예술 영화 쪽으로 작정하고 하나 찍어 보자고.
“사회 고발 영화잖아요. 엄청나게 각 잡고 준비했어요.”
그게 이번 작품, [비망록]이었다.
환경보호단체가 돈에 취하거든, 그들이 보호해야 할 환경을 얼마나 냉정하게 파괴할 수 있는가를 섬세하게 그려낼 예정.
하물며 실화 기반이다.
어느 단체가 기업의 사주를 받고, 타 기업을 환경 파괴범으로 지목해 여론몰이를 일으켰던 모 사건을 바탕으로 창작했다.
당연하지만 만에 하나 고소를 피하기 위한 멘트도 준비했고.
[작중에 언급되거나 묘사되는 인물, 단체명 및 지명은 모두 허구입니다. 등장하는 사건과 전개 또한 창작물로서, 현실의 모방에 불과함을 밝힙니다.]영화 제작자들의 단골 멘트였다.
농가에서 동물들 폐사시킨 사건도 써먹을 예정.
일부 환경보호단체의 추악함을 고발하는 영화라니. 얼마나 논란이 될지 벌써 가슴 한구석이 섬뜩할 지경이다.
어쩌면 이민기라는 이름은 향후 백만 안티를 끌고 다니게 될지도 모르겠지.
“개봉하기 전에는 선민의식에 미친 사람으로 욕먹고, 개봉하고 나면 환경단체들 모함한다고 욕먹을걸요.”
“민기 씨, 그러다가 진짜 칼빵 맞는 거 아니야?”
키득키득 웃는 김아성 트레이너의 말에 이민기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래도 뭐, 할 말은 해야죠.”
“간이 커졌어.”
“누군가는 앞장서야죠. 기왕이면 잃어도 좀 덜 아플 사람이.”
슬슬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민기는 한국의 창작자들이 너무 대중의 눈치를 살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게 창작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도.
영화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탓일까. 요새 들어서 저런 경향이 더 짙어졌다.
관객들의 시선을 너무 살피는 거.
호불호는커녕 비판조차 없도록, 안정적인 선택만을 추구하게 되는 거.
‘이것도 오딘 유니버스의 폐단을 반복하는 일이지.’
둘은 다르지만 같다.
상업적인 성적을 위해 안정적인 공식에 맞춰 작품을 짜내는 것. 대중의 비판이 두렵다는 이유로 사리는 것.
본질적으로 이 둘은 무엇이 다르겠는가.
“창작자라는 사람이 바깥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만들어야 할 것을 못 만든다면, 그것도 또 다른 문제잖아요.”
“흐음, 대중이 민기 씨 뜻을 못 알아준다고 해도?”
“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건 제 능력 부족이겠죠? 작품으로 설득하지 못한 거니까요. 관객들 가르치려 든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고.”
“너무 위험하지 않나?”
“감수하려고요.”
창작자는 만들고 싶은 창작물을 만들면 된다. 소비자들은 소비하고 싶은 창작물을 소비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비판이 태어나거든, 이건 서로가 감수할 몫이다.
“재미없어서 망해놓고 그걸 대중 수준 문제라고 둘러대지만 않으면 돼요.”
그건 뚝배기 깨야지.
어딜 감히.
대중은 신이다.
평가가 저마다의 몫이라고 해서, 그게 재미없는 영화에 대한 면죄부는 되지 못한다!
메시지고 뭐고 일단 볼만한 작품을 먼저 만든 다음 이야기다.
이민기가 그런 결론을 내린 순간이었다.
“아, 민기 씨, 그거네.”
김아성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선아 씨가 사회고발 영화로 튀르키예 영화제에서 상 타니까, 그거 부러웠구나.”
“…….”
아니야.
* * *
다시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중간에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이민기는.
“감독님! 준비 다 됐습니다!”
감독 겸업으로 노선을 갈아탔다.
[알고 보니 음악천재]에서 제작자의 재미를 알더니, [비망록]을 계기로 투타 겸업마냥 감독을 겸하기 시작한 이민기.그는 어느새 배우로서도 탑클래스의 자리에 올랐다.
“고생 많았어. 배우님들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바로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음, 조금 이따가 커피 드론 몇 대 올 건데, 그거 오면 좀 받아 줘.”
“네!”
스태프에게 간단한 지시를 내린 이민기가 대기실 복도를 저벅저벅 걸어갔다.
거울이 반듯하게 쭈욱 깔린 복도, 이민기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거울 한 장을 응시했다.
‘나이를 못 숨기겠네.’
한때는 미남 배우의 상징으로 알려졌던 그였다. 그래도 나이는 못 이겼던 걸까. 쉰을 넘어서며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많이 생겼다.
그래도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꽃중년의 정석, 이민기] [T존이 부각 돼서 그런지 예전보다 더 남성적인 연기도 할 줄 알게 됐더라] [이민기는 젊을 때도 지금도 멋있음]소화할 수 있는 배역이 폭넓어졌기 때문이었다.
젊었을 때는 거의 미남 역할만 맡았지. 하지만 지금은 동네 철물점 아저씨 역할까지도 소화할 수 있다. 사극에서 영의정도 해 봤고.
‘음, 나쁘지 않아.’
무엇보다도, 어깨는 그대로라서.
다시 한번 강조하겠지만, 얼굴 외에 피지컬은 그대로라서. 벗으면 몸 좋은 건 20대 시절이랑 크게 다를 게 없어서.
‘요즘 펌핑이 좀 죽은 것 같은데, 루틴을 한 세트 추가할까? 아니면 중량을 늘려?’
역시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까 권준용 관장님 못 뵌 지도 오래됐는데, 조만간 단백질 쉐이크나 들고 찾아가 봐야겠네.
그렇게 잡생각을 하면서 저벅저벅 걷기를 한참, 이민기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있었다.
“오셨습니까!”
“감독님!”
“배……감독님!”
부산 남포동 거리였다.
아니, 자세히 보면 허공에 조금씩 노이즈 같은 것이 보였다.
‘먼지 꼈나? 저건 나중에 장비 좀 손보라고 해야겠네.’
사실 스튜디오였다.
초고가 홀로그램 장비가 쭉 깔린 돔 야구장만 한 규모의 초대형 스튜디오. 이곳, 송도 한 장소에서 세상 모든 환경을 시뮬레이션해서 촬영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이 좋아.’
사막도.
중세 유럽도.
성균관도.
뉴욕 거리 한복판도 전부 이곳에서 소화 가능.
홀로그램으로 한 차례 씌워놓고 촬영한 뒤, 촬영 후 편집 과정에서 2차로 매만지면 상당히 그럴듯해져서 간단했다.
‘돈을 쓴 보람이 있어.’
제작진은 촬영 피로도를 크게 낮출 수 있고, 배우들 또한 CG 그린 스크린 특유의 괴리감을 느끼지 않아도 돼서 좋다.
물론, 누군가는 홀로그램 스튜디오가 여전히 시뮬레이션으로는 현실을 못 따라간다며 현지 로케를 고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민기는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축.
‘있는 기술은 쓰고 볼 일이지.’
선두에 있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써 줘야 더더욱 빠르게 발전하지 않겠나.
하물며, 이민기가 이 장소를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으니.
“형씨, 이게 얼마 만이래?”
마이야르 픽쳐스와 중립지대의 지인들이 전부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탁 씨, 오늘은 지각 안 하셨네요.”
“지각을 누가 해.”
“탁 씨가 하셨죠. 기억 안 나요? 우리 학원 다닐 때 매일 커피 사셨던 거.”
이민기의 말에 한참 나이를 먹은 김탁이 벌컥 외쳤다.
“아니! 난 매일 30분씩 일찍 왔어! 민기 씨가 2시간씩 일찍 왔을 뿐! 나는 늦지 않았다!”
초등학생들 싸우는 것만 같은 광경에 출연진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이미 배우로서는 월드 클래스를 찍어도 한참 전에 찍은 두 사람이다. 가히 리빙 레전드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하지만 실제로 본 모습은 어떠한가.
“대체 언제까지 저걸로 싸운대?”
“이길 때까지.”
“아, 이길 때까지 싸우면 이기지.”
좀 많이 유명한 얼굴을 제외하면 신인 배우들 하는 짓과 크게 다르지도 않지 않은가.
“슬슬 철 좀 들었으면.”
까메오 겸 찾아온 김지환의 한숨을 내쉬는 목소리에 김태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은 많이 들었을 텐데, 다른 철을 안 들어서 그렇지.”
“우리가 이해해 줘야지 어쩌나.”
어쩌다 보니 죽이 잘 맞아서 붙어 다니기 시작한 두 사람이었다. 요즘은 이촌동 부부라는 별명으로 예능에서도 한 세트마냥 묶여 다닐 지경.
그들이 이민기과 김탁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옆으로 끼어들며 한마디를 끼얹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죠.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는 어른스럽게 좀 굴 것이지.”
유선아였다.
“뭘 싸워. 싸우기는. 애도 아니고.”
이민기와 김탁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녀의 모습에 두 사람의 입이 멈췄다.
“…….”
“…….”
“사람을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요?”
댁이 그럴 말을 할 사람인가 싶어서.
이민기랑 경쟁하겠다고, 영화로 이겨 보겠다고 개봉 시기 비슷하게 맞춘 게 대체 몇 번이었더라.
아니, 따지고 보면 그쪽이 김탁보다 심하지 않나.
“태양 씨, 눈빛이 좀 썩었는데요?”
“요새 노안이 와서.”
흔들림 없는 김태양의 눈빛이 그곳에 오롯이 빛났다.
유선아는 흥이 식었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려서 걷더니 이민기를 향해 걸어가서는 말했다.
“민기 씨, 하나 씨는 어디 계신대요?”
“미국에 출장 가셔서 오늘은 못 오시고 중간에 합류요.”
“그럼 심성보 감독님 부부는요?”
“아, 구인모 대표님……이 아니라, 형님이랑 잠깐 강릉에 출장 가셨어요.”
JC 구인모 대표와는 나이를 뛰어넘어 형 동생 사이가 되었다.
사실, 여전히 대표라고 부르고 싶은데 대표라고 부르면 주먹을 들어 올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한 30분 뒤에 여기로 도착하신다고 하네요. 오실 때 매니저님, 이사님도 픽업해서 오신다고.”
“잠깐만요. 강릉에서 송도까지 30분이요?”
“음? 선아 씨, 못 들으셨어요? 최근에 무인 비행기 한 대 뽑으셨대요.”
“아.”
시대의 발전에 힘입어 개인용 무인 비행장치가 크게 보급되었다.
이제 한반도 전역은 40분 출퇴근 생활권으로 통일되었다.
이민기가 손가락을 꼽았다.
“그 두 분만 오면 올 사람은 대충 다 온 것 같은데. 아니다. 최유창 선배님, 강도원 선배님도 아직 안 오셨네. 건주는.”
“저 왔어요!!! 여기!!!”
“왔네.”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애 같다.
생각해 보니까 남들이 나 볼 때도 그럴 것 같기도 하고.
메타인지를 적절한 타이밍에 발휘한 이민기가 하품과 함께 스트레칭을 쭉 키고는 말했다.
“그립네요.”
“뭐가요?”
“이 광경이요. 다들 모인 거. 특히, 스튜디오에 모인 거.”
“그런가? 그렇네요?”
유선아도 작게 웃고는 말했다.
“원년 멤버들이 이렇게 다 모이는 게 얼마 만이래요.”
그렇다.
오늘은 마이야르 픽쳐스와 중립지대의 원 멤버들이 모두 모여, 홍보 영상 겸해 단편 드라마 하나 찍는 날.
어느새 모임이 결성되고도 25주 년이니까 말이다.
‘아성 쌤도 저기 주무시고 계시……어? 여기서 잠이 오나? 여기 홀로그램이어도 일단 남포동 시장인데?’
응, 언제 일어날지 한번 봐야겠네.
일단 다 모일 만큼 모이기도 했겠다. 슬슬 시작해도 되겠다.
이민기가 짝짝 손뼉을 치고는 말했다.
“자, 리허설 갑시다.”
<운빨로 탑스타 본편 완(完)>
–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이번 작품을 끝까지 함께해 주신 모든 독자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운빨로 탑스타는 쓰면서 저 자신이 즐거웠던 작품이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 꼭 운을 소재로 작품을 써 보고 싶었는데, 이번 작품으로 버킷리스트를 성취한 것 같아 후련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떠셨나요?
즐겁게 읽어주신 분들께도, 아쉬움을 느끼셨을 분들께도 거듭 감사합니다.
본편은 여기에서 끝입니다만, 아직 완전히 끝은 아닙니다. 외전 몇 편을 더 적으려 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